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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6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0화

160화. 진해문 (3)

 

적운상이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거기에 넣었다. 그러자 노도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금방 원상태로 돌아왔다. 백수연과 백리난수도 좀 많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엉터리일지도 모르는 점괘를 치면서 은자 하나라니.

“음… 가만있자. 여자는 힘들겠군. 빨리 잊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옆에 두 명이나 있잖아.”

“아!”

백리난수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노도사가 아무것도 모르고 대충 넘겨짚으며 하는 말이었지만, 적운상의 가슴을 도려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그럴 수가 없군요. 원수를 찾고 싶은데요.”

“허허… 저리 어여쁜 소저들을 두고 말이야… 험!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원수를 갚으려고? 칼 좀 쓰나?”

“조금요.”

조금이라는 말에 관추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호남에서 이름 난 고수들을 모두 일 초식에 꺾는 적운상의 실력은 조금 정도가 아니었다.

“음… 못 이겨. 어디 가서 한 몇 년간 수련을 더 해야지 돼.”

이제는 백수연과 백리난수도 웃음을 참느라 얼굴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걸 눈치 챈 노도사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물론 상대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조금 모자라단 뜻이야. 하지만 내가 만든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이길 수 있지.”

“부적은 얼만데요?”

“허, 사람 참, 왜 자꾸 물어? 그런 건 알아서 넣는 거야.”

“그러죠.”

적운상이 이번에는 철전 하나를 넣었다. 그러자 노도사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방금 전에는 은자를 넣더니 지금은 왜 철전 하나란 말인가?

‘이 자식이 지금 사람 놀리는…….’

그런 생각을 하던 노도사는 전에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예전에 적운상을 만났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때 그 젊은이로군.”

“이제야 기억해 냈습니까?”

“하하하. 아닐세. 아니야. 사실 자네가 올 때부터 알고 있었어. 일부러 모른 척했던 걸세.”

“두 사람이 아는 사이였던 겁니까?”

관추서가 묻는 말에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노도사와 적운상은 예전에 한 번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적운상은 노도사에게 같은 것을 물었었고, 노도사는 지금과 비슷한 대답을 했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혈마승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를 했다가 겁을 먹고 후다닥 내뺐었다.

“자네,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군.”

“덕분에요. 그때는 감쪽같이 속았었습니다.”

“하하하. 무림에서는 항상 자신의 실력을 서 푼은 숨기는 법이라네. 그래야 살아남을 수가 있지.”

노도사는 정말로 그랬었다. 무공을 모르는 척, 혈마승들까지 방심을 하게 만든 후에 일류고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뛰어난 경공술로 도망을 쳤었다.

“보아하니 여자들을 구해냈구만. 다 내 덕이지?”

“후후. 들어가시죠. 제가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럴까? 그럼 그러지.”

노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궤를 챙겨들었다.

* * *

 

객잔 안은 한산했다. 노도사는 마치 자신이 적운상 일행에게 대접을 하는 양 점소이를 부르더니 알아서 요리와 술을 시켰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안 먹고들 뭐해? 이 집 요리가 괜찮아. 그래서 요 앞에 자리를 펼쳤던 거야.”

“정말 여기 요리가 괜찮네.”

백수연이 고기요리를 살짝 맛보더니 말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렇게 맛난 음식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항상 아무 곳이나 찾아가서 배를 채우는 걸로 만족했던 것이다.

“그렇지. 나는 맛없는 집에는 안 가.”

“훗! 도사님은 도호가 어떻게 됩니까? 나는 관추서라고 합니다.”

“나는 옥조라고 하네. 옥조진인이라고 불러.”

“옥조? 혹시 청성파의 도사님입니까?”

“예전에 잠시 몸담았었지.”

“그렇지만 옥자 항렬이면… 청성파 장문인과 같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이 아는 게 많구만. 맞아. 청성파 장문인이 내 사제야.”

“헉! 그게 정말입니까?”

놀란 건 관추서만이 아니었다. 백수연과 백리난수도 깜짝 놀라서 젓가락질을 멈추고 옥조진인을 쳐다봤다. 청성파는 사천의 청성산에 위치해 있는 도교문파였다. 그 일대에서는 알아주는 문파로 뛰어난 도인들을 수없이 배출해낸 명문이었다. 지금도 수백 명이나 되는 도인들이 그곳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곳의 장문인이 사제라면 무공이 뛰어남은 물론이고 무림에서의 입김이 결코 작지 않았다.

“이런 고인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행색이 워낙에 초라해서 못 알아봤습니다.”

관추서가 예를 갖추면서 말하자 옥조진인이 손을 저었다.

“됐어. 지금이라도 알면 됐지. 뭐. 그런데 소저들은 누구인가?”

“저는 천응방의 백수연이라고 해요.”

“오호라… 천응방에 호남제일미가 있다더니 바로 소저였구만. 하하하. 과연 눈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로군. 음… 어디 보자.”

옥조진인이 백수연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면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백수연이 조금 무안함에 시선을 피했다.

“쯧쯧. 인연이 뜻대로 되지 않는구만. 따르는 남자들은 많은데 쓸 만한 놈들이 없어. 마음에 두고 있는 놈은 다른 여자를 보고 있고.”

백수연은 옥조진인의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걸 아세요?”

“내가 그간 수행하면서 천지(天地)의 이치를 좀 깨달았지. 그래서 사람의 관상을 약간 볼 줄 알아.”

“훗! 관상에 그런 것도 나와 있습니까?”

적운상이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옥조진인이 인상을 살짝 쓰며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무슨 소리!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일생이 다 들어 있어. 예를 들어 늘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그 고민을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 살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당연히 늘 얼굴을 찡그릴 테고 그것이 인상으로 굳어버리는 거야. 반대로 근심걱정 없이 늘 웃고 사는 사람은 어떤가? 웃을 때 잡히는 주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럼 저는 어떻습니까? 제 얼굴에는 뭐가 남아 있습니까?”

“자네는 볼 것도 없어. 자네는 영웅의 상이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백수연이나 백리난수는 금방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봐온 적운상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웅이라…….”

“그래. 자네는 조만간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야. 가만,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도 모르는군.”

“적운상입니다.”

“좋구나! 이름도 딱이야. 하늘에 떠 있는 구름보다 더 높은 이상을 가지란 뜻이 아닌가? 바로 영웅의 기개를 일컫는 것이지. 자네는 필시 대협이라 불리며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 걸세.”

사실 옥조진인은 조금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모두 그 같은 말을 했다. 상대의 기분을 띄워줘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런 말을 하면 보통은 웃으면서 농담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될 거란 듯이 수긍을 하는 눈치였다.

‘허, 뭐야 이거. 저 젊은 놈이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가만! 그러고 보니 적운상이라는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데…….’

곰곰이 기억을 더듬던 옥조진인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보게, 혹시 자네가 최근 명성이 자자한 형산일검인가?”

“맞습니다. 옥조진인께서도 들어보셨나 보군요. 적 대협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대답은 관추서가 대신 했다.

옥조진인이 적운상을 다시 한 번 빤히 쳐다봤다. 제법 잘생긴 얼굴은 여자깨나 울리게 생겼고, 무표정하니 술잔을 비우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박력은 웬만한 사람은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거기다 말을 아끼고, 눈은 우수에 젖어 있다. 젊지만 이런저런 고생 다 해봤다는 뜻이다. 들려오는 소문처럼 정말 무공도 대단하다면 그야말로 잠룡이었다.

옥조진인은 적운상을 보면서 승천을 눈앞에 둔 잠룡을 보는 것 같았다.

‘명문정파에서 컸다면 이미 그 명성이 천하를 울렸을 것이다. 아니지… 형산파라는 이름 없는 문파에서 고난을 겪었기에 저리 큰 것이야. 부럽구만. 부러워.’

옥조진인이 씁쓸한 얼굴로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다시 술을 따르더니 또 단번에 마셨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관추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닐세. 내 제자 놈이 생각나서 그러네.”

“제자가 속을 썩이나 봅니다.”

“그러게 말일세. 재능만 보자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심성이 글러먹었어. 안 그러면 그 녀석도 자네처럼 곧게 컸을 텐데 말이야.”

“지금이라도 혼을 내주면 되지 않습니까?”

옥조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네. 놈의 무공은 이미 나를 뛰어넘었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네.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꼴로 천하를 돌아다니는 것도 그 때문일세.”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언젠가는 만나겠지. 하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 모르겠군. 그것만은 내 점괘에도 나오지가 않아.”

옥조진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지금까지 나이답지 않게 활기차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적운상이 그런 옥조진인에게 말없이 술잔을 권했다. 옥조진인은 살짝 잔을 부딪치고 홀짝이며 마셨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뭘 말인가?”

“혈마사를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지. 이 년 전엔가 나타나서 한동안 시끌시끌하지 않았었나?”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옥조진인이 의외라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상대가 혈마사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혈마사를 찾아서 어쩔 셈인가?”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음…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호북 어딘가에 그들의 본거지가 있다고 하더군. 정확히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네. 게다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맞는지도 몰라.”

“호북입니까?”

관추서가 물었다.

“그래. 벌써 몇십 년도 더 된 일이군. 그때도 혈마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호남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었지. 그러다 모습을 감췄는데 마지막까지 그들을 뒤쫓은 사람들이 있었네. 아마 백리세가였나 그랬던 거 같아.”

옥조진인이 옛날 일을 회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리난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백리세가가 왜 그렇게 몰락했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백염쌍노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백리난수의 아버지가 백염쌍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가문이 몰락하고 혼자 살아남은 이후의 일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맞을 게야. 음… 그들이 혈마사에 뭔 원한을 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끈질기게 뒤를 쫓았었지. 그러다 호북에서 모두가 당했다더군. 혈마사에서 그들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호북으로 유인했다는 말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혈마사의 본거지가 그곳 어딘가에 있는 게 맞아.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그렇게 당했을 리가 없지. 안 그런가?”

백리난수는 멍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백수연이 손을 잡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네? 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일노나 이노는 나한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었거든요.”

“소저는 누구인가? 혹시 백리세가와 관계가 있나?”

“백리세가의 유일한 후예예요.”

“뭐야? 그랬군. 허허. 난 그것도 모르고, 이것 참…….”

“아니에요. 덕분에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았어요.”

“어르신의 말대로라면 정암사도 그들의 근거지는 아니겠군요. 저는 여태까지 호남 안에 있다고만 생각했지 밖은 생각해보지 않았었습니다. 정보를 달리 찾아봐야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던 관추서가 적운상을 봤다.

“적 대협, 잠시 갔다 올 곳이 있습니다. 달포쯤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시오.”

적운상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관추서에게서는 정보만 받으면 된다. 그가 옆에 있든 없든 상관이 없었다.

“그때는 뭔가 성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소.”

식사가 끝나고 객잔을 나오자 관추서는 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천자산으로 간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그럼 나도 함께 가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대신에 알아서 가는 겁니다.”

“뭐?”

“가는 동안의 경비는 알아서 내자는 뜻입니다.”

“허 참… 내가 자네한테 빌붙을까 봐 걱정인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빌붙을 생각이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었나? 내 신분만 밝히면 어딜 가든 쌍수 들며 환영을 하네. 그깟 돈 몇 푼을 생색내면 쓰나.”

“그럼 그런 곳으로 가십시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말에 올라타자 옥조진인이 양팔을 쫙 펼치고 앞을 막았다.

“정말 이러긴가?”

“저는 영감님과 같이 갈 이유가 없습니다.”

“혈마사 찾는 걸 도와주지.”

“필요 없습니다. 관추서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어허! 자네 얼굴에 액이 끼었어. 조만간 크게 위험해질 게야. 내가 같이 가야 막을 수가 있단 말일세.”

“안 믿습니다.”

“공짜로 해준다니까!”

“알았습니다. 그럼 먹고 자는 것만 대죠.”

“좋네.”

옥조진인이 재빨리 적운상의 뒤로 올라탔다.

“뭐하나? 어서 가세나.”

적운상은 피식 웃으면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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