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5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2화
152화. 혈마사를 찾아서 (2)
“그런데 추 대협은 어떻게 된 걸까?”
“사자왕?”
“응. 너를 업고 산을 벗어날 때 추 대협이 없었다면 모두 죽었을 거야. 추 대협이 남아서 혈마승들의 추적을 막았거든. 벌써 이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혹시 죽은 건 아닐까?”
“걱정 마. 그 사람은 절대로 그냥 죽을 인간이 아니야.”
“하긴… 그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데, 너도 추 대협을 만나면 꼭 해야지 돼.”
“생각해 볼게.”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걸 보고 백수연이 곱지 않은 눈으로 봤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사실 적운상은 이곳까지 오면서 수시로 저렇게 술을 마셨다. 취하게 마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낮부터 술을 입에 대니 그게 문제였다.
그럼에도 말리지 못하는 건, 술을 마실 때의 적운상이 너무나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적운상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양악 때문이었다.
적운상은 이미 주양악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 흉악하다는 혈마사에 끌려가서 벌써 이 년이나 지났다. 혹여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이 주양악을 찾아가려는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서 직접 확인을 해야 완전히 마음을 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이면 익양(益陽)에 도착하겠네요.”
백리난수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익양에는 구괴산이 있다. 구괴산은 천마의 무덤 때문에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쳤었고, 그 와중에 혈불이 주양악을 데려간 곳이었다. 적운상은 그곳에서부터 혈마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이미 이 년이나 지나서 흔적이 남아 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다른 단서가 전혀 없었다. 그때였다.
“하하하하.”
한쪽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객잔 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쪽을 봤다. 그곳에는 두 명의 젊은 도사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한 명은 기골이 장대하니 덩치가 컸고, 한 명은 그와는 반대로 체구가 작고 여려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체구가 작은 도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사형, 그렇게 크게 웃으면 어떻게 해요?”
“왜? 뭐가 어때서?”
“사람들이 쳐다보잖습니까?”
“흥! 내가 웃고 싶어서 웃는다는데 뭐가 어때서? 그러게 너는 왜 따라와서 그러는 거냐? 산에 남아서 좀 더 호연지기(浩然之氣)나 기르다 올 것이지. 간은 조막만해서 말이야.”
“내가 오고 싶어서 왔습니까? 다 사형 때문이잖아요.”
“흥! 아무리 사부님이 나와 함께 가라 했지만 네가 싫다고 했으면 안 올 수도 있었다.”
덩치 큰 도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탁자에 있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형! 대낮부터 술을 그렇게 마시면 어떻게 합니까?”
“커허… 좋다. 옆에서 잔소리 좀 그만해. 술맛 떨어진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운명보고 오라 할 것을…….”
탕!
덩치 큰 도사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봤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형이 좀 취해서…….”
여려 보이는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고는 덩치 큰 도사를 보며 말했다.
“사형!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왜긴? 네놈 때문이지. 운명이 날 따라온다고 했으면 나는 산을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 좀 하라고요.”
“네가 잔소리만 하지 않으면 그러마.”
“으…….”
여려 보이는 도사는 말이 통하지가 않자 그냥 몸을 홱 돌려버렸다. 그러다 마침 그쪽을 보고 있던 백수연과 눈이 마주쳤다.
백수연은 그냥 별 뜻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 도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뭐냐? 왜 그러는 거냐?”
덩치 큰 도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닙니다. 사형.”
“아니긴, 오호… 저런 미인이 있는 줄 몰랐구나. 좋다. 가보자.”
“사, 사형. 가기는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덩치 큰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백수연이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나는 무당파의 운산이라고 하오. 그리고 여기는 내 사제인 운청이오. 사제가 술을 마시지 않아 나 혼자 술을 마시기가 적적해서 그러는데 같이 마시는 것이 어떻겠소? 보아하니 그대도 혼자 마시고 있군.”
적운상이 운산을 봤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봐! 저쪽에 있던 것을 모두 이리로 옮겨와라.”
운산이 소리치자 점소이가 음식과 술을 옮겨왔다.
“두 분 소저가 아주 아름답구려. 눈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소. 이름이나 좀 압시다.”
“저는 백수연이라고 해요.”
“저는 백리난수예요. 무당파의 운자 항렬이면, 혹시 무당십걸인가요?”
“맞소. 무당십걸 중 둘째가 바로 나요. 그리고 이 비리비리해 보이는 녀석이 셋째요.”
“그럼 운학도사님도 아시겠네요?”
“운학을 아시오? 그는 우리의 막내사제요.”
“그럼요. 알고말고요.”
백리난수가 굉장히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운학 그 녀석, 이런 미인들을 알고 있다고 나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는데, 약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고 보니 그쪽하고는 통성명을 안 했구려.”
“적운상이오.”
“적운상? 혹시 형산파 사람이오?”
“맞소.”
“그랬군. 이런 우연이 있나. 운학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못 본 지 이 년이나 됐군. 잘 지내고 있소?”
적운상이 술잔을 비우며 물었다. 그러자 운산이 미소를 지으면서 적운상의 잔을 채워줬다.
“잘 지내지 못하고 있소. 이 년 전에 사부님이 혈마사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고집을 피우더니, 돌아와서 사부님에게 된통 혼이 나고 아직까지 근신 중이오. 하하.”
운산이 잔을 비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적운상이 그의 술잔을 채워줬다.
“그런데 세 사람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
“혈마사를 찾고 있소.”
“혈마사를?”
“그렇소.”
“혈마사는 이 년 전에 나타난 이후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고 들었습니다.”
운청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알고 있소.”
“왜 그들을 찾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일이오.”
적운상이 세세하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를 보이자 운청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운산은 아니었다. 호방한 성격의 그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거나 하지 않았다.
“혈마사를 찾아서 뭘 하려고 하오? 혹시 복수를 하려는 거요?”
“개인적인 일이오.”
적운상이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운산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꿍하기는, 좋소. 그럼 우리도 같이 다닙시다.”
“그러고 싶지 않소.”
“당신들끼리 다니는 것보다 함께 다니는 것이 찾기가 훨씬 쉽지 않겠소?”
“우리와 함께 다니려는 이유가 뭐요?”
“이유라… 일단은 여기 두 분 소저 같은 미인들을 계속 볼 수 있으니까 좋아서요. 그리고 우리도 혈마사를 찾고 있소. 아니 더 정확히는 금마도를 찾고 있지.”
적운상이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혈마사와 금마도가 무슨 상관이오?”
“확실하지는 않지만 금마도의 배후에 혈마사가 있다더군.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운학이 몇 년 전부터 금마도를 쫓고 있었소. 그런데 사부님이 녀석을 붙잡아두는 바람에 나와 운청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된 거요. 얼마 전에 간신히 금마도의 꼬리를 잡아냈는데, 갑자기 그들의 종적이 묘연해졌소. 도저히 찾을 길이 없더군. 그래서 혈마사를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소.”
적운상이 생각하기에는 아니었다. 금마도의 배후에 혈마사가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러니 함께 혈마사를 찾는 것이 어떻소?”
“싫소.”
적운상이 딱 잘라 말했다. 성격이 호방한 운산이지만 그렇게 대놓고 거절을 하자 조금 무안했다.
‘운학에게 들은 대로군.’
운학은 무당파로 돌아와서 적운상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운학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서 운산이나 운청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랬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보니 운학의 말 그대로였다.
혈마사를 찾아다니는 일은 굉장히 위험했다. 당연히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것이 좋았다. 그 사람들이 무당십걸임에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딱 잘라 거절을 했다.
늘 자신감에 차 있고 그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자, 그것이 적운상에 대한 운학의 평가였다.
운산은 더 이상 같이 다니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하며 적운상과 계속 잔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그러다 보니 대낮부터 벌어진 술판은 저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말이야, 소형제.”
운산은 조금 취한 듯 혀가 꼬부라진 발음이 나왔다.
“누가 소형제라는 거야?”
적운상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아까부터 정신이 해롱거리고 있었다. 작은 잔으로 마시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대접으로 바꿔서 마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누구긴? 너지. 이 운산 님의 소형제라면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안 그래?”
“오히려 당신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야? 그럼 한 번 겨뤄보고 결정하자.”
운산이 금방이라도 한판 붙을 것같이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술기운 때문에 비틀거렸다.
“사형,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옆에 있던 운청이 말리자 운산이 손으로 그를 밀어냈다.
“저리 가. 술도 못 마시는 놈이 잔소리는…….”
“도를 닦는 사람이 술을 입에 대는 것이 이상한 거죠.”
“이런 바보 같은 놈. 술은 싫다는 놈이 여자를 보고는 혹 하냐?”
“누, 누가 혹했다는 겁니까?”
운청이 백수연의 눈치를 보며 다급하게 운산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퉤퉤! 저리 치워.”
그때였다. 뭔가가 탁자에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