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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5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51화

151화. 혈마사를 찾아서 (1)

 

동정호(洞庭湖) 하류의 외딴섬.

이곳은 늘 안개가 자욱해서 섬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들만이 찾아갈 수 있는 섬, 그 섬을 그들은 금마도라 불렀다.

끼이익. 끼이익.

삿갓을 깊숙이 눌러쓴 사공이 노를 저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도옥평은 오늘따라 그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적운상에게 패한 이후로는 매사가 그랬다. 쉽게 짜증이 일고 신경질이 났다.

덕분에 그와 함께 다니고 있는 임진숭이 고생이었다. 도옥평의 짜증을 옆에서 다 받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배가 섬에 도착하자 도옥평과 임진숭이 내렸다.

“기다릴까요?”

사공이 물었다. 그는 이 섬의 위치를 아는 유일한 사공이었다. 그래서 그가 없으면 섬으로 올 수도 없었고, 나가지도 못했다.

“기다려.”

도옥평의 말에 사공이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섬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밖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화이초(奇花異草)가 가득했다. 도옥평의 사부인 마염견의 취미였다. 그는 하루의 반 이상을 검을 수련하며 보냈고, 나머지 시간은 꽃을 재배했다.

꽃밭을 가로질러 가자 커다란 공터에 있는 작은 초옥이 보였다. 마염견이 사는 곳이었다.

“사부님.”

도옥평이 초옥 앞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마염견을 불렀다.

“들어오너라.”

도옥평과 임진숭이 안으로 들어가자 평상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마염견이 보였다. 그는 체구는 작았지만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굉장한 노인이었다. 마치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한 자루의 보검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도주님을 뵙습니다.”

도옥평과 임진숭이 인사를 했다. 그러자 마염견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

마염견은 대뜸 용무부터 물었다. 오랜만에 제자가 왔으면 이러저러한 것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상이건만, 마염견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눈에 차지 않는 사람하고는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도옥평이 그의 제자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따뜻한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형산파에 갔었습니다.”

“그래서?”

도옥평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옷을 내려 적운상에게 당한 상처를 보여줬다. 마염견은 도옥평의 어깨에 나 있는 검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깔끔했다. 너무나 깔끔한 솜씨였다. 도옥평은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도옥평에게 이런 상처를 남겼다면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무공이 절정에 달한 고수이리라.

“언제 당한 거냐?”

“달포가 채 안 되었습니다.”

“음…….”

마염견이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달포가 채 안 되었다면 적어도 십 일은 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상처는 방금 베인 것처럼 보였다. 예리하게 베일수록 그런 법이었다. 마염견이 검으로 꽃을 자르면 그 흔적이 칠 일에서 십 일까지 그대로 남는다.

“몇 수 만에 당했느냐?”

“검은 여러 번 섞었으나 실상 일 초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말은 그게 다냐?”

“그는… 심검의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사부님에게 이 상처를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도전이었다. 마연겸의 눈에 살기가 잠시 일렁거리다가 사라졌다. 그 같은 살기에 아주 잠시였지만 도옥평은 몸을 움찔거렸고, 임진숭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목이 붙어 있는지를 손으로 확인했다.

“누구냐?”

“형산파의 적운상이라는 자입니다.”

“형산파? 형산파의 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더냐?”

마염견은 섬 밖의 일에 대해서 웬만해서는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분적인 정보만 알지 세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칠대세력과 견줄 정도로 쟁쟁합니다.”

“심검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군. 네가 보기에 그는 어떻더냐?”

“망설임이 없습니다.”

“망설임이 없다?”

망설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심검의 경지에 올랐으니 당연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무공이 높아도 성격 때문에 가진 무공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성질이 급하거나 소심하거나, 또는 내성적이거나, 등 그런 성격은 무공을 쓰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단번에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손에 사정을 뒀다가 오히려 반격을 당하기도 한다.

“한 번 그를 보고 싶구나.”

“제가 꺾고 싶습니다.”

마염견이 도옥평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시선에는 불신이 들어 있었다. 도옥평은 그걸 알면서도 마염견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남예가 그리되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마염견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래도 많은 것을 전수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래서 아쉽다는 거다. 그 아이가 네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이미 심검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그가 선택한 길입니다.”

“너는… 어렵다.”

마염견이 그답지 않게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아무리 그라도 제자에게 못할 말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사부님.”

“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사부님!”

“나는 아주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그동안 네가 방성을 꺾는다면 다시 생각해보마.”

방성은 도옥평의 사형이었다. 그 역시도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도옥평은 한 번도 그를 이긴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사부인 마염견만큼이나 절대적인 존재였다.

“가보아라. 당분간 자네가 평이를 잘 돌봐주게.”

“알겠습니다. 도주님.”

임진숭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갑시다. 도 공자.”

도옥평은 석상처럼 굳은 모습으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염견은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결정을 번복한 적이 없었다.

“도 공자.”

임진숭이 다시 한 번 도옥평을 불렀다. 그러자 그제야 도옥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형을 꺾고… 다시 오겠습니다.”

도옥평이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몸을 돌렸다. 마염견은 멀어져가는 도옥평의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쯔쯧. 자질은 좋은데 생각이 짧아. 그나저나 어떤 자인지 궁금하군.”

심검의 경지에 올랐다면 소림이나 무당의 장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장문인과도 한 수 겨뤄볼 수 있는 실력이었다. 호남에서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은 오로지 마염견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또 한 명이 생긴 것이다.

“있느냐?”

마염견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어느새 그의 뒤에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커다란 덩치에 천으로 얼굴을 칭칭 감은 사람이었다.

“네. 도주님.”

낮고 탁해서 듣기에 껄끄러운 목소리였다.

“나갈 준비를 해라. 오랜만에 나들이나 가자꾸나.”

“알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모습을 감췄다.

* * *

 

소소객잔(小小客棧), 이름 그대로라면 작고 작은 객잔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객잔은 작지 않았다.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커서 차라리 대대객잔(大大客棧)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 객잔에 적운상이 백수연, 백리난수와 함께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몰렸다. 백수연과 백리난수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 저도 모르게 시선을 잡힌 것이다. 그러나 적운상에게서 느껴지는 기이한 박력에 모두들 아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많네.”

백수연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소소객잔이라는 이름이 전혀 안 어울려요.”

백리난수가 맞장구를 쳤다. 백수연과 백리난수는 조금 들뜬 모습이었다. 적운상과 같이 다니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적운상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도 조르기에 두 사람과 같이 오기는 했지만 역시 혼자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두 사람은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끌었다. 점소이가 주문을 받아 가자 적운상이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백수연을 불렀다.

“누이.”

“왜?”

“내가 뭐가 좋아?”

“응? 호호. 글쎄…….”

“솔직히 생긴 건 나보다 무한이나 은성이가 더 낫지 않아? 배경도 두 사람이 훨씬 낫고.”

“정 떨어지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네.”

“풋!”

백수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백리난수도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말고 한 번 말해봐.”

“너는 뭐랄까… 특이해.”

“특이해?”

“응. 분위기가 독특해서 아, 이 사람이라면 내가 기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그만큼 강한 것도 사실이잖아.”

“단지 그 이유야?”

“그 이유가 얼마나 중요한데. 여자는 연약하잖아.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거야. 나 같이 무림세가와 연관이 있는 여자들은 그게 더해. 약하면 당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면서 사니까.”

“내가 보기에 누이는 약하지 않아. 그리고 누가 감히 천응방의 장녀를 건드리겠어?”

“훗! 그렇지 않아. 그래봤자 나도 여자야. 그저 강한 척할 뿐이야.”

그런 말을 하는 백수연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러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백리난수를 봤다.

“난수 너는 왜 적 동생을 좋아해?”

“저, 저요?”

“응.”

갑작스럽게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자 백리난수가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저는…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어요. 하지만 상황이 그래서 내색하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도움을 받고 나서부터 조금씩 더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백리난수가 얼굴을 붉히며 적운상의 눈치를 봤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남자라면 누구나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호호. 첫눈에 반했다는 거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위험한 상황이라 더욱 끌렸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음… 그런 점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적 오라버니의 등에 업혀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 사람이라면 날 지켜주겠구나 하고요.”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남예 소저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 그렇지?”

“남예가?”

적운상이 몰랐다는 듯이 백수연을 봤다.

“정말 몰랐어?”

“나도 딱 보니까 알겠던데.”

“남예는… 관두지.”

적운상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러자 백수연이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왜? 뭔데?”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뭔데? 말해봐.”

“됐대도.”

“설마… 남예 소저랑 뭔가 일이 있었던 거 아니야?”

백수연이 곱게 눈을 흘겼다.

“아무 일도 없었어. 앞으로도 없을 거고. 아무튼 남예는 아니야.”

“아니긴! 너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같은 이유일걸. 그녀도 너의 그 독특한 분위기에 끌린 게 분명해.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야. 온몸으로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고 말하는데 누가 반하지 않겠어. 네가 못 봐줄 정도로 못생겼어도 여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거야.”

싫지 않은 소리에 적운상은 피식 미소를 흘렸다. 백수연은 적운상이 짓는 미소를 보자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적운상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일일이 반응했다. 그만큼 적운상을 좋아하고 있단 증거였다.

“나 너무 신경 쓰지 마.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잖아.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걸 어떻게 해? 그동안 많은 여자들이 너를 좋아했을 거야. 다만 나처럼 감정표현을 안 하니까 네가 몰랐을 뿐이지. 이러다가 또 감정이 식을지 어떻게 알아? 이번에 따라 나온 건 좀 더 너를 알고 내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어. 그러니까 자꾸 돌아가라고 하지 마. 네가 주 소저를 찾는 데 방해되지 않게 행동할게. 그리고 중간에 네가 싫어지면 난 망설임 없이 돌아갈 거야.”

“누이는 참 당차. 예쁘고. 그러니까 나 말고 더 좋은 놈을 만나.”

“말했지. 아직은 아니라고.”

백수연이 화난 눈으로 바라보자 적운상이 조금 당황하며 시선을 피했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지.”

“먼저 말 꺼낸 게 누군데?”

그때 마침 점소이가 와서 주문한 음식을 내려놓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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