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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4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48화

148화. 심검의 경지 (2)

 

적운상이 천천히 도옥평에게 다가갔다. 임진숭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적운상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앞을 지나가며 등을 보였다.

이건 마치 공격해 달라고, 죽여 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해도 등을 잡히면 끝이다. 그러나 임진숭은 갈등했다.

방금 본 적운상의 압도적인 강함이 그를 옭아맸다. 다른 때였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을 것이다.

꿀꺽!

다시 한 번 침이 넘어갔다. 이제 두어 발자국만 더 가면 임진숭에게 기회는 없다.

‘놈! 나를 무시한 거겠지! 죽여주마!’

임진숭이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양손에 자오원앙월을 하나씩 쥐고 적운상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다.

그때였다. 조용히 걸어가던 적운상이 조금 고개를 돌려 힐끗 그를 봤다. 그 순간 임진숭의 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순히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정면으로 마주친 것도 아니고 힐끗 보는 시선에 아주 잠시 마주쳤다.

그런데도 임진숭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가 살아온 평생에 지금처럼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겁을 집어먹기는 처음이었다.

‘제기랄.’

스스로의 한심함에 속으로 욕이 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현실인 것을.

적운상이 도옥평 앞에 섰다. 남예가 반가움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러나 적운상은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로지 도옥평만 봤다.

“오랜만이군.”

적운상이 나직하면서도 조용하게, 그러나 살기가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 * *

 

“그렇군. 오랜만이군.”

도옥평이 간신히 입을 뗐다. 그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언젠가 금마도를 한번 찾아가려 했었지.”

“훗! 그랬나?”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해도 형산파와는 큰 관계가 없어서 그냥 놔뒀었는데, 후회가 되는군.”

“후회가 된다? 그럼 지금이라도 맞서겠다는 건가?”

“그럴 생각이야.”

“자네 혼자서 금마도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혼자가 아니야.”

“혼자가 아니라? 그럼 실력도 없고 몇 명 되지도 않는 형산파 사람들과 같이하려고 하나?”

“그렇지. 형산파도 함께해야지. 그리고 금검문과 호왕문, 통천문과 백검회까지 모두 움직일 생각이다. 가능하면 무당파도 끌어들이고.”

누가 들었으면 농담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방금 적운상이 말한 이들은 호남세력의 반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무당파라니, 그 정도면 아무리 강한 문파라 해도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적운상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정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후후, 자네가 그리 말하니까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군.”

“사실이니까. 애초에 형산파를 건드린 것이 실수였어.”

“큭큭. 뭔가 착각하고 있군. 그들 모두가 덤빈다고 해도 금마도를 상대할 순 없네. 지금도 결과가 이렇지 않나? 모두들 금마도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조차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지?”

“상관보를 움직여야지. 호남상단이 전면적으로 나선다면 호남에서 숨을 곳이 있을까? 그렇군. 금원상단도 족쳐야겠군. 그럼 뭔가가 나오겠지. 하나만 나오면 돼. 그럼 뭔가 연결고리가 나오겠지. 거길 족쳐서 찾고 또 찾고, 그렇게 계속 추적하다 보면 결국에는 금마도의 실체가 나오겠지.”

도옥평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저런 식으로는 절대로 금마도를 찾을 수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적운상이 나서면 금방 찾아낼 것만 같았다.

“자네가 대단한 건 인정하지. 그러나 무리야. 그러지 말고 우리와 손을 잡는 건 어떤가? 대우는 최상으로 해주지. 형산파의 재건을 바라고 있지?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주지. 그럼 일 년도 되지 않아 호남제일문파로 우뚝 설 수 있을걸.”

끌리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적운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웃기는군.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면 금마도는 왜 그렇게 숨어 있는 거지?”

“우리는 숨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전면적으로 나서면 호남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걸. 그렇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우리가 없다면 호남 무림은 절대로 존재하지 못해.”

“필요악이라… 그런 건 죽은 저들에게 가서 이야기해 봐.”

“어떻게든 나하고 붙을 생각이군. 그 뒷감당을 할 수 있나? 자네야 살아남겠지만 형산파는 완전히 전멸할 걸세.”

도옥평이 말에 적운상의 눈빛이 바뀌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찍어 누르는 묘한 박력이 느껴지는 적운상이다. 그런데 눈에 살기를 띠자 도옥평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도옥평은 어금니를 꾹 물며 적운상을 노려봤다. 지금껏 그는 그 누구에게도 눌리지 않고 살아왔다. 그의 사부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를 누르지 못했다. 도옥평은 자존심이 강해 꺾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적운상이 도옥평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마음먹는다면 암습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서슴없이 다가왔다.

“어디를 전멸시킨다고? 할 수 있으면 해봐. 그 전에 내가 금마도를 아작 내주지.”

적운상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의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그에 비해 도옥평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방금 그는 적운상이 바짝 접근했을 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암습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겁을 먹은 것이다. 단지 몇 마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도옥평은 그 이전부터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적운상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없는데도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얼굴색이 안 좋군. 검이나 뽑아라. 단번에 죽여줄 테니까.”

후끈한 열기가 사방을 확 덮쳐왔다. 짙은 살기가 주위를 묵직하게 눌렀다.

도옥평의 옆에 있던 남예는 그 같은 살기에 숨이 탁탁 막혀왔다. 임옥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러잖아도 부상을 당한 상태라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적운상이 웃었다. 도옥평을 비웃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런데도 도옥평은 검을 뽑지 못했다.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다가올 때부터 도옥평은 머릿속에서 그와 수십 번이나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적운상을 이기지 못했다. 어떤 초식을 쓰든, 어떻게 검을 휘두르든 매번 적운상의 검에 먼저 심장이 뚫렸다.

지금도 도옥평은 자신을 비웃고 있는 적운상과 대결을 하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해도 적운상을 이길 수가 없다.

이마로 땀이 흘러내렸다. 이곳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아니 적운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형…….”

남예가 도옥평을 봤다. 땀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정상이 아닌 것같이 보였다. 정신적인 압박이 그만큼 큰 것이다. 이대로 계속 놔뒀다가는 심마가 껴서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미쳐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이러지 않고 칼을 뽑아 휘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도옥평은 적운상이 얼마나 강한지, 어떤 경지에 올라 있는지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이렇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적 공자, 오랜만에 뵙는군요.”

보다 못한 남예가 도옥평의 앞으로 나섰다.

“비켜.”

적운상은 그녀를 무시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남예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분은 제 사형이에요. 손에 사정을 두셨으면 해요.”

“비키라고 했다.”

여전히 냉랭한 적운상의 말투에 남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는 같이 지내면서 웃고 즐거워하던 것이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그 당시 남예는 충분히 적운상을 죽일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손을 쓰지 않았었다. 정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에… 기억할지 모르지만 적 공자의 목숨을 한 번 구한 적이 있어요.”

남예가 애처롭게 말하면서 적운상을 쳐다봤다.

“그래서?”

“사형을 그냥 놔주세요. 제가 대신 죽겠어요.”

“무슨 짓이냐?”

도옥평이 눈을 크게 뜨고 남예를 봤다.

“사형, 사형은 이대로 돌아가세요.”

“내가… 내가 목숨을 구걸해서 살란 말이냐?”

도옥평이 분노한 얼굴로 남예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렸다. 그러자 남예의 몸이 그의 손에 매달려 공중으로 떴다.

“사… 사형…….”

“닥쳐라.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지껄이면 아무리 너라 해도 살려두지 않겠다.”

도옥평이 남예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와라! 네놈 따위 단번에 베어주마.”

“큭큭. 그래야지.”

적운상이 먼저 움직였다.

따앙!

“큭!”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자 도옥평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이 자식! 죽여 버릴 테다!”

쉭! 쉭!

도옥평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엉망이었다. 초식이고 뭐고 없이, 마치 검을 처음 휘두르는 사람처럼 엉망이었다.

그런 어설픈 검에 적운상이 당할 리가 없다. 적운상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느긋하게 그를 상대했다.

땅! 챙!

“웃지 마라! 비웃지 말란 말이다!”

도옥평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지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심마(心魔)가 낀 것이다.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주화입마다. 그 주화입마의 첫 단계가 바로 심마다.

심마는 어느 한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특히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가 위험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다. 창칼이 난무하고 죽음이 눈앞에 있더라도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대처할 수 있는 굳건함이 있어야 한다.

챙! 채앵!

“으아아아아아!”

도옥평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미친 듯이 소릴 지르고 검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 호기롭게 소리치더니 저 꼴이 뭐란 말인가?

다만 무상지검의 경지를 눈앞에 둔 몇몇 사람들만이 도옥평이 심마에 빠져 저런다는 걸 이해했을 뿐이다.

파각!

“커헉!”

도옥평이 신음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무나 깔끔한 솜씨였다. 움직이는 사람의 몸에 그런 흔적을 남길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형!”

남예가 도옥평을 부축했다. 그러자 도옥평이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무서운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가라. 가서 네 윗사람에게 그 상처를 보여줘라.”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남예를 봤다.

“너는 인질이니까 남아.”

“아!”

남예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인질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형…….”

도옥평은 눈에 살기가 가득하기는 했지만 방금 어깨를 뚫리는 아찔한 고통 때문에 심마가 사라진 상태였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주화입마에 빠졌을 것이다.

“오늘 일, 잊지 않겠다.”

“나 역시. 잊지 않을 거야. 봐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에는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뿌리째 뽑아주지.”

적운상이 나직이 하는 말에 살기가 실리자 주위의 공기가 또다시 바뀌었다. 끈적끈적한 살기가 가득해서 보통 사람은 있기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도옥평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예를 봤다.

“금방…….”

도옥평은 돌아와서 데려가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에 주먹을 꽉 움켜쥐고 몸을 돌렸다.

“가자.”

금마도의 무사들이 하나둘씩 도옥평을 따라 사라졌다. 그걸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모두들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적운상 한 명으로 인해 모두가 살아났다.

“허! 거참… 볼수록 사람 놀라게 하는 녀석이로군. 이제는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겠어.”

이존의가 못 당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그는 다시 한 번 적운상과 겨루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날을 위해서 그 나이에도 밤잠을 설쳐가면서 수련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깨끗하게 털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적운상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너무나 멀리 가버렸다.

“자네는 참 복 받은 걸세. 저런 손녀사위를 얻었으니까 말이야. 내게 고마운 생각이 들지?”

“아니, 그게 어떻게 자네 때문인가? 우리 은령이가 예쁘고 총명하니까 그런 거지.”

홍문형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발끈했다.

“허, 사람 참. 자네 그러는 거 아니야. 그 사이에 잊은 건가?”

“뭘 잊었다는 게야?”

“됐네. 됐어. 아직 혼사 전이니 내가 말려야겠구먼.”

“그랬다가는 봐라. 아주 그냥…….”

두 사람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걸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백태정은 마음이 착잡했다. 고개를 돌려 적운상을 보니 그는 사람들과 해후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백수연도 끼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리 기뻐하는 모습이라니.

‘허허. 첩이라… 안 될 말이지. 하려면 어떻게든 정실로 만들어줘야지.’

백태정이 굳게 결심을 했다. 방금 본 적운상의 실력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이나 무당파의 무당십걸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같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이미 최고였다. 소림이나 무당의 장로나 장문인들과 한 수 겨룰 수 있는 실력이었다.

천응방은 원래 무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문파들에 비해 무공이 취약했다. 아무리 보검을 휘둘러도 무공이 받쳐주지 못하면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였다. 그러나 적운상이 사위로 들어온다면 만사 끝이었다.

‘흐흐흐. 어떻게든 이어주마. 수연이가 남자 보는 눈은 확실해. 암, 누구 딸인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또 한 명의 신부 후보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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