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4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40화
140화. 버린 만큼 얻는다 (2)
혁무한과 백수연의 보고를 받은 정의회의 수뇌들은 허탈함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들은 것은 천마총의 보물에 대해서였다.
혁무한과 백수연은 이미 입을 맞췄기 때문에 그것을 혈마사에서 가져갔다고 했다. 사실 그들이 알고 있는 건 주양악이 천마총의 보물을 찾아내서 그렇게 강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주양악이 혈마사로 끌려갔으니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근심, 걱정, 분노, 등 여러 가지 표정을 보였다. 그들은 천마총이 나타났다는 말에 사람들을 추려서 후발대로 보내고, 사문에 연락을 해서 은밀하게 사람들을 더 보내도록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대부분이 혈마승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살아 돌아온 것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 희생을 치렀건만 천마총의 보물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혈마사에게 빼앗겼다니, 절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이 일로 인해 호남칠대세력은 물론이고 그 외에 많은 문파들의 세력이 한풀 꺾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삼 일이나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다가 결국 정의회를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정의회는 혈마사를 상대하기 위해 호남의 많은 문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만든 단체다. 그런데 혈마사가 천마총의 보물을 가지고 사라졌으니, 더 이상 모여 있을 의미가 없었다. 세력이라도 건재하다면 뭐라도 해볼 마음으로 계속 유지를 하련만, 그렇지가 않으니 지금은 각자의 사문으로 돌아가서 힘을 키워야 할 때였다.
정의회가 그렇게 해산되자 많은 무인들이 장사를 떠나 각자의 사문으로 돌아갔다. 그 중에는 적운상과 은서린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약속한 대로 형산파의 식객으로 가는 혁무한과 적운상이 걱정되어서 따라붙은 백수연, 백리난수도 함께였다.
그들이 형산 밑의 남악현에 도착했을 때였다. 마을 어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어? 사형!”
마차를 모는 혁무한 옆에 앉아 있던 은서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준수한 얼굴의 청년이 같이 손을 흔들었다. 초사영이었다.
“사매!”
초사영 옆에는 패악룡을 비롯한 흑곰과 장동오, 등 한때 금벽도문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형산파의 제자가 된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사저를 뵙습니다.”
패악룡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서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이십 명이 넘는, 덩치 큰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포권을 했다.
“사저를 뵙습니다.”
은서린은 이런 환영인사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이 됐다. 혁무한과 백수연, 백리난수도 어안이 벙벙해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돼, 됐어요. 이러지 않아도 돼요.”
은서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손을 마구 저었다.
“사저한테 인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안 그러냐?”
“맞습니다!”
“적 사형은 어디에 있습니까?”
“뒤에 있어요.”
“그런데 왜 안 나오지? 제가 가서 한번 볼게요.”
“안 돼요!”
“네? 왜 그럽니까?”
“사형은… 지금 중상을 입어서 상태가 안 좋아요. 안정을 취해야 해요.”
“헛! 그런 줄 몰랐습니다. 뭐하냐? 빨리 길 트고, 가서 의원 데려와! 너희들은 먼저 올라가서 사부님에게 알리고. 어서들 가!”
패악룡이 지시를 내리자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패악룡이나 그들이나 모두 같은 항렬의 제자였다. 그래서 그들 간에는 위아래가 없었지만, 예전부터 패악룡이 그들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사숙조님은 어디에 계시냐? 같이 안 온 거냐?”
초사영이 묻는 말에 은서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함께 왔어요.”
“어디에 계시냐?”
은서린이 대답 대신 마차 뒤쪽을 봤다. 그러자 초사영이 의아해하며 그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관이 하나 있었다. 그걸 본 초사영이 저도 모르게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관 뚜껑을 열려고 했다.
“사형.”
은서린이 초사영의 손을 잡았다. 초사영이 은서린을 봤다. 그녀가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냐? 정말… 사숙조님께서…….”
“네…….”
“후우… 그렇구나. 알았다. 일단 가자. 가서 사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듣자.”
“네. 사형.”
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인사를 해왔다.
“사형, 어디 가나 보구려. 허허.”
“사형이 와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내일은 우리 집에 좀 들러주소. 담이 무너졌는데 혼자서는 힘이 드는군.”
“애들을 몇 명 보낼게요.”
“사형! 다음 초식은 언제 가르쳐줄 거예요?”
“너는 배운 거나 좀 더 열심히 해.”
“이거 좀 챙겨가. 사부님 가져다 드려.”
“아이고, 뭐 이런 걸 또…….”
패악룡을 비롯한 덩치 큰 사내들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을 살갑게 대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사형사제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파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대체…….”
혁무한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백수연이나 백리난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이 형산파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
“단순히 그런 것만이 아니야. 무림문파와 양민들이 이렇게 허울 없이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소림과 무당도 그렇지 않나요?”
“아니. 소림과 무당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잖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지 이들처럼 이렇게 친근하게 굴지는 않아.”
백수연의 말에 백리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마을 사람들이 이러는 것일까?
부러우면서도 너무나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백리난수는 나중에 백리세가를 다시 재건한다면 반드시 이런 방향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차가 형산 입구에 도착하자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적운상을 부축해서 함께 내렸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이 훤해지는 미인이 두 명이나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제, 괜찮은 거야?”
적운상은 잠시 초사영을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초사영은 그런 적운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리 중상을 입었다지만 예전과는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사형! 몸은 괜찮은 겁니까?”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적 사형!”
사람들이 몰려들어 반가워했지만 적운상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백수연과 백리난수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제길!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패악룡이 앞으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그러자 백수연과 백리난수가 난처해하면서 서로를 봤다.
“이렇게 늦게 가면 해가 저도 형산파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알았어요.”
그제야 두 사람이 적운상을 패악룡의 등에 업히게 했다. 패악룡은 날랜 걸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형님, 어쩌다 이리된 거요? 그 강하던 형님이 도대체 왜…….’
패악룡은 눈물이 찔끔 났다. 적운상은 그의 우상이었다. 너무나 강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산과 같은 사람이었다. 감히 시선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한 마음이 가득했다. 자꾸 화가 났다. 적운상의 이런 모습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제길! 젠장! 젠장할!’
패악룡은 속으로 끊임없이 욕을 하며 산을 올랐다. 구혁상의 관은 흑곰과 몇몇 사내들이 짊어졌다.
그렇게 형산파에 도착하자 임옥군이 뒷짐을 지고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부님!”
은서린이 임옥군을 보고 달려갔다.
“그래. 어서 오너라. 고생이 많았구나.”
임옥군이 은서린의 손을 잡고 등을 다독여줬다. 그러다 패악룡의 등에 업혀서 오는 적운상을 보고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운상아…….”
적운상은 멍한 눈으로 임옥군을 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라.”
“네? 네. 형님. 아니 사형.”
패악룡이 조심스럽게 적운상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적운상이 비틀거리면서 임옥군 앞으로 가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왜, 왜 그러느냐?”
“이제 돌아왔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임옥군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적운상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부님.”
“그래.”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사숙조님께서…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뭐?”
임옥군은 충격으로 인해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구혁상이 죽었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제야 임옥군의 시선이 흑곰과 몇몇 제자들이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관으로 향했다. 임옥군이 그리로 가서 흑곰에게 말했다.
“뚜껑을 열거라.”
“알겠습니다. 사부님.”
관 뚜껑이 조금 열리자 구혁상의 얼굴이 나타났다. 순간 임옥군이 몸을 한 번 휘청거렸다.
“사형!”
나한중이 임옥군을 부축했다. 그러자 임옥군이 그 손을 뿌리쳤다.
“괜찮다.”
역시나 장문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빠르게 감정을 추스른 임옥군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적운상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듣자.”
“아닙니다. 사부님. 양악이가 잡혀갔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양악이가 잡혀가다니?”
“죄송합니다. 모두가 제 탓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죄송합니다. 사부님.”
적운상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그런 적운상을 향해 다가왔다.
“사형, 일어나십시오.”
“사제, 괜찮아. 너라도 무사히 왔으니 다행이지.”
“사형!”
적운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숙인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러자 임옥군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게냐?”
“…….”
“네가 너를 이리 약하게 키웠느냐? 구 사숙을 따라가 그 고생을 하며 배운 것이 이리도 없더냐? 몸은 죽어도 정신은 살아 있어야 하거늘! 몸이 멀쩡한데 어찌 그 모양이란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못 할까?”
적운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백수연이 급히 부축을 했다. 그걸 보고 임옥군이 눈을 부라렸다.
“소저는 누구요? 이건 본 문의 일이오! 당장 그 손을 놓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