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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35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35화

135화. 새로운 경지로 (1)

 

적운상은 동굴 밖으로 나오자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시체들이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거기에 줄지어 서 있는 백여 명의 혈마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반갑지 않은 자들이었다.

“음… 보통 혈마승들이 아닌 것 같소.”

운학이 혈마승들이 메고 있는 가마를 보며 말했다.

“아까 들어보니 혈불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혈불이라면 혹시 혈마승들의 우두머리 아냐?”

양추위와 장용권이 하는 말에 모두가 두 사람을 봤다.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은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럴 수도 있군.”

적운상이 툭 한마디 던지자 양추위와 장용권의 기세가 살아났다.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커다란 가마를 메고 다닐 리가 없잖아.”

“맞아. 맞아.”

“어? 이리로 오는데.”

양추위가 다가오는 십여 명의 혈마승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쩌지?”

혁무한이 적운상을 향해 물었다.

“어쩌긴? 도망가야지.”

“음. 그렇지. 역시 그 수밖에 없지.”

“모두들 내가 신호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시오.”

적운상이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운학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무리요.”

“뭐가?”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소. 당신보다는 내가 낫소. 나한테는 무당십걸이라는 명성이 있지 않소? 내가 시선을 끌 테니 당신도 저들과 함께 도망가시오.”

적운상이 운학을 봤다. 운학은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내가 검을 뽑는 것이 신호입니다.”

운학이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혈마승들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운학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이다.”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잔뜩 내공을 끌어올리며 도망갈 준비를 했다. 백수연이 적운상의 팔을 꼭 잡았다. 그녀는 적운상이 경공을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것이다.

백리난수가 적운상을 힐끗 보다가 그 옆에 꼭 붙어 있는 백수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백염쌍노가 그런 백리난수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용권과 양추위는 부상당한 연동헌을 부축했다. 그렇게 모두가 운학의 신호만 기다리면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흐랴아아앗차!”

어디에선가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쳐갔다.

“헉!”

“뭐, 뭐야?”

“잠깐, 기다려!”

뒤늦게 혁무한이 그를 알아보고 소리치며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늦었다. 그는 이미 사자도를 뽑아들고 무서운 속도로 혈마승들을 향해 쇄도해 가고 있었다.

운학은 우선 혈마승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 끌다가 기회를 봐서 적운상 일행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왕이 바로 옆을 휑하니 스쳐 지나가더니 다짜고짜 혈마승들에게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운학은 깜짝 놀랐으나 주춤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자왕이 아무리 대단해도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를 도와야 했다. 운학이 검을 뽑아들고 합세를 했다.

“안 죽었었나?”

“저 인간이 쉽게 죽을 인간이야?”

적운상이 인상을 팍 쓰면서 백운검을 뽑아들었다. 사자왕 때문에 도망갈 시기를 놓쳤다. 혈마승들이 어느새 반원형으로 일행을 둘러싼 것이다.

“제기랄!”

혁무한이 거칠게 말을 내뱉으면서 검을 뽑았다. 그냥 뒈져버리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초를 칠 건 뭐란 말인가?

“어디 가!”

사자왕과 운학을 도와주기 위해서 달려 나가려던 혁무한을 적운상이 잡아 세웠다.

“어디 가긴? 가서 도와야지!”

“닥치고 이쪽으로 와. 벼랑을 따라 길을 뚫는다.”

“뭐?”

“빨리 따라와!”

적운상이 소리치자 혁무한이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따라 움직였다. 적운상은 동굴의 입구가 있던 산비탈을 왼쪽에 두고 길을 뚫었다. 그러자 혈마승들은 어쩔 수 없이 한쪽에서만 공격해야만 했다.

‘이 자식. 그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해낸 건가?’

혁무한이 크게 감탄을 했다. 백염쌍노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혁무한과 같이 사자왕이나 운학을 돕기 위해 뛰쳐나갔다면 그대로 포위가 되었을 것이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이런 자가 아가씨와 맺어진다면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인적문과 사노군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하다 보니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잡혔다.

‘기회를 봐서 놈을 납치하자.’

‘지금이 아니면 힘들겠군.’

‘아가씨도 마음에 있으니 걱정 없다.’

인적문과 사노군이 서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적운상에게 바짝 접근했다. 두 사람은 기회를 봐서 정말 적운상을 납치할 생각이었다.

사노군의 부축을 받고 있던 백리난수는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절뚝거리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앞에 있는 적운상이 눈에 들어오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챙!

“아!”

혈마승이 휘두르는 혈도를 적운상이 백운검으로 막아낸 순간 백운검이 손에서 튕겨져 나갔다.

적운상은 지금 내기가 바닥난 상태였다. 오로지 초식만으로 혈마승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힘으로 맞설 수가 없었다. 오로지 초식의 능숙함만으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상황에 맞춰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나갔다.

방금 검을 놓친 것도 그래서였다. 혈마승이 혈도를 휘둘러오니까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해서 틀에 박힌 초식을 펼치다가 무기가 부딪치자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백운검을 놓친 것이다.

지금까지 적운상이 초식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내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공이 완전히 바닥나서 그것이 불가능했다.

적운상이 다급하니 품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우측에서 혈마승 하나가 혈도를 내려쳐왔다.

적운상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틀에 박힌 초식이 튀어나오려 했다. 적운상은 그걸 가까스로 눌렀다. 지금 그 초식을 쓰면 방금 백운검을 놓쳤을 때처럼 또 무기를 놓치고 만다.

쉿! 파각!

적운상이 내려쳐오는 혈도를 피하며 단도를 그어 올렸다. 혈마승의 손목에서 피가 솟았다. 이어서 적운상의 단도가 그의 팔을 찍고 목을 찍었다. 그때 옆에서 두 명의 혈마승들이 혈도를 휘두르며 손바닥을 쭉 뻗어냈다.

내공이 없어서 혈도를 막아내면 힘에서 밀린다. 무조건 피해야 했다. 적운상의 몸이 움찔했다. 저도 모르게 초식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파팟!

적운상의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잠시 주춤하느라 혈도에 베인 것이다.

따당!

“뭘 멍하니 있는 거냐?”

인적문이 적운상의 앞을 막아서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덤벼드는 혈마승을 향해 단도를 찍어갔다.

혈마승이 적운상의 공격을 피하면서 일장을 후려쳤다. 적운상이 급히 상체를 숙이자 귀에서 바람 소리가 일었다. 혈마승의 공격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소리였다.

혈마승이 그렇게 공격하느라 적운상의 눈앞에 배가 드러났다. 적운상이 단도로 배를 찌르려다가 멈칫했다. 혈마승은 그대로 당하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었다. 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은 멍하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챙!

이번에는 사노군이 반월도로 적운상을 공격해 가는 혈마승의 혈도를 옆으로 쳐냈다.

“적운상!”

혁무한과 백수연이 적운상을 보호하기 위해 바짝 다가왔다. 그러자 백염쌍노가 앞쪽을 맡고 혁무한과 백수연이 뒤를 맡는 형태가 됐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양추위와 장용권, 그리고 연동헌이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혈마승들과 맞섰다.

챙!

“웃! 이대로는 끝이 없군.”

“사가야! 너라도 아가씨와 함께 이곳을 떠나라!”

챙!

“말도 안 되는 소리!”

백염쌍노가 다 같이 빠져나가기에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백리난수라도 살리고자 했다. 그만큼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운학과 사자왕이 싸우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그리 날뛰던 사자왕은 끊임없이 덤벼드는 혈마승들 때문에 기세가 한풀 꺾인 상태였다. 아마 운학이 없었더라면 벌써 한칼 맞아도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으아아아! 저 바보 같은 사형! 싸우다 말고 왜 저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멀찍이 떨어진 수풀에 숨어서 적운상을 보던 주양악이 답답함에 가슴을 쾅쾅 쳤다. 백묘묘는 백수연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시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어! 사숙조님!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당장에 나가서…….”

주양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서린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

“뭐야?”

“사매!”

은서린은 혁무한이 혈마승의 혈도에 다리를 베이고 가슴까지 베이자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달려 나간 것이다. 그런 걸 알지 못하는 주양악과 구혁상은 적운상 때문에 은서린이 저렇게 달려간다고 여겼다.

“기다려! 사매!”

주양악이 달려 나갔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구혁상과 백묘묘도 달려 나갔다.

은서린이 혈마승들이 휘두르는 혈도를 이리저리 피해냈다. 그러면서 혁무한에게 가려고 했다. 은서린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처음 몇 명의 공격은 쉽게 피해냈지만 서너 명이 한꺼번에 혈도를 휘두르자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다. 이에 다급하니 검을 뽑았다.

챙!

한 명이 휘두르는 혈도를 막아내기도 힘들건만 세 명이 휘두르는 혈도를 막아냈으니, 은서린이 버텨낼 리가 없다. 막는 순간 은서린의 몸이 뒤로 확 튕겨지려고 했다. 그때 뒤쫓아 온 주양악이 그들의 혈도를 막고 있는 은서린의 검을 단검으로 후려쳤다.

따앙!

“크윽!”

“흡!”

“헉!”

뒤로 삼 장 가까이 튕겨나간 혈마승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하니 질려 있었다. 손목이 얼얼하고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주양악을 봤다. 이제 겨우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여자였다. 그런데 어찌 이런 공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 바보야! 무작정 튀어나가면 어떻게 해!”

“하지만 혁 오라버니가 위험하잖아!”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주양악이 멍하니 은서린을 봤다.

“너, 너 사형 때문이 아니라 혁무한 때문에 이렇게 달려나온 거야?”

“네? 네.”

“…….”

주양악이 멍하니 있자 은서린이 이유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이럴 수가… 난 그동안 사매가 사형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그래서… 도대체 언제 변심한 거야?’

주양악은 뭔가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그동안 주양악은 적운상을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을 알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은서린이 얼마나 적운상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적운상이 선택하기를 기다렸다. 그럴 가망이 거의 없는데도 기다려야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왈가닥인 그녀였기에 더욱이 그랬다. 그런데 은서린이 더 이상 적운상을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간 감정을 꾹꾹 참아온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필 그때 혈마승들이 주양악과 은서린을 향해 덤벼들었다. 다섯 명의 혈마승들이 공중으로 몸을 띄워 혈도를 휘둘렀고, 세 명은 몸을 바짝 낮춰서 정면으로 쇄도해 갔다.

“모두…….”

주양악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단전에서 화룡이 꿈틀대더니 전신으로 확 번져나갔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유형의 기운이 주양악의 몸을 타고 돌았다. 화룡의 기운이었다.

주양악을 공격해 가던 혈마승들이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아주 잠시나마 멈칫거렸다.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죽어 버려!”

화아아아아아악!

퍼퍼퍼퍼퍼퍼펑!

“크아아악!”

“커헉!”

“으아아악!”

주양악의 손짓 한 번에 여덟 명의 혈마승들이 피를 뿜으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걸 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을 했다.

무림에는 내공이 극에 달해서 그 위력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있다. 소림사의 방장인 구정선사나 무당파의 장문인 일영진인 같은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한 지역이 아니라 중원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몇몇 사람들이 그런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백 살이 훌쩍 넘어 있거나, 공청석유를 물처럼 마시고, 만년설삼을 몇 뿌리나 캐 먹은 인간들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선대의 기인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내공을 전수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양악은 스스로 손을 써놓고도 그 위력에 크게 놀랐다. 이에 잠시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다 덤벼!”

후우우우웅! 콰콰콰콰콰쾅!

“크아아악!”

“피해라!”

“아아아악!”

주양악이 화룡의 기운을 주먹에 실어서 휘두르며 날뛰자 혈마승들이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웬만큼 강해야 칼이라도 한 번 휘둘러보지 저런 괴력은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땅을 내려치니 반경이 삼 장이나 되는 원형의 구덩이가 생긴다. 바위를 후려치니 산산조각이 나고, 아름드리나무가 거뜬히 뽑혀 나온다. 그 아름드리나무를 주양악은 마치 나뭇가지 다루듯이 휭휭 휘둘러댔다.

“피해!”

“크아아악!”

“아아악!”

혈마승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아름드리나무에 맞고 한꺼번에 다섯 명이 피거품을 물었다. 뒤에서 겁 없이 덤벼들던 세 명도 같은 꼴을 당했다.

그 같은 광경에 멍하니 있던 혈마승 네 명이 한 번에 쓸려 나갔다. 순식간에 삼십여 명이 완전히 떡이 되어 쓰러졌고, 열 명이 움직일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

운학과 사자왕은 멍하니 할 말을 잊고 주양악을 봤다. 주양악이 혈마승들을 가볍게 패는 모습을 보니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싸웠던 자신들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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