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1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6화
116화. 천마총 (1)
“히에에엑!”
노도사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발이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몸에 붉은 천을 두르고 있는 이들, 한 손에 중간이 확 휘어져 있는 혈도를 들고 있는 혈마승들이 살벌한 눈으로 노도사를 노려봤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서 노도사에게 건넸다.
“당신의 점괘가 맞았소. 가지고 가시오.”
“무, 물론이지. 원시천존 무불통지라…….”
노도사가 재빨리 은자를 챙겨 넣고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나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돌아왔다. 밖에도 살기가 가득한 혈마승들이 혈도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보시오들. 나는 부처님과는 인연이 없소. 원시천존을 모시는 도사란 말이오. 오늘은 그저 점괘를 확인하러 온 것뿐이니 그냥 가겠소.”
그런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혈마승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게 그러니까… 말로다가… 말로다가 합시다. 거 스님들이 이리 살기를 피워서야 어디 쓰겠소?”
몸을 덜덜 떨며 애원하는 노도사의 모습은 불쌍하기만 했다. 적운상은 괜한 장난 때문에 노도사가 죽게 될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한테 바짝 붙으시오. 내가 길을 뚫겠소.”
“아니, 그러면야 좋지만…….”
말을 질질 끌던 노도사가 순간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뒤에서 다가오는 혈마승의 어깨를 밟고 공중제비를 한 번 돌며 땅에 내려서더니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적운상은 물론이고 혈마승들도 황당함에 잠시 멍하니 노도사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무공을 할 줄 알았었나?’
“훗!”
저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어쨌든 무사히 도망갔으니 다행이었다.
적운상이 천천히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에 있는 혈마승들의 진득한 시선이 계속 따라붙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객잔의 중앙까지 느긋하게 걸어가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일층에 있던 혈마승들이 다가와 주위를 에워쌌다.
적운상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탁자와 의자의 위치, 그리고 창문과 안쪽으로 통하는 문을 확인했다. 싸우기 전에 그곳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우두머리가 누구냐?”
적운상이 물었으나 혈마승들은 대답이 없었다.
“천마총을 찾고 있지?”
그제야 반응이 나왔다. 이층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은 누구냐?”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지.”
“…….”
조용한 걸음 소리와 함께 늙은 혈마승 하나가 이층의 난간에 모습을 보였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눈매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난 적운상이라고 한다.”
“네놈이로구나!”
콰직!
혈마승이 분을 참지 못하고 힘을 쓰자 잡고 있던 난간이 으스러지면서 부서져나갔다.
“나를 아나 보군.”
“네놈 손에 팔 장로가 죽었는데 어찌 잊을까?”
‘팔 장로? 누구지?’
적운상은 유곽에서 지시를 내리던 노인이 생각났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노인을 죽인 기억이 없었다.
사실 그 노인은 냇가에서 적운상이 흘려보낸 뇌기로 인해 죽었다. 그때 적운상은 혈마승들과 일일이 싸운 것도 아니고 그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 노인이 거기에 있었는지도 알 턱이 없다.
“내가 죽인 게 아닌 거 같은데.”
“흥! 네놈을 쫓다가 냇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발뺌할 셈이냐?”
‘그때 죽었군.’
적운상은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굳이 그걸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들도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리에 있던 혈마승들은 모두 죽었다. 그래서 저들이 아는 거라고는 팔 장로가 아랫사람들을 이끌고 적운상을 치러 갔다가 죽었다는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지레짐작으로 적운상을 추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안 나는군.”
“기억할 필요 없다. 죽으면 그만이니까.”
“이쪽이 이름을 밝혔으면 그쪽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가소로운 놈! 네놈이 나에 대해 알 자격이 있다는 거냐?”
노인의 눈이 가늘게 늘어지면서 살기가 가득 담겼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런 시선에 몸을 한 번 움츠렸겠지만 적운상은 아니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기껏 해봐야 장로겠지. 혈마사에서야 대단할지 몰라도 여기선 아니야.”
“놈! 나불대는 그 입을 당장에 찢어주마! 뭣들 하느냐?”
노인은 화가 치밀었다. 적운상의 말대로 그는 혈마사의 장로였다. 그것도 상위에 속해 있는 삼 장로였다. 밑에 거느린 혈마승들만 해도 이백여 명 가까이 됐다. 그 정도면 호남칠대세력 중 가장 강하다는 통천문과도 한번 겨뤄볼 만했다.
그런데 애송이로 보이는 적운상에게 무시를 당하니 자연히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적운상이 하는 말은 처음부터 그 한마디 한마디가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그 모든 것이 사실 적운상이 의도한 바였다. 일단 우두머리를 확인해야 싸움이 유리해진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천마총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이 혈마승들의 최대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삼 장로는 보기 좋게 걸려들었고 모습을 보였다. 그럼 이제 속을 긁어 평정을 흔들어 놓을 차례였다. 그것 역시 쉽게 먹혀들었다.
“죽이지는 말아라! 천마총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 같으니까.”
삼 장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에 있던 혈마승들이 적운상에게 달려들면서 혈도를 휘둘렀다.
적운상은 그들의 행동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우선 앞에 있는 탁자를 발로 걷어차서 그 앞쪽에 있는 혈마승들에게 날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의자를 옆으로 집어던졌다.
콰앙! 콰드드득!
날아간 탁자가 혈마승들의 혈도에 의해 부서져 나갔다. 의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운상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탁자를 부순 혈마승의 혈도가 적운상의 목을 횡으로 베어왔다.
적운상이 급히 상체를 숙이며 바닥을 한 번 굴렀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그 앞에 있던 탁자를 밟고 뛰어올랐다.
쉬쉬쉬쉭!
밑에서 혈마승들이 혈도를 휘둘렀지만 적운상의 옷깃도 베지 못했다.
적운상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을 잡고 다시 위로 몸을 날렸다. 그걸 보고 일층에 있던 혈마승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몰려왔다. 경공에 자신 있는 혈마승들은 단번에 이층의 난간까지 날아올랐다.
적운상은 이층으로 올라오자 앞에 있는 의자를 들어서 계단을 올라오는 혈마승들을 향해 던졌다. 혈마승들이 그걸 막아내고 피하느라 주춤하는 사이에 다시 의자를 하나 집어서 던졌다.
콰아아앙!
“잡아!”
“저놈이!”
앞에서 혈마승들이 혈도를 휘둘러왔다. 적운상이 옆에 있는 탁자 위를 굴러서 넘어가자 혈도가 뒤늦게 탁자를 내려쳤다.
타다다다닥!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탁자를 타고 넘자 혈마승들과 거리가 조금 생겼다.
타앙!
적운상이 타고 넘었던 탁자를 좌측 손바닥으로 쳤다. 그러자 탁자가 무서운 속도로 밀리면서 혈마승들을 덮쳐갔다.
끼기기기기긱!
“흥!”
혈마승 하나가 코웃음을 치면서 내기를 끌어올려서 양손바닥을 쭉 뻗어냈다. 밀고 들어오는 탁자를 부숴버릴 셈이었다.
하지만 탁자를 부수기도 전에 의자가 먼저 날아와서 그의 머리를 쳤다. 적운상이 그럴 걸 예상하고 탁자를 쳐냄과 동시에 의자를 집어 던진 것이다.
콰직!
“크악!”
혈마승이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뒤에 있던 혈마승들과 부딪쳤다.
후우웅! 따당! 땅! 땅!
적운상이 사자도와 백운검을 꺼내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격을 위해서 휘두르는 게 아니라 방어를 하기 위해서 휘둘렀다. 혈마승들이 공격을 해오든 말든 물샐틈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 기세에 혈마승들의 혈도가 연이어 튕겨져 나갔다.
“물러나!”
혈마승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혈마승들이 일제히 혈도를 던졌다.
훙훙훙훙훙!
혈도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적운상을 향해 날아갔다. 모두 여덟 자루!
적운상의 사자도와 백운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였다.
따다다다다당!
날아온 혈도가 연이어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튕겨져 나간 혈도는 다시 혈마승들에게 날아가거나 사방의 벽에 꽂혔다.
“후욱!”
잠시 소강상태가 됐다. 적운상의 실력이 생각 외로 강하자 공격의 흐름이 끊긴 것이다.
적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했다. 이대로 저들과 계속 싸우며 끝을 볼지 아니면 도망을 칠지 결정을 해야 했다.
그때 혈마승 하나가 빠르게 이층을 올라와서 삼 장로에게 뭔가를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자 삼 장로가 잠시 갈등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적운상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이쯤하는 것이 어떠냐?”
“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생각인가?’
아직까지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저들은 적운상이 팔 장로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상황은 어떻게 봐도 저들이 유리했다. 그런데 왜 이대로 싸움을 끝내려는 걸까?
‘뭔가 일이 생겼군.’
저들이 저렇게 물러날 정도의 일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조만간 네 놈과는 또 만날 것 같군. 그때 다시 겨루지.”
“훗! 왜? 천마총이라도 찾았나 보지?”
적운상이 슬쩍 떠보는 말에 순간 삼 장로의 얼굴이 꿈틀했다.
‘정말인가 보군.’
“뭐, 좋도록 해. 나도 굳이 혼자 힘 빼면서 너희들이랑 싸워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빨리 가보라고. 다른 놈들이 먼저 거길 뒤지면 어떻게 하려고?”
“음…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드시 네놈의 그 입을 찢어주마.”
“큭큭. 지금 못하면서 다음에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빨리 가라. 나도 마음 변하기 전에.”
삼 장로는 생각 같아서는 정말 여기서 끝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적운상의 실력이 만만찮았다. 죽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느 정도 희생도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빨리 가봐야 했다. 천마총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단서가 발견됐다. 일에는 선후가 있다.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둘 때였다.
“두고 보자.”
삼 장로가 무서운 눈으로 적운상을 한 번 노려본 후에 일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혈마승들이 한두 명씩 그를 따라 움직였다.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그들을 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아버님.”
“무슨 일이냐?”
혁강운이 방으로 들어오자 혁세명이 보던 책을 내려놓고 그를 봤다.
“진웅과 비도문의 상 소저가 돌아왔습니다.”
“그래?”
“네. 이건 적 형이 보낸 서찰입니다.”
혁강운이 서찰을 내밀자 혁세명이 받아서 펼쳐봤다. 거기에는 그간에 있었던 일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음…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군.”
“뭐라 적혀 있습니까?”
“혈마승들이 천마총을 찾고 있다는구나.”
“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천마총이라니.
“각 문파의 장(將)들을 모두 모이라 해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구나.”
“알겠습니다.”
혁강운이 대답을 하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일각도 되지 않아 각 문파의 수장들이 커다란 대청에 모두 모였다. 혁세명은 그들에게 혈마승들이 이번에 나타난 이유가 천마총을 찾기 위해서란 걸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렇다면 천마총이 호남 어딘가에 있단 말이오?”
“자세한 것은 아직 모르오.”
“정보가 확실한 겁니까?”
“선발대로 간 오십여 명 대부분이 죽었소. 살아남은 건 겨우 열 명인데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하오. 그 지경이 되면서까지 알아낸 일이니 거짓정보는 아닐 것이오.”
“혹시 혈마사가 배화교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니오?”
“그렇지는 않을 거요. 천마총은 누구나 탐을 내는 보물이오. 굳이 혈마사가 아니라도 노리는 자들이 많소. 더구나 배화교도들이 그렇게 중 짓을 하며 다닐 이유가 없소.”
수장들이 이것저것 계속 물어볼 때마다 혁세명은 막힘없이 하나하나 대답을 했다. 과연 그들이 추대한 회주다웠다.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이시오?”
양가장을 대표해서 온 양익봉이 묻는 말에 혁세명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을 더 파견해야 할 것 같소. 천마총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오. 그럼 한바탕 피바람 불 것은 자명한 일! 문제는 그게 바로 우리들이 있는 호남이라는 데 있소. 그러니 사람들을 더 보내서 천마총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먼저 간 선발대를 돕도록 합시다.”
“좋은 생각이오. 그럼 이번에는 몇 명이나 보낼 생각이오?”
신검문의 문주이자 이은성의 아버지인 이태산이 물었다.
“오십 명씩 세 개의 조를 편성해서 보냅시다. 그 정도 인원이면 충분할 거요.”
“좋아요. 그럼 우리 연씨세가에서는 이십 명을 보내겠어요.”
연씨세가를 대표해서 온 연교민이 색기가 가득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너도나도 사람들을 보내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우리 양가장에서도 스무 명을 보내겠소.”
“호왕문에서는 그 배라도 괜찮소이다.”
“본문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처음 선발대가 가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덜 보내려고 했었다. 그리고 문파의 인재들을 보내는 것도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서 안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천마총이 있어서 그걸 발견한다면, 문파의 성세가 좌지우지된다. 한순간에 호남칠대세력이 팔대세력으로 바뀔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무림전체에 명성을 알릴 수도 있었다.
그러려면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보내야 한다. 혹여 보물을 놓고 서로 간에 칼부림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보물의 주인이 된다.
“음… 잠시들 진정하시오. 여러분들의 협의는 알겠으나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이번에 보낼 인원은 총 백오십 명이오. 그렇게 많은 인원은 필요가 없소. 그러니 각 문파에서 균등하게 적당한 인원을 뽑도록 하겠소.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언제든지 그리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항시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잊지 마시오. 아직까지 혈마사가 건재하고 있음을.”
혁세명이 이렇게 모인 원래의 목적을 상기시켰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의 마음은 모두 콩밭에 가 있었다.
그렇게 수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지 정확히 삼 일 후!
오십 명씩 세 개의 조가 편성되어 총 백오십 명이 성도인 장사현을 떠나 적운상이 있는 일양현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