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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1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1화

111화. 구사일생(九死一生) (2)

 

쏴아아아아!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내리는 장대비였다. 그 빗속을 뚫고 두 명의 여인이 달리고 있었다. 남예와 백수연이었다.

“헉헉! 조금만, 조금만 쉬었다가 가요.”

백수연이 숨이 턱에 차서 다리를 비틀거렸다. 그러다 옆에 있는 담벼락에 어깨를 기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적운상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업을게요.”

“아니요. 괜찮아요.”

대답을 하던 백수연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예는 무공을 전혀 몰랐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같이 연약했다.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남예는 자신과 똑같이 달려왔는데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더구나 경공을 펼쳐서 달려온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따라왔다.

‘무공을 숨기고 있었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제야 그녀가 따라오는데도 적운상이 별말 없이 왜 허락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가 무공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여겨졌다.

“가요.”

백수연은 숨이 좀 평온해지자 다시 달려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며 그녀를 불렀다.

“백 소저!”

혁무한이었다.

“어떻게 된 거죠? 다른 사람들은요?”

“모르겠소. 사자왕이 갑자기 지붕을 뚫고 나타나는 바람에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요.”

안 봐도 상황이 어땠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사자왕은 누구랑 힘을 합쳐서 싸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혼자서 혈마승 모두를 상대한다고 날뛰었을 테고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웅이하고 은성이는요?”

“무사하겠지. 쉽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오. 이리 주시오. 내가 업을 테니까.”

혁무한이 적운상을 건네받으려고 할 때였다. 방금 혁무한이 온 방향에서 빗물이 좌우로 튀어 오르면서 혈마승 세 명이 달려왔다.

“제길! 먼저 가시오!”

혁무한이 검을 움켜쥐며 그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가요!”

백수연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혁무한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아까 본 실력이라면 세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남예 역시 머뭇거림 없이 백수연이 끄는 데로 움직였다.

두 사람이 마을을 벗어나 냇가의 돌다리에 도착했을 때였다. 다리 건너편에서 혈마승 십여 명이 이쪽으로 건너오는 것이 보였다.

“아! 돌아가요.”

백수연이 몸을 돌려서 두어 발자국을 움직이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뒤에서도 혈마승 네 명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무한이 당한 건지 아니면 지나쳐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죠?”

백수연이 당황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싸운다 해도 승산이 없었다. 도망치려 해도 길이 없었다.

“여기는 내가 맡죠.”

“네?”

남예가 침착하니 하는 말에 백수연이 그녀를 봤다. 그러자 남예가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혈마승들을 보며 백수연에게 말했다.

“신호하면 다리 밑으로 뛰어요.”

남예가 하는 말에 백수연이 슬쩍 다리 밑을 봤다. 높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냇물이 많이 불어 있었다. 휩쓸리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백수연은 혹시나 적운상과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품에서 수건을 꺼내서 손목을 묶었다.

남예는 혈마승들이 최대한 가까이 오도록 기다리다가 크게 소리쳤다.

“가요!”

백수연이 다리 위에서 밑으로 몸을 날렸다. 그것과 동시에 남예가 양팔을 펼치며 혈마승들을 공격해 갔다. 뒤쪽에서 오던 혈마승 둘이 백수연을 따라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새 남예가 그 앞을 막아섰다.

“헛!”

“무슨!”

남예의 펄럭이는 옷소매가 두 사람의 시야를 가렸다가 사라지는 순간 피가 튀어 올랐다. 혈마승 둘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죽여라!”

혈마승 중 하나가 소리치자 십여 명의 혈마승들이 일제히 남예에게 덤벼들었다.

* * *

 

백수연은 적운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이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물살이 세찼다. 아까 수건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어놓지 않았다면 적운상을 놓쳤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가다가 물이 얕아지자 간신히 뭍으로 올라왔다.

“콜록! 콜록!”

세차게 기침을 해대던 백수연이 적운상을 살폈다. 호흡이 전혀 없었다. 백수연은 적운상의 가슴을 꾹꾹 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숨이 트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적운상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가슴을 내려치다가 그렇게 숨을 불어넣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살아! 살아야 돼! 제발…….’

그 간절한 염원이 통했는지 적운상의 호흡이 다시 돌아오며 콜록거렸다.

“으…….”

“적 공자! 정신이 들어요?”

백수연이 적운상을 안아서 일으켜 세우려다가 놀라서 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혈마승들이었다. 혈마승 십여 명이 눈을 번뜩이며 다가왔다.

백수연의 무공으로는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때 혈마승들의 뒤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느냐?”

나이가 지긋한 혈마승이었다. 유곽에서 적운상이 혈마승들과 싸울 때 지시를 내리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금방이라도 백수연에게 덤벼들 것 같던 혈마승들이 옆으로 길을 내줬다. 그러자 노인이 앞으로 나와 백수연을 힐끗 보더니 그 뒤에 있는 적운상에게 시선을 던졌다.

“대단한 놈. 저놈 하나를 죽이고자 백 명 가까이 당했구나.”

사실이었다. 유곽에서 적운상이 해치운 혈마승들의 수가 무려 오십에 달했다. 그리고 객잔에서 추적대와 싸우다가 당한 혈마승들의 수도 그 정도였다.

‘이, 이들의 목표가 적 공자였단 말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제야 이들이 왜 이렇게 끈질기게 쫓아왔는지 이해가 갔다.

‘어쩌지? 혼자서는 저들을 당해내지 못해.’

절망적이었다. 또다시 누군가가 나타나서 구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이 몇 번씩이나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대로 잡히면 혈마승들에게 더러운 꼴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적운상과 함께 죽는 것이 나았다.

혈마승들을 노려보던 백수연이 천천히 검을 목에 가져다댔다. 쏟아지는 빗물에 섞여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과 함께 죽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때 적운상이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적운상을 안고 있던 백수연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백수연이 잠시 그렇게 멈칫하는 사이에 혈마승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발밑으로 빗물이 흘러내려 질퍽이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귀기(鬼氣)를 띤 채 다가왔다.

그때였다.

백수연이 갑자기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것과 동시에 십여 명의 혈마승들은 온몸을 훑고 들어오는 짜릿한 기운에 충격을 받았다.

파지지지지직! 파직!

“크아아악!”

“으아아악!”

“흐에에엑!”

처참한 비명소리가 크게 일며 혈마승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이 뒤집히고 혀가 꼬이면서 뻣뻣한 나무토막이 넘어가듯이 풀썩 쓰러졌다.

한순간이었다. 한순간에 십여 명의 혈마승들이 모두 즉사했다. 적운상 때문이었다. 적운상이 흘린 뇌기가 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을 타고 모두를 죽인 것이다.

아까 적운상은 백수연이 입으로 숨을 불어넣자, 간신히 호흡이 돌아오면서 정신을 조금 차렸었다.

그 상태에서 혈마승들이 나타난 것을 알고는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운용했다. 몸이 정상이 아니라서 무척이나 힘들었다. 정신이 가물가물하니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참으면서 계속 집중했다.

적운상은 예전에 수적들을 죽였을 때처럼 이번에도 뇌기를 있는 대로 쏟아낼 생각이었다. 아직 뇌기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적운상은 백수연에게 신호를 주면 힘껏 뛰어오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금안뇌정신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백수연은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적운상의 말을 믿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안 그랬으면 혈마승들과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세, 세상에…….”

백수연은 더 이상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무공이기에 그렇게 강한 혈마승들이, 그것도 십여 명이나 한순간에 당한 것일까?

“적 공자! 괜찮아요? 적 공자! 아야!”

적운상을 일으켜 세우려던 백수연이 급히 손을 뗐다. 적운상의 몸에 남아 있던 뇌기가 그녀의 손을 타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저, 적 공자.”

적운상은 의식이 없었다. 몸을 다친 상태에서, 있는 뇌기를 모두 쏟아 붓는 바람에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백수연은 머뭇거리다가 다시 손을 뻗었다. 다행히 뇌기가 완전히 사라져서 더 이상 찌릿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 * *

 

“헉헉! 헉헉!”

좁은 골목에 웅크리고 앉아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내. 그의 이름은 차방복이다. 악양현(岳陽縣)의 차씨세가의 장남으로 젊은 나이에 가주가 되어 어떻게든 세가의 부흥을 힘썼었다.

하지만 무재(武才)도 없고, 상재(商材)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문의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요, 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차씨세가가 힘을 펴지 못하는 이유, 그건 악양현에 호남칠대세력 중 하나인 양가장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가들은 양가장에 빌붙어서 그나마 명목이라도 유지하며 먹고살았다. 하지만 차방복은 성격이 유하지 못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날이 갈수록 세가는 무너져 갔다. 있던 하인들마저 하나둘씩 떠나갔다. 땅을 치며 통탄했다. 더 강한 무공이 있었더라면, 돈이 더 많았더라면…….

그러다 우연찮게 기회가 왔다. 아니 기회가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았다.

천마총!

다른 사람들은 뜬소문이다 근거가 없다 여기며 별 관심을 안 가지는 그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천마의 무공이라면, 그가 가지고 사라진 금은보화라면 차씨세가는 호남제일이 아니라 천하제일의 세가가 될 수도 있었다.

반평생을 바쳤다. 천마총에 관한 소문이 들려오면 어디든 찾아갔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조사하며 찾고 또 찾았다.

그런 정성에 하늘이 감동을 했음인가?

천운이 닿았는지 한 장의 지도를 얻게 되었다. 천마총으로 가는 지도였다.

그 지도를 찾아냈을 때 얼마나 환희에 젖었던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것을 얻기 위해 천하 곳곳을 헤매고 다녔었다. 샘솟듯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야, 이제야 평생의 숙원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차방복은 몰랐다. 그것이 천운이 아니라 더없는 악재였음을.

철저하게 숨겼음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정보가 새어나갔다. 천마총의 지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먼저 돌았다. 그리고 뒤이어 차방복이 그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은밀하게, 소리 없이.

이런 일은 원래 조용히 진행되는 법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입을 다물고 움직여야 한다. 자칫 소문이 나면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누가 지도를 가지고 있다든가 아니면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벌떼같이 달려든다. 그것을 자신이 가져간다고 해도 같은 꼴을 당할 수가 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차방복은 그런 자들에게 쫓기고 또 쫓겼다.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팔도 하나 잃었다. 한쪽 눈과 한쪽 귀도 잃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얻은 지도던가?

처자식 다 버리고 그 고생을 하면서 찾아낸 지도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뭐…….”

갑자기 자신의 앞에 그늘이 지자 차방복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일며 뭔가가 뚫고 들어왔다. 검이었다.

“끄으으윽…….”

그것이 차방복의 마지막이었다. 그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은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천마총은 자신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금은보화와 여자들이 그려졌다. 검 한 자루를 차고 천하를 주유하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파각!

“끅…….”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갔다.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가슴과 목을 찍은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천마총의 지도를 차지하고, 나아가서 천마총의 보물을 갖기 위한 치열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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