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1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0화
110화. 구사일생(九死一生) (1)
쏴아아아아!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내리는 폭우였다. 달빛이 없어 바로 앞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을씨년스럽게 비만 추적추적 내릴 뿐이었다.
콰장창!
대로에 있는 한 객잔의 창문이 부서지면서 사람이 튕겨져 나왔다. 혈마승이었다. 잠시 후에 이번에는 객잔의 벽이 부서지면서 혈마승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뭔가에 충격을 받자, 그 혈마승이 완전히 벽을 부수며 날아가 빗물이 고여 있는 땅을 뒹굴었다.
“크하하하!”
사자왕이 광소를 하며 칼을 휘둘렀다.
따앙!
“크윽!”
사자왕의 칼을 받아낸 혈마승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혈마사의 무공도 쾌나 환보다는 중, 즉 위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사자왕의 칼을 받을 때마다 몸이 뒤로 휙휙 밀려났다.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식하리만치 힘이 강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따앙!
혈마승 두 명이 혈도를 겹쳐서 사자왕의 칼을 받았다.
“흐아아압!”
순간 사자왕이 크게 기합을 지르며 칼등을 잡고 밀어붙였다. 그러자 그의 칼을 받아내고 있던 혈마승 두 명의 발이 뒤로 주르르륵 밀렸다. 그러다 그쪽에 있는 탁자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그들을 향해 다시 칼을 휘둘러 마무리를 하려던 사자왕을 향해 양쪽에서 혈마승 두 명이 혈도를 휘둘러왔다.
따앙! 땅!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힘에 온몸의 체중을 다 실어서 휘두른 공격이었다. 그런데도 사자왕이 대충 휘둘러서 맞받아친 힘에 뒤로 튕겨나가야 했다.
내공의 차이가 아니었다. 내공보다는 타고난 신력(神力)!
그 차이였다.
그런 사자왕과는 비교되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운학이었다.
치링…….
혈도와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가볍다. 온 힘으로 휘둘러오는 혈마승의 혈도가 운학의 검에 부딪칠 때마다 번번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급기야는 다섯 명이 협공을 했다. 운학은 하체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검으로 원을 그렸다.
무당파의 기초검법이라는 태극검(太極劍)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무당파 최고의 무공이 태극혜검(太極慧劍)이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무당파의 도사들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태극혜검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난해해서 익히기가 어려웠다. 그 끝을 본 자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태극검은 달랐다. 기초검법이라서 익히기가 쉬웠다. 그런데도 무당파검법의 모든 묘리가 모두 담겨 있었다.
무당파를 세운 장삼봉 진인이 말년에 창시한 무공이 태극권과 태극검이었다. 그리고 숨을 거둘 때까지 수련한 무공도 오로지 태극권과 태극검이었다.
무당파의 모든 비전은 태극권과 태극검에 다 담겨져 있었다. 다른 무공들은 모두 그 두 가지 무공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이다.
운학은 무당파에 입문하면서 지금까지 오로지 그 두 가지 무공만 수련해 왔다. 내공심법도 그 두 가지 무공에 맞게 태극신공만 익혔다.
더디고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무공을 익히는 동문들에 비해 성취가 한참이나 더디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고, 꾸준한 노력이 더해지자 이내 동문들은 물론이고 먼저 들어온 선배들이나 심지어 장로들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성취를 보였다.
치링, 칭! 쉬쉬쉬쉭!
다섯 명이 휘두른 혈도가 운학이 그린 원에 닿는 순간 어이없이 힘을 잃으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졌다. 뒤이어 운학의 검이 다시 움직이자 다섯 명 중, 두 명은 팔을 베이고 두 명은 가슴을 베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목을 베여 즉사했다.
운학은 완벽한 원을 그리며 계속 검을 휘둘렀다. 혈도를 휘둘러오던 혈마승 두 명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뒤이어 옆에서 혈마승 둘이 동시에 혈도를 내려쳤지만 운학의 검이 살짝 부딪쳤을 뿐인데도 옆에 있는 탁자를 쳤다.
사자왕의 눈이 번뜩였다. 무당십걸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것이 있었다. 소림의 십팔나한, 화산의 매화검수, 무당의 무당십걸, 그들이 현 무림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다.
소림의 무공은 중(重), 화산은 환(幻), 그리고 무당은 유(柔)를 중심으로 한다. 쾌를 중시하는 점창파가 있고, 점창오검(點蒼五劍)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지만 저들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했다.
사자왕은 중원으로 와서 그들 네 개 문파의 속가제자들과 겨뤄봤었다. 모두 기대 이하였다. 전부 적운상만 못했다.
그러다 지금 운학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보자 크게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상대했었던 속가제자들이 모두 허접한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속가제자들과 본산제자들은 차이가 크다. 하물며 본산제자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무당십걸이다. 실력 차이가 큰 것이 당연했다.
‘흐흐, 언제고 한번 겨뤄봐야겠군.’
사자왕이 그런 생각을 하며 덤벼드는 혈마승을 뒤로 튕겨냈다.
사자왕과 운학이 그렇게 혈마승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오십여 명 가까이 되던 추적대가 일각도 되지 않아 이제는 겨우 십여 명만 남았다.
혈마승들은 백여 명이 넘었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 많은 혈마승들이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잖아도 무공이 떨어지는데 사람 수에서까지 뒤지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꺄아아악!”
백수연의 비명소리가 이층에서 크게 울렸다. 그러자 일층에 있던 사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이층으로 몸을 날렸다. 백수연 때문에 추적대에 가담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던 혈마승들이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대부분이 다시 발목을 잡혔다. 하지만 혁무한과 진웅만은 달랐다. 두 사람은 앞을 막아서는 혈마승들을 피해 계단의 난간을 발로 차고 이층으로 날아올랐다.
혁무한은 이층 난간에 내려서자마자 백수연을 공격해 가는 혈마승들을 향해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진웅은 이층으로 날아오르면서 이미 백룡창을 던진 상태였다.
따앙! 땅!
혈마승 한 명이 혁무한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은 진웅의 백룡창을 옆으로 쳐냈고, 나머지 한 명은 백수연이 휘두른 날카로움 검의 예기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진웅이 적룡창을 들고 교묘하게 내지르기 시작했다. 복도가 좁아서 혁무한이 앞에서 검을 휘두르자 앞이 완전히 가려졌다. 그런데도 진웅은 혁무한의 뒤에서 한 번씩 적룡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혁무한과 싸우던 혈마승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혁무한의 옆구리나 어깨 위에서 창이 쭉쭉 뻗어 나오니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앙! 파각!
“크윽!”
백수연의 뒤에서 혼자 싸우던 이은성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혈도에 어깨와 다리를 베였다. 그 전에 일격을 허용하는 바람에 갈비뼈도 부러진 상태였다.
“제길! 은성!”
진웅이 다급하게 외치면서 들고 있던 적룡창을 힘껏 던졌다. 그러면 더 이상 수중에 무기가 없었다. 하지만 이은성이 위급한데 이대로 당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따앙!
“웃!”
온 힘을 다해서 던진 적룡창이었다. 그걸 쳐내려던 혈마승이 미처 완전히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어깨가 뚫렸다. 그러자 혈마승의 몸이 뒤로 확 딸려가며 그 뒤에 있던 혈마승들과 부딪쳤다.
이은성은 잠시나마 여유가 생기자 급히 적운상을 안아 들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이층에 이대로 남아 있다가는 끝이었다.
밖으로 나간다 해도 마찬가지였지만 남아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밖으로!”
이은성이 방으로 들어가 부서진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다 지붕의 처마를 한 손으로 잡고 힘껏 당겼다. 순간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여기서 손을 놓치면 끝장이었다. 아직도 아래에는 혈마승들이 있었다.
이은성의 몸이 크게 반원을 그리면서 지붕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제대로 착지를 하지 못하고 어깨부터 떨어졌다. 갈비뼈를 다친 상태에서 한 손으로 적운상의 무게를 감당해 내려 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백수연이 지붕으로 올라왔다.
“괜찮아?”
“크윽! 아직은…….”
이은성이 대답을 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백수연이 다가와서 적운상을 함께 일으켜 세웠다.
“이제 어쩌지?”
“도망가야지. 윽! 나는 안 되겠어. 누님이 업어.”
“하지만…….”
“적 형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어.”
“응.”
백수연이 적운상을 등에 업었다. 무거웠다. 하지만 귓가로 작게나마 적운상의 숨소리가 들려오자 힘이 솟았다. 내공을 끌어올려 버티면서 이은성을 봤다.
“먼저 가.”
이은성은 백수연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밑에서 올라온 세 명의 혈승들을 보고 있었다.
“혼자서는 무리야.”
“걱정 마. 누님이 몸을 피하면 대충 싸우다가 도망갈 거야.”
불가능했다. 다쳐서 적운상도 업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싸우다가 도망을 간단 말인가?
후웅! 훙!
그때 빗속을 뚫고 밑에서 두 명이 공중제비를 돌며 지붕으로 내려섰다. 혁무한과 진웅이었다. 이어서 또 두 명이 올라왔다. 한 명은 비도문의 상음지란 여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남예였다.
“크큭. 오 대 삼인가? 이쪽이 유리하군. 그럼 재미가 없지. 가라 이은성. 적운상을 부탁한다. 이것들 처리하고 곧 뒤따라갈게.”
혁무한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혈마승들을 보며 이은성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은성은 고개를 저었다.
“부상이 심해서 난 힘들어. 진웅, 네가 가라.”
“웃기지 마!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가! 죽어도 여기서 죽는다!”
“그럼 당신들 두 사람뿐이군. 그 자식을 부탁하오.”
혁무한이 상음지와 남예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그러자 상음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남예는 아니었다.
그녀는 곧바로 백수연을 잡아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걸 확인한 혁무한이 크게 소리치며 혈마승들을 향해 검을 휘둘러갔다.
“좋아! 한바탕 해볼까!”
“흐아아압!”
진웅이 거기에 가세했고, 이은성이 이를 악물고 검을 찔러갔다. 그러자 주춤거리며 망설이고 있던 상음지도 몸을 날리며 네 개의 비도를 날렸다. 도망가기보다는 같이 싸우는 쪽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