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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3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32화

공력이 실린 그녀의 목소리는 평원 곳곳으로 메아리쳤다.

봉황이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향해 봉명을 내지르는 듯했다.

와아아아아!

더욱 커지는 구천성 무사들의 함성!

단숨에 기세가 꺾인 삼파연합 무사들은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물러서지 마라!”

“전열을 가다듬고 놈들을 막아!”

삼파의 간부들이 악을 쓰며 수하들을 독려했다.

한 번 꺾인 기세는 쉽게 만회되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쓰러진 무사의 숫자가 백 명이 넘어갔다.

사방에서 아우성과 비명이 뒤엉켜서 극도의 혼란상태였다.

그러나 삼파연합 무사들은 구천성과 싸우려 할 때부터 죽기를 각오한 터였다. 게다가 배나 되는 숫자도 용기를 북돋는데 힘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패하면 죽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겁내지 마라!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다!”

여기저기서 삼파연합 간부들이 악다구니를 써댔다.

저항이 어찌나 거센지 단숨에 승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전황은 구천성에게 유리하게 흘렀다.

“냉 대주! 수혼대를 이끌고 좌측을 치세요!”

사마경이 소리쳤다.

냉원상이 흠칫한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소성주…….”

“흑월대와 여기 두 분이 있으니 내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에요. 가세요!”

사마경이 단호하게 공격명령을 내리자 냉원상도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소성주! 수혼대원들은 모두 나를 따라 적을 친다! 가자!”

최강의 정예로 이루어진 수혼대마저 혼돈의 전장 속으로 뛰어들자, 삼파연합 무사들의 저지선이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그때였다. 삼파연합 뒤쪽에서 일백여 명이 나타났다.

신천검문의 생존자들이 마침내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게 된 삼파연합 무사들은 절망에 찬 표정으로 방어에 치중했다.

그러나 사기마저 땅바닥에 떨어진 그들로선 분노에 찬 구천성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혈전이 벌어진지 이각.

평원의 누렇게 마른 풀이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일천이 넘는 삼파연합 무사 중 칠백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채 지옥도를 연출했다.

구천성 쪽도 이백여 명의 피해를 본 터라 눈빛이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이제는 광기가 전장을 지배했다.

사형제, 가족, 동료, 친구를 죽인 자들이다.

상대의 목을 쳐서 원한을 갚으리라!

피가 튀고, 뼈가 잘리고, 사지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뒹굴었다.

광란의 혈전이 절정에 이르자 서 있는 자들보다 쓰러진 자들이 많아졌다.

바로 그때, 수백의 인영이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서 혈전장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사람 키 높이의 마른 풀들이 폭풍에 휩쓸리듯 마차 쪽으로 눕혀졌다. 마치 기의 폭풍이 밀려드는 듯했다.

마차 위에서 사마경을 호위하고 있단 철무가 경고를 보냈다.

“소성주, 또 다른 적이 있소이다.”

거의 동시에 구양명도 다가오는 자들을 발견하고 표정이 굳어졌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상대의 복장을 보고 정체를 간파한 것이었다.

도복과 승복 등 온갖 복장을 한 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복장을 한 세력은 천하에 오직 한 곳뿐.

“무림맹이오!”

“빌어먹을!”

소연추가 쌍소리를 하며 검을 뽑았다.

구양겸도 천천히 검을 뽑고, 철무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품속에서 빠져나온 철무의 손에는 한 자 길이의 갈고리처럼 생긴 기형도가 쥐어져 있었다.

“아가씨, 마차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소연추가 소리쳤다. 그러나 사마경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숨을 깊이 들이쉰 후 봉황검을 뽑았다.

“유모, 지금 마차 안으로 숨으면 구천성 무사들이 나를 얼마나 비웃겠어?”

“아가씨…….”

“이제는 나도 물러서지 않을 거야.”

그 사이 무림맹 무사들이 삼십여 장 거리까지 접근했다.

개중에는 승려도 있었고, 도인도 있었고, 속인도 있었다.

나이를 짐작키 힘든 노인도 있었고, 이십대 청년과 젊은 여인도 있었다.

그들은 반원을 그리며 패왕거의 후위로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흑월대 일조는 무기를 빼들고 패왕거의 뒤쪽으로 늘어섰다.

“더럽게 많이도 왔군. 제길, 대주는 왜 안 오는 거야?”

혁련기가 입술을 씹으며 투덜거렸다.

삼파연합을 공격하던 구천성 간부들도 뒤늦게 무림맹의 등장을 알고 대경했다.

“무림맹이다!”

“소성주께서 위험하다! 수혼대는 모두 소성주 쪽으로 이동하라!”

냉원상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하아! 소성주를 돕는다!”

하후경이 말머리를 돌리고 일성 기합을 토해냈다.

폭풍철기대가 그를 따라 돌아서더니 패왕거를 향해 내달렸다.

백리우진도 측근 몇 명과 함께 패왕거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나를 따라오시오! 무림맹이 소성주를 공격하고 있소!”

장천운이 없는 지금, 사마경에게 점수를 딸 적기였다.

독고민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뒤를 쫓아갔다.

‘흥! 저 계집을 너에게 넘겨줄 순 없지!’

어릴 적부터 사마경은 자신이 노리는 먹이였다.

그녀가 추하든 아름답든 미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성주의 딸이라는 것, 구천성의 후계자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차지할 가치가 충분했다.

물론 그녀가 꼽추에 추악한 얼굴이었다면 고민 해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얼굴만 남보다 모자랐을 뿐, 그 외에는 어느 여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참고 데리고 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서 나타난 그녀는 서시가 되살아난 듯 아름다웠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빼앗고 싶은 경국지색의 미녀!

그런 미녀를 백리우진처럼 근본도 모르는 놈에게 넘겨줄 수는 없잖아?

 

그렇게 구천성 무사들이 사마경을 돕기 위해 달려갈 때, 무림맹 무사들의 선두도 패왕거를 향해 밀려들었다.

“구천성의 소성주를 잡아라!”

“정천의 제자들이여! 오늘, 강호에 새로운 의협의 도를 세워라!”

“아미타불! 내가 지옥에 가야 한다면 마다하지 않겠노라!”

무림맹 장로인 화산파의 운성자와 소림사의 원각대사가 일갈을 내지르며 맹도들의 공격을 독려했다.

무림맹의 무사 숫자는 사백 명쯤. 숫자만 따지면 구천성 쪽이 더 많았다.

그러나 구천성 무사는 반 이상이 삼파연합과 싸우는 중이었고, 무림맹 측 사백여 무사 중에는 장로 다섯과 정천무룡단 일백이 섞여 있었다.

정천무룡단은 무림맹이 썩어문드러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 절치부심하며 키운 최강의 정예로, 이삼십대 젊은 무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어릴 때부터 구천성을 반드시 제거해야할 적으로 생각하며 커온 사람들.

그들은 정파의 무사들답지 않게 살기를 감추지 않았다.

눈에서는 살광이 번뜩였고,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손속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구천성을 멸하라!

구천성의 악귀들을 지옥으로!

 

***

 

멀리서 피 튀기는 전장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 서 있던 서문주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늦가을 들녘처럼 누렇던 벌판이 붉게 물든지 일각 째.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천성, 삼파연합 무사들의 잘려나간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몸뚱이에서 뿜어지는 피분수가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때 무림맹 맹도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비밀이라면 비밀이랄 수 있는 정천무룡단을 이끌고!

“의외군. 어찌된 일인가?”

“저 역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갈승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천회의 무사 중 많은 이들이 무림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무림맹의 기둥인 구문팔가의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무림맹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만약 무림맹이 구천성의 토벌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무사를 파견했다면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더구나 암암리에 키운 정천무룡단을 내보냈다는 것, 장로가 다섯 이상 참여했다는 것, 특히 임시성주인 사마경을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저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맹주의 재가가 떨어졌다는 말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강호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구천성의 임시성주를 공격한다는 건…….”

서문주경의 말에 대답하던 제갈승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수작이라…….”

“무림맹으로선 아무리 사마경이 성에서 나왔다는 걸 알았다 해도 적극적인 공격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아직은 구천성의 보복을 감내할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요.”

“무리인 줄 알면서도 움직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불가침에 대한 약속을 했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지요.”

“그런 약속을 할 만한 사람은 구천성에 둘 밖에 없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반발이 거셀 거라는 걸 모르진 않을 터, 그들이 왜 그런 강수를 두었을 거라 보는가?”

“차도살인(借刀殺人)을 바라는 것이겠지요.”

서문주경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훗, 마음이 다급했나보군. 그렇다고 무림맹을 움직이다니.”

“저희로선 나쁠 것 없는 상황입니다.”

서문주경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나선 목적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결과였다.

그때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악조백이 물었다.

“백기주, 지금 무림맹을 돕는 게 어떻겠는가?”

제갈승우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한 결과가 드러날 때쯤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해는 피해대로 줄이고 생색은 최대한 내는 거지요.”

 

***

 

청인도장의 검은 유장하면서도 일 검 일 검에 천근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가 검을 뻗을 때마다 구름이 피어나고, 태산이 무너지듯 무거운 검세가 전신을 짓눌렀다.

정파 정통의 절정검을 처음 대해본 장천운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력만 따지자면 구천성의 장로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검의 깊이에 있어서는 느낌이 달랐다.

장천운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초식을 겪어보고 싶었다. 청인도장의 검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검도 깊어질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십 초식이 넘어가자 팔성의 공력으로 천뢰구검을 펼쳤다.

현월이 구름을 가르고 벽력을 토해냈다.

쩌저정! 땅!

청인도장의 송문검이 부러진 것은 정확히 십구 초째 공방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청인도장은 부러진 검을 쳐다보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검사에게 검은 곧 목숨과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그의 검은 사문인 무당파의 제자를 상징하는 송문검으로 삼십 년 전 스승에게 받은 검이었다. 그 검이 부러진 것이었다.

패배감보다 비통함이 더욱 더 그를 짓눌렀다.

울컥!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 핏물이 꾹 닫힌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참으로……. 무서운 검이구나.”

“도장의 검도 굉장했습니다.”

“내가 꺾였다 해서 무당의 검이 꺾였다 생각지 마라. 언젠가 무경이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 아이의 태극이라면 너의 검을 꺾을 수 있을지도…….”

무경. 그 이름을 들은 장천운의 눈빛이 뇌전처럼 번쩍였다.

무당파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청년도사. 무림십룡 중 하나가 바로 무경이었다.

“그와 검을 맞댈 기회가 온다면 저야 좋지요. 무당의 검을 더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무심한 어조로 말을 건넨 장천운은 신형을 날렸다.

힘들게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청인도장의 표정이 암담하게 어두워졌다.

검만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심맥도 잘렸다.

자신이 십 초만에 이리 당했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것인가.

‘맹주, 구천에 괴룡이 한 마리 있소이다. 그가 자만으로 가득 찬 이 청인에게 세상이 넓다는 걸 알려주는구려. 그를 막지 못하면……. 맹주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요.’

회한과 답답함이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몸이 비틀거렸다.

“사숙!”

근처에서 흑월대와 싸우던 도인 하나가 단말마처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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