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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0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01화

101화. 추적대 (1)

 

이른 아침.

통천문의 넓은 연무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 수가 오십여 명 가까이 되자 모두 모인 듯, 더 이상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혈마사를 상대하기 위한 정의회의 추적대였다.

하지만 추적대치고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고수로 보이는 이들은 겨우 예닐곱 정도?

나머지는 칼이나 제대로 휘두를지 의심스러운 자들이거나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거기다 여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이제 열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은 기가 막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약은 놈들 같으니라고…….”

호남의 무림문파들은 혈마사가 한 번씩 출현할 때마다 이렇게 손을 잡고 그들에게 대항했었다. 당연히 혈마사에서도 이쪽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추적대가 찾고 다니면 혈마사가 모를 리가 없다. 지금 이렇게 그들을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추적대는 어떻게 보면 미끼나 마찬가지였다. 혈마사를 유인하고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역할이 추적대가 할 일이었다.

혹여 운이 좋아 몰래 그들의 꼬리를 밟는다 해도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걸리면 당연히 칼부림이 날 테고, 그럼 살아나기가 힘들었다.

혈마승들은 무공이 뛰어나다. 호남의 무림문파들이 괜히 이렇게 모여서 그들을 상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운상이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직계들을 보내라고 요구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엉망인 자들이 모이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좀 제대로 된 자들이 와야 그나마 생존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생각이 짧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을 보니 수장들의 직계이기는 하되, 모두 버리는 자들이었다.

골칫덩이나 사고뭉치, 또는 권력싸움에 의한 희생자에, 이제 퇴물이 되어 어떻게 처리가 되지 않는 자들까지, 제대로 된 이들이 없었다.

명성이 있는 칠대문파에서 온 자들이 그러니 다른 문파에서 보내온 사람들은 보나마나였다. 그나마 이 기회에 명성을 떨쳐보려는 생각으로 온, 실력 있는 낭인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쓸 만한 놈들은 열 명 정도군.’

적운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혁무한은 혁세명이 지명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왔다 해도 철혈보의 진웅과 신검문의 이은성이 있을 줄은 의외였다.

진웅은 철혈보에서 촉망받고 있는 후기지수(後起之秀)였다. 더구나 이은성은 신검문의 다음 대를 이어갈 소문주였다. 그런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올 이유가 없었다.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천응방에서는 백묘묘도 아닌 백수연이 왔다.

그녀의 미모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향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백수연의 추종자들이었다.

적운상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혈마사에 대해서 대충 알아보니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과연 저들만으로 그들을 찾아내고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후우… 되든 안 되든 해봐야겠지.’

“모두 모이시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적운상이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이 어기적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귀찮아하는 투가 역력했다. 못 들은 척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거기다 사문에 대한 자부심도 있기 때문에 다른 문파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싫어한다.

더구나 적운상은, 명성이 좀 있다지만 그뿐이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사문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기에 모인 자들 대부분이 적운상과는 초면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적운상이 대장이라 해도 적극적으로 따를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그걸 적운상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저들의 마음을 아울러서 같이 움직여야 했다.

“반갑소. 추적대의 대장을 맡게 된 적운상이오. 할 말만 하겠소. 알고 있겠지만 이번 일은 굉장히 위험하오. 모두 죽을 수도 있소. 하지만 내 말을 잘 따른다면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도록 해보겠소. 출발은 삼 일 후요. 그 안에 정리할 거 다 정리하고, 마음을 바꿔 빠질 사람은 빠지시오. 어정쩡한 각오로 따라나섰다가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지 말기 바라오.”

“흥! 당신이나 그러지 말라고.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면 그 자리에 놔두고 갈 테니까. 큭큭큭.”

얼굴에 세로로 칼자국이 나 있어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사내였다. 그가 그렇게 농담을 하자 주위에 있던 네다섯 명의 사내들이 같이 낄낄거렸다.

몇몇 사람들이 그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상관하지는 않았다. 조금 거칠어 보이지만 실력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적운상이 성큼성큼 그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잡았다. 적운상의 박력에 놀라 바짝 긴장을 한 것이다. 적운상은 그 사내 앞에 서서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헛된 짓을 할 생각이면 지금 당장 빠져.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된다 싶으면 내 손으로 먼저 베어버릴 테니까.”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칼을 뽑지도 못했다. 그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을 뿐이다. 그와 함께 낄낄대며 웃던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백수연이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흐뭇해했다. 적운상이라는 사내는 뭘 하든 거침이 없었다. 물론 그럴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를 보고 있으면 그 당당함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고 끌리게 된다.

적운상은 농담을 한 사내와 낄낄대던 사내들을 한차례 쓸어본 후에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할 말은 그게 다요! 삼 일 후에 다시 봅시다.”

적운상이 자리를 뜨자 그제야 그 사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사형! 사형!”

이른 아침부터 주양악이 찾아와서 난리였다. 적운상이 추적대의 대장으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왜?”

적운상이 침상에서 눈을 뜨다가 다시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다.

“정말이에요? 선발대의 대장으로 간다는 게?”

“응.”

“왜 그랬어요? 선발대는 모두 죽는다고 하던데!”

“그렇게 됐어. 좀 더 잘 거니까 시끄럽게 굴지 마.”

“지금 잠이 와요! 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주양악이 적운상을 흔들어 깨우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침상으로 눕혔다. 그리고 두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눌렀다.

“꺄악!”

얼결에 당한 주양악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적운상은 그런 주양악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 죽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주양악이 걱정스러움과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적운상을 올려다봤다. 적운상은 그런 주양악이 너무나 귀엽게 보였다. 그러자 문득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까 예쁜데.”

적운상이 팔을 굽혀 주양악과 숨결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뭐, 뭐야… 설마 사형이…….’

순간 주양악은 적운상이 뭘 하려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잠시 눈망울이 떨렸다. 그러다 눈을 질끈 감았다.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적운상은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단순한 장난이었는데 주양악이 설마 진짜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적 공자님. 어머!”

남예가 들어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몸을 돌렸다.

“죄, 죄송해요.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오히려 다행이었다. 적운상이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아쉬운 기회를 놓친 주양악은 도끼눈을 뜨고 남예를 노려봤다.

‘하필 그럴 때 오고 난리야.’

남예는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그런 주양악의 시선이 느껴지자 미소를 지었다. 혀도 날름 내밀었지만 뒤에 있는 주양악은 알 수가 없었다.

“혁 공자님이 찾아요.”

“금방 가지.”

“네. 그럼.”

남예가 나가자 적운상이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주양악은 어색하니 침대에 앉아서 그런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톡 치며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아쉬워?”

“에? 아니야! 뭐가 아쉬워? 누가 사형 따위 좋아한데?”

주양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방을 나가버렸다. 그런 주양악을 보면서 적운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뭐야? 설마 내가 양악이를 여자로서 보는 건가?’

정말 그렇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적운상은 금검문의 홍은령과 혼담이 오가는 중이었다. 원하지는 않지만 사부인 임옥군이 정한 일이고, 이미 금검문의 도움까지 받은 상태라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양악이는 나를 사형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쩐다?’

지금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그저 주양악과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자꾸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에 그랬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주양악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최근 주양악이 하는 행동을 보면 확실히 예전과는 달랐다. 아까같이 마누라처럼 잔소리를 하는 것만 해도 그랬다. 전에는 핀잔을 주며 시비를 걸기 위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걱정을 했다. 단순히 사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인을 걱정하는 것같이 안달이었다.

“후우…….”

적운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주양악을 멀리해야 할 것 같았다. 하긴, 어차피 추적대가 출발하게 되면 한동안은 볼일이 없었다.

‘양악이가 마음을 정리해야 할 텐데.’

왈가닥이지만 천성은 더없이 순수하고 착한 아이였다. 적운상은 그런 주양악이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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