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8화
98화. 혈마사의 출현 (2)
쉬쉬쉬쉿!
적운상은 방 앞의 정원에서 반나절 내내 땀을 흘렸다. 아직 무리할 정도로 몸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서 그게 한계였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수련을 하니 얻는 것이 많았다. 두 개의 단검을 써야 했던 풍뢰십삼식은 이제 단검을 하나만 써도 더 능숙하게 펼칠 수가 있었다.
더구나 단검을 하나만 사용하니까 한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변화가 더 다양했다. 적운상은 이참에 풍뢰십삼식을 완전히 복원시킬 생각을 했었다.
풍뢰십삼식은 원래 권법이었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쌍검술로 바뀌었고 그것이 또다시 도법으로 바뀌었다.
적운상은 형산파에 권법이 없으니 풍뢰십삼식의 원형을 복원해 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심을 해봐도 무리였다.
풍뢰십삼식은 오랜 세월 동안 도법으로 전해지면서 거기에 맞게 변형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완전한 권법으로 복원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
단순히 두 개의 단검을 쓰다가 하나만 쓴 것처럼 그것마저도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단검이지만 무기를 든 것하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것하고의 차이는 굉장히 컸다.
밤낮으로 고심하던 적운상은 결국 포기를 했다. 풍뢰십삼식을 완전한 권법으로 만드느니 차라리 새롭게 권법을 하나 창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하나의 단검을 쓰는 것만이라도 더욱 깊이 있게 익힐 생각으로 오로지 그것만 연습을 하고 있었다.
파팟! 쉬쉬쉬쉿!
“응?”
아무 생각 없이 단도를 휘두르던 적운상이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풍뢰십삼식을 연습하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낙연검법을 쓴 것이다.
“흐음… 어디…….”
쉬쉬쉿!
짧은 단도로 낙연검법을 펼치니 확실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반복을 하니까 그런 느낌이 점점 사라졌다.
적운상은 그렇게 낙연검법을 펼치다가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그러자 한순간 자세가 망가지면서 새로운 검로(劒路)가 그려졌다.
“호오… 이것 봐라.”
적운상은 다시 한 번 똑같이 시도해 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방향으로 검이 움직였다. 풍뢰십삼식을 펼치다가 낙연검법을 펼쳐도 마찬가지였다. 초식이 바뀌는 그사이에 제멋대로인 초식이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더 해보던 적운상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그것이 변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자도나 백운검으로 그 두 가지 무공을 번갈아 펼칠 때는 지금과 같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도로 펼치니까 자신도 모르게 한순간이나마 변초를 썼다.
완벽한 초식을 펼치고, 그 다음의 초식 역시 완벽하게 펼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군. 익숙하지 않으니까 변초를 쓰는 거야.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다라…….’
뭔가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가 않았다. 이에 적운상은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면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거렸다.
옆에 주양악이 와 있는데도 전혀 모르고 그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사, 사형…….”
주양악이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불렀다. 무공을 열심히 수련하더니 혹시 주화입마에 빠져서 미쳐버린 게 아닌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응? 아, 왔구나.”
“뭐, 뭐하는 거예요? 어디 아파요?”
“아니야. 뭐 좀 생각하느라.”
“정말 괜찮은 거죠?”
“그래. 괜찮아.”
적운상이 걱정 말라는 듯이 주양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주양악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혀, 혁 공자가 찾아요.”
“볼일 있으면 직접 오라고 그래.”
“급한 일인 것 같던데요.”
그때 방에서 남예가 나왔다. 그녀는 주양악을 보자 생긋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주양악도 얼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시어요.”
남예가 나긋나긋하니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주양악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그사이에 친해졌다고 벌써부터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거야?’
“괜찮아.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
“사형! 지금은 대낮이라고요.”
“한 잔쯤이야 괜찮잖아.”
“안 괜찮아요! 몸도 성치 않으면서 만날 술이야.”
주양악이 발끈해서 열을 올리고 있는데 멀리서 혁무한이 다가왔다.
“불러달라고 부탁했더니 여기서 놀고 있었군.”
“아니거든요!”
그러잖아도 신경질이 나던 주양악이 혁무한한테 화를 풀려고 했다.
“오라면 오지 여기서 뭐하고 있어?”
“보시다시피.”
“같이 좀 가자.”
“어디를?”
“지금 대청에 모두 모여 있어.”
“앞뒤 자르지 말고 정확히 말해.”
“혈마사라고 알지?”
“혈마사?”
적운상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혁무한이 멍하니 그를 보다가 물었다.
“설마, 모르는 거냐?”
“알아야 하는 거냐?”
“후우… 도대체가…….”
혁무한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니, 정말 그런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혈마사가 뭔데?”
“때 되면 한 번씩 나타나서 사악한 짓을 일삼는 놈들이지. 무공이 아주 강해.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호남의 문파들이 손을 잡기로 했어. 호남칠대세력은 물론이고 그 외에 명성이 좀 있는 문파들은 모두 모일 거야.”
“그래?”
적운상이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혁무한은 그렇게 말했는데도 적운상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같이 생각되자 기가 찼다.
“그럼 가보지 뭐. 너도 같이 갈래?”
“네? 아니어요. 제가 어찌 감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예는 이미 적운상의 소매를 꼭 쥐고 있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혁무한을 보고 물었다.
“괜찮지?”
“응? 안 될 건 없지만…….”
여자 한 명 더 낀다고 잘못될 건 없었다. 단지 좀 아니다 싶을 뿐이었다.
혼자 남겨진 주양악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화풀이를 할 데가 없었다.
* * *
적운상이 남예를 데리고 혁무한과 함께 대청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혁세명과 혁강운을 비롯한 통천문의 고수들과 운학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의논하다가 적운상이 들어서자 모두 입을 닫고 그를 봤다.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적운상은 그러건 말건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의 소매를 잡고 따라오던 남예는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저, 저기… 사람들이 조금 무서워요.”
“신경 쓰지 마.”
적운상이 생글생글 웃으며 옆에 있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몇몇 사람들이 그런 적운상을 약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중요한 자리건만 상관도 없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최초로 당한 곳은 석문현입니다.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악양양가장에서 확인한 사실이니 틀림이 없을 겁니다.”
혁강운의 설명에 일노인 장노한이 물었다.
“날짜가 언제인가?”
무림대회의 날짜를 묻는 말이었다.
“정식으로 잡은 날짜는 한 달 뒤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라도 각 문파의 사람들이 모이면 바로 대책을 세운다고 합니다.”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
이번에는 이노 공충일이 물었다. 적운상이 오기 전에 상의하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기왕에 나서서 서로 힘을 합해야 한다면 통천문이 그 중심에 서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다.
“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오히려 피해가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혈마사를 상대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싸우기도 전에 끝입니다.”
혁강운의 말대로 정말 그럴 수도 있었다. 칠대세력 중 가장 세가 강한 것이 통천문이었다. 나머지 여섯 개의 문파들은 다 고만고만했다.
그러니 통천문이 나선다면 다른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따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도나도 나서려다 자칫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건 좀 더 숙고해 보자꾸나.”
일노 장노한의 말에 혁강운이 혁세명을 봤다. 최종 결정은 그가 하는 것이다. 혁세명은 대답 대신 옆에 앉아 있는 운학을 보며 물었다.
“무당파에서는 우리를 도와줄 생각이 있으시오?”
“무당이 비록 호북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어찌 그 같은 일을 일삼는 자들을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언제든 도움을 청하신다면 함께 검을 들 것입니다.”
“음…….”
혁세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운학이 ‘도움을 청하신다면’이라고 말한 것은 대가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무당파가 호북에 있다는 말을 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혈마사가 날뛰는 건 어디까지나 호남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호북에까지 영향이 미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무당파가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운학은 힘을 빌려주는 대신에 그만큼의 대가를 달라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한 것이다.
혁세명은 무당파가 힘을 빌려주면 이번 무림대회에서 다른 문파들을 규합하는 중심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천문이 앞장서면 그만큼 피해도 크겠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무당파가 도와준다면 그 피해를 줄일 수가 있었다.
“그러리다. 무당파에 급전을 띄워 한번 의향을 물어봐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혁세명이 그렇게 결정하고 적운상을 힐끗 봤다. 그는 차를 마시면서 옆에 있는 남예와 소곤거리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혈마사가 나타났다는데도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자로군.’
오늘 이 자리에 적운상을 부른 이유는 이쪽으로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혈마사를 상대하려면 한 명이라도 고수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니 적운상이 다른 문파와 뜻을 맞추기보다는 통천문과 함께하기를 원한 것이다.
“이번에 형산파에도 서찰이 갔다고 하더군. 형산파에서는 어느 정도나 지원을 한다고 하던가?”
“에? 형산파에도 도움을 청했어요? 흐음… 듣기로는 혈마사가 그렇게 강하다면서요? 그럼 구 사숙조님이 오시려나? 그냥 나 하나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그대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혈마승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네.”
일노 장노한이 적운상을 나무라듯이 크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적운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어때서? 웬만한 문파의 고수들보다 내가 낫지 않나? 더구나 내가 움직이면 사자왕도 따라올걸요. 저기 운학도 뭐 좀 달라고 저러지만 내가 살살 꼬드기면 공짜로도 해줄 것 같은데.”
적운상이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자 운학이 무안함에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험! 무, 무슨 말이오?”
“무슨 말은? 전에 말한 그 확증을 잡았거든.”
“그게 정말이오?”
운학이 놀라서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앉았다.
“솔직히 말하면 금마도 놈들, 전에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소. 어디에 있는지 짐작 가는 곳도 있고.”
금마도라면 통천문에서도 쫓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단서 하나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부상을 치료하느라 통천문을 벗어난 일이 거의 없는 적운상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요?”
운학이 화를 내며 적운상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지? 설마 정말 술 한잔 사준 대가로 얻어가려고 했던 거요?”
“그, 그건… 술뿐이 아니잖소? 주 소저의 대련상대도 되어주지 않았소?”
‘헉! 그런 짓까지 했었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놀란 눈으로 운학을 쳐다봤다.
“달리 또 들을 이야기가 있는 겁니까?”
적운상이 혁세명을 보며 물었다. 없었다. 원래 혁세명은 마지못해서 받아주는 것처럼 해서 형산파를 도와주는 척 적운상을 밑에 두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한순간에 자신의 가치를 높여버렸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이쪽에서 적운상에게 매달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달리 또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없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아서 상처가 욱신거리는군요. 영약이라도 하나 먹으면 나을 것도 같은데…….”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예도 일어났다. 그녀는 시종일관 그의 소매를 놓지 않은 상태였다.
“아, 이거 하나만 물어보죠. 혹시 혈마사가 날뛰면 금마도도 도와줄 것 같습니까?”
“……!”
그런 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다급하면 일단 다 같이 손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흐음… 아니지. 어쩌면 혈마사의 배경이 금마도일 수도 있겠군. 그렇지?”
적운상이 그러게 말하면서 슬쩍 남예를 봤다. 그러자 한순간이지만 남예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 제가 어찌 알겠어요. 오라버니도 참…….”
“아니 그냥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야. 가자.”
적운상이 대청을 나가자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