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4화
94화. 적과 함께 (1)
보름 정도가 지나자 적운상은 간신히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이에 수시로 몸을 움직였다. 혁무한도 상처가 많이 아물어서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완쾌가 되려면 적어도 서너 달 정도는 더 있어야 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회복하는 동안 통천문은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처럼 한바탕 난리가 났다.
통천문은 오직 실력에 따라 서열이 주어지고 거기에 따른 권력이 주어진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 온 자들도 부지기수였고, 절대적인 충성심 같은 건 바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임진숭처럼 속뜻을 감추고 들어와도 어떻게 알아낼 방법도 없을뿐더러 색출해 내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혁강운이 임진숭의 배신에 분노해서 또 그런 자가 없는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던 것이다.
통천문의 모든 이들이 출신부터 시작해서 철저하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에 사람들의 불평이 하나둘씩 터져 나왔다. 그 같은 일이 연일 지속되자 결국 혁세명이 나섰다.
그는 혁강운을 나무라면서 통천문의 서열에 오른 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다른 뜻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는다.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상관없다. 강해져라. 이따위 독을 쓰지 말고 정정당당히 겨뤄서 최고가 되라. 그럼 누구든 복종할 것이다.”
실로 그다운 말이었다. 과연 통천문의 문주였다. 그의 말에 불평을 하던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불평을 하려면 그만큼 강해지라는데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통천문의 규칙이지 않던가?
그렇게 시끌시끌하던 사건이 조금 잠잠해질 무렵 통천문에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그는 젊은 나이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는 도복을 입고, 등에는 한 자루의 송문고검을 차고 있었다. 무당파의 무당십걸 중 한 명인 운학이었다.
그의 신분을 안 통천문에서는 그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객청으로 맞아들이고 혁세명이 혁강운을 데리고 직접 그를 만났다.
“반갑습니다. 운학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혁세명이오.”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시비가 따끈따끈한 차를 내놓고 갔다. 그걸 들고 향을 맡으며 살짝 입술을 축인 운학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
“실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무엇이 궁금해서 무당십걸이 직접 찾아온 거요?”
“제가 알기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주님께서는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호남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그 독을 해독했는가.’입니다. 그동안은 그 독을 해독할 길이 없어서 모두 손 놓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주님은 그렇게 멀쩡하시죠.”
“흐음… 그것이 왜 궁금한 것이오? 혹시 무당파에도 독에 중독된 이가 있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몇 년 동안 모종의 단체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제가 아는 것은 오로지 금마도라는 세 글자뿐이었습니다. 그게 섬 이름인지 아니면 사람 이름인지, 그도 아니면 어떤 집단을 뜻하는 건지 전혀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모종의 단체를 뜻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최근 호남에 뿌려지고 있는 독이 그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냈죠. 그러다 우연찮게 문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고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의심을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 그 독은 명성이 대단한 명의들조차도 해독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주님이 그걸 해독했다는 건 두 가지 경우죠.”
“어떤 경우요?”
“첫째는 문주님이 그 독을 뿌린 당사자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들에게서 해독약을 구한 경우죠.”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요?”
“하하. 통천문은 호남에서 그나마 세가 가장 강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설마 무당십걸을 모두 불러 모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사형들 중 넷만 모이면 충분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오만하고 건방진 말이었다. 하지만 혁세명은 운학의 말에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무당파는 소림사와 함께 무림의 양대 기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도를 닦는다고 눌러앉아 있는 이들만 해도 몇백 명이요,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이들과 연계되어 있는 이들, 거기다 식객들까지 모두 합하면 천여 명이 넘는다. 은거한 노고수들까지 따진다면 그 이상이었다.
거기다 오랜 명문인만큼 강한 자들이 수두룩했다. 혁세명이 비록 호남 밖에까지 명성을 조금 알렸다고는 하지만, 무당파에 가면 그런 고수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런 무당파에서 자신하면서 내놓은 이들이 바로 무당십걸이었다. 그들 다섯 명이면 하루아침에 통천문이 초토화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음… 안 됐지만 두 가지 경우 다 아니오.”
“그럼 어찌된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운학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혁세명도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예를 거두시오. 실은 최근에 일이 있어서 그 사실을 숨기고자 했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은 형산파의 적운상이란 젊은이가 힘을 써줬기 때문이오. 내게 독을 푼 범인도 그것이 궁금했던지 그를 유인해서 손을 썼었소.”
“지금 적운상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소. 혹시 그를 아시오?”
“물론입니다. 알다마다요. 예전에 그에게 크게 신세 진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그가 혹시 여기에 있습니까?”
“지금 부상을 당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소.”
“그를 만나고 싶군요.”
“그러시구려. 강운아. 네가 안내하거라.”
“네. 아버님.”
* * *
운학이 혁강운을 따라가니 적운상이 연못의 바위에 앉아 물고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적 소협!”
운학이 반가운 마음에 그를 크게 불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하하하. 여기서 또 보는군요. 정말 오랜만이오.”
“그렇군.”
“그간 별고 없으셨소? 다쳤다더니 정말이군요.”
“형산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요?”
적운상이 마지막에 그를 본 것은 상관보연과 함께 형산파에 왔을 때였다.
“나야 늘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지 않소.”
“비가 되어 강으로 흘러가지는 마시오.”
운학이 헤엄을 못 친다는 걸 아는 적운상이 웃으면서 농을 던졌다. 그런데도 운학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물론이오.”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혁강운은 약간 의외였다. 운학이 적운상을 안다기에 그의 신분상 적운상이 조금 수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적운상은 퉁명스러웠고, 운학은 그걸 알면서도 사람 좋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혁세명조차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무당십걸을 저리 대할 수 있다니 조금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실은 적 소협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소.”
“뭐요?”
운학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적운상에게 이야기했다. 적운상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조금 놀란 눈치를 보였다.
운학의 말대로라면 임진숭도 금마도의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금마도라면 적운상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금벽도문에서 만났고, 이번에는 상인연합모임에서 봤던 도옥평이 바로 금마도에서 온 사람이지 않던가?
“문제는 그들이 독을 풀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데 그걸 알 수가 없다는 거요. 무엇보다 적 소협이 위험하오. 이미 그들이 한 번 손을 썼다고 들었소. 적 소협이 그들의 독을 해독할 방법을 알고 있는 이상 끝까지 어떻게든 하려 들 것이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금안뇌정신공으로 독을 태웠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이 형산파 사람들을 노릴 수도 있었다.
“당신이 그들을 쫓는 이유는 뭐요?”
적운상의 물음에 운학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럴 일이 있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구려.”
“아니오. 말하고 말고야 자신의 뜻이지. 미안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독을 했는지는 말해 줄 수가 없소.”
“그러면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시오.”
“뭐를?”
“또다시 해독이 가능한 거요?”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말했다.
“언제든지.”
“음… 당분간 내가 적 소협과 함께 있겠소. 그들이 조만간 다시 올 거요.”
“무당십걸의 호위를 받는다니 든든하군.”
“그런 이유로 잠시 이곳에서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운학이 혁강운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하자 그가 예를 받으면서 말했다.
“오히려 이쪽에서 바랄 일입니다.”
혁강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적운상을 힐끗 봤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사내였다. 그를 적으로 돌리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몸이 조금 더 좋아지자 적운상은 임진숭과 싸웠던 곳으로 가기 위해 통천문을 나섰다. 그러자 자연히 운학도 따라 나섰다.
원덕인 말로는 여고수가 나타나서 임진숭을 채갔다고 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듣고 있던 적운상은 그녀가 던졌다던 암기가 아직도 남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덕인은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미처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적운상의 말을 듣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여고수가 임진숭을 채가고 암기를 던졌던 집에 도착하자 적운상이 원덕인한테 들은 아름드리나무를 찾았다.
“저 나무인가 보군.”
적운상이 그쪽으로 다가가서 나무를 살폈다. 놀랍게도 나무 중간이 움푹 파여 있고 그 안에는 손가락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암기가 뚫고 들어간 자리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공이 절륜하군요. 이 정도의 나무를 뚫다니.”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운학이 말하며 담장을 살폈다. 적운상도 그곳을 살펴보니 거기에 젓가락처럼 보이는 것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젓가락이 아니라 비녀였다.
“정말 놀랍군. 기껏 비녀로 나무를 뚫고 벽에 반 이상이나 박히게 했다니, 정말 여자가 맞소? 내가 알기로 여고수들 중에 이 정도로 대단한 내공을 지닌 여자는…….”
운학이 기억을 더듬으며 알고 있는 여인들을 모두 떠올려봤다. 몇몇 여인들이 떠올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모두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방에 살고 있었고, 금마도와 연관이 될 이유가 없는 여인들이었다.
“무림에는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많다고들 하지.”
“그도 그렇구려.”
적운상이 비녀를 뽑아 들고 살펴봤다. 흔하게 볼 수 없는 비녀였다. 비녀에 새겨진 무늬에서 이름 있는 장인의 솜씨가 느껴졌다. 나무 앞을 살펴보니 비녀에 달려 있던 나비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우선 이게 단서가 되겠군.”
“비녀 하나로 어찌 찾는단 말이오? 그게 꼭 이곳에서 산 거라고 할 수도 없지 않소?”
“맞소. 하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짐작 가는 곳이 있소.”
“그곳이 어디요?”
“음… 몸이 찌뿌듯하군.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좀 낫겠는데.”
운학이 술을 사면 이야기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훗!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괜찮겠소?”
“죽을 정도는 아니오. 술 한잔 먹는다고 어떻게 되지는 않소.”
“그럼 갑시다. 내가 한잔 대접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