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9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0화
90화. 밝혀지는 과거 (3)
“그런데 아버지는 여기에 웬일이에요? 초 사형도 오고.”
“우리는 뭘 좀 알아보러 왔다.”
“뭐를요?”
도자명이 묻는 말에 도지림이 초사영과 함께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러자 도자명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혁만곤이라는 사람이 통천문의 문주와 뭔가 관계가 있다는 거군요.”
“그래. 내 기억이 맞는다면 혁만곤은 지금의 문주인 혁세명의 할아버지가 맞을 게다.”
“에? 그게 정말이에요?”
“자세한 건 만나서 확인해 봐야 안다.”
“훗! 초 사형이 그동안 애를 많이 썼군요.”
적운상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초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같이 열심히 하기로 했잖아. 대사형은 네가 이리로 온 이후로 조사묘 앞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수련하고 있어.”
“그렇군요.”
적운상이 만족한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그가 살짝 미소를 짓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환하게 웃는 일은 흔하지가 않았다. 누구라도 반할 것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마침 잘됐습니다. 저는 일이 있어 여기서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상관보의 일은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돌아갈 때 산삼을 가지고 가요. 그리고 비급에 관한 건 내가 물어볼 테니까 잠시 기다리세요.”
“통천문에서 쉽게 말해줄까?”
“지금 상황에서는 목숨을 달라고 해도 줄 겁니다.”
“뭐?”
초사영과 도지림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적운상을 봤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처음에 초사영과 도지림은 어떻게 통천문에 그걸 물어보고 확인을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부딪치고 보자는 생각에 문을 두드렸다.
예상했던 대로 통천문에서는 두 사람을 문전박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형산파에서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대우가 달라졌다.
극빈을 맞아들이듯이 태도가 바뀐 것이다. 통천문은 몇 달 전만 해도 두 사람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세가 강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왜 그러나 이유를 몰랐는데 그게 다 적운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있어서 깊은 이야기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잠시만 기다리면…….”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비 하나가 달려와서 다급하니 적운상을 찾았다.
“적 공자님, 문주님께서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지금 대공자님께서 찾으십니다.”
“알았소. 잠깐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금방 갔다가 오겠습니다.”
“알았다.”
적운상은 곧바로 혁세명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 밖에는 서열에 오른 이들이 잔뜩 몰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적운상을 보고 분분히 길을 내줬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혁강운과 혁무한, 혁소소는 물론이고 사노가 모두 와 있었다.
“아! 왔구려. 이리 오시오.”
혁강운이 반갑게 적운상을 맞았다.
“아버님, 이 사람이 적운상입니다.”
“음…….”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혁세명이 지그시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거침없이 그의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완맥을 짚었다.
그러자 혁세명이 몸을 한 번 흠칫하면서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는 방금 적운상이 완맥을 잡고 뇌기를 흘려보내자 내기로 그에 맞서려고 했다. 몸 안에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오니 당연히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적운상의 뇌기는 그의 내기를 뚫고 너무나 쉽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이나 여기저기 헤집고 다녔다.
적운상이 그러고 있자 모두가 조용히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보통 이렇게 많은 고수들의 시선을 받으면 조금은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제가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장담은 못하지만 일단 독은 없습니다. 그리고 왼쪽 팔이 당분간 불편할 겁니다. 그건 사자왕 때문에 그런 거니 그 사람한테 따지시면 됩니다.”
적운상이 잡고 있던 완맥을 놓으면서 무표정하니 말했다. 그러자 혁세명이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특이하군. 사문이 어딘가?”
“형산파입니다.”
순간 혁세명이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런가…….”
“이런 상황에서 묻는 게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혁세명이 적운상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강운이와 무한이는 남고 모두 자리를 비켜주시오.”
그의 말에 두 사람만 남고 모두 방을 나갔다. 그러자 혁세명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뭔가?”
“금해청이란 분에 관한 겁니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분은 사문의 어르신이었습니다.”
“음…….”
짐작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모두를 나가게 한 것이었다.
“알고 있네.”
혁세명은 그 말만 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갈등하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적운상은 그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다 혁세명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자네가 찾아와 내 목숨을 구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하늘의 뜻인 것 같군. 어쩌면 내가 그런 몹쓸 독에 중독된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어.”
“아버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버님이 왜…….”
혁세명이 손을 들어 혁강운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그와 혁무한을 봤다.
“너희들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네, 아버님.”
“음… 그분은… 그분은… 하아… 당시에는 본문의 세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 때였다. 고수라고 해봐야 할아버님 한 분뿐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형산파에서 금해청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혁세명의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 * *
금해청은 당시에 명옥심법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든 복원해서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예전에 우연찮게 알게 되어 친분이 있던 혁만곤을 찾아갔다. 혁만곤은 금해청보다 훨씬 고수였기 때문에 그와 의논을 하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금해청이 천응방의 백구환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검의 날을 세우고자 들렀다가 백구환과 뜻이 맞아 며칠을 지내면서 친분을 쌓았었다.
그 이후 금해청은 혁만곤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혁만곤은 금해청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마치 친우처럼 대해줬다. 당연히 금해청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명옥심법의 복원을 위해 밤낮으로 연구를 했다. 그러느라 혁만곤은 문파의 일을 등한시하며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하지만 그 아들에게는 한 문파를 이끌 재량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세가 약했던 문파는 갈수록 엉망이 되어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혁만곤은 금해청과 함께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혁만곤이 그만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 명옥심법을 연구하다가 너무 욕심이 앞섰던 것이 문제였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무리하게 연공을 하다가 그리된 것이다.
금해청이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혁만곤은 그렇게 죽고 말았다. 금해청은 크게 자책했다. 자신으로 인해 혁만곤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모든 것을 잊고 망연자실해 있던 금해청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혁만곤이 죽기 전에 부탁했던 그의 아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이미 죽고, 손자인 혁세명만 남아 있었다. 문파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세력이 약해져 있었다.
금해청은 그때부터 통천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혁세명을 문주로 앉히고 반대세력에게는 가차 없이 손을 썼다. 이미 명옥심법을 팔 성 가까이 연공한 그였다. 그간 혁만곤과 함께 연구한 성과였다.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혁세명이 문주가 되자 혁만곤과 농담으로 주고받던 방법을 실행했다. 실력에 따라 서열을 매기고, 그만큼의 권력을 줬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비무대회를 열어 서열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러니 서열을 뺏기지 않으려면 자연히 강해져야만 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금해청의 그런 노력으로 통천문은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제야 금해청은 혁만곤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금해청은 혁세명에게 비급을 하나 남기고 떠났다. 명옥심법이었다.
명옥심법이 비록 형산파의 독문무공이기는 했지만 혁만곤이 죽음으로 이뤄낸 무공이기도 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거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금해청은 형산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명옥심법을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다 그마저도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증세가 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두고 치료를 한다면 충분히 완쾌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했음인지 그의 사형제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명옥심법을 내놓으라고 강요를 했다.
아직 불완전한 명옥심법을 그들에게 줄 수는 없었다. 혁만곤이 죽었고, 금해청도 주화입마에 빠진 상태였다. 사형제들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그것을 사형제들은 금해청 혼자 비급을 차지하려 한다고 오해하고 결국에는 서로 칼질을 하게 됐다. 사형제들에게 차마 제대로 칼을 휘두르지 못했던 금해청은 크게 부상을 입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베었다. 그렇게 모두를 쓰러트렸지만 그도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하늘이 너무나 무심했다.
* * *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던 혁세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나중에 형산파에 갔을 때는 이미 그분이 그렇게 된 이후였다. 그리고 형산파는 이미 문파라고 하기에도 초라할 정도로 몰락해 있었지. 하지만 나는 그분을 그렇게 만든 형산파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옥심법을 전해줄 수 있었음에도 그냥 돌아왔다.”
“음…….”
적운상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형산파에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의외였다.
“무한아.”
“네, 아버님.”
“십 년 동안 너를 억지로 폐관수련시켰던 것은… 그래서였다. 네가 익힌 내공심법은 본문의 초극심법(超極心法)이 아니다.”
“그럼…….”
혁무한도 자신이 익힌 내공심법이 초극심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형산파의 내공심법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그저 드러내놓지 못할 경로로 입수한 내공심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무림에서는 우연찮게 절세의 무공비급을 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명성이 높고 세가 강한 문파의 무공이라면 문제가 크다. 드러내놓고 연공을 하다가 들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심한 경우 무공을 폐지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둑으로 몰려 일가가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몰래 익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혁무한도 자신이 익히는 무공이 그런 거라 여겼었다.
“그래. 네가 익힌 것은 형산파의 명옥심법이다. 네 재능이 강운이보다 뛰어난 것을 보니 욕심이 생겼었지. 할아버님과 그분이 완성하지 못한 명옥심법을 네가 완성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명옥심법을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드러내놓고 수련시킬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본문의 무공이 아니라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힌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 그래서 폐관수련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혁무한은 이 같은 사정을 처음 들었다. 그동안 그저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기에 혁세명이 그렇게 지독하게 수련을 시켰다고만 생각했었다.
“어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이제 명옥심법을 돌려주겠네.”
“그 명옥심법을 찾기 위해 제 사숙조님 두 분은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것이 우리 대에까지 이어졌죠.”
“그래도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네. 내가 명옥심법을 돌려주는 건 어디까지나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일세.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절대로 명옥심법을 내주지 않았을 걸세.”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일 수도 있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혁무한은 약속대로 오 년간 형산파에서 머물게 하겠습니다.”
적운상이 하는 말에 혁세명은 물론이고 혁강운과 혁무한이 그를 쳐다봤다.
“못 들은 건가? 허우생과의 비무조건이 너를 오 년간 형산파의 식객으로 보낸다는 거였다.”
“뭐?”
“음… 그런 일이 있었더냐?”
“잘된 일이잖아. 와서 지내면서 함께 명옥심법을 연구하는 게 어때? 서린이도 그걸 바랄 테고.”
“…….”
혁무한이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마지막에 은서린이 원한다는 말, 오로지 그 말만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게 무슨 뜻이냐?”
“별뜻 없어. 그저 네가 그런 짓을 했는데도 서린이가 너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게… 정말이냐?”
“모르지. 사람 마음이야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
적운상은 은서린의 사형이었다. 당연히 오랜 시간 함께했다. 그런 적운상이 저리 말한다면 그 말대로일 가능성이 컸다.
“아버님, 보내주십시오. 비록 모르는 일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본문의 장로가 한 약속입니다. 게다가 아버님도 명옥심법의 완성을 보고 싶어서 저를 그렇게 수련시킨 거잖습니까? 가서 아버님의 뜻을 이루고 오겠습니다.”
혁무한이 눈을 빛내면서 혁세명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자 혁세명이 말없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흠… 생각이 딴 데 가 있구나.”
“컥!”
단번에 꿰뚫어 보는 혁세명의 말에 혁무한은 말문이 탁 막혔다.
“그 서린이라는 아이가 누구더냐? 한번 보고 싶구나.”
“그녀는…….”
“마침 이곳에 와 있습니다. 제가 가서 불러오겠습니다.”
혁강운이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은서린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은서린을 본 혁세명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너… 네, 네가 어떻게…….”
“설아가 아닙니다, 아버님. 그녀는 은서린입니다.”
혁무한의 말에 놀란 눈을 하고 있던 혁세명이 그를 봤다.
“설아가 아니다… 그간 괴롭던 마음을 드디어 정리했음이더냐? 하지만 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싫든 좋든 계속 이설아가 생각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혁무한은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좋겠지… 그래. 네 뜻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혁무한이 크게 기뻐하면서 은서린을 봤다. 은서린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혁무한이 저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