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8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87화
87화. 재대결 (3)
“크하하하! 그렇단 말이지?”
길가에 허름하게 천막을 쳐놓고 음식을 파는 곳에 앉아서 밥을 먹던 사자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맞은편에는 놀랍게도 도자명과 은서린이 앉아 있었다.
혁무한은 은서린이 적운상에게 돌아갔을 거라 여겨 빠르게 장사로 향했었다. 그러는 바람에 은서린과 도자명을 앞질러 가버렸다.
사자왕은 객잔에서 혁무한을 놓친 이후로 길을 잘못 잡아 거꾸로 올라왔다. 그러다 은서린과 도자명을 만난 것이다.
사자왕은 혁무한이 은서린을 감싸던 것을 기억해 내고 이렇게 함께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은서린이나 도자명 모두 사자왕을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며칠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의외로 순박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자기 생각이 강해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가 혁무한보다는 적운상을 더 찾는다는 것을 알고 은서린은 깜짝 놀랐다. 다행이라면 사자왕은 적운상이 형산파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자명도 사자왕이 찾는 적운상이 설마 그가 아는 적운상일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추 아저씨를 모두가 그렇게 대단하게 본 거군요.”
사자왕의 이름은 추노이였다. 웬만해서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 그가 도자명에게는 스스럼없이 부르게 하고 있었다.
도자명은 잘난 체하며 조금은 냉소적이기는 했지만, 은근히 사람의 비위를 맞출 줄 알았다. 도지림의 영향인지 상재가 뛰어나서 이해득실을 잘 따졌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선이 확실했다. 혁무한보다 무공이 뛰어나고 더구나 그를 잡으려고 하는 사자왕은 도자명에게 있어서 적이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인질로 있을 것이 아니라 친하게 사귀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 대단한 것도 없다. 다른 놈들이 모자란 거지.”
“다 먹었으면 이제 가요.”
은서린이 하는 말에 사자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왕은 은서린을 어리게만 보고 귀여워했다. 도자명과 동갑이라고 해도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며 절대로 믿지를 않았다.
“그러자꾸나.”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응? 아니다. 내가 어떻게 너희들에게 얻어먹겠냐? 내가 내마.”
“하하. 알겠습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추 아저씨.”
“녀석. 중원 놈이라 그런지 예의가 바르구나. 가자.”
“네.”
도자명과 은서린은 사자왕과 함께 장사로 들어섰다. 넓은 대로를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은서린이 사자왕에게 말했다.
“저는 상관보로 먼저 가야 해요. 사형하고 사저가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그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적운상에게 사자왕의 존재를 먼저 알려야만 했다.
“그래? 그러면 같이 가자.”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혁 공자한테 간다고 했잖아요. 통천문은 그리 멀지 않으니 그리로 먼저 가세요. 도 사형이 안내해 줄 거예요.”
“아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이렇게 헤어지기가 아쉽구나. 사형과 사저가 걱정한다니 내가 가서 잘 이야기하마.”
잘 이야기가 안 되니까 이러는 건데 저리 막무가내는 방법이 없었다.
“그, 그럼 통천문으로 먼저 가요. 사형하고 사저는 조금 늦게 봐도 돼요.”
“아니다.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 어서 그리로 가…….”
“안 된다니까요!”
난처해진 은서린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사자왕이 멍하니 은서린을 쳐다봤다. 은서린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려서 그런지 떼를 쓰는군.’
사자왕이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사형하고 사저한테 혼날까 봐 그러지? 나도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지. 하하하. 그래. 네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리로 가자. 내가 꼭 같이 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끙. 그게 아닌데…….”
은서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자왕이 뭐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결국 세 사람은 통천문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은서린은 어차피 다시 한 번 혁무한을 만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참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 * *
초사영은 장사에 도착하자 당장에 도지림부터 찾아갔다. 도지림이 하는 포목점은 장사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초사영이 포목점 안으로 들어가자 둘둘 말려 있는 천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한 노인이 푸른색의 천을 펼쳐서 살피고 있었다.
“사숙조님.”
“응? 너는 사영이가 아니냐? 여긴 어쩐 일이냐?”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흠, 장문사질이 보낸 건 아니고?”
“아닙니다.”
“일단 이리 와서 앉아라. 차라도 한 잔 하자.”
“네.”
도지림이 좁은 가게 안의 한쪽에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차를 가지고 나왔다.
“형산파는 요즘 어떠냐?”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쯔쯔… 내가 한팔 거들어야 하는데 안타깝구나. 일이 이렇게 돼서 면목이 없다.”
“아닙니다. 사숙조님. 그간 사숙조님의 도움이 컸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허허.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고맙구나.”
도지림은 성격은 구혁상과는 상당히 달랐다. 요즘 와서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구혁상은 꼬장꼬장하니 깐깐한 성격이었다. 그에 비해 도지림은 성격이 유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해줬다.
“자명이는 어디 갔습니까?”
“후우… 천을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며칠째 연락이 없구나. 어디 가서 엉뚱한 짓이나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총명하니까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잠시 놀다 오는 거겠죠.”
“그래서 일부러 찾지 않고 있다.”
도지림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도 재정이 많이 어려우냐? 그때 정위가 와서 말은 안했지만 그런 것 같더구나.”
“네? 아! 아닙니다 사숙조님. 그러고 보니 사숙조님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군요. 구 사숙조님이 돌아왔습니다.”
“뭐? 사형이?”
“네. 어렸을 때 데려갔던 운상이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막정위가 도자명을 데리고 와서 두고 간 이후로는 형산파와 전혀 연락이 없었다. 호왕문이 쳐들어왔을 때도 도지림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알리지 않았었다.
“그동안 너무나 바빴었습니다. 연락이 뜸했던 걸 용서해주십시오.”
“아니다. 사형이 돌아왔다니 다행이구나. 음… 언제 다시 간다더냐?”
“아닙니다. 구 사숙조님은 이제 눌러앉을 겁니다.”
“뭐?”
도지림은 초사영의 말이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남아 있는 무공만으로 어떻게든 고수가 되어보겠다고 평생을 떠돌아다니던 구혁상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눌러앉는다니, 설마 정말 고수가 되었단 말인가?
도지림의 의아해하는 얼굴을 보면서 초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줬다.
그걸 듣고 있는 도지림은 놀라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초사영의 말대로라면 형산파가 크게 웅지를 펴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이런 곳에서 돈 몇 푼에 연연하고 있었으니, 한심함에 자책감마저 들었다.
“허허… 그랬구나. 그랬어. 사형이 언젠가는 해낼 줄 알았다. 허허… 그리 해낼 줄 알았어.”
크게 기뻐하며 무릎을 몇 번이나 치던 도지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오랜 세월의 한이 이제야 풀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업신여김과 서러움이 이제야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가슴이 뭉클하고 피가 끓었다.
“사숙조님…….”
초사영은 도지림의 눈물을 보면서 조금 숙연해졌다. 도지림은 반평생을 형산파가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며 살아왔다.
임옥군도 그랬고, 구혁상도 그랬었다. 형산파의 문인이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이제 그 희망이 보인다고 하니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했다.
“허허. 내가 못 볼 꼴을 보였구나.”
“아닙니다. 사숙조님.”
마음이 좀 진정되자 도지림이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물었다.
“본 문이 그러면 상당히 바쁠 텐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냐?”
“그게 실은…….”
초사영은 실전된 무공을 찾기 위해 그간 해온 일들을 말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찾았던 그 작은 책자의 필사본을 도지림에게 보여줬다. 그걸 받아서 꼼꼼히 읽어보던 도지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랬었어. 내 염원을 네가 이어가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실 사형과 나도 예전에 너처럼 실전된 무공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복원시키려고 했었다.”
그건 구혁상에게 들어서 초사영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왜 장사에 포목점을 낸 줄 아느냐?”
지금까지 그런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장사를 하기에는 사람들이 많은 성도가 더 좋기에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초사영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그럼 사숙조님도 금해청 그분의 행적을 찾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는 겁니까?”
“그래. 맞다. 당시에 사형은 중도에 포기를 하고 남아 있는 무공만으로 어떻게든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냥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실마리는 금해청 사숙조님에게 있었어. 그래서 그분에 대한 것을 이곳저곳 묻고 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됐단다. 후후.”
그때를 회상하며 도지림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분이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후부터가 막막했어. 그분은 한 세대 전의 사람이라 찾을 단서가 거의 없었지.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있는 돈을 모두 모아서 여기에 포목점을 낸 게야. 그분의 행적을 꾸준히 찾아다니는 한편, 찾아오는 손님들에게서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게지. 게다가 어려운 형산파의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러셨군요. 저는 여태까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후. 말해봐야 뭐 좋을 게 있겠느냐? 지금까지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아직까지 그분의 행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뜻밖에도 그러한 것을 찾아냈을 줄이야. 정녕 하늘의 뜻이로구나.”
도지림의 말을 들으면서 초사영은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숙조님, 그럼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뭐든지 물어보아라. 아는 건 모두 이야기해 주마.”
“여기 책자에 보면 그분과 함께 지냈던 사람의 이름이 만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은 아마 적씨 아니면 혁씨일 겁니다. 짐작건대 무공도 아주 뛰어났을 거라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명옥심법에 관한 것을 물으러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음… 만곤이라… 적만곤… 혁만곤…….”
도지림이 초사영이 말한 이름을 계속 입 안에서 되뇌었다. 언뜻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들어본 이름입니까?”
“글쎄다. 기억이 날 듯하면서도 안 나는구나. 적씨 중에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혁 씨라면 통천문이 있지. 통천문의 문주가 혁씨지 않더냐? 아! 그렇구나!”
도지림이 그제야 뭔가가 생각났는지 손으로 무릎을 탁 내려쳤다.
“뭔가 생각난 게 있으십니까?”
“물론이다. 그 사람의 성은 적씨가 아니라 혁씨가 분명하다. 문을 닫고 같이 가보자꾸나. 너도 도와라.”
도지림은 마음이 다급한지 바쁘게 움직였다. 초사영이 옆에서 도우면서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통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