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8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84화
84화. 단서 (3)
“후우…….”
초사영이 서고를 나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구혁상에게 금해청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다시 서고로 돌아와서 남은 책들을 모두 훑어보기 시작한 것이 벌써 한 달째였다.
하지만 아무리 뒤적여도 명옥심법이나 금해청에 관한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초사영은 서고에서 단서를 찾지 못하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막정위, 적운상과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며 잠시 전각 앞의 계단에 앉아 있는데 박노엽이 다가왔다.
“사형.”
“왔구나.”
“뭐 좀 찾았습니까?”
“아니, 전혀. 그래도 뭔가 하나쯤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없어.”
“음…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디?”
“만약에 저한테 비급이 있고, 그것을 숨겨야 한다면, 이곳까지 와서 숨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늘 확인할 수 있으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기려고 할 겁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초사영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
“네. 혹시 모르니까 숙소도 한번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금해청이라는 분의 행적을 조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하지만 한 세대 전의 인물이야. 이미 죽은 사람이고.”
“실마리가 있잖습니까.”
“누구? 구 사숙조님?”
“네. 저도 아직 뵙지는 못했지만 그분 말고도 장사에서 포목점을 한다는 도 사숙조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일단 숙소부터 찾아봐야겠군. 훗! 항상 도움을 받는구나.”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일이잖습니까? 나중에 혹시라도 단서를 찾게 되면 알려주십시오.”
“물론이지.”
초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사부인 임옥군의 처소부터 시작해서 모든 전각을 뒤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그러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칠 일이 지났을 때였다. 초사영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냈다. 박노엽의 말대로였다. 지금은 비워두고 있지만 예전에는 숙소로 사용되었던 곳에서 초사영은 작은 책자 하나를 찾아냈다.
한쪽 벽 구석의 허물어진 틈 사이에 책은 끼워져 있었다. 만약 이곳의 관리가 좀 더 잘되었거나, 이만큼의 세월이 흐르지 않았다면 벽이 저렇게 부서지지 않았을 테고, 그럼 책자를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초사영은 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를 보니 오래되어 색이 바래있었고, 벽 안에 오랜 세월 동안 있어서 습기를 먹어 눅눅했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그만 책이 조금 찢어지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그런 생각을 하던 초사영은 문득 박노엽이 생각났다. 그는 예전에 학사였다. 그러니 서책을 많이 다뤄봤을 터. 분명 이 책도 손상시키지 않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 거라 여겼다.
초사영은 그길로 가서 박노엽을 불러왔다. 박노엽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서 그 책자를 보고는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음… 꽤 오래된 책이군요. 적어도 한 세대 이전의 것입니다.”
“그렇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일단 기다리십시오. 문방필우를 가져오겠습니다.”
박노엽이 후다닥 달려 나가 책의 내용을 옮겨 적을 것을 가져왔다. 혹시라도 이 책이 무공비급이라면 내용을 확인해서 바로 옮기는 것이 좋았다.
“책을 펼쳐보지 않고 저를 먼저 부른 것은 잘하신 겁니다 사형. 이런 상태라면 한 번밖에 펼쳐볼 수 없습니다.”
“훗! 바로 네 생각이 났었다.”
“제가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부를 테니 사형이 받아 적으십시오.”
“그러지.”
초사영이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았다. 그리고 붓으로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그러자 박노엽이 조심조심 첫 장을 걷어냈다. 조심을 한다고 했는데도 종이가 눅눅해서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음…….”
그리 두껍지도 않았고, 크지도 않은 책자였지만 안의 내용을 확인하는 데 무려 한나절이나 걸렸다.
“후우… 여기가 마지막이군요.”
“음…….”
초사영이 박노엽이 부르는 것을 받아 적은 것을 봤다. 그것은 무공비급이 아니라 금해청과 가까웠던 누군가의 일기였다. 박노엽이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확인을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글자가 번지거나 앞뒤로 종이가 눌어붙어 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금해청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니 한나절을 그렇게 노력한 성과는 얻은 셈이었다.
“이 사람은 금해청, 그분에게 자격지심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구 사숙조님이 전에 말하기를 그분은 재능이 너무나 뛰어나서 그로 인해 죽었다고 했어.”
“어쨌든 단서를 얻었군요. 대충 내용을 이어보면 그분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조사묘에서 벌을 받고 온 이후부터입니다. 거기에서 명옥심법을 찾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기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내가 가서 사부님에게 허락을 받아 올게. 너도 같이 가자.”
“네.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저도 끝까지 돕겠습니다.”
“많이 바쁠 텐데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사형. 저도 형산파 사람입니다.”
“하하하. 알았다. 대신에 나중에 내가 좋은 술을 하나 구해다 주마.”
“하하하. 기대하겠습니다.”
* * *
초사영이 사부인 임옥군을 찾아가니 그는 방에서 사제인 나한중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부님.”
“사영이구나.”
“네.”
임옥군은 형세가 불리한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반면에 나한중은 얼굴에 여유가 있었다.
초사영이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나한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웬일이냐? 사형에게 볼일이 있는 거냐?”
“네.”
“음… 무슨 일이냐?”
임옥군이 여전히 바둑판에 시선을 꽂은 채 물었다.
“노엽이와 함께 조사묘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거기는 무슨 일로?”
“실전된 본 문의 무공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그곳에 있습니다.”
“아직도 찾고 있었더냐?”
“네. 끝까지 해볼 참입니다.”
“소용없다. 예전에 구 사숙과 도 사숙도 너처럼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만 낭비하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서를 찾았는데 이대로 포기하기는 싫습니다.”
“하하하. 사형, 허락해 주십시오.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럽니까? 저렇게 형산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잖습니까?
“음… 넌 조용히 있어.”
“허 참, 조금 있다가 오는 게 좋겠다. 사형이 무려 두 판이나 지는 바람에 심기가 좋지 않거든.”
나한중의 말에 초사영도 바둑판을 살폈다. 나한중이 많이 유리했지만 아직 승부가 결정 난 것은 아니었다.
“어? 여기 이거 축 아닌가요?”
“응?”
초사영의 말에 임옥군과 나한중이 동시에 그가 가리킨 곳을 봤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축이란 것은 몰아가기만 하면 결국에는 죽는 돌이다. 죽는 돌을 앞쪽에서 이어줄 수 있는 돌이 없다면 살릴 방법이 없다.
“옳지. 그렇구나.”
딱!
임옥군이 곧바로 그곳에 돌을 놓았다. 그러자 나한중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거 훈수는 좀 아니지 않습니까? 사형.”
“시끄러워. 그럼 너도 사영이한테 훈수를 해달라고 하든가.”
“끙.”
“아, 사영이 너 방금 뭐라고 했느냐? 조사묘에 들어가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사부님.”
“그래. 원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라. 대신에 그곳에 있는 것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라.”
“네. 사부님.”
훈수 한 번 두고 곧바로 허락을 얻은 초사영은 나한중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며 방을 나왔다. 그리고 박노엽과 함께 곧바로 형산파 뒤쪽에 있는 조사묘로 향했다.
“대사형.”
“저도 왔습니다.”
“그래. 어서 와.”
조사묘에서 아직도 수련 중이던 막정위가 두 사람을 반겼다. 초사영과 박노엽은 찾아낸 책자 이야기를 막정위에게 했다. 그러자 막정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렇지. 조사묘는 전대의 장문인들이 말년을 보낸 곳이니까 뭔가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신경 쓰지 마.”
“네. 대사형.”
그때부터 초사영과 박노엽은 폭포 뒤의 조사묘로 들어가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조사묘는 커다란 동굴로 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좀 더 깊숙한 곳에는 제단과 명패들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십여 일을 넘게 지내며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초 사형, 아무래도 틀린 것 같습니다.”
“음… 하긴 금해청, 그분이 명옥심법을 찾아내고 없애버렸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곳은 조사묘입니다. 역대의 장문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인데 함부로 뭔가를 훼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 우리가 못 찾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사실 여기서 명옥심법을 얻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책자에는 단지 여기에 있다가 온 이후에 강해졌다고 되어 있을 뿐입니다. 정확히는 그 책을 쓴 사람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다른 단서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슨 단서?”
“그 책에 보면 금해청이란 분이 명옥심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장사에 갔다 왔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책을 쓴 사람도 거기에 갔다가 그분과 함께 누군가를 만나고 왔다고 나와 있으니 그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런 내용이 있었나?”
“네. 여기 이 부분입니다.”
박노엽이 그때 옮겨 적은 책자를 펼쳐 보였다.
“맞군. 이름은 만곤인데 성이 없잖아. 사람을 찾으려면 성을 꼭 알아야 하는데.”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자가 번져서 알아보기가 힘들어서 그냥 이름만 불렀던 겁니다. 성은 혁(赫)씨 아니면 적(赤)씨일 겁니다.”
“음, 그럼 혁만곤 아니면 적만곤이란 사람을 찾으면 되겠군. 하지만 어떻게 찾지? 무작정 찾아다니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범위를 좁혀야죠. 금해청이란 분이 명옥심법에 대해서 의논을 할 정도면 그 사람의 무공도 상당히 뛰어났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 혁씨나 적씨 성을 가진 이름 있는 무가(武家)들부터 찾는 겁니다.”
“그렇구나. 그럼 나는 당장에 장사로 갈 테니까, 너는 여기서 며칠 더 머물면서 조금 더 찾아봐.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훗! 네 도움을 많이 받는구나. 네가 사제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별 말을 다 합니다.”
박노엽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