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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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8화
78화. 부활 (3)
이른 아침.
이은성과 진웅, 백묘묘가 상관보를 찾아왔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적 공자를 만나러 왔다.”
“따라오시지요.”
사내는 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말 없이 적운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저기 있습니다.”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적운상이 아침 수련 중인지 작은 정원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그런 적운상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다가갔다.
“적 공…….”
백묘묘가 적운상을 부르려는데 이은성이 그녀를 제지했다. 백묘묘가 이은성을 봤다. 이은성은 굳은 얼굴로 적운상의 동작에 눈을 꽂고 있었다.
이에 백묘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은성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왜 그래요? 오라버니.”
“잠시 조용히 있어.”
백묘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진웅을 보니 그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쨌든 이은성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백묘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와 마찬가지로 적운상이 수련하는 것을 지켜봤다.
훙훙! 쉬쉬쉿!
적운상은 그들이 온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칼만 휘둘렀다. 그는 두 초식에서 많게는 서너 초식을 반복해서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처음에 펼치는 초식은 똑같았다.
‘도대체 뭘 수련하는 거지? 초식이 안 이어지나?’
백묘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초식과 초식 간의 연결이 더없이 매끄러웠다.
“오늘도 저 수련을 하고 있군요.”
세 사람을 안내한 상관보의 사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언제부터 저런 수련을 했지?”
이은성의 물음에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며칠 된 것 같습니다. 음… 정확히는 사노와 비무를 한 이후부터군요. 그날 이후로 적 공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자정까지 저렇게 칼을 휘두릅니다. 사실 처음 삼사일 정도는 상관보의 무사들이 여기에 진을 쳤었습니다.”
“왜요?”
백묘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노 중, 삼노인 허우생을 꺾었잖습니까? 그런 사람이 여기서 수련을 하고 있으니 자연히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게지요. 하지만 적 공자가 저렇게 하루 종일 칼만 휘두르니 말 한마디 나누기가 힘들었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이렇게 지켜보는 것이 다였죠. 다행히 적 공자는 옆에서 보든 말든 상관을 하지 않더군요.”
“지금은 한 명도 없네요.”
“하하하. 적 공자가 저 단순한 초식만 계속 반복연습을 하니 모두들 지겨웠던 게죠.”
“하긴…….”
잠깐 지켜봐도 대단한 것이 없었다. 누구나 연습하는 기초수련법이었고, 초식도 서너 가지만 계속 반복하니 특별히 볼 게 없었다. 하지만 이은성은 아니었다. 이은성은 시종일관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음…….”
“왜 그러나?”
진웅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은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은성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건 혁무한에게 맞설 초식이야.”
“에?”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진웅과 백묘묘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저 단순한 동작으로 어떻게 그를 이긴다는 걸까?
“그때 그와 내가 혁무한에게 당한 초식은 같은 초식이었어. 나는 내 무공이 약해서 그렇다고 여겨 지난 며칠간 이를 악물고 수련을 했지. 하지만 그는 다른 방식으로 길을 찾는 것 같군. 하아… 그를 보니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오라버니, 자책하지 마세요. 오라버니도 노력했잖아요.”
실제로 그랬다. 이은성은 자는 시간조차도 아까워하며 미친 듯이 수련을 했다. 몸이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무리를 하니, 상처가 도질까 봐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도 이은성은 혁무한을 꺾고 은서린을 구하기 위해 계속 무리를 했었다.
“아니야. 노력은 했지만 방법이 틀렸어.”
이은성이 고개를 저으면서 하는 말이, 백묘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련을 했으면서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걸까?
“적 형.”
이은성이 적운상을 불렀다. 그러자 칼을 휘두르던 적운상이 동작을 멈추고 그를 봤다.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후우… 그러지.”
적운상이 칼을 거두고 다가왔다.
“그에게 맞설 초식을 연습 중이구려.”
이은성의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나 스스로 강해지려고만 했었지 그의 초식에 대응할 초식을 연습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소.”
“아!”
백묘묘는 그제야 이은성이 그만큼 노력을 했음에도 방법이 틀렸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아까 이은성이 본 것은 적운상의 앞에서 싸우고 있는 혁무한이었다. 혁무한이 그때 팔과 다리를 베던 그 초식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적운상은 거기에 맞춰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매번 초식을 펼칠 때마다 첫 번째 초식이 같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만약 이번에 혁무한이 다시 그때 쓴 초식을 쓴다면, 무조건 필패였다. 이은성은 적운상이 수련하는 동작에서 그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짧은 기간에 실력이 갑자기 늘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이은성은 죽자 사자 자신의 실력을 높이려고만 했었다.
그런데 적운상은 오로지 혁무한이 그때 썼던 초식만을 깨려고 했다. 물론 혁무한이 다른 초식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티다가 그 초식을 쓰게 만든다면 적운상의 승리였다.
사실 적운상은 이 같은 수련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는 구혁상을 따라 새외를 돌면서 수도 없이 많은 비무를 했었다. 그러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의 몸에 그렇게 많은 상처가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비무에서 지면 항상 지금과 같이 심상(心象) 수련을 했다. 상대가 썼던 초식을 생각하며 거기에 맞설 초식을 연습했다. 홀로 초식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상대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기면 다시 비무를 했다. 운이 좋아 상대가 그 초식을 쓰면 이겼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졌다. 그러면 다시 그날 당한 초식을 생각하며 심상수련을 했다. 그는 이길 때까지 그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초식 자체에 허점은 있을지 몰라도, 초식과 초식의 연결에는 허점이 전혀 없었다. 하나의 초식 다음에, 어떤 초식이 오든 완벽하고 부드럽게 연결이 되었다.
수많은 고수들이 적운상의 허점을 보고서도 어쩌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변초를 쓰지 못하는 데 일조를 한 것도 사실 그런 수련방식이었다.
초식이 무너지고 초식과 초식 간의 연결에 허점이 생겨야 그것을 메우기 위해 변초를 쓴다. 하지만 그렇지를 않으니 변초를 굳이 연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일로 왔소?”
“은 소저 때문이오. 그 이후로 사람들을 풀어서 계속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소. 그래서 통천문의 혁강운을 만나러 갈까 하오. 그라면 혁무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수도 있소.”
“함께 가자는 말이군.”
“그렇소.”
“그러지. 어차피 더 이상의 수련은 무의미하니까.”
적운상은 이미 그때 혁무한에게 당한 초식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갑시다.”
“사매한테 이야기를 하고 와야 하니까 잠깐 기다리시오.”
“그럼 여기에 있겠소.”
이은성의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양악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 * *
“상처는 좀 어때?”
목에 하얀 천을 칭칭 감고 누워 있는 주양악을 내려다보며 적운상이 물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어요.”
“흉터… 남을 거야.”
“알고 있어요.”
주양악이 미소를 지었다. 적운상은 그런 주양악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몸에 상처를 입고 흉터도 남는다. 하지만 주양악은 무인이기 이전에 여자였다.
비록 목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흉터가 생기면 안 보이려야 안 보일 수가 없었다. 여자한테 그렇게 보이는 흉터가 있다는 건 커다란 오점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 남을 흉터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사형. 사형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멋대로 나서서 그런 걸요.”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바보 같아서 그런 거야. 정말 미안하다.”
“사형…….”
적운상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헤. 하긴, 이런 데 흉터 생기면 나중에 시집가기 힘들겠다.”
“걱정 마. 그것 때문에 너 싫다는 놈이 있으면 내가 손봐줄게. 그래도 싫다고 하면, 나한테 시집와.”
“…….”
주양악이 멍하니 적운상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잠시 누워 있어. 나는 갔다 올 곳이 있어.”
“어디요? 서린이 찾으러 가는 거면 같이 가요.”
주양악이 말하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적운상이 그녀의 머리를 잡고 다시 눕혔다.
“아직 아니니까 쉬고 있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으러 가?”
“그럼 어디 가요?”
“통천문.”
“네? 거긴…….”
“괜찮아. 싸우러 가는 것 아니니까.”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나가려다가 고개를 돌려 주양악을 보며 말했다.
“쉬고 있어. 몰래 따라오면 죽는다.”
“안 가요. 안 가.”
사실 몰래 따라갈 생각이었지만 적운상이 미리 알아채고 저리 말하니 주양악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