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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7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7화

77화. 부활 (2)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상관도백은 새까맣게 그을려서 침대에 눕혀져 있는 적운상을 보고 놀라서 주양악을 쳐다봤다. 그러자 주양악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렇게 많이 울었는데도 주양악은 또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자자, 일단 좀 진정을 하고 이쪽으로 앉아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시오.”

상관도백이 주양악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차를 한잔 따라주고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주양악은 마음이 좀 진정되자 적운상이 벼락을 맞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걸 듣고 ‘설마’ 하고 있던 상관도백은 황당함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

잠시 방 안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뭔 일인가 싶어서 호기심에 뒤따라 들어왔다가 적운상의 상태를 살피던 배 학사였다.

“호오… 아직 살아 있구려.”

“네?”

주양악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호흡은 없지만 맥이 아직 살아 있소이다.”

“그게 무슨 말이죠?”

주양악이 배 학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방금 말한 대로요. 소저. 신기한 일이군. 내 의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사람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오.”

“아!”

너무나 기쁜 마음에 주양악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호흡이 없어서 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희망이 있었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그럼 살 수 있는 건가요? 사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네. 다만… 이 사람의 상태는 마치…….”

배 학사가 확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주양악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상관도백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상태가 어떻다는 거요?”

“마치 번데기 같군요.”

“번데기?”

“그렇습니다.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것처럼, 곰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굳이 말하자면 그런 상태입니다.”

“허!”

상관도백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럼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건가요?”

주양악이 다급하게 묻는 말에 배 학사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건 나도 모르오. 벼락을 맞은 사람은 나도 처음 본다오. 내 지인 중, 의술이 제법인 사람이 있소. 내 그를 소개시켜 주리다. 나 역시도 이 사람이 깨어날지 어떨지 궁금해지는구려.”

“꼭 좀 그래주세요. 그러면 그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어요.”

“허허. 아니오. 소저. 감사를 하려거든 보주님에게 하구려. 내가 악록서원의 학사가 되기까지 보주님의 신세를 많이 졌다오.”

“네. 감사합니다. 보주님.”

주양악이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려고 하자 상관도백이 당황하면서 급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사이에 왜 이러는가? 어서 일어나게. 나중에 적 공자가 일어나면 난리를 칠걸세.”

“흑… 꼭, 꼭 사형을 살려주세요.”

상관도백은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왈칵 눈물을 쏟는 주양악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적운상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물론일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네.”

* * *

 

삼 일이 지났다. 하지만 적운상은 여전히 침상에 누워 있기만 할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양악은 그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사형…….”

적운상을 내려다보는 주양악의 눈에는 애정과 걱정이 가득했다.

“주 소저! 안에 있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양악이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통천문의 삼노가 찾아와서 적 공자를 내놓으라고 난리입니다.”

“네?”

사내의 말에 주양악은 이를 악물었다. 일을 벌인 건 적운상이었다. 형산파에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상관보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내가 가겠어요.”

“하지만…….”

주양악은 적운상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소, 소저… 잠시만…….”

사내가 주양악을 잡으려다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적운상이 누워 있는 침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사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그쪽을 봤지만 적운상은 그대로였다.

“잘 못 들었나? 소저! 같이 갑시다.”

사내가 가고 나자 적운상의 손이 다시 한 번 꿈틀하며 움직였다.

* * *

 

“이곳에 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소이다! 헌데 어째서 막는 거요?”

허우생이 상관도백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상관도백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이곳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비무를 할 수 없소이다.”

“그건 내가 보고 판단할 일이오. 어서 비켜서시오. 비키지 않는다면 상관보에서 그자를 감싸려 한다고 여길 것이오.”

계속 막아선다면 상관보도 적대시하겠다는 뜻이었다. 상관도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적운상에게 투자를 하려는 계획의 이익이 적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통천문과의 거래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적운상을 버려야 했다. 그가 멀쩡하다면 모를까 벼락을 맞고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본능이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통천문을 선택해야 하건만, 오랜 세월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다져진 그의 직감이 적운상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내 비록 상인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내 집안에 들어온 손님을 내친 경우는 한 번도 없소이다. 그런데 허 대협이 내 체면을 전혀 생각해 주지 않는구려.”

“흥! 그나마 보주가 있어서 이렇게 말로 하고 있는 것 아니오! 여기가 상관보만 아니었다면 벌써 쓸어버렸을 것이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허우생의 불같은 성격에 이렇게 말로 한다는 것은 그가 많이 참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형을 찾아왔나요?”

주양악의 말에 언쟁을 하던 허우생과 상관도백이 그녀를 봤다.

“지금 사형은 몸이 안 좋아서 비무를 할 수가 없어요. 며칠 더 기다리시든가 아니면 제가 상대해 드리겠어요.”

“흥! 네까짓 게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요. 하지만 사형이 약속한 책임은 질 수 있겠죠.”

허우생이 사나운 기세를 피워 올리며 노려보는데도 주양악은 물러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았다.

‘계집이 제법이군. 진숭이 놈이 좋아하겠어.’

사노 중 막내인 임진숭은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도 유난히 여자를 좋아했다. 특히 주양악처럼 예쁘면서도 강단 있는 여자를 좋아했다.

“좋다. 그럼 어디 네가 그 책임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나 보자. 나한테서 삼 초식을 버텨낸다면 인정을 해주마.”

“좋아요.”

주양악이 품에서 두 개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허우생도 칼을 뽑아 들었다. 주양악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에 선뜻 덤벼들 수가 없었다. 그걸 눈치 챈 허우생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하느냐? 어서 덤비지 않고?”

“…….”

허우생의 말에도 주양악은 신중했다.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갔다. 그러다 단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가 되자 망설임 없이 치고 들어갔다.

따앙!

“웃!”

혼신을 다한 일격이었건만 어이없이 너무나 간단하게 튕겨져 나왔다. 주양악은 이를 악물고 우측 손에 든 단검으로 허우생의 목을 베어가며 좌측 손에 든 단검으로는 쇠골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허우생이 칼을 교묘하게 돌려 주양악의 양손에 있는 단검을 한쪽으로 몰아붙였다. 주양악은 허우생과 내공의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에 그 일격에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이 초식이 지났다. 이제 마지막 삼 초식이었다.

“흐앗!”

허우생이 소리치며 단검을 밀어붙이던 칼의 방향을 틀어 목을 향해 뻗었다. 그는 굳이 주양악을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목 바로 앞에서 칼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주양악이 마지막 삼 초식인 걸 알고 버티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쓰며 그의 칼을 쳐내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힘을 더 싣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칼이 주양악의 목을 파고들려고 했다. 순간 피가 튀었고, 주양악은 저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그 상황에서는 목이 베였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주양악은 멀쩡했다. 이상함을 느낀 주양악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믿을 수 없게도 적운상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새까맣게 그을려서 침상에 누워 있던 적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몸에서 환하게 빛을 내며 그녀의 목을 파고들던 허우생의 칼을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사… 사형…….”

주양악이 떨리는 목소리로 적운상을 불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늘 한 번씩 돌아버릴 때마다 짓는 바로 그 웃음이었다.

파직! 파지직!

칼을 잡고 있던 적운상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다가 뇌기에 의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네, 네놈…….”

허우생이 놀란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는 방금 적운상이 어떻게 끼어들었는지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다.

‘도대체…….’

적운상이 칼을 놓자 허우생이 두어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적운상이 칼에 베인 자신의 손바닥을 봤다.

파지지지직!

순간 적운상의 손바닥에서 뇌기가 일며 살이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적운상이 뇌기로 손바닥의 상처를 지져버린 것이다.

적운상은 손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 하더니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허우생을 봤다.

“음…….”

허우생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적운상은 전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황금색으로 일렁이는 그의 눈은 감히 마주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더구나 몸에서 쉬지 않고 새어나오는 뇌기로 인해 빠지직거리는 소리가 자꾸 신경을 긁어댔다. 무엇보다 기세가 달랐다.

전에 봤을 때도 묘한 박력이 느껴지던 적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몇 배에 달하는 기세가 느껴졌다.

허우생은 칼을 잡고 있는 손에 촉촉하게 땀이 배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단순한 긴장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으로 인한 극도의 긴장이었다.

허우생은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한 번이었다. 단 한 번의 칼질로 승부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가 지금까지 수련해 온 파옥도법(破屋刀法)의 절초로 승부를 결정지으리라 마음먹었다. 그거면 눈앞에 있는 이 괴물 같은 놈을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파직! 파직!

적운상의 눈에서 일렁이는 황금색의 기운이 더욱이 짙어지면서 몸에서 새어나오는 뇌기가 점점 더 강해졌다.

두 사람이 서로 대치한 상태에서 단번에 승부를 지으려고 하자 팽팽한 긴장감이 주위를 압도해 갔다. 이에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두 사람을 응시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적운상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따앙! 파지지직!

“크헉!”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뚜렷했다. 허우생은 삼 장이나 되는 거리를 튕겨나간 것으로도 모자라 거기에 있던 벽에 몸이 반 이상이나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앙!

“커억!”

허우생의 몸이 앞으로 다시 튕겨져 나오며 땅으로 떨어졌다.

“끄으으… 크헉!”

허우생이 부러진 칼로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피를 토하며 다시 쓰러졌다.

“끄으…….”

그제야 사람들은 허우생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된 건지 이해가 갔다. 적운상은 단 일격으로 허우생의 칼을 부러뜨리고 그를 저기까지 날려 보낸 것이다. 무식하리만치 끔찍한 위력이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허우생은 끈질겼다. 그는 피를 계속 토하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부러진 칼을 적운상에게 겨눴다.

“크으… 아직… 이다… 아직…….”

콰아아아아앙!

허우생이 말을 하다 말고 뒤로 확 날아가서 다시 한 번 벽에 부딪쳤다. 적운상이 던진 사자도가 그의 왼팔을 뚫고 벽에 박혀 있었다.

“끄아아아악!”

허우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적운상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이번에는 백운검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 모두들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이미 승부는 났다. 그런데 적운상은 ‘아직’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히 끝장을 보려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까 주양악의 목에서 피가 튀는 걸 보는 순간부터 그랬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우생의 칼을 맨손으로 잡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면서 이미 승부가 났는데도 끝장을 내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적운상의 모습을 보는 이들은 모두 소름이 끼쳤다. 주양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냈다.

“사형!”

주양악이 적운상을 뒤에서 꽉 껴안았다.

“정신 차려요! 사형!”

주양악의 커다란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오자 그제야 적운상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눈앞에 처참한 몰골로 엉망이 된 허우생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꽉 잡고 있는 주양악의 손을 봤다.

“하아…….”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의 손을 풀고 몸을 돌려 마주 봤다.

“사형…….”

“괜찮아. 이제.”

“사형… 흑…….”

주양악이 적운상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적운상은 그런 주양악의 등을 가만히 다독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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