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7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4화
74화. 상인연합모임 (2)
“반갑소. 염 단주. 구 장주.”
“오랜만입니다, 보주.”
“오랜만입니다.”
상관도백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염계동과 구 장주도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요즘 상단이 날로 번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허허. 호남상단에는 아둔한 자들만 있는지 오히려 세가 날로 줄고 있소이다.”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염계동의 금원상단이 갑자기 커지면서 호남상단을 견제하는 바람에 그리된 것이었다.
“하하하. 그래 봐야 조족지혈(鳥足之血) 아닙니까? 호남상단의 세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요. 최근에는 먼 곳까지 가서 아주 큰일을 성사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좀 알려주시고 그러십시오. 저희같이 작은 상단은 떡고물이라도 챙겨야 좀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호남상단이 섬서성까지 갔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젊은이는 누굽니까?”
구 장주가 운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상관도백 옆에 있는 적운상을 보며 물었다.
“아, 인사하시구려. 이쪽은 형산파의 적 소협이오. 모두들 소문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요. 호남일도 이존의 대협과 비무를 했던 바로 그 사람이오.”
“헛! 그럼 삼 초식만에 그를 꺾었다던 사람이…….”
구 장주가 크게 놀란 얼굴로 적운상을 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염계동도 상관도백이 설마 소문이 자자한 적운상을 데리고 올 줄은 예상 밖이었다.
“허허. 젊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리 젊을 줄은 의외구려. 반갑소. 나는 금원상단의 염계동이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적운상입니다.”
염계동이 포권을 취하는 적운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에게서 묘한 박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묘한 놈이군.’
“반갑소, 적 공자. 이쪽은 무당십걸인 운해진인이시오.”
“반갑소.”
“반갑습니다.”
적운상과 운해가 인사를 나눴다. 운해 역시 염계동이 받은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운상에게서는 마치 여기 오기 전에 어디 가서 사람 십여 명은 베고 온 것 같은 박력이 느껴졌다.
‘이 대협이 삼 초식만에 졌다더니, 과연…….’
사실 운해도 소문은 들었지만 쉽게 믿기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직접 적운상을 만나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오. 여기서 또 보는군.”
도옥평이 적운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그와 아는 사이요?”
염계동의 물음에 도옥평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소. 워낙에 인상이 강렬해서 쉽게 잊히지가 않더이다. 하하하.”
염계동은 도옥평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한 달 넘게 같이 지냈지만 그는 한 번도 이렇게 크게 웃지 않았었다. 도대체 적운상과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리 웃는 것일까?
그들 외에도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인사를 하면서 초청을 해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 중 최고는 당연히 호남일도 이존의를 삼 초식만에 꺾은 적운상과 무당십걸 중 한 명인 운해였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다졌다. 하지만 상인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하나라도 더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기에 바빴다.
그렇게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였다. 덩치가 커다란 중년 사내가 적운상에게 다가왔다.
“소문에 듣자하니 그대가 이 대협을 삼 초식에 꺾었다고 떠들며 다닌다더군. 맞소?”
다분히 공격적인 언사였다. 적운상의 옆에 있던 상관도백이 그를 봤다. 직사각형의 커다란 칼을 쓰는 자로 이름이 감무식이었는데, 호남동북의 평강현(平江縣)에서 알아주는 고수였다.
그는 예전에 이존의에게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그를 은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적운상이 그를 삼 초식만에 꺾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덩치답게 강직하고 의리가 있는 자였다.
‘시작됐군.’
상관도백은 어째 시비를 걸어오는 자가 없나 했었다. 적운상은 이존의를 삼 초식에 꺾은 사람이었다. 소문이 그랬다.
하지만 그것이 뜬소문이라면 상관도백이 저렇게 데리고 왔을 리가 없었다. 이에 모두들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나서서 겨루고 싶지만 패할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감무식처럼 용기가 있는 자도 있었다.
“내 입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소.”
“흥! 잘난 체는 그만하고 한번 겨뤄보지.”
감무식의 말에 적운상이 상관도백을 봤다. 그러자 상관도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손을 섞는 정도라면 좋소.”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그 일은 없었던 일이라고 스스로 밝혀라.”
적운상이 잠시 감무식을 빤히 쳐다봤다. 감무식은 그런 적운상에게 이상하게 기가 눌렸다.
“겨뤄보지.”
적운상이 대청의 중앙으로 나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감무식이 코웃음을 치면서 도면이 두꺼운 직사각형의 칼을 꺼내 들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이 싸울 수 있게 뒤로 물러나며 공간을 만들어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대협의 명성에 흠을 내지 말고 사실을 말하면 된다.”
“이 대협의 명성에 흠을 내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인 것 같군.”
“뭐?”
“그건 정당한 대결이었다. 그 결과를 놓고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건 최선을 다해 임했던 나는 물론이고 이 대협도 모욕하는 거란 걸 모르나?”
“…….”
감무식은 순간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시, 시끄럽다. 그런 말로 현혹하지 말고 덤벼라!”
적운상은 아직까지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였다. 저 큰 덩치를 이기려면 선공을 해서 맞부딪쳐 가는 것보다 공격해 오는 것을 받아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받아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당할 수도 있어서 상당히 위험했다. 하지만 제대로만 먹힌다면 달려드는 상대의 힘에 자신의 힘까지 보태는 것이기 때문에 저 큰 덩치라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었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덤벼.”
적운상이 감무식을 도발하기 위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 자식이!”
가벼운 도발인데도 그대로 먹혀들었다. 감무식이 크게 한 걸음을 디디면서 그 커다란 칼을 사선으로 내려쳤다. 순간 적운상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칼을 내려치는 감무식의 팔을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더욱이 달려드는 속도를 높였다. 동시에 단도를 거꾸로 쥐고 그의 턱을 올려쳤다.
파각!
감무식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자 그 커다란 덩치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만약 단도를 거꾸로 쥐고 치지 않고 목을 베어버렸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게 승부는 단 일 초식만에 났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음식을 먹다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무식이 그렇게 유명한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왔다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강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감무식을 적운상은 너무나 가볍게 일 초식만에 쓰러트렸다.
적운상이 어깨를 풀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한 동작이었지만 무리를 하는 바람에 상처가 욱신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동작이 감무식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아 귀찮기만 했다는 뜻으로 보였다.
적운상은 근처에 있는 탁자로 가서 술을 벌컥벌컥 두어 모금 들이켰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멍하니 적운상에게 시선을 꽂고 있었다.
“험! 뭐, 뭣들 하는가? 빨리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야지.”
오늘 모임을 주최했던 염계동의 말에 밖에서 무사들 몇몇이 달려왔다. 그리고 감무식을 들쳐 업고 대청을 나갔다. 모임이 있는 날에는 흔히 있는 일이기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군. 놀랐소이다. 소문이 정말이었군. 후훗! 나는 남해문(南海門)의 채기량이라고 하오. 당신에게 한 수 배우고 싶군요.”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적운상에게 나서서 포권을 취했다.
남해문은 해남도(海南島)에 위치해 있는 문파였다. 그곳은 섬 주민 전체가 하나의 문파나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모두가 남해문의 무공을 수련하면서 큰다. 그래서 강자들이 많았다. 채기량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좋소.”
적운상이 그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채기량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검이 아니라 도였다. 왜구들이 쓰는 것과 같이 도신(刀身)이 검처럼 얇고 완만하게 휘어져 있었다.
해남도는 남단에 위치해 있다 보니 왜구의 침략이 잦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무기를 쓰는 이들도 많았다. 왜구들이 쓰는 도는 단단해서 웬만해서는 쉽게 부러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운상도 품에서 다시 단도를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대치하자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였다.
“잠시 기다려요.”
갑자기 들려온 뾰족한 외침에 모두가 그쪽을 봤다. 눈이 다 시원해질 것 같은 미인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천응방의 백수연이었다.
“오오.”
“저 소저가 소문의 그 소저로군.”
백수연의 미모를 처음 본 이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건 채기량도 마찬가지였다. 해남도에는 저런 미인이 없다. 북상해서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미인들을 봤지만 백수연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었다.
“죄송하지만 비무를 잠시만 미뤄주세요.”
“음. 나, 나는 상관없소.”
채기량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리고 적운상을 보자 그가 승낙의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오?”
“여기요. 부탁받은 사자도와 백운검이에요. 확인해 보세요.”
백수연이 그렇게 말하면서 두 개의 칼을 건넸다. 적운상이 그것을 받아서 허리에 찼다. 그리고 날을 확인하기 위해 사자도를 뽑았다.
챙!
맑은 소리와 함께 사자도의 도신이 나타났다. 그걸 본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반짝반짝 거리는 도신과 날에서 뭐라도 단번에 두 조각 낼 것 같은 날카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적운상은 사자도로 탁자에 있던 술잔을 가볍게 떠서 공중으로 띄웠다.
파각! 쨍강!
무공이 약한 사람들은 적운상이 어떻게 사자도를 휘둘렀는지 채 파악하지 못했다. 술잔이 떠오른 순간 뭔가 휙휙 하더니 네 조각이 나서 떨어져 내린 것이다.
사자도의 날카로움도 놀라웠지만 그걸 저렇게 잘 살려내는 적운상의 실력도 대단했다.
“좋군.”
적운상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잖아도 혁무한을 상대하기 위해 천응방에 한 번 찾아가려던 참이었다.
“할아버지가 밤잠도 잊고 날을 세우셨어요. 검도 확인해 보세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소.”
적운상의 말에 백수연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검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천응방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겨뤄봅시다.”
적운상이 채기량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채기량은 멍하니 적운상이 들고 있는 백운검에 눈을 꽂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우연찮게 장백운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백운검을 알아 본 것이다.
“호, 혹시 그 검은 장백운사가 쓰던 검이 아니오?”
“맞소.”
“이, 이럴 수가. 그, 그걸 어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요?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칼은 혹시 사자왕이 쓰던 사자도요?”
“맞소.”
적운상이 무표정하니 대답했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놀라웠다. 사자왕과 장백운사의 명성은 중원에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새외에서 중원까지는 정말 멀다. 그런데도 명성이 알려질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 사자왕과 장백운사의 무기를 적운상은 보란 듯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 그 사람들을 이긴 거요?”
“맞소.”
이번에도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같은 대답을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호남일도 이존의를 삼 초식만에 꺾었다기에 그런가 보다 했었다. 아까 감무식을 단번에 해치우는 것을 보니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 자였다.
그런데 사자왕과 장백운사까지 꺾은 자였다니, 모두들 크게 놀랄 일이었다.
“음… 비무는 그만두겠소. 한 수 지도를 받으면 모를까, 정식으로 겨룬다면 내 패배가 확실하군. 잠시나마 주제를 몰랐소.”
채기량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마주 포권을 취하면서 예를 받았다.
“천만의 말씀.”
장내가 조용했다. 모두들 적운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보통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어색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러건 말건 태연하게 다시 술병을 들고 몇 모금 들이켰다.
“흠… 운해진인, 어떻소? 그와 한번 겨뤄보는 것이.”
구 장주가 운해의 의중을 물었다. 그러자 운해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 몸이 정상이 아니군요. 이럴 때 겨루는 것은 사내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그가 다쳤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의 팔을 보십시오. 피가 살짝 배어 있지 않습니까?”
운해의 말에 구 장주가 적운상의 옷을 유심히 보니 정말 그랬다. 아까 무리하게 움직이느라 상처가 터진 것이다. 적운상이 술을 자꾸 마시는 것도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다.
“저, 정말 그렇구려.”
‘그럼 저렇게 다친 상태인데도 감무식을 그렇게 해치웠단 말인가?’
구 장주는 무당십걸 중 한 명인 운해보다 오히려 적운상이 탐이 났다.
“운해진인, 만약 그가 정상일 때 겨룬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글쎄올시다. 내 사제인 운학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군요.”
“흐음.”
운해의 말에 구 장주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나마 운해보다 적운상을 탐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의 사제인 운학이 해볼 만하다는 말은 사형인 그의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물음은 구 장주만 한 것이 아니었다. 금원상단의 염계동도 도옥평에게 같은 것을 묻고 있었다.
“도 공자, 그와 겨룬다면 승률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이라면 오십 초식 이내에 쓰러트릴 수 있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자는 지금 부상을 입은 상태요. 저런 상태라면 오십 초식 이내에 가능하지.”
“음… 그럼 그가 정상일 때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오십 초식 이내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염계동은 도옥평이 오십 초식보다는 더 걸릴 거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적운상의 몸이 정상이든 아니든 무조건 오십 초식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적운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그에게는 오십 초식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훗! 그렇군요.”
더 이상 적운상에게 비무를 청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수준에 맞춰, 또는 상인들이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주기 위해 부추김으로 인해서 몇 번의 비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적운상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상관도백은 그것에 크게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모두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상관보의 눈치를 볼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