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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7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73화

73화. 상인연합모임 (1)

 

상관보에서 사람들이 왔다. 다친 사람들을 급히 상관보로 옮겨서 치료했다. 그리고 백검회의 신검문과 천응방, 철혈보에 연락을 했다.

거기서 사람들이 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연유를 물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백묘묘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바람에 모두가 사실을 알게 됐다.

개망나니로 알려진 혁무한 한 명에게 모두가 당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일단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했다. 그리고 상관보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다친 사람들을 이곳에서 치료하게 했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났다.

백묘묘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웅은 내상이 심해서 아직도 치료 중이었다. 이은성도 상처에 약초를 대고 하얀 천을 칭칭 감아놓은 상태였다. 적운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형… 몸은 좀 어때요?”

주양악이 가져온 탕을 내려놓고 적운상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괜찮아.”

침상에 누워 있던 적운상이 힘없이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패배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새외를 돌면서 수도 없이 비무를 치렀고, 패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패한 것만이 아니었다. 은서린을 구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었는데도 구하지 못하고 이런 꼴이 됐다. 그것이 괴로웠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치켜세워 주니까 저도 모르게 조금 자만했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물론 수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형산파의 일이 바빴다지만, 그래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했었어야 했다. 예전처럼 좀 더, 좀 더 이를 악물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이것 좀 먹어봐요.”

주양악이 조심스럽게 적운상을 일으켜 세워서 벽에 등을 기대게 했다. 그리고 가져온 탕을 후후 불어서 한 숟갈씩 떠먹여 줬다. 적운상은 오른팔을 다쳐서 스스로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가져온 인삼이래요. 몸을 보하는 데 아주 좋대요.”

주양악이 애써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내미는 걸 받아먹었다.

“서린이는?”

적운상이 불쑥 묻는 말에 주양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백검회하고 상관보에서 사람을 풀어서 찾고 있지만 아직이에요. 통천문에도 사람을 보냈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봐요.”

“그래.”

“지금은 일단 몸을 나을 것만 생각해요, 사형. 그래야 같이 사매를 찾으러 가죠.”

“…….”

주양악이 다시 탕을 떠서 주자 적운상이 말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때 상관도백이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음……. 며칠 후면 상인연합의 모임이 있네.”

참여할 수 있는지는 묻는 말이었다.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때까지는 좋아질 겁니다.”

“그 자리에는 많은 이들이 참석하네. 그리고 자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무공을 겨루려는 사람들도 있을 걸세.”

“알고 있습니다.”

상관도백이 조금 걱정되는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그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팔과 다리를 저렇게 깊게 베였는데 겨우 십여 일 만에 나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사매인 은서린도 납치된 상황이었다. 마음이 평온할 리가 없었다.

“일이 끝나면 약속이나 확실히 지키십시오.”

“응? 아… 그렇지. 산삼 말이로군. 물론일세. 이번에 운 좋게 천오백 년 정도 된 삼을 하나 구했네.”

“그럼 됐습니다. 저도 약속을 지킬 테니 걱정 마십시오.”

“음, 그럼 믿고 가겠네.”

상관도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러자 주양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형, 정말 괜찮겠어요? 그런 몸으로 또 싸워야 한다는데…….”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적운상이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한 번 흩트리며 말했다.

* * *

 

한 젊은 사내가 투덜거리면서 옷감을 잔뜩 등에 메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이는 십 대 후반으로 보였고, 호리호리한 몸에 얼굴이 잘생기기는 했지만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것이 흠이었다. 그것 때문에 까다로워 보인다고나 할까?

무난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장사에서 포목점을 하는 도지림의 아들 도자명이 바로 그였다.

그는 몇 달 전에 대사형인 막정위와 함께 집으로 와서 아직까지 머물고 있었다. 막정위는 일이 있어 바로 돌아갔지만 그는 포목점이 정리되는 대로 아버지인 도지림과 함께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포목점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주위에 커다란 포목점이 생긴 것을 알고 헐값에 사들이려는 자들 때문이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가격이라 차리라 장사가 안 되어도 계속 유지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제 가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괜찮은 가격에 가게를 살 사람을 기다리다 보니 이렇게 시일이 흐른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도자명은 아버지를 도와 포목점의 일을 해야만 했다.

“가게 다 망해 가는데 아직도 이 짓이라니…….”

도자명은 혼잣말로 투덜대면서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목이나 잠시 축이고 갈 생각으로 근처의 찻집으로 향했을 때였다. 낯익은 소녀가 웬 사내와 함께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보였다. 은서린이었다.

도자명이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상대가 안 좋은 소문이 자자한 혁무한이었기 때문이다. 도자명은 그를 전에 먼발치에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어서 금방 알아봤다.

‘뭐야? 왜 사매가 저자하고 함께 있는 거지?’

도자명은 일단 벽에 딱 달라붙어 몸을 숨겼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어요.”

“그건 안 돼.”

“날짜가 지났잖아요! 십 일만 같이 있어달라고 했으면서.”

“그랬지만 마음이 바뀌었어.”

“사형이랑 사저가 걱정할 거예요. 제발 보내주세요.”

“후우. 자꾸 그러면 또 혈을 짚어서 데려갈 거야.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들을 모두 죽이기를 원해?”

혁무한의 말에 은서린이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혁무한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 미, 미안. 방금 한 말은 실언이었어. 안 그럴 테니까, 목마르잖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잖아요. 갈 데도 없으면서.”

“아니야. 갈 데 있어. 너하고라면 어디든 갈 거야.”

“그럼 형산파로 가요.”

“뭐?”

“형산파로 가자고요.”

“그, 그건…….”

“안 그럴 거면서. 말만 잘해.”

은서린이 투덜대면서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혁무한이 후다닥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숨어서 그걸 보고 있던 도자명은 어찌 된 상황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은서린이 납치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혁무한이 은서린에게 너무나 쩔쩔맸다.

‘어쩐다?’

도자명은 할 일이 많았다. 등에 지고 있는 옷감을 가게에 가져다놓고, 주문받은 것을 또 가져다줘야 했다. 하지만 안 봤다면 모를까 은서린이 저런 상황인데 모른 척하고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도자명은 일단 두 사람을 몰래 따라다니면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다 만약 정말 은서린이 납치된 거라면 방법을 강구해서 구해줄 생각이었다.

은서린과 나이는 같았지만 어쨌든 도자명은 사형이었다. 사매의 위험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 * *

 

며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혁무한과 은서린의 행적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장사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적운상은 상처가 많이 좋아져서 가볍게 걸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상인연합의 모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제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몸을 완쾌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무를 제안해 온다면 과연 제대로 칼을 휘두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적운상은 그런 것보다 은서린이 더 신경 쓰이고 걱정이 됐다. 무엇보다 혁무한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은서린을 구해내려면 어떻게든 혁무한을 꺾어야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몸이 완쾌된 상태에서 손에 익숙한 사자도와 백운검을 들고 그와 겨룬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혁무한은 강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운상에게는 한순간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 수밖에 없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죽으면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혁무한의 무공은 예전에 겨뤘던 몽골의 최강자 트루칸과 비슷했다. 그때도 적운상은 트루칸의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위험한 순간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와 함께 벼락을 맞는 바람에 금안뇌정신공이 한순간에 십이 성 가까이 성취가 됐었다.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뿐이었다.

‘직격으로 맞으면 죽는다. 그때처럼 한 번 거칠 수 있는 뭔가 있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해야 벼락을 맞을 수 있는 거지?’

전에는 목숨을 잃을까 봐 알면서도 아예 생각지도 않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해보려고 마음을 먹으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벼락을 맞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에 한 명, 아니 만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경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 날씨가 심상찮을 때가 많다는 거였다.

‘방법만 찾으면 돼. 방법만…….’

적운상은 이미 그렇게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은서린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 * *

 

이틀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뜬 적운상이 창문을 열었다. 쾌청한 날씨였다.

‘오늘도 글렀군.’

적운상은 작게 한숨을 쉬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 있는데 주양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사형!”

“응?”

“아! 미, 미안해요!”

적운상이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본 주양악이 얼굴이 빨개져서 재빨리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사매를 봤다는 사람이 있대요.”

“뭐? 어디서?”

“북쪽 성문에서 봤다나 봐요.”

적운상은 당장에라도 그리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인연합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 약속이 우선이었다.

“언제 봤대?”

“삼 일 전인가 그렇데요.”

“이미 늦었군.”

“사형!”

적운상이 체념하듯이 하는 말에 주양악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적운상의 벗은 상체를 보고 재빨리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오늘은 상관보주와 상인연합의 모임에 가야 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게다가 지금 간다 해도…….”

혁무한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적운상은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일단 갔다가 올게. 또 뭔가 소식이 오면 알려줘.”

“알았어요. 그런데 몸은 괜찮은 거예요?”

“응. 움직일 만해.”

아니었다.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조금씩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말고 있어.”

적운상이 그녀의 머리를 한 번 툭 치고 방을 나갔다. 주양악은 방금 적운상이 쓰다듬고 간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 * *

 

성도인 장사의 외곽에는 ‘태허장(太虛莊)’이라는 편액이 걸린 커다란 장원이 하나 있었다.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상단인 금원상단의 장원 중 하나였다.

그곳은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오늘은 특히 더했다. 오늘이 바로 상인연합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장원의 넓은 앞마당에는 각종 무기를 찬 무사들이 십여 명씩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상인연합에 참가한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호위무사들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전각의 대청에는 그들과는 또 다른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호위무사가 아니라 상인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초청해 온 사람들이었다.

“하하하. 반갑소이다, 구 장주. 오랜만에 보는구려.”

뚱뚱한 체구의 장년 사내가 삐쩍 마르고 키가 큰 초로의 노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구 장주라 불린 초로의 노인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이오, 염 단주.”

뚱뚱한 체구의 장년 사내는 오늘 모임을 주최하는 금원상단의 단주인 염계동이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전에 못 보던 사람 같구려. 누군지 소개 좀 해주십시오.”

“하하. 여기 있는 도 공자는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공이 매우 뛰어나고 인품이 훌륭하다오. 우연찮게 인연을 맺게 되어 오늘 초청을 했소이다.”

“반갑소. 도옥평이라고 하오.”

그는 전에 금벽도문을 도와 화산파에 맞섰던 금마도의 사내였다.

“아, 도 공자였군요. 하하하.”

노인의 얼굴에 약간 안도의 기색이 보였다. 금원상단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초청했나 했더니 별 이름도 없는 젊은 놈을 불러 온 것이다.

그에 비해 그는 무당파의 무당십걸 중 한 명을 초청해 왔다. 지금까지 온 사람들 중에는 단연 그가 제일이었다. 이에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할 때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당신은 무당파 사람인 것 같구려.”

“맞습니다. 운해라고 합니다.”

염계동의 말에 운해가 반장을 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예전에 적운상이 구해줬던 운학의 사형이었다. 삼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눈이 얇게 찢어져 있어서, 잔꾀가 많고 남을 쉽게 속일 것 같은 인상이었다. 무당파만 아니었다면 사기꾼으로 오해를 받았을 수도 있는 외모였다.

“두 분도 인사 나누시지요.”

“반갑소.”

“반갑습니다.”

운해는 도옥평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보통이 아님을 꿰뚫어봤다. 물론 겨뤄봐야 알겠지만 자신보다 아래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호걸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지 모르겠군요.”

“과찬입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필부에 불과합니다. 무당십걸의 명성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하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도옥평은 당당했다. 꿀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늘 본 자들 중에서는 최고로 낫군.’

운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면서 대청으로 갓 들어선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쪽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걸 보고 구 장주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허허. 상관보주가 온 모양이구려.”

“그런 것 같구려.”

두 사람은 사람들 틈에 싸여 보이지 않는데도 상관도백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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