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6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8화
68화. 얽히는 인연 (3)
적운상이 방에 앉아 있는데 상관도백이 의원과 같이 왔다. 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적운상이 어깨의 상처를 보이기 위해 상의를 벗었다. 그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의원조차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운상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수도 없이 많았다. 모두 칼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들이었다.
주양악과 은서린은 적운상의 몸에 저런 상처들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구혁상을 따라가서 얼마나 지독하게 수련을 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왜들 그래?”
적운상이 의아한 눈으로 모두를 봤다.
“사형.”
은서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평소에 활발하던 주양악도 지금만큼은 조용했다.
“음……. 어서 상처를 치료하게나.”
상관도백이 의원에게 말하자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적운상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은 조심해야 할 겁니다.”
치료를 끝낸 의원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상관도백의 말에 의원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방을 나갔다. 그러자 상관도백이 적운상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볼수록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이제 어쩔 셈인가?”
“글쎄요?”
적운상이 다친 어깨를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그러다 통증이 느껴지자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사형, 많이 아파요?”
은서린이 걱정스럽게 묻자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훗! 괜찮아. 이 정도는.”
“상인연합의 모임이 십여 일 정도 남았네. 그때까지는 자중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걱정하지 마세요. 한 달 뒤에 비무를 할 때까지는 그들이 함부로 나서지 않을 겁니다.”
“허! 그걸 생각하고 한 달 뒤로 날짜를 잡은 거로군.”
“보주님과의 약속이 먼저니까요.”
“알겠네. 혹시나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며 말하게나.”
“그러죠.”
상관도백이 밖으로 나가자 적운상이 약간 피곤한 얼굴을 했다.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에? 왜요?”
주양악이 무슨 뜻이지 몰라 묻자 적운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련해야지 되는데, 할 수가 없잖아.”
“아! 그렇구나. 에? 아니야, 사형. 아플 때는 푹 쉬어야지.”
그제야 주양악은 푹 쉴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둘이 어디 구경이라도 갔다 와.”
“정말? 그래도 돼?”
“그래.”
“하지만…….”
은서린이 적운상을 걱정하는 마음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주양악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걱정하지 마. 사형도 힘들 텐데 혼자 좀 쉬게 해야지. 가자 빨리.”
“사저!”
“시끄러. 빨리 와.”
주양악은 완력을 써서 은서린은 질질 끌고 나갔다. 그것을 보며 적운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잖아도 모처럼 성도까지 왔는데, 그동안 수련만 시킨 것이 조금 미안하던 참이었다.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놀러 다니게 해주고 싶었다.
* * *
“사형이 어쩐 일이지? 우리야 좋기는 하지만. 어디로 가볼까?”
상관보를 나선 주양악이 즐거운 얼굴을 하며 은서린에게 물었다. 은서린은 아직도 적운상이 걱정되는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사매, 자꾸 그럼 놔두고 간다.”
“아니요. 같이 갈래요.”
“헤. 진작 그럴 것이지.”
두 사람이 큰길로 나오자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자들의 장신구나, 우산부터 시작해서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음식들까지, 남악현에서는 볼 수 없는 볼거리가 가득했다.
“훗! 가자.”
“네.”
* * *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혁무한이 옆에 여자 둘을 끼고 걸으면서 물었다. 대낮이지만 오늘도 유명한 기루로 가서 질펀하게 놀아볼 생각이었다.
“그렇습니다.”
뒤를 따르던 원덕인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지금 사노 중 삼노인 허우생이 그냥 돌아온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삼노도 죽을 때가 됐군. 예전과는 달라.”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원덕인의 말에 혁무한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좌판에서 파는 팔찌를 집어서 양옆에 있는 여자들에게 줬다. 그러자 여자들이 좋다고 아양을 떨었다.
“스무 냥입니다만.”
물건을 팔던 장년 사내가 팔찌의 가격을 말했지만 혁무한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그냥 걸음을 옮겼다.
“저, 저기…….”
“통천문의 둘째 공자시다. 나중에 통천문으로 와서 받아 가라.”
“헛! 네. 알겠습니다.”
받으러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혁무한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팔찌 두 개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놈이 그렇게 대단해?”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보통이 아닙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다 무너져가는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호왕문이 전력을 끌고 갔다가 그대로 돌아간 일도 있었답니다.”
“호오, 흥미롭군. 그런데 왜 아직까지 아무도 몰랐지?”
“소문이 돌기에는 기간이 짧았습니다. 호남일도 이존의가 패한 사건이 워낙에 커서 그냥 묻혀버린 모양입니다.”
“쯔쯔. 그래도 아버님이나 형님은 알고 계셨을 거 아니야?”
“형산파쯤이야 언제든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게 문제야. 알고 있는 상대는 무서울 게 없지만 파악이 안 된 상대는 조심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삼노가 한 달 후에 붙기로 했다며? 괜히 건드렸다가 삼노 기분 상하게 하면 뒷감당은 네가 할래?”
“아닙니다.”
사노 중 삼노가 제일 성격이 지랄 같았다. 그는 유독 모든 걸 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뼛속부터 무인이고, 강직하고 곧은 심지 때문이었는데, 그런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랄같이 느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자칫 삼노가 패하면 통천문의 명성에 흠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때 동수를 이뤘다며?”
“그게 문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 호각이었던 모양인데, 삼노는 나이가 많습니다.”
“일단 더 지켜봐. 세력이 아닌 개인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어. 여차하면 내가 나서도 되고. 그보다 백검회…….”
말을 하던 혁무한이 뭐를 봤는지 제자리에 멈춰 서서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그는 잔뜩 경직된 모습이었다.
원덕인은 혁무한의 저런 모습을 처음 봤다. 온갖 개망나니 짓을 하면서도 저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혁무한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 명의 여인들도 의아한 눈으로 그를 봤다.
“공자님…….”
한 여인이 그를 부르는데, 갑자기 그가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헛!”
원덕인이 놀라서 그 뒤를 따랐다. 혁무한은 사람들을 밀치면서 큰길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멍하니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원덕인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장신구를 늘어놓은 좌판 앞에 두 명의 소녀가 있었다. 한 명은 수수하지만 서글서글해 보이는 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녀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귀여운 소녀였다.
혁무한의 시선은 어린 소녀에게 꽂혀 있었다. 그는 크게 놀란 듯, 손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저러시는 거지? 가만… 저 아이를 어디서 봤더라…….’
원덕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팔찌 하나를 들고 좋아서 환하게 웃는 작은 소녀의 얼굴이 이상하게 낯익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어린 소녀가 누군지 원덕인이 간신히 기억을 해내는 동안 혁무한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매, 봐봐. 이게 더 예쁘잖아.”
주양악이 목걸이 하나를 들고 말하자 은서린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예뻐요. 이건 얼마예요?”
은서린이 주인에게 들고 있던 팔찌의 가격을 물었다. 그러자 주인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보는 안목이 있으시군요, 작은 아가씨. 그건 원래 이백 문은 줘야 하지만, 백오십 문만 주십시오. 소저가 너무 귀여워서 깎아주는 겁니다.”
“네? 그렇게 비싸요?”
“비싸다니요? 흔하지 않은 물건입니다. 그거, 거기 장인의 혼이 들어가 있는 세세한 문양을 한번 보십시오. 다른 것들과는 틀리지 않습니까?”
“웅…….”
은서린은 그 팔찌가 갖고 싶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물론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팔찌 하나를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이에 작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접고 팔찌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내가 내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은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잘생긴 귀공자의 얼굴이 보였다. 혁무한이었다.
그는 품에서 돈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는 철전을 써본 적이 없었다. 늘 은자 아니면 금자만 썼었다. 당연히 철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혁무한은 그냥 은자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어이구, 이렇게 큰돈을……. 죄송하지만 거슬러 드릴 돈이 없어서…….”
주인의 말에 혁무한이 은서린을 봤다. 은서린의 커다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혁무한은 살짝 몸을 떨었다.
“그냥 넣어둬. 잔돈은 됐어.”
“앗!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은자 하나면 그가 한 달 동안 물건을 팔아도 벌까 말까 한 돈이었다.
“그럴 순 없어요. 호의는 고맙지만 받을 수 없어요.”
철전 백오십 문이 아까워서 마음에 드는데도 팔찌를 그냥 포기하려던 은서린이었다. 그런데 혁무한이 은자 한 냥으로 그것을 사주자 당장에 부담부터 들었다.
“신경 쓰지 마. 그저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야.”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났고, 아까까지만 해도 양쪽에 두 명이나 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기 돈으로 선물을 해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
은서린이 말하면서 팔찌를 놓고 일어섰다. 그러자 이미 돈을 받은 주인의 마음이 급해졌다.
“어린 아가씨, 그러지 말고 공자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시는 게 어떻습니까? 소저가 너무 예뻐서 저렇게 호의를 베푸신 것 같은데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면 공자님의 체면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인의 말에 은서린이 혁무한을 빤히 쳐다봤다. 잘생긴 얼굴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칼도 한 자루 걸려 있었다. 하지만 딱 보아하니 장식용 칼이었다.
제대로 된 무인의 칼은 자루에 손때가 묻어 있는 법이다. 수시로 잡고 휘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무한의 허리에 있는 칼의 자루는 반들반들하니 윤이 났다.
게다가 자루는 물론이고 검집에도 화려하게 보석이 박혀 있었다. 무공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돈 많은 집 공자들이 멋을 부리느라 칼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은서린이 보기에 혁무한이 딱 그랬다.
“됐어요.”
은서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려는데 뜻밖에도 혁무한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은서린이 놀라서 그를 봤다.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그녀의 손에 팔찌를 쥐어줬다.
“너는 이 팔찌를 갖고 싶고, 나는 이 팔찌를 너한테 주고 싶어. 그거면 된 것 아닌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마.”
순간 은서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형제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손을 잡힌 적은 처음이었다.
“놔, 놔, 놔요.”
은서린이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혁무한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아예 팔목에 팔찌를 채워줬다.
“받아, 사매. 사준다는데 왜 그래.”
“히엑!”
주양악이 갑자기 얼굴을 불쑥 내밀며 말하자 은서린이 놀라서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바람에 혁무한은 그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