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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6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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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2화

62화. 통천문 (2)

 

통천문은 호남에서 가장 세가 강하다는 칠대세력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실 다른 세력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호남제일세력이라고 하지, 굳이 칠대세력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제법 세가 강하다는 철혈보와 신검문, 천응방이 손을 잡고 견제를 할 만큼 강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에 지금까지 감히 통천문에 정면으로 맞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를 내며 칼을 들이대는 자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모두가 둘째 공자인 혁무한 때문이었다.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개망나니란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처음에야 통천문의 눈치를 보며 참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마냥 당하고만 살 수는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었다.

혁무한에게 당한 이들이 칼을 들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혁무한에게 모두 당했다. 통천문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혁무한 한 사람에게 당한 것이다.

개중에는 제법 잘나가는 중소문파들도 있었다. 딸이 희롱을 당하고 와서 발끈해서 덤벼들었다가 문주의 목이 잘린 경우도 있었다.

혁무한은 강했다. 하지만 성격이 개차반이었다. 사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혁무한이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그의 형인 혁강운보다 더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무재(武才)도 뛰어나서 천재 소리를 듣던 그였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너무 뛰어나면 안 그러니만 못한 법이다. 그의 아버지이자 통천문의 문주인 혁세명이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는 어린 혁무한을 잡아다가 무려 십 년 동안 폐관수련을 시켰다. 어두침침한 동굴에 가둬놓고 밤낮으로 무공만 수련하게 했다.

천재라고 불렸던 만큼 혁무한은 무서운 속도로 무공이 늘어갔다. 같은 나이 또래에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혁세명은 기뻤다. 어쩌면 호남성뿐만이 아니라, 중원 전체에 명성을 떨치는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더욱이 혁무한을 다그쳤다.

그것이 혁무한을 위한 일이고 나아가서 통천문을 위한 일이라 여겼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하지만 혁무한은 혁세명이 원하는 그런 고수가 되지 못했다. 강하기는 했지만 호남에서나 통할 정도지 중원 전체에 알려지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원인은 하나였다. 무리한 연공으로 인해 그는 두 번이나 주화입마에 빠졌다. 죽다 살아난 것이다.

그때부터 혁무한은 성격이 이상해졌다. 한창 세상을 접하고 뛰어놀 나이에 어두운 곳에 갇혀서 무공만 수련했으니 정상이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천재의 괴팍함에 십 년 동안 갇혀 지내면서 삐뚤어진 성격까지 더해졌다.

광견(狂犬).

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혁무한을 그렇게 불렀다.

“누가 당했다고?”

혁무한이 침상에서 품에 안겨 있는 여인의 가슴을 주무르며 물었다. 그러자 그 앞에 있던 중년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을 했다.

“과, 광혈도가 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네?”

“어떻게 당했냐고?”

보통은 누구한테 당했는지를 먼저 묻는 법이었다. 역시나 조금은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듣기로는… 이, 일 초식에 당했다고 합니다.”

“아야!”

갑자기 혁무한의 품에 있던 여인이 소리를 질렀다. 혁무한이 주무르던 가슴을 꽉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침상 옆에 무표정하니 서 있던 사내의 눈에도 잠깐이지만 호기심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본문의 서열 이십 위에 있는 자가 칼 한 번 휘두르고 당했단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뱁새눈을 보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뱁새눈이란 통천문의 서열 십오 위에 있는 자였다. 원래 이름은 모과종으로 두 개의 단극(單戟)을 기가 막히게 잘 썼다.

“알겠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러자 침상 옆에 무표정하니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통천문 서열 구 위에 올라 있는 원덕인이라는 자였다. 통천문에서 유일하게 혁무한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놔둬. 뱁새눈이 처리하지 못하면 그때 움직여도 되니까.”

혁무한의 말에 원덕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 *

 

“보주님.”

“무슨 일이냐?”

느긋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처리할 문서를 뒤적거리던 상관도백이 앞에 있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천응방의 백 소저가 왔습니다.”

“그녀가 무슨 일로?”

“형산파에서 온 사람들을 찾아왔답니다.”

“어디 있느냐?”

“대청에 있습니다. 대공자가 만나고 있습니다.”

“음, 그럼 지곡이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자네는 가서 왜 찾아왔는지만 알아보게.”

“네, 어르신.”

사내가 대답을 하고 방을 나가자 상관도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백수연이 왜 찾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듣기로는 백수연 때문에 통천문과 시비가 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적운상은 믿을 수 없게도 백주대낮에, 그것도 대로에서 통천문의 무사들을 베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그건 아니었다. 형산파의 세가 날로 강해지고 있고, 적운상의 무공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통천문에 맞서려면 한참이나 부족했다.

통천문은 호왕문하고는 다르다. 이존의 정도 되는 고수들만해도 십여 명은 있다.

무엇보다 통천문 문주인 혁세명의 무공은 호남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나다. 칠대세력의 수장(首長)들 중에서 유일하게 호남성 밖에까지 명성이 알려진 이가 바로 혁세명이었다.

그 정도는 적운상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통천문 무사들을 죽였으니.

상관도백은 적운상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 *

 

미인을 본다는 것은 사내로서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아무리 목석같은 사내라도 백수연같이 뛰어난 미인이 눈앞에 있다면 절로 웃음을 띠우게 되어 있다.

돈이 넘쳐흘러서 주체를 할 수 없다는 상관보의 후계자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상관지곡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백수연을 반겼다.

“하하하. 오랜만이오, 백 소저.”

백수연은 말없이 상관지곡을 향해 포권을 취한 후에 바로 용건을 꺼냈다.

“상관보에 형산파의 적운상이라는 사람이 신세를 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를 만나고 싶어요.”

상관지곡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백수연이 왔다기에 상관보에 볼일이 있어서 온 줄 알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왔건만, 생각지도 못하게 적운상을 찾아온 것이다.

“혹시, 통천문의 일 때문에 찾아온 거요?”

어제 있었던 일은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상관지곡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상관도백이 왜 적운상을 바로 내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운상이 이대로 계속 손님으로 있으면 상관보가 관계되었다고 통천문에서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손님으로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세인들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관도백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한 것이다.

상관지곡은 적운상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물론 상관보연이 형산파에 가 있고, 그 인근을 개발시키려 한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호왕문이 형산파에 패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상관도백이 저리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아니에요. 그가 맡긴 칼 때문에 왔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렇구려.”

통천문의 일로 왔다면 이런저런 할 말이 있었지만, 칼 때문에 왔다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적운상이 대청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오?”

그는 귀찮다는 듯이 대뜸 용무부터 물었다. 한창 주양악과 은서린을 수련시키고 있었는데, 백수연이 찾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백수연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유야 어쨌든 간에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맡긴 칼 때문에 왔어요.”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나지 않았소?”

“그래요.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겼어요.”

“말해 보시오.”

“할아버님께서 당신을 보고 싶어 해요.”

“시간 없소.”

적운상이 딱 잘라 거절하자 백수연이 고운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이쪽이니 어쩔 수 없이 인상을 풀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할아버님이 당신을 봐야 날을 세워주시겠대요. 할아버님이 마음만 먹는다면 보름도 안 걸려요. 사나흘 만에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백수연은 알면서도 묻는 적운상의 말에 살짝 짜증이 나려 했다.

“같이 가줬으면 해요.”

“흐음, 나는 바쁘오. 하지만 와달라고 하니 가겠소. 대신 조건이 있소.”

“뭐죠?”

“천응방의 고수들과 비무를 하고 싶소.”

“비무요?”

백수연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렇소. 천응방이 지금은 무가로서 거듭나고 있다고 들었소. 분명 뛰어난 고수들이 많을 거라 여기오.”

“음……. 좋아요. 정정당당한 비무라면 피할 이유가 없죠.”

“준비하고 오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적운상이 가고 나자 백수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운상이 왜 갑자기 비무를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보다 통천문의 서열 이십 위인 광혈도를 일 초식에 죽인 적운상이었다. 막상 승낙은 했지만 과연 누가 그와 비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백 소저.”

“네?”

“그 비무, 나도 보고 싶군요. 허락해 줄 수 있겠소?”

“좋아요. 정당한 비무를 하려면 참관인이 필요하니 와주신다면 좋죠.”

“훗! 고맙소.”

상관지곡이 포권을 취하자 백수연이 예를 받으면서 말했다.

“천만에요.”

* * *

 

“놈이 옵니다.”

부하가 하는 말에 모과종이 고개를 돌렸다. 뱁새눈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을 가진 자였다.

“몇이지?”

“사매로 보이는 여자 둘, 천응방의 백수연과 호위무사 여섯, 그리고 무슨 일인지 상관보의 상관지곡도 있는데, 그쪽도 호위무사가 두 명이나 있습니다.”

“그들은 몇이든 상관없어. 상대할 건 우선 그놈 하나다. 가자.”

“네.”

모과종이 앞장서서 골목을 나섰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 십여 명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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