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8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8화
58화. 천응방 (1)
적운상은 아침에 눈을 뜨자 몸이 결렸다. 어제 진웅이란 자와 맞부딪친 후유증이었다. 그는 침상에 앉아서 한동안 운기조식을 했다.
‘음……. 역시 안 되네.’
적운상은 뇌기가 빠져나간 이유를 알아낸 이후로 꾸준히 금안뇌정신공을 연공했다. 하지만 한 번 빠져나간 뇌기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구결대로 꾸준히 연공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거기에는 원인이 있었다. 금안뇌정신공은 먼저 몸 안의 뇌기로 몸을 강하게 만든다.
혈맥은 물론이고 뼈나 근육까지 엄청난 양의 뇌기에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이 바로 팔성까지였다.
한마디로 금안뇌정신공은 그릇은 만들되, 그 그릇을 채울 수는 없었다. 아니 채울 수는 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구혁상이 그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적운상은 거기에 일성의 성취가 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뇌기는 무슨 방법을 써도 늘지가 않았다.
“하아…….”
적운상이 운기조식을 마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뇌기를 다시 채울 방법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방법이라고는 뇌룡을 잡아서 미약하나마 계속 뇌기를 흡수하거나, 벼락을 맞는 것뿐이었다.
뇌룡에게서 뇌기를 흡수하는 방법은 해볼 만했지만, 뇌기가 느는 속도가 너무나 더뎠다. 결국 벼락을 맞는 수밖에 없었는데, 전에 한 번 벼락을 맞고 살아났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러리란 법이 없었다.
적운상은 몇 번이나 시도를 해볼까 하면서도 두려움에 마음을 접어야 했다. 예전이라면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한번 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운상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형산파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은 그들에게 힘이 되어줘야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조금만 더…….’
적운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나왔다.
* * *
“호오, 그들을 만났다고?”
객잔의 탁자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어제의 이야기를 들은 상관도백이 되물었다.
“아는 자들입니까?”
“물론이지. 백검회라고 들어본 적이 없나?”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허! 그들이 알면 놀라겠군. 혹시 상관보도 그랬던 거 아닌가?”
그랬었다. 적운상은 구혁상이 말해 줄 때까지 상관보에 대해서도 일절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누굽니까?”
적운상이 말을 돌리자 상관도백이 허탈한 얼굴을 했다. 보아하니 상관보에 대한 것도 몰랐음이 분명했다.
“호남성에는 수많은 문파들이 있네. 그중 가장 세가 강한 곳이 일곱 군데가 있지.”
“칠대세력을 말하는 거죠?”
주양악이 끼어들며 말했다.
“맞네. 흔히들 그렇게 부르지. 원릉의 금검문과 형양의 호왕문도 그 칠대세력에 속해 있네. 그리고 백검회 역시 마찬가지지. 백검회는 칠대세력 중 가장 강하다는 통천문(通天門)에 맞서기 위해 철혈보와 신검문, 그리고 천응방이 손을 잡은 연합체이네.”
“아! 맞아요. 나하고 싸웠던 여자가 천응방이라고 했던 것 같았어요.”
“후후. 천응방은 원래 무림문파가 아니라 도검을 만드는 곳이었네. 그 세가 커지면서 하나의 방파가 된 곳이지. 호남성에서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무기는 그곳에서 나온 거라 봐도 과언이 아닐 걸세. 성격이 활발한 여자였다면 아마 차녀인 백묘묘일 걸세. 장녀는 조용한 성격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지.”
“그럼 창을 쓰는 자는요? 이름이 진웅이었던가?”
주양악이 기억을 더듬으며 묻자 상관도백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호남에서 알려진 후기지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일세. 젊은 나이에도 무공이 굉장히 뛰어나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은서린은 어제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얼굴이 굳어 이도저도 못 하던 이은성이 떠올랐다.
“이은성이라는 사람은요?”
“신검문의 이은성을 말하는 거로군. 그는 외모가 수려하고 문무를 겸비했지.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나다 일컬어지는 자라네. 그래서 많은 여인들이 그를 흠모하고 있지. 하지만 천응방의 장녀인 백수연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더군. 백검회란 이름을 내걸고 모인 만큼 서로 혼인을 해서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게지. 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상관도백이 말을 마치고 그제야 음식을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먹을 만한 것은 이미 적운상이 싹 해치운 후였다.
“허! 식성이 좋군.”
“별로요.”
적운상이 심드렁하게 말하면서 마지막 남은 요리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주양악이 재빨리 젓가락을 들어 적운상의 젓가락을 막았다.
“뭐야?”
“우리는 뭐 먹어요? 좀 남겨둬야죠.”
주양악이 하는 말에 적운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젓가락을 쥐고 있는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내려쳤다. 주양악이 놀라서 급히 손을 빼자, 이번에는 젓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찍었다.
“뭐 하는 거예요?”
주양악이 발끈하며 다른 손으로 적운상의 팔목을 잡아 제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그 손을 쳐내고 요리를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었다.
“아직 멀었어.”
“이익!”
당했다는 걸 안 주양악이 발끈해서 요리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적운상이 음식을 못 집게 방해를 했다.
타타타타탁!
두 사람의 젓가락이 정신없이 부딪쳤다. 식탁 밑에서는 적운상의 발이 계속 주양악의 발을 밟고 찼다.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구혁상이 밥 먹는 시간마저도 아까워하며 적운상을 단련시킬 때 써먹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적운상이 주양악을 상대로 똑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다.
“아! 정말!”
탕! 콰직!
마음대로 요리를 먹지 못하자 답답해하던 주양악이 젓가락으로 탁자를 힘껏 내리찍었다. 그러자 젓가락이 부러지며 탁자가 들썩이는 바람에 그 위에 있던 음식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저!”
은서린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상관도백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옷에는 음식이 잔뜩 튀어 있었다. 주양악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적운상만은 멀쩡했다. 그는 음식이 쏟아지려는 찰나에 재빨리 뒤로 몸을 뺐다. 그것도 그가 노리던 요리까지 든 채였다.
적운상은 손에 든 요리를 집어 먹으면서 주양악을 향해 말했다.
“아직 멀었어.”
“사형!”
* * *
“우와.”
주양악이 놀라서 감탄을 했다.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長沙) 의 외곽에 위치한 상관보는 밖에서 봤는데도 그녀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크기가 얼추 삼 장에 달하는 커다란 정문과 좌우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져 있는 높은 담은 상관보의 재력을 충분히 짐작케 하고도 남았다.
상관도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봤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더욱이 와 닿았다.
길게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양쪽에 줄지어 세워져 있는 석등은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었고, 뒤쪽에 보이는 수많은 전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날랜 걸음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상관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이 바쁘네요.”
주양악이 하는 말에 상관도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인은 시간이 곧 돈이지.”
걷는 시간도 아까워서 저렇게 뛰어다닌다는 뜻이었다. 그가 어떻게 호남성 최고의 상단인 호남상단을 이끌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는 한마디였다.
“길 잃어버리면 끝장이겠군.”
적운상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그도 상관보의 크기에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예전에 갔던 금검문도 상당했지만, 지금 와 있는 상관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동안 적운상은 상관보가 대단하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실감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직접 와보니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이 정도이니 한때 상관도백이 막정위와 상관보연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형산파를 무시를 할만도 했다.
“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던 적운상은 대사형인 막정위와 상관보연의 혼인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보의 재력은 형산파가 앞으로 일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상관도백의 마음을 어떻게 돌리느냐가 문제였던 것이다.
적운상은 상관도백을 따라 커다란 전각의 대청으로 들어섰다. 말이 대청이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그쪽으로 앉지.”
상관도백의 권유에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내왔다. 그러자 상관도백이 시비를 향해 말했다.
“가서 지곡이를 불러오너라.”
“예, 보주님.”
시비가 대답을 하고 가자 상관도백이 찻잔을 들며 적운상을 봤다.
“상인연합이 모이는 날까지는 아직 날짜가 있으니 편하게 지내게나.”
“그러죠.”
네 사람이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상관도백과 얼굴이 닮고 비싼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상관도백의 손자인 상관지곡이었다.
“할아버님.”
“그래. 왔구나. 인사들 나누시게나. 여기는 내 손자일세. 저쪽은 형산파 사람들이다.”
상관도백이 하는 말에 상관지곡이 잠시 적운상과 주양악, 그리고 은서린을 훑어봤다. 그는 전에 막정위와 상관보연 때문에 상관도백과 함께 잠시 임옥군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상관도백은 찬바람이 불도록 매섭게 대했었는데, 지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듯, 온화한 모습이었다.
이에 조금 탐탁지 않았지만 적운상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반갑소. 상관보의 상관지곡이라고 하오.”
“형산파의 적운상이오.”
“주양악이에요.”
“은서린이에요.”
상관지곡이 표정 관리를 했다지만 전해져 오는 것이 있었다. 적운상이야 잘 모르지만 주양악이나 은서린은 그때 임옥군이 상관보에서 당한 일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특히 주양악이 그랬다. 은서린은 할 때는 대차게 했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성격이 여렸다. 하지만 주양악은 그렇지 않았다.
“상관보의 세가 날로 강해지네요. 보주님이 하도 부탁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왔어요. 며칠 지내다 갈 거예요.”
지금까지 얌전하던 주양악이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말하자 상관도백은 약간 의외였다.
‘허! 어쩐지 오는 동안 표정이 좋지 않다 했더니, 아직 옛일의 앙금이 남아 있었군.’
상관도백은 단번에 주양악의 마음을 알아챘다. 상관지곡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소? 먼 길 왔을 테니 편히 쉬다가 가시구려. 언제 또 이런 곳에 와보겠소? 두루두루 보고 많은 것을 느끼기 바라오.”
은근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주양악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러죠. 이익에 따라 이쪽저쪽 붙어 다니는 거 말고는 볼 게 없겠지만, 신세지는 만큼 똑똑히 보고 가죠.”
“자존심 세우며 배 곪는 이들보다는 낫지 않소?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라오.”
“흥!”
주양악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홱 돌렸다. 상관지곡도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불쾌한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바쁜 일이 있어 실례하겠소.”
“지곡아.”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상관지곡이 대청을 나가는데 뒤에서 주양악이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이런 데서 컸으니 눈에 보이는 게 없겠지.”
“이익!”
상관지곡이 몸을 홱 돌렸으나 상관도백과 눈이 마주치자 이를 악물고 그대로 나갔다.
“이해해 주게나.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아이네.”
상관도백은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상관보연이었다면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쉬고 싶군요.”
적운상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하자 상관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