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7화
57화. 만남 (3)
“아!”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에 적운상이 사자도를 횡으로 휘둘러오자 피할 곳이 없어진 은서린은 열려 있는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처마를 잡고 공중제비를 돌아 지붕으로 올라갔다. 경공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얼결에 해낸 동작이었다.
그때 뒤에서 주양악이 두 개의 단검을 휘둘러오자 적운상이 그것을 피하며 그녀의 팔을 잡고 창문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주양악도 한 발로 창턱을 밟으며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나아가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은서린처럼 처마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
“주 사저!”
은서린이 소리치며 손을 뻗자 주양악이 아슬아슬하게 그 손을 잡았다.
“하압!”
은서린이 잡은 손을 힘껏 잡아당기자 주양악이 크게 원을 그리며 지붕 위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두 사람이 잠시 한숨을 돌릴 때였다. 어느새 창문을 통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적운상이 지붕으로 내려서며 사자도를 내려쳐왔다.
“피해!”
주양악과 은서린이 동시에 좌우로 갈라서자, 적운상의 사자도가 무서운 파공음을 내며 그 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후웅! 파가가각!
기와장이 양옆으로 밀리며 튀어 올랐다. 그걸 본 주양악이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정말 죽일 생각이야?”
“이 정도로는 안 죽어!”
적운상이 주양악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사자도를 휘둘렀다. 그때 반대편에 있던 은서린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적운상은 휘두르던 사자도를 거두며 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검은 복면을 한 자들 세 명이 은서린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린아!”
적운상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은서린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복면인들은 싸울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뭐야?”
적운상이 잠시 멍해 있을 때였다. 왼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기다란 창이 하나 날아왔다. 적운상은 얼결에 사자도로 그것을 힘껏 내려쳤다.
따앙!
“크윽!”
창을 내려친 사자도가 튕겨졌다. 그런데도 날아오던 창은 그저 방향만 약간 틀어졌다.
파가가가각!
“꺄악!”
은서린이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창이 그녀의 발 앞에 박혀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물러나!”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며 사자도를 밑에서 위로 그어 올렸다. 창을 던지고 또 하나의 창을 찔러오던 사내의 공격을 쳐올린 것이다.
떠엉!
“큭!”
“우욱!”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창에 실린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적운상은 그의 창을 쳐낸 반탄력으로 인해 대여섯 걸음이나 발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흐압!”
그때 창을 찔러 넣었던 사내가 다시 몸을 띄워 적운상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는 방금 적운상이 사자도로 창을 쳐낸 충격으로 인해 창을 쥐고 있는 손이 얼얼했다. 창을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이 저렇게 밀리는 것을 보자 기회라 여겨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좌측 손바닥을 쭉 뻗어냈다.
적운상도 방금 입은 충격으로 사자도를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맞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뻗은 두 사람의 손바닥이 서로 맞부딪쳤다.
퍼엉! 파지지지직!
“크헉!”
“크윽!”
적운상의 발이 또다시 대여섯 걸음이나 주르륵 밀리자 기왓장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손바닥을 부딪쳤던 사내는 뒤로 튕겨나가 지붕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땅에 내려서는 순간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뒤에 있던 담벼락까지 정신없이 밀리고 나서야 멈출 수가 있었다.
“헉헉! 크윽!”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방금과 같이 서로 손바닥을 맞부딪치면 보통은 내공이 약한 사람이 내상을 입게 된다.
방금 부딪쳤을 때의 느낌은 사내가 압도적이었다. 그의 내공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심장을 옥죄어오는 짜릿한 기운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쉽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갈증도 심하게 났다. 적운상의 뇌기가 그의 몸속을 타고 들어가며 수분을 태웠기 때문이었다.
적운상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내상을 입어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웬 여인이 뒤늦게 지붕으로 날아 내렸다. 붉은색 경장 차림에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소녀였다. 그녀는 양손에 검신(劒身)의 길이만 한 자 정도 되는 중검(中劍)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앗!”
그녀는 다짜고짜 적운상을 향해 쌍검을 휘둘러갔다. 그러자 주양악이 두 개의 단검을 휘두르며 그녀의 쌍검을 걷어냈다.
챙챙챙챙챙!
두 사람의 검이 정신없이 부딪쳤다. 붉은 경장의 소녀가 펼치는 검법은 빠르기는 했지만 변화가 단순했다.
쌍검이 가지는 전형적인 단점이었다. 그녀가 장검을 쓰지 않고 길이가 조금 짧은 중검을 쓰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주양악도 쌍검을 쓰기는 하지만 소녀와는 달리 변화가 굉장히 다양했다. 소녀가 쓰는 중검보다 짧은 단검을 사용하고 있었고, 풍뢰십삼식의 특징이 빠르기나 위력보다는 변화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변초를 활용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두 사람이 그렇게 싸울 때 또 한 명이 공중을 날아 지붕에 내려섰다. 여자라면 누구나 혹할 정도로 잘생긴 미남자였는데, 몸놀림이 지극히 가벼운 것으로 봐서 실력이 굉장한 고수가 분명했다.
그가 나타나자 적운상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까 맞받아친 왼쪽 손목이 아직도 얼얼하고, 속이 진탕되어 힘이 들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사내는 적운상이 몸을 일으키는데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양악과 소녀가 싸우는 것도 힐끗 한 번 보고는 말았다.
하지만 적운상의 앞을 막아서는 은서린을 보고는 굉장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너는…….”
사내가 주춤거리며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멍하니 은서린을 쳐다봤다.
은서린은 잔뜩 경계하며 단검을 역으로 쥐었다. 아까 대련하면서 단검 하나를 방에 떨어트리고 온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단검 하나로는 풍뢰십삼식의 위력을 제대로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대는 한눈에 봐도 굉장한 고수 같았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은서린이 날이 바짝 서서 그 사내에게 말했다. 사내는 주춤거리며 다가가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서, 설아야.”
사내가 은서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제야 은서린은 사내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봤을 때 저런 넋 나간 표정을 지은 이유도 그래서였던 것이다.
“난 설아가 아니에요.”
“너, 너는…….”
사내가 손을 뻗으며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은서린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지금 적운상을 지킬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적운상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죽는다 해도 그녀는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그때 적운상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사형.”
“후우. 괜찮아. 뒤로 물러나 있어.”
“네? 하지만…….”
적운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뒤에 뒀다. 은서린의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녀를 가릴 수가 있었다.
“난 형산파의 적운상이다.”
사내가 적운상을 봤다. 그는 지금껏 그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다. 오로지 은서린에게만 관심이 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묘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알게 모르게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박력이 느껴졌다.
“형산파라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적운상이라는 이름은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혹시 호남일도 이 대협을 삼 초식에 꺾었다는 게 당신이오?”
적운상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군. 난 상음신검문(湘陰神劍門)의 이은성이라고 하오.”
스스로 이은성이라고 밝힌 사내가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예를 취하지 않고 주양악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뜻을 알아차린 이은성이 주양악과 싸우고 있는 붉은 경장의 소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묘 매! 싸움을 멈춰라! 이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지금은…….”
챙챙!
“멈출 수가…….”
챙챙!
“…없어요!”
쉬쉬쉬쉿!
그녀의 말대로였다. 그녀와 주양악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둘이 동시에 물러난다면 몰라도 어느 한쪽이 먼저 물러났다가는 몸이 성치 못했다.
“흠…….”
이은성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적운상이 들고 있던 사자도를 던졌다.
후우우웅!
무서운 기세로 사자도가 날아오자 엉켜서 싸우던 주양악과 붉은 경장의 소녀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사자도가 두 사람 사이에 깊숙이 박혔다.
텅!
간단하면서도 무식한 방법에 붉은 경장의 소녀와 이은성이 동시에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심드렁하니 주양악을 향해 말했다.
“칼 가져와.”
붉은 경장의 소녀를 잠시 노려보던 주양악이 사자도를 뽑아서 적운상에게 갔다. 적운상이 사자도를 받아서 집어넣는데, 붉은 경장의 소녀가 약간 샐쭉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정말 이들이 아까 그자들과 한 패가 아닌가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인사해. 이쪽은 형산파 사람들이다. 묘 매도 들어봤을 거야. 호남일도 이 대협을 삼 초식에 꺾은 사람이 바로 이자야.”
“아!”
묘 매라 불린 소녀가 가볍게 탄성을 냈다. 그녀 역시 최근 들려오는 풍문을 알고 있었다. 약관의 나이에 이존의와 정식 비무를 해서 삼 초식 만에 이겼다는 신비의 고수 이야기는 그 진위여부를 놓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직접 본 사람들조차도 믿기가 어려운 일인데 풍문으로만 들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나는 유양천응방(流陽天鷹幇)의 백묘묘라고 해요. 방금 실례한 건 잊어주세요. 헤.”
백묘묘가 귀엽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았다.
그때 처음에 적운상과 맞부딪쳤던 사내가 이제야 다시 지붕으로 올라오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당신이 정말 소문의 그 사람이오?”
“이 대협과 비무한 사람을 말한다면 내가 맞소.”
“음, 어쩐지 내 적룡창(赤龍槍)을 그리 튕겨낸다 했더니만……. 초면에 실례했소. 나는 철혈보(鐵血堡)의 진웅이라고 하오.”
진웅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아까 이은성이 포권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를 받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은서린과 주양악이 다칠 뻔했다. 그것 때문에 쉽게 기분이 풀리지가 않았다.
“우리를 공격한 이유가 뭐요?”
“음……. 사실 우리는 백검회(百劍會)에 침입한 괴한을 쫓고 있었소. 그 와중에 오해가 있었던 듯하오.”
이들은 원래 적운상 일행이 처음에 봤던 복면인들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금방 사라진 자리에 적운상을 비롯한 은서린과 주양악이 무기를 들고 나타났으니, 당연히 한패가 여긴 것이다.
“흥! 다짜고짜 칼질을 해놓고 미안하다면 단가요?”
주양악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진웅이 가장 미안한 얼굴을 했다. 성격이 급한 그가 창을 집어 던지는 바람에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이 없다면 이만 헤어집시다.”
적운상이 말하고는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자 이은성이 급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이쪽에서 실수를 한 거니 사과의 뜻으로 대접을 하고 싶소. 바쁘지 않다면 기회를 주시구려.”
이은성이 하는 말에 백묘묘와 진웅은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은성은 잘생기기는 했지만 성정이 조금 차갑고, 늘 무표정해서 뭐를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감정의 변화를 보이며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됐소.”
적운상은 퉁명스럽게 거절하며 땅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주양악과 은서린이 뛰어내렸다.
이은성의 눈은 그런 은서린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흥! 상당히 무례한 자군요.”
백묘묘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진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례는 우리가 먼저 했지.”
“그래도 이쪽에서 사과를 했는데 저리 뻣뻣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군.”
진웅이 대답을 하며 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적운상을 일행을 가만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