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6화
56화. 만남 (2)
늦은 밤.
높게 떠 있는 달빛 아래 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양악과 은서린, 그리고 나연란과 나연오였다.
그들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칼을 휘둘렀다. 그것도 풍뢰십삼식 열세 동작만을 지겹게 반복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양악이는 남고 다들 들어가서 쉬어.”
적운상의 말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만큼 힘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으라는 말을 들은 주양악은 아니었다.
“에? 나는 왜?”
“왜긴! 넌 나랑 대련하고 가야지.”
“싫어. 안 해!”
주양악이 기겁을 하며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뒤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여기 있었구나.”
막정위와 초사영이었다. 막정위는 최근 다시 수련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다리가 좋아진 상태였다.
“대사형. 초 사형.”
“그래.”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오랜만에 너하고 대련이나 한번 해볼까 해서 왔다.”
막정위가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주양악은 속으로 환호를 했다. 두 사람이 적운상과 대련을 하면 자신은 가서 쉬어도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양악, 대련은 내일 하자. 다 같이 가서 씻고 쉬어.”
“네.”
“알았어요.”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것은 역시나 주양악이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귀여워서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다는 훈훈한 미소였다.
‘이 녀석.’
막정위는 그런 적운상을 보며 뭔가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가볍게 한번 해보자.”
“네, 대사형.”
막정위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적운상은 사자도를 늘어트리고 막정위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조심해라.”
쉬쉬쉿!
막정위가 낙연검법을 펼쳤다. 적운상은 막정위가 공격해 오는 검을 여유롭게 모두 쳐냈다.
막정위는 성격이 진중하고 조금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검을 쓰는 것도 그랬다. 흔히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방식 그대로 검을 쓰고 있었다.
한마디로 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정직했다.
따당!
적운상이 막정위의 검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났다. 막정위는 쫓지 않고 멈춰 서서 물었다.
“후우. 정말 강하구나. 오십 초식이 넘도록 옷깃도 스치지 못하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대사형의 몸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훗! 내 몸이 다 나아도 지금과 마찬가지일 거다. 네가 보기에 내 검법의 문제점이 뭐 같으냐?”
“변(變)이 부족합니다.”
“낙연검법은 변이나 중(重)보다는 쾌(快)에 치중한 검법이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양악이와 대련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러고 보니 언제 대련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나중에 양악이와 대련을 해보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겁니다.”
주양악은 초식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초를 잘 쓴다.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임기응변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막정위에게는 그런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련을 해보라고 한 것이다.
“음……. 그럼 하나만 더 묻자. 내가 단시일 내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영약을 하나 구해다 먹으면 됩니다.”
“훗!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적운상이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고 막정위가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뭐?”
“대사형은 앞으로 형산파의 장문인이 될 사람입니다. 험한 일, 궂은일은 제가 다 맡아서 할 겁니다. 하지만 장문인으로서 나서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장문인이 꺾이면 문인들도 꺾입니다. 대사형은 저보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음…….”
막정위는 적운상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자신은 그저 막연하게나마 형산파를 이어가야 한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 비해 적운상은 더 멀리까지 보고, 깊이 있게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막정위는 적운상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안일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어. 훗! 그럼 영약만 먹으면 강해지는 거냐?”
“아니죠. 낙연검법에 맞는 내공심법을 찾아야 합니다. 경공술도 찾아야 하고요.”
“음……. 금안뇌정신공과 풍뢰십삼식이 있지 않으냐? 네가 발견해 낸 원래의 풍뢰십삼식은 상당히 강하다고 들었다. 나도 사영이가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었다.”
“풍뢰십삼식은 그렇지만 금안뇌정신공이 문제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숙조님 말로는 네가 금안뇌정신공을 십이 성까지 완벽하게 익혔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그건… 잠시였습니다.”
적운상은 작게 한숨을 쉬며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들은 막정위와 초사영은 말문이 막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금안뇌정신공은 십 성부터가 진짜입니다. 팔 성까지는 준비단계이고, 구 성부터 위력을 조금씩 내다가 십 성에 달해야 제 위력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팔 성과 십 성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어느 정도지?”
초사영의 물음에 적운상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부님의 성취가 지금 팔 성이지만 일류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십 성 가까이 되는 구 사숙조님은 아마 금검문의 홍 문주와 비슷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예전에 십이 성의 성취를 이루었을 때는 그 몇 배였습니다.”
“으음…….”
그렇게까지 차이가 심할 줄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제가 아무리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내공이 딸리는 건 사실입니다. 이 대협과 싸울 때도 그래서 애를 좀 먹었었죠.”
“일 초식에 그 어르신을 꺾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낙연검법에 맞는 내공심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대협을 일 초식에 꺾은 것은 낙연검법이었습니다. 풍뢰십삼식으로는 오십 초식이 넘도록 싸웠는데도 이기지 못했었습니다. 그만큼 낙연검법이 뛰어나다는 뜻이죠. 물론 약간의 속임수가 있기는 했지만…….”
“속임수?”
“네. 그 당시 이 대협은 먼저 오십여 초식을 겨루면서 풍뢰십삼식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제가 검을 뽑았지만, 자연히 풍뢰십삼식을 펼칠 거라 여겼을 겁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하죠. 그건 고수일수록 더합니다.”
“그럼 네 말은 처음부터 낙연검법을 펼쳤다면 이 대협이 그렇게 일 초식에 패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냐?”
“네. 적어도 십여 초식은 겨뤄야 했을 겁니다.”
“음…….”
막정위와 초사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적운상의 무공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과연 누가 있어 약관의 나이에, 그것도 겨우 십여 초식 만에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알아낸 거냐?”
“경험이죠. 저는 사숙조님과 함께 새외를 다니며 수도 없이 많은 비무를 했었습니다. 심한 날은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뭐? 스무 번?”
말이 쉽지, 스무 번이라면 하루 종일 목숨을 걸고 비무만 했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비무만 한 게 아닙니다. 비무가 끝나고 나면 상대를 분석하고 다시 붙어도 확실하게 이길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칼을 휘두르면서요.”
“허!”
막정위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적운상의 말을 들어보니 그 고생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나 했더니 정말 상상도 못 한 노력을 한 것이다.
“대단하구나.”
“아니에요, 대사형. 원래 싸움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꼭 무공의 고하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상황과 대처능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저 그런 것을 좀 더 알고 있을 뿐이에요.”
“녀석. 겸손한 척하기는.”
“훗! 사실인걸요. 제 무공은 아직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갈 길이 멀죠. 이건 아직 사부님이나 구 사숙조님은 모르는 일입니다. 당분간은 비밀로 해주세요.”
“흐음, 말을 하고 같이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냐?”
“그건 대사형이 사숙조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걸 말하면 당장에 벼락을 맞으러 가자고 할 걸요.”
“큭큭.”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막정위와 초사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제가 구 사숙조님에게 듣기로는 예전에 형산파에도 이런저런 무공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대부분 실전되었지만 찾고자 하면 방법이 없지만은 않을 겁니다.”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냐?”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찾아야 합니다. 낙연검법에 맞는 내공심법을 찾아내고, 경공술도 찾아야 합니다. 뭐든지 찾아내서 형산파를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음……. 그 일은 내가 하마.”
초사영의 말에 적운상과 막정위가 그를 봤다.
“대사형은 앞으로 형산파의 장문인이 될 사람이오. 운상이의 말대로 당분간 강해지는 것에만 온힘을 써요. 그리고 운상이 너는 너 할 일을 해라. 오늘 대사형과 널 찾아온 이유도 사실 그것 때문이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해주려고 온 거다.”
“훗! 네, 사형. 그럴게요.”
“그래. 우리가 힘을 합해서 노력한다면 뭐든지 될 거라 생각한다.”
“네.”
세 사람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이른 아침, 형산파를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관도백과 그의 호위무사들, 그리고 적운상과 주양악, 은서린이었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허허. 걱정하지 말게나. 성도에 도착하는 즉시 알아보고 일이 끝나면 넘겨줌세.”
상관도백이 웃으면서 말하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적운상은 상관도백을 찾아가서 흥정을 했다.
원래 적운상은 그를 따라 상인연합의 모임에 가는 대가로 막정위와 상관보연을 혼인시켜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것 대신에 영약을 구해달라고 한 것이다.
상관도백으로서는 그쪽이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이에 흔쾌히 승낙을 하며 천 년 이상 된 산삼을 구해주기로 했다.
그걸 먹으면 적어도 반 갑자, 즉 삼십 년 이상의 내공이 증진된다.
하지만 막정위는 아니었다. 금안뇌정신공의 특성상, 그런 영약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막정위에게 필요한 것은 뇌기를 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약의 기운은 뇌기가 아니었다. 몸에는 좋아도 뇌기를 늘리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니 그 전에 낙연검법에 맞는 내공심법을 초사영이 찾아내야만 했다.
적운상이 그런 생각을 골몰히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주양악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를 힐끔거렸다. 이렇게 끌려가면 보나마나 그때처럼 하루 종일 수련만 하면서 고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은서린까지 있었다.
원래 적운상은 주양악만 데려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은서린이 고집을 피우며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적운상은 은서린이 너무 오랫동안 형산파에만 있다 보니 갑갑해서 그러는 줄 알고 승낙을 했다. 이번 일은 큰 위험이 없으니 같이 가도 상관이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일행은 말을 타고 느긋하게 이동했다. 가는 동안 적운상은 틈만 나면 주양악과 은서린을 무섭게 다그치며 수련을 시켰다.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걸 보고 상관도백은 기가 막혔다. 설마 적운상이 이렇게 가는 길에도 수련을 시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자 일행은 인근의 객잔에 방을 잡았다. 주양악과 은서린은 아주 녹초가 되어서 간신히 방으로 돌아왔다.
“아우, 팔이야. 사저는 괜찮아?”
“끙. 네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 바보 같은 사형 같으니라고. 봐주는 게 없어.”
“하아. 그러게.”
은서린이 크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두드렸다. 사실 그녀는 적운상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고집을 피워 따라나선 것이었다.
덕분에 같이 있는 건 좋았지만, 이렇게 거품 물며 수련만 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가는 동안 유람을 하며 경치를 즐길 줄 알았지 이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게 왜 따라온다고 했어?”
“누가 이럴 줄 알았나?”
“에고. 조금 쉬었으면 준비하자.”
“뭐를?”
“뭐긴? 사형 올 시간 됐어.”
“에?”
은서린은 ‘설마’란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야심한 밤이었다. 더구나 저녁을 먹고 한 시진 넘게 수련을 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여기는 좁은 객잔의 방이었다. 그런데 설마 또 수련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적운상이 말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주양악! 수련하자!”
“흥! 팔푼이 사형 같으니라고. 만날 수련밖에 모르지?”
“아직도 그런 말을 할 힘이 남았지?”
적운상이 다짜고짜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주양악을 향해 휘둘러갔다.
주양악은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재빨리 두 개의 단검을 뽑아서 그의 공격을 쳐냈다.
훙훙! 따당!
“꺄악!”
두 사람이 좁은 방 안에서 그렇게 칼을 휘두르자 은서린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적운상이 그녀까지 공격을 하자 거기에 맞서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따당! 땅!
“아야!”
적운상의 사자도를 막는 순간, 주양악이 힘에 밀려 벽까지 날아가 부딪쳤다. 그사이에 두 개의 단검을 휘둘러오던 은서린은 적운상의 간단한 동작에 어이없이 단검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