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4화
54화. 상승의 경지 (4)
따당! 땅!
“크흡!”
호조를 휘둘러왔던 두 명이 신음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호조가 적운상의 칼에 부딪칠 때마다 찌릿한 기운이 타고 들어왔다. 그때마다 정신이 분산되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가만히 뭔가에 집중하려고 할 때마다 누가 옆에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과 같았다. 모두가 그러니 압도적인 수로 진을 형성해서 싸우고 있는데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답답함에 울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초식의 허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한 명이 잡아서 시간을 끌며 다른 사람이 허점을 노리고 들어가도 소용이 없었다.
적운상은 순식간에 초식을 바꿔서 허점을 막아냈다. 그것이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아서 더 울화가 치밀었다.
마음의 평정이 그렇게 무너지니 가진 실력을 제대로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운상 한 명에게 열일곱 명이나 되는 이들이 점점 눌려갔다.
그렇다고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뭔가 보여주기 전에는 죽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따당! 땅! 땅!
“크윽!”
호조를 휘둘러오던 네 명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적운상이 허공에 대고 마구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지금까지 쉴 틈 없이 공격해 가던 포호대가 잠시 주춤거렸다.
“이쯤 합시다.”
적운상이 동작을 멈추며 마인걸을 향해 말했다.
“흥! 아직 비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만두자니.”
“더 해도 당신들은 날 이길 수 없소.”
“우리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숨겨둔 수가 있다는 말이오? 그럼 나도 전력을 다해야겠군.”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사자도를 집어넣고 백운검을 고쳐 잡았다.
‘무슨……. 지금까지 놈이 보여준 것이 다가 아니란 말인가?’
마인걸이 바짝 긴장을 하며 포호대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흐음……. 지금부터가 진짜로군. 잘 봐두어라. 지금 그가 보여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네 무공이 한 단계 더 올라설 게다.”
적운상이 하는 양을 보고 이존의가 홍기우에게 말했다. 그러자 홍기우뿐만이 아니라 마청기와 심지어 마조형까지 눈을 크게 뜨고 적운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운상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백운검은 어느새 마인걸의 목에 대어져 있었다. 그제야 포호대가 움직이기 위해서 움찔했다.
거의 한 박자나 늦은 것이다.
마인걸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분명 적운상이 움직이는 것을 봤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해보겠소?”
적운상이 백운검을 거두고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자 포호대가 포위를 좁혀왔다. 그 순간 적운상이 움직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백운검은 마인걸의 목에 대어져 있었고, 포호대는 또 한 박자 늦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
보고 있는 이들이 모두 감탄을 터트렸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다시 해보겠소?”
적운상이 같은 말을 물었다. 그러자 마인걸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한다 해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져, 졌다.”
“좋은 승부였소.”
적운상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마인걸도 포권을 취했다.
“뭐여? 이긴 거여?”
“그런갑네.”
“잘 안 보여서 모르갔는디…….”
“에고, 이제 끝났는가 벼.”
“아부지, 어디 있어요?”
“어따, 나가 칼을 워데 뒀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싸움은 그걸로 끝이었다. 호왕문의 완벽한 패배였다.
* * *
남악현에서 형양현으로 가는 큰길을 오백여 명의 무사들이 꽉 메운 채 가고 있었다. 마씨 삼형제를 비롯한 호왕문의 무사들이었다.
“으음……. 설마 형산파가 그런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마삼이가 분한 듯이 말했다.
“나도 의외였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형님?”
마인걸이 마조형을 보며 물었다.
“글쎄다.”
그는 비무가 끝나고 나서 적운상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묻는 홍기우에게 이존의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이존의는 자연스럽게 홍기우의 어깨를 잡았었다. 그러자 홍기우가 그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훗!”
이존의는 대답 대신에 그의 어깨를 잡았던 손을 거뒀다. 그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출수였다. 그러자 홍기우가 얼결에 팔을 올려 그의 손을 막아냈다.
“이해가 됐느냐?”
“네?”
“방금 전에 내가 너의 어깨를 잡았을 때 너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
“그야… 어르신이 절 해칠 뜻이 없었기 때문에…….”
“아니다. 두 번째로 손을 쓸 때도 나는 너를 해칠 마음이 없었다. 그저 먼젓번과 같이 어깨를 잡으려고 했을 뿐이다.”
“네?”
“내가 먼저 너의 어깨를 잡았을 때 네가 반응하지 않은 것은 내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냐? 하지만 두 번째로 내가 어깨를 잡으려고 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너도 모르게 방어를 한 것이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쯧, 살수의 검이 어떻더냐? 그들이 무서운 이유가 뭐냐? 무공이 뛰어나서 그렇더냐?”
“아닙니다. 비겁하게 암수를 쓰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들은 암수를 쓴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혀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 칼을 쑤셔 넣지. 실력이 좋은 살수일수록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적운상의 무공 또한 그렇다. 그의 무공은 방금 내가 너의 어깨를 잡았던 것처럼 자연스럽지. 그것은 살수가 손을 쓰는 것처럼 쾌(快)나 중(重), 변(變)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실 빠르기나 위력을 논하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한례로 살수의 검은 극쾌(極快)인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고수한테는 통하지가 않지 않으냐? 어떤 상황이건 몸이 절로 반응하는 경지에 이르면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지.”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자연스러움이다. 마치 걷는 것처럼, 밥을 먹는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검을 휘두르는 것도 그렇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렇게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경지가 높아지지. 지금과 같이 말이다.”
이존의가 말하면서 다시 홍기우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홍기우는 뻔히 알면서도 피하거나 막아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이해가 가느냐? 방금 적운상이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생각도 못 할 상승의 경지지. 그러나 그것도 무공이 절정에 오른 고수에게는 초입의 경지일 뿐이다. 의식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하수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무상지검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다시 의식적으로 반응을 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는구나. 신검합일을 넘어선 심검(心劍)의 경지라고 하는데, 나도 듣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아까 이야기했던 일검무적이라 불렸던 그 어르신은 아마도 그 경지에 다다라 있지 않았을까,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지.”
“후우……. 저한테는 신검합일의 경지도 멀기만 합니다.”
“허허. 나도 이제 초입이다, 이 녀석아. 부지런히 수련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흘린 땀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 법이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 같은 대화를 들으면서 마조형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무공은 이존의보다 아래였다. 홍문형과는 호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호왕문의 세를 불릴 생각만 했지, 스스로 무공의 경지를 높이고자 하는 데는 소홀했었다. 권력에 취해, 단체의 힘에 취해서 개인의 힘을 등한시하게 된 것이다.
“형산파는 이미 우리의 손을 벗어났다. 조만간 그들은 호남에 우뚝 설 것이다. 금검문과 상관보가 저리 머리를 숙였는데 우리가 졌다고 해서 체면 상할 일도 없다. 일단은 지켜보자꾸나. 형산파가 크는 걸 보고 같이 편승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네 생각은 어떠냐?”
마조형이 마청기를 봤다. 이번에 마청기의 말을 진즉에 들었더라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형산파에서도 그가 먼저 나서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크게 피를 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것을 한 번 겪자 더 이상 그가 어리게만 보이지 않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님, 적 형은 호인입니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고 의(義)와 협(俠)을 아는 사람입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해가 될 일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후후. 청기가 이제는 다 컸습니다, 형님.”
“아직 멀었다.”
마인걸이 하는 말에 마조형이 쑥스러운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쭉 뻗어 있는 길을 보며 자조하듯이 말했다.
“한동안은 오랜만에 같이 수련이나 하자꾸나.”
“네, 형님.”
“크큭. 모두들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기대하겠습니다.”
형산파에 패했는데도 그들은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그들은 더욱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