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3화
53화. 상승의 경지 (3)
“형산파의 십이 대 제자 적운상이오! 배운 것은 풍뢰십삼식과 낙연검법이오! 당신들이 청한 비무에 성심껏 응하겠소!”
적운상이 포권을 살짝 취한 후에 크게 소리치자 웅성거리던 장내가 조금씩 조용해졌다.
마인걸은 적운상이 저렇게 제대로 격식을 차리며 말하자 어쩔 수 없이 같이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호왕문의 둘째인 마인걸이오! 호형마조를 익혔소. 포호대와 함께 그대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겠소!”
그들이 그렇게 대치하고 서자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따, 한판 할라는 갑네.”
“저짝은 수도 많은데 거시기 사형이 좀 불리하제.”
“무슨! 저 사람이 칼질 한 번에 금벽도문 놈들 열 명을 죽였다니까. 집채만 한 바위도 부순다카데.”
“거기 좀 앉아봐. 잘 안 보이잖아.”
싸우러 왔다가 눈요깃거리가 생긴 사람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허허. 오랜만이오. 홍 문주. 이 대협.”
“그렇구려. 오랜만이오.”
상관도백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홍문형과 이존의도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했다.
“누가 이길 것 같소?”
“이기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소. 그러니 그걸 묻기보다는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묻는 것이 나을 듯하오.”
이존의가 하는 말에 상관도백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리 자존심이 높던 이 대협이 어찌 그리되셨소?”
“칼 밥 먹고 사는데 뭔 놈의 자존심이오? 강한 놈 앞에서는 수그려야지.”
“하하하하.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소.”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홍문형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오.”
“어디, 숨겨놓은 실력을 얼마나 풀어놓을지 볼까?”
이존의가 방금 웃으면서 말을 할 때와는 다르게 홍문형처럼 눈을 빛냈다.
* * *
비무가 시작됐다. 십칠 대 일이었다. 그것도 상대는 호왕문 최고의 정예라는 포호대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이길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두들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아야 했다.
팽팽한 접전이었다. 포호대가 진(陣)을 이루어 사납게 몰아치는데도 적운상은 사자도와 백운검을 휘두르며 묵묵히 버티어냈다.
그러면서 위험한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다. 그걸 보고 있는 이들의 손에 저도 모르게 땀이 배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적운상이 쓰는 무공이 너무나 낯익었다. 처음에는 형산파의 사람들만 그것을 알아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이들도 알아봤다. 같은 초식을 완벽한 자세로 계속 반복하는데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가 쓰고 있는 건 모두가 배운 풍뢰십삼식이었다.
“형님, 저거…….”
“그래.”
패악룡과 흑곰은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그들도 풍뢰십삼식을 배웠다. 하지만 삼류무공이라 여기며 열심히 수련하지는 않았다.
특히 패악룡이 그랬다. 그는 이미 배운 무공이 있었고, 그것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적운상이 싸우는 것을 보고 있자니 상승의 무공이니 삼류무공이니 하고 나누는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적운상은 그 단순한 초식만으로도 저렇게 멋있게 싸우고 있지 않은가?
그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초식을 써야 할지를 일괄되게 보여주고 있었다. 풍뢰십삼식의 초식은 겨우 열세 개뿐이다.
그는 달랑 그 열세 개의 초식으로 모든 상황에 맞게 반응이 나왔다.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하는 비무가 아니라 마치 잘 짜인 약속대련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부님, 정녕 저런 것이 가능한 겁니까?”
막정위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싸움을 지켜보며 임옥군에게 물었다. 하지만 임옥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대답이 나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적운상이 금벽도문과 싸울 때 초식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었다. 그런데 이제는 호왕문의 정예인 포호대를 상대로도 똑같이 싸우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홍문형을 따라온 홍기우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님, 도대체 저건…….”
“음……. 이미 무상지검의 경지에 들었구나.”
“무상지검이라면, 신검합일의 경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허나 무상지검에 들었다고 해서 어찌 저런 식으로 싸울 수 있는지는 나도 의문이구나.”
홍문형이 말을 하면서 슬쩍 이존의를 봤다. 그러자 이존의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때 나도 금검문에서 비무를 끝냈을 때, 그것을 물었었지. 그랬더니 녀석이 그러더군. 십 년 동안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검을 휘둘러보면 알 거라고.”
“네? 어르신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래. 당시에 나는 그 말이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습니까?”
“반은 맞는 말이었지. 내가 졌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럼 다른 뜻은 뭐였습니까?”
“놈, 공짜로 얻어 가려고 하는구나.”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거하게 한 상 올리겠습니다.”
갑자기 홍문형이 정색을 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만큼 절실하게 알고 싶었던 것이다. 기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어느새 그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모두들 같은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후후. 됐다. 웃자고 한 말이었다. 너는 초식이 뭐라 생각하느냐?”
“음……. 바르게 힘을 내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까?”
“그렇지. 처음에 칼을 든 사람은 어떻게 해야 더 큰 힘을 내고, 어떻게 해야 더 빠르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지를 모르지.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초식이다. 허나 막상 싸움이 일어나면 초식을 있는 그대로는 쓰지 못한다. 저도 모르게 초식을 변형시킨 변초를 사용하게 되지. 그건 고수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고수가 되면 오히려 더 변초를 사용하는 게 능수능란해져서 익힌 초식의 형태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게 되지. 초식의 의미를 완전히 통달해서 더 이상 초식에 연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경지가 더 높아질수록 칼을 쓰는 것이 단순해진다.”
거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무론(武論)이었다. 모두가 궁금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허나 저 녀석은 고수인데도 변초라고는 하나도 없다. 있는 초식을 그대로 사용하지. 그런데도 상대가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다.”
“맞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훗! 그걸 이해하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네가 만약 고수라면, 더 이상 초식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할 정도라도 초식을 쓰는 것이 더 빠르고 강한 힘을 낼 수 있지 않겠느냐?”
“그, 그건…….”
확실하게 그럴 거란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초식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의 고수라면 그냥 칼을 휘두르나 초식대로 휘두르나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더냐? 초식이라는 것은 더 빠르고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동작이다. 아무리 다른 길이 생겼다지만 늘 다니던 길은 바로 그 길이라는 뜻이지. 그건 길이 없어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고수라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아!”
그제야 모두들 뭔가 깨닫는 것이 있었다.
“고수가 왜 초식을 사용하지 않느냐? 한두 초식이야 어떻게 한다고 해도 저렇게 매번 초식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고수라도 초식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초를 쓰게 되고, 그 변초가 초식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때까지 수련을 한다는 게지.”
“그, 그럼 적 소협은…….”
“그래. 내가 그와의 비무에서 패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저들이 지금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도 그를 어쩌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지. 그는 이미 나나 저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지까지 올라서 있다.”
“그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약관입니다. 그 나이에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경지에 오른 겁니까? 환경이 좋았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명문정파에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받고 재능을 키워온 이들조차도 저런 경지는 어렵지 않습니까?”
“흐음…….”
이존의가 대답을 하려는데 뜻밖에도 마청기가 끼어들었다.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그 대답을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허, 알고 있다면 그리 해라.”
“홍 형, 나는 한 달간 이곳에 인질로 잡혀 있었소. 그 한 달간 내가 본 것이 뭔지 아시오?”
“뭐였소?”
“노력이었소. 다른 사람들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그런 노력.”
“그게 무슨 말이오?”
“홍 형, 당신은 정말 노력을 해본 적이 있소? 그는 정말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칼을 휘둘렀소. 보는 내가 미칠 것 같았소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해내더이다. 그는 아까 어르신이 말씀한 대로 십 년을 그렇게 수련해 왔을 것이오. 나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를 되돌아봤소.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고수들을 생각해 봤소. 말은 굉장히 쉽소. 밥 먹을 때만 빼고 칼을 휘두르라는 말, 누구나 하지 않소?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하는 이가 몇이나 될 것 같소?”
“음…….”
홍기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금검문의 후계자로, 아닌 말로 젓가락을 쥐기 전부터 칼을 잡아왔다. 재능도 있고 강해지고 싶은 열의도 있었다. 나름 노력도 했었다. 환경도 받쳐줬다.
그러나 적운상 같은 노력을 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는 한때 폐관수련을 한답시고 약 이 년간 밤낮으로 검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검을 휘두르는 시간은 서너 시진(6~8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힘들었다. 너무나 힘들고 지겨웠다. 그래서 사실 이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검을 휘두른 건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세 시진 안팎이었다. 그것도 내공심법을 연공하는 시간까지 합쳐서다.
그러니 정말 검만 휘두른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진 정도였다. 그건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노력의 양이 다르다는 것이오?”
“양뿐만이 아니라 질도 다르오. 당신 같으면 저 간단한 초식을, 그렇게 수련할 수 있겠소? 난 도저히 자신이 없소. 어떻게 해낸다 해도 미쳐버릴 거요.”
“음…….”
홍기우도 자신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며칠, 한두 달, 길게 버티면 일 년까지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십 년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제정신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낸단 말인가?
“으음……. 그러고 보니 전전대의 고수였던 어르신이 생각나는군. 그의 별호가 일검무적(天下無敵)이었다. 그가 일보를 내디디면서 휘두르는 일 초식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었지. 그 당시에는 모두들 그가 도대체 어떤 무공을 익혀서 그렇게 강해졌는지 궁금해 했었다. 뭔가 영약을 먹거나 아니면 신비문파에서 남모르게 수련을 했다는 생각도 했었지. 허나 나중에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모두가 경악을 했었다.”
이존의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하는 말에 모두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말은 홍문형이 대신했다.
“허허. 나도 기억이 나는군. 성격이 참 괴팍한 어르신이었지. 허나 무림인치고 그의 강함을 동경하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아쉽게도 후인이 없지.”
“어째서입니까?”
홍기우가 묻자 홍문형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좁은 독방에서 무려 십오 년 동안 갇혀 있었다. 겨우 두 걸음도 되지 않는 좁은 곳이었지. 그곳에서 그는 하루 종일 일보를 내디디면서 칼을 내려치는 일 초식을 수련했다. 무려 십오 년 동안 그 한 초식만을 수련한 게지.”
홍기우가 거기서 말을 끊자 이존의가 말을 받았다.
“그랬지.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었다. 단순히 그 같은 일을 해서 강해진다면 누군들 강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지. 실상 그 같은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들 몰랐던 거지. 지금도 믿는 이는 거의 없을 게다. 하지만 저 녀석을 보면 믿지 않으려야 안 믿을 수가 없군.”
“음…….”
모두의 마음에 불이 당겨졌다. 홍문형이 누군가?
호남성 서쪽을 장악하고 있는 금검문의 태상문주였다. 이존의는 또 누구던가?
호남에서 도법으로는 견줄 자가 없다는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그 두 사람이 지금 노력만으로, 오로지 노력만으로 적운상과 같은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명성이 높은 문파에 들어가서 재능을 인정받아 온갖 영약을 먹고 상승의 무공을 전수받지 않아도 저런 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슴이 뜨겁지 않겠는가?
“슬슬 끝나가는군.”
이존의가 하는 말에 모두들 다시 비무에 집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