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52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52화
52화. 상승의 경지 (2)
“뭐…….”
적운상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뒤에 있던 구혁상도 마찬가지였다.
마조형은 적운상이 갑자기 무방비하게 자세를 풀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서 눈을 몇 번이나 껌뻑였다.
도대체 몇 명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보기에는 허름해 보이는 양민들이었다. 그런데 손에는 모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들은 왁자지껄하며 줄줄이 들어와서는 호왕문 사람들을 삥 둘러쌌다. 그러자 시끌시끌하니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저것들이여? 형산파를 치러 왔다는 것이?”
“그런가 벼.”
“어따……. 저넘 눈 좀 보소. 무섭네. 잉.”
“나가 먼저 나서부러? 다리를 똑 분질러 놓을까?”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마안! 네놈들은 대체 뭐냐?”
과연 마조형이었다.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서 크게 소리를 지르자 한순간에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 툭 한마디를 하자 그것을 시작으로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나는 형산파 도와주러 왔는디…….”
“저 사람들이 호왕문이구만.”
“어따, 흉악시럽게 생겼네.”
“아부지, 어디 있어요?”
“나가 칼을 어데 뒀제?”
마조형은 머리가 아파왔다. 어디서 갑자기 저런 것들이 몰려와서 감히 호왕문에 맞서려고 하는지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머릿수가 하도 많아서 조금 움찔했지만, 보아하니 칼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 오합지졸들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저 자식들 모두 쫓아버려!”
마조형이 내공을 실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호왕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 기세에 그제야 양민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움찔거리면서 슬금슬금 뒤로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자 호왕문의 무사들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였다.
“어라? 너 도봉이 아녀?”
“에?”
칼을 들고 다가오는 호왕문의 무사 하나를 보고 웬 장년의 사내가 아는 체를 했다.
“어? 아저씨.”
“그래. 어따, 오랜만이구만. 너그 아버지는 잘 지내제?”
“네? 네.”
도봉이라 불린 호왕문의 무사는 그 장년 사내의 먼 친척이었다. 서로 아는 사이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너는 임제 아니냐?”
“조기 할아버지.”
“그래. 그래. 색시는 잘 있고?”
“네. 덕분에요.”
임제는 노총각이었다. 그런데 조기라 불린 노인이 다리를 놓아줘서 장가를 갔다. 평생의 은인이었다.
“아앗! 작은아버지!”
“너 이놈 자식. 여기 있었냐? 아, 이런 위험한 데는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적당히 눈치 봐서 빠져야지.”
“그, 그게요…….”
말이 작은아버지지 사실 바람 피워서 낳은 자식이었다. 마누라 몰래 애지중지 키우느라 고생이었다.
“어머, 오라버니.”
동동루의 향난이가 호왕문의 무사 하나를 보고 달려가서 안겼다. 그는 남악현에 올 때마다 동동루에 들르는 단골이었다.
여기저기서 그렇게 아는 얼굴이 보이자 서로 인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산파가 있는 남악현과 호왕문이 있는 형양현(衡陽縣)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다.
당연히 친인척들이 인근에 흩어져서 살기도 했고, 서로 관계가 얽히고설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호왕문의 문인들은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형양현의 토박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주인 마조형부터가 그랬다.
그런데 서로 칼질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황이 그러자 마조형은 난처함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싸움을 치러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부하들은 이제 싸움 같은 것은 완전히 잊고 남악현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걸 보고 멍하니 할 말을 잊고 있던 마조형이 마인걸을 봤다.
마인걸도 황당함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처했다. 평소에 잘 돌아가던 머리가 이때만큼은 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설마 형산파에서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형산파의 덕망이 이리 높았단 말인가?
저 많은 양민들이 무기를 들고 나설 만큼?
“뭐, 뭣들 하는 거냐? 대열 정렬해! 누가 노닥거리라고 했어? 앙!”
마조형이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왕문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될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의 명령이라지만 서로 친분이 있는데 칼질을 할 수는 없었다.
“그쯤 해두는 게 좋겠소.”
그때 어디에선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마조형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 * *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도움을 청하러 갔다더니 정말 거기에 응했단 말인가? 그가 이곳에 모습을 보였으니 그렇다고 봐야 했다.
“험! 오랜만이오, 마 문주.”
포권을 취하면서 말을 하는 이는 금검문의 태상문주인 홍문형이었다. 그 옆에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던 임옥군과 나한중이 있었다. 그리고 홍문형의 뒤에서 잘 갈아놓은 칼을 보는 듯, 날을 세우고 있는 십여 명의 사내들은 금검문의 자랑인 제일금검대(第一金劒隊)였다.
그들 모두가 호왕문의 포호대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이들이었다.
“사부님.”
“그래. 허허. 내가 늦지는 않았구나. 수고 많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숙.”
“내가 뭐 한 일이 있더냐? 저놈 덕에 일이 쉽게 풀리고 있었다.”
구혁상이 말하면서 패악룡을 가리키자 그가 재빨리 이쪽으로 달려왔다.
“어르신들! 형님!”
“훗! 해냈구나. 멋지다.”
적운상이 하는 말에 패악룡이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조형이 홍문형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들려왔다.
“이것은 형산파와 우리 호왕문과의 일이오. 금검문이 끼어들 일이 아니오.”
“허나 형산파에서 이렇게 중재를 부탁받았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지 않소.”
“흥! 언제부터 금검문이 그렇게 남의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게 됐소?”
“흐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내가 온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소만.”
홍문형이 말하면서 보란 듯이 주위를 훑어봤다. 그러자 마조형이 인상을 팍 썼다.
“도대체 이유가 뭐요? 저놈 때문이오?”
마조형이 적운상을 가리키자 홍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조만간 그와 손녀딸을 맺어줄 참이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마조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가 알기로 홍문형의 손녀딸은 오직 한 명뿐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손녀딸을 이런 삼류문파로 보낸단 말인가?
물론 적운상의 무공이 높기는 하지만 금검문에서 저럴 정도로 대단하단 말인가?
“그가 호남일도 이존의를 꺾었다는 소문은 들었소. 듣자하니 삼 초식에 그리했다는군.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
홍문형이 마조형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마조형은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뭘 잘못 알고 있다는 거요?”
“삼 초식이 아니라 정확히는 일 초식이었소. 이존의에게 직접 들었으니 틀림이 없을 거요.”
“…….”
마조형은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오십 초식과 오십삼 초식은 별 차이가 없다. 백 초식과 백삼 초식도 마찬가지다. 겨룬 초식의 수가 많으면 삼 초식 정도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삼 초식과 일 초식의 차이는 엄청났다. 삼 초식이라는 말은 그래도 서로 간에 무기를 한 번 이상은 부딪쳤다는 뜻이었다. 공격과 방어가 적어도 한 번씩은 오고 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 초식은 그게 없었다는 뜻이다. 손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뜻이다.
호남에서 도법으로는 제일이라는 이존의가 정말 그랬단 말인가?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때 그 말을 증명해 줄 사람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나타났다.
“하하하하. 이거 부끄러워서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려.”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그 중앙에서 당당히 걸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호남일도 이존의였다. 그의 옆에는 초사영과 은서린이 함께였다.
“오랜만에 보는구려, 마 문주. 예전에 악양(岳陽)에서 본 이후로는 처음이구려.”
“험! 그렇구려.”
서로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마조형은 속이 편치 않았다. 이존의가 형산파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형산파에 식객으로 빌붙기 위해 왔소이다. 그런데 마 문주가 이렇게 크게 한판 벌이려고 하는 줄은 몰랐구려.”
‘식객?’
그의 짐작대로였다. 이존의 역시 홍문형과 마찬가지로 형산파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런데 식객이라니?
호남제일도라 불리는 그가 갈 곳이 없어서 이런 삼류문파에 식객으로 온단 말인가?
“흥! 핑계가 그럴듯하구려.”
“하하하하.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라오. 저 젊은이와 비무를 해서 내기를 했는데, 그만 지고 말았다오.”
“그럼 비무의 조건이 이곳의 식객으로 빌붙는 거였단 말이오?”
“그렇소.”
마조형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존의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생글거리면서 웃음을 띠었다.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구려. 기왕에 왔으니 화끈하게 한번 붙는 것이 어떻겠소? 그래서 승자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나와 홍 형은 일체 간섭하지 않겠소.”
“정말이오?”
“그렇소.”
“으음…….”
마조형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가 증인으로 참관을 하리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본 마조형은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헛! 다, 당신은 또 왜 이곳에 온 거요?”
“허허. 장사꾼이 왜 왔겠소? 뭔가 이득이 있으니 오지 않았겠소?”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가오는 이는 뜻밖에는 상관도백이었다. 그 뒤를 막정위와 상관보연, 그리고 주양악이 따라오고 있었다.
“당신도 관여를 하겠다는 뜻이오?”
“아니오. 관여라니,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그저 구경이나 하고 이긴 사람의 손이나 들어줄 생각이오.”
“으음…….”
마조형이 상관도백을 봤다. 그리고 홍문형과 이존의를 봤다. 이어서 아직도 시끄럽게 왁자지껄하고 있는 남악현의 사람들을 봤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형산파는 그가 아는 삼류문파가 아니었다. 아무리 도움을 청했기로서니 어떻게 금검문의 문주인 홍문형과 상관보의 보주인 상관도백이 직접 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시일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도움을 청하자마자 만사를 제쳐놓고 이리로 왔다는 뜻이다. 호왕문의 문주인 자신이 위기에 몰려 도움을 청한다면 과연 저들 정도 되는 인물들이 저렇게 와줄까?
아니었다. 턱도 없었다. 게다가 남악현의 저 많은 이들을 움직인 힘도 얕볼 수가 없었다. 사실 저들이 모두 모습을 보인 시점에서 이미 승패는 결정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호왕문은, 형산파의 상대가 아니었다.
“형님.”
마인걸도 그걸 깨닫고 마조형을 불렀다.
“그래.”
마조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물러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인걸은 그럴 수 없었다.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뭔가를 해야 했다. 호왕문이 결코 힘이 없어서 물러난 것이 아님을 조금이라도 보여줘야 했다.
“안 됩니다, 형님. 형님은 잠시 지켜보고 계십시오. 비무는 저와 포호대가 하겠습니다.”
“인걸아.”
문주인 마조형이 지면 호왕문의 체면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니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형님. 꼭 이기겠습니다.”
마인걸이 비장한 얼굴로 말하며 몸을 돌렸다.
“적운상이라고 했나? 네가 포호대를 꺾는다면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겠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형산파와 관계하지 않겠다.”
“일단 붙고 나서 이야기하죠.”
적운상이 허락의 뜻을 비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마인걸과 포호대를 놔두고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 싸울 장소를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