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7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7화
47화. 비무 (3)
“에엑! 나보고 아이들 글 선생을 하라고요?”
홍은령이 놀라서 반문을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 하지만…….”
“왜? 싫어? 나는 령 매가 해주면 좋겠어. 령 매라면 아이들을 따듯하게 보살피며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지?”
“그, 그렇지만…….”
“훗! 그럼 그렇게 알고, 믿고 있을게.”
“네…….”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자 홍은령은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 다음 날부터 아이들은 매일같이 형산을 올라, 형산파로 왔다.
홍은령이 그 아이들을 맡아서 글을 가르쳤지만, 가르치는 시간보다 쫓아다니며 같이 놀아주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가만히 앉아서 글을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좀이 쑤신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자, 금방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걸 다잡느라 홍은령은 진땀을 빼야 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상대한다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괜히 승낙한 것 같아 후회가 막심했다.
하지만 한 성격 하는 그녀였다. 오기도 그만큼 있었다.
“그만! 모두들 꼼짝 마!”
참다못한 그녀가 아이들한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아이들이 바짝 얼어서 멈칫하며 그녀를 봤다.
‘호오… 이것 봐라. 그렇단 말이지.’
홍은령은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깨달았다. 이제 장난을 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조용히 글공부를 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걸 보고 있던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있는데, 구혁상이 다가왔다.
“할 말이 있다.”
“네.”
“연란이에 관한 거다.”
“아, 혹시…….”
“그래.”
구혁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 *
그날 저녁이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두 개의 인영이 조용히 움직였다. 적운상과 구혁상이었다.
“오늘 나타날까요?”
“그럴 게다.”
적운상은 금검문으로 가기 전에 구혁상에게 나연란을 지켜봐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나연란의 내공이 그렇게 는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혁상은 한동안 나연란을 유심히 지켜봤으나 특별한 것을 찾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정말 우연찮게 누군가 나연란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쫓아가서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그 뒤로 구혁상은 밤마다 나연란의 방을 지켜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자가 또 나타났다. 구혁상은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다가가서 그가 뭘 하는지를 창문 틈으로 봤다.
그는 놀랍게도 자고 있는 나연란에게 진기도인(眞氣導引)을 해서 내공을 늘려주고 있었다. 자칫 지금 건드리면 잘못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구혁상은 일단 진기도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빠져나가자, 몰래 뒤를 밟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형산파의 조사묘 부근에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이에 이번에는 그를 아예 붙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적운상이 돌아온 것이다.
“왔어요.”
적운상이 목소리를 낮추며, 나연란의 방을 가리켰다. 구혁상이 보니 역시나 그자였다.
“누굴까요?”
“글쎄다. 적의가 없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저런 짓을 하는지 의문이구나.”
“나오면 제가 선공을 하겠습니다. 도망가지 못하게 뒤쪽을 막아주세요.”
“걱정 말거라.”
잠시 후, 그자가 나연란의 방에서 나왔다. 그 순간 지붕에 숨어 있던 적운상이 떨어져 내리며, 그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헉!”
그가 깜짝 놀라며 적운상의 손을 쳐내며 몸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어딜!”
적운상이 달려가는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가 손을 서너 번 돌리자, 소매가 돌돌 말리면서 적운상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지붕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몸을 띄우며 옆에 있는 전각의 벽을 발로 찼다.
“여기도 있지.”
기다리고 있던 구혁상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서 내렸다. 불가항력으로 밑으로 떨어져 땅에 내려선 그가 팔을 크게 돌려 구혁상의 손을 쳐냈다.
그러면서 구혁상의 손목과 팔, 그리고 어깨를 연이어 쳐왔다. 그 같은 초식에 구혁상이 놀란 눈을 했다. 방금 사내가 펼친 초식은 풍뢰십삼식의 일식삼타(一式三打)였다.
“너…….”
구혁상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그 사내가 갑자기 그 자세 그대로 딱 멈췄다. 뒤에서 적운상이 마혈을 짚은 것이다.
“누구죠?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나도 모르겠구나. 일단 장문인에게 데리고 가자꾸나.”
“네.”
두 사람은 그자를 데리고 임옥군의 처소로 향했다. 자다가 일어난 임옥군은 그를 보고 크게 놀랐다.
“사제!”
“에?”
적운상이 선뜻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자와 임옥군을 번갈아가며 봤다.
“어서, 어서 혈도를 풀어라.”
“네? 네, 사부님.”
적운상이 그의 혈도를 풀자 그가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적운상을 잠시 보다가 임옥군을 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그보다 사제라니? 이자가 네 사제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사숙. 뭐 해? 어서 사숙에게 인사드려야지.”
임옥군이 다그치는 말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혁상에게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숙.”
“음…….”
구혁상은 선뜻 그가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형산파에 거의 붙어 있은 적이 없었고, 근래에는 적운상을 수련시키느라 십여 년간이나 새외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한중이입니다, 사숙.”
“응? 네가 나한중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사숙.”
“허! 그랬구나. 한데 어찌 그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실은…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나한중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한중은 임옥군의 사제로 오래전에 돈을 벌기 위해 형산파를 떠나 있었다. 처음에는 간간이 돈을 보내왔으나 우연찮게 한 여인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힘들어졌다.
나한중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다. 혼인을 할 처지가 못 됐지만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 아이가 생겼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쌍둥이였던 것이다.
나한중은 행복했다. 갑자기 가족이 둘이나 늘었지만,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일이 고됐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인에게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여인을 데리러 온 자들은 강했다. 감히 나한중이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이들까지 데려가려고 했다. 여인이 필사적으로 맞섰다. 그 와중에 나한중은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나한중은 갈 곳이 없어 고민했다.
결국, 형산파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모습을 보이기에는 그간 연락을 끊고 있다가 불쑥 도와달라고 찾아가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무공으로 보건대, 형산파가 모두 나선다고 해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에 그는 아이들만 맡기고 모습을 감췄다. 그러는 편이 그들의 눈을 속이기에도 좋았다.
거기까지 들은 적운상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 그럼 혹시 연란이와 연오가?”
“그래. 내 자식들이다.”
“그게 정말이냐? 사제,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그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추적하고 있을지도 몰랐고, 아이들을 데리고는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후우… 네 마음고생도 심했겠구나.”
“사숙.”
적운상이 부르자, ‘사숙’이라 불린 것이 약간 쑥스러웠던지 나한중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왜 그러느냐?”
“선천지기(先天之氣)를 깎아가면서까지 왜 연란이에게 진기도인을 한 겁니까?”
적운상이 하는 말에 그제야 구혁상이나 임옥군도 짚이는 것이 있었다. 나한중의 내공으로는 진기도인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진기도인을 해서, 나연란의 내공을 늘려줬다. 그렇다는 건 적운상의 말대로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선천지기로 무리를 한 것이 분명했다.
선천지기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사람 본연의 기운이었다. 원기(元氣), 진기(眞氣)라고도 하는데, 선천지기는 내공심법으로 익히는 후천지기에 비해 그 기운이 극히 강했다.
그래서 상대와 싸우다가 위급한 순간에 선천지기를 끌어다 써서 위기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상당히 컸다.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선천지기가 약해지면 몸이 병들어 금방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내공으로 소모된 기운이야 금방 채워지지만, 선천지기가 상하면 평생 동안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제,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하아…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한중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것으로 보아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임옥군은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연란이와 연오를 맡긴 이후, 저는 아내를 찾으러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찾았느냐?”
나한중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렇게 막상 찾았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왔지만, 연란이와 연오를 볼 낯이 없더군요. 장문사형에게도 미안하고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우리가 남남이야?”
임옥군이 발끈해서 화를 냈다. 어려운 환경에서 같이 고생한 만큼 임옥군과 그의 사제들 간의 정은 상당히 끈끈했다. 그런데 나한중이 저런 말을 하니 자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장문사형. 어차피 저는 사는 낙을 잃었어요. 이대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에는 또 용기가 없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제대로 부모 노릇 못 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뭔가를 주고 싶었어요. 원래는 사내인 연오에게 진기도인을 하려고 했지만, 연오보다는 연란이의 자질이 뛰어나기에 연란이에게 한 겁니다. 나중에 연란이가 커서 고수가 된다면, 형산파에 도움도 되고, 어쩌면 제 어미를 찾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를 하는 나한중의 목이 메어왔다. 임옥군도 어느새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형산파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형산파가 강했다면, 나한중이 저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와서 당당하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문파에 누가 될까 봐 나한중은 그런 길을 택한 것이다. 그것이 임옥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껏 지내온 자신에게 화가 났다.
“죄송합니다, 장문사형. 그리고 연란이와 연오를 저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이대로… 이대로 그냥 제가 없는 걸로 해주십시오.”
“이런 멍청한 놈!”
탕!
임옥군이 화를 내며 탁자를 내려쳤다. 웬만하면 구혁상이 있는 앞에서 그러지 않으련만, 그는 어지간히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런 나약한 마음이 형산파를 약하게 하는 게 아니냐? 네가 뿌린 씨앗들이야! 네가 챙겨! 네가 모른 체하고 간다면, 나도 모른 체할 거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더냐? 너랑 나랑 어렸을 때 그렇게 바랐던 것이 뭐였느냔 말이다! 부모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지 않았더냐? 이 망할 자식아!”
탕탕!
임옥군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또다시 탁자를 내려쳤다.
“장문사형… 흐윽…….”
나한중이 엎드려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한중을 보면서 임옥군도 눈물을 흘렸다.
“한중아, 형산파는 강해질 것이다. 그간 네가 지켜봤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형산파는 강해질 게야. 여기 구 사숙이 있고,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네 사질이 있다. 어디 그뿐이더냐? 나도 있고, 아이들도 있지 않으냐? 돌아오너라. 함께 방법을 찾자꾸나. 내가 부탁을 하마.”
임옥군이 나한중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하자 구혁상도 그를 설득했다.
“장문인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구나.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도우마. 당연히 운상이도…….”
말을 하며 적운상을 본 구혁상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적운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적운상에게서는 스멀스멀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적운상은 형산파의 문인이면서 그렇게 자긍심이 없는 나한중에게 화가 났다. 더구나 어떻게 몇 년씩이나 자식을 버려둘 수가 있단 말인가?
이에 이성의 끈이 끊어지면서, 제정신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헛! 설마…….”
구혁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임옥군을 봤다. 그러자 임옥군도 얼굴색이 바뀌어서는 주춤거렸다.
“하, 한중아, 신호하면 튀어라.”
“네? 왜 그럽니까?”
그때 적운상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구혁상과 임옥군이 동시에 소리치며 나한중의 팔을 잡고 몸을 날렸다.
“튀어!”
빠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앙!
한밤중에 들려온 폭음에 잠은 자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광기에 젖어서 미쳐서 날뛰는 괴물을.
* * *
다음 날, 나한중이 모두의 앞에 섰다. 나연란과 나연오는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색함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쌍둥이는 동시에 나한중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나한중도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코끝이 찡해오는 바람에 슬쩍 눈물을 훔쳤다.
“이제는… 이제는 모두가 함께하자꾸나.”
그렇게 나한중이 형산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