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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4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6화

46화. 비무 (2)

 

빨랐나?

아니었다. 적운상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이존의가 충분히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였다.

그렇다고 위력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적운상은 검을 썼다. 일반적으로 검은 도보다 위력이 약하다. 그리고 적운상도 그랬다.

그렇다면, 변화가 많았나?

그것도 아니었다. 적운상이 펼친 검법은 아주 단순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무공의 세 가지 핵심인 쾌(快), 중(重), 변(變) 모두 뛰어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삼 초식만에 졌다.

이존의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한 얼굴로 적운상을 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적운상이 방금 보인 검법으로 인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누가 있어 호남제일도라는 이존의를, 그것도 겨우 삼 초식만에 꺾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것은 한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중원 전역이나, 새외에까지 이름이 통하는 그런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묘한 박력을 뿜어내며 검을 거두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형산파의 문인이었다.

“약속 잊지 마세요.”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이유가, 이유가 뭔가?”

이존의가 허탈한 얼굴로 물었다. 비무가 끝나면 저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을 많았기 때문에 적운상은 담담하니 늘 하던 대답을 했다.

“십 년 동안,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칼을 휘둘러보면 알게 됩니다.”

“뭐?”

멍하니 있던 이존의가 생각에 잠겼다.

‘더 노력하라는 뜻인가?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인가?’

이존의는 처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위에서 적운상의 말을 들은 이들도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존의는 이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칼을 휘두른다?

그것도 십 년 동안?

어찌 보면 간단한 일 같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같은 노력이 정말로 이루어진다면…….

그제야 이존의는 뭔가 와 닿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적운상의 무공은 지극히 익숙해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밥을 먹을 때 무의식중에 숟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길을 걸을 때 의식하지 않아도 왼발, 오른발이 알아서 나가는 것처럼, 몸에 완전히 습관이 든, 그런 익숙함이었다.

적운상이 칼을 휘두르는 것은 그런 것처럼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무상지검의 경지였던가?’

이존의도 무상지검의 초입에는 들어서 있었다. 그에 비해 적운상은 이미 무상지검의 끝을 보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이존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정처 없이 참 많이도 떠돌아다녔었다.

한동안 적운상이 있는 형산파에 자리를 틀고 지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그날 있었던 이존의와 적운상의 비무는 소문에 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갔다. 그러자 모두들 형산파의 적운상이 누군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호남에서 도법이라면 겨룰 자가 없다는 이존의를 단 삼 초식만에 이긴 것일까?

게다가 믿을 수 없게도 이제 갓 약관을 넘긴 것 같은 나이라니.

그 같은 신진고수의 등장은 한동안 잠잠했던 호남 무림에 작은 파문이 되어 점점 크게 번져갔다.

“돌아가겠다고?”

“네. 그간 신세졌습니다.”

적운상이 홍문형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적운상은 비무가 끝난 이후로 한동안 사람들에게 파묻혀 지내야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친분을 쌓으려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좀더 머물지 그러나? 사람들과 친분도 좀 쌓고. 혹시 대접이 소홀했나?”

“아닙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래저래 미뤄둔 일이 많습니다.”

“흐음…….”

홍문형은 적운상을 좀더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적당한 핑계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차 들게.”

“네.”

적운상이 차를 홀짝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홍문형이 갑자기 불쑥 물었다.

“령아를 어떻게 생각하나?”

“네?”

“령아 말일세. 참하고 예쁘지 않나? 성격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자네한테는 그렇지도 않더군.”

“귀엽고 예쁜 아이입니다.”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그럼 이참에 데려가는 것이 어떤가? 령아도 자네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더군.”

“하하하.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직은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일세. 령아가 자네와 혼인을 하면 자연히 우리 금검문의 세를 얻게 되는 걸세. 지금의 형산파로서는 좋은 일이 아닌가?”

“당장에는 그렇겠죠. 하지만 형산파로 인해 금검문이 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인가? 자랑은 아니지만 금검문은 결코 약하지 않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남에서만이죠.”

“…….”

홍문형은 잠시 멍하니 적운상을 봤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야심이 대단했다. 지금 적운상이 말하는 투를 보면, 그는 형산파를 호남에서뿐만이 아니라 천하에 우뚝 서게 하려는 것 같았다.

사실 남자라면, 문파를 위하는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이가 몇이나 되던가?

대부분이 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끝이 난다. 홍문형도 한때 적운상처럼 그런 꿈을 꾸며 그렇게 노력했지만, 겨우 호남의 서쪽을 차지했을 뿐이다.

“꿈은 클수록 좋은 법이지. 자네가 더욱이 마음에 드는군.”

적운상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차를 홀짝였다. 다른 사람들은 금검문과 연을 맺지 못해 안달이었다. 특히 형산파같이 세가 약한 문파들이라면 더욱이 그래야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적운상은 당당했다. 대놓고 거절을 했다. 그 이유가 황당하게도 금검문의 세가 약해서란다.

하지만 홍문형은 그런 적운상이 싫지 않았다.

“형산파에 객방은 많은가?”

“많죠.”

“훗! 그럼 령아를 보내도 되겠구먼.”

“진심입니까?”

“물론일세. 그 아이도 원할 테고, 나도 자네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 그게 좋을 듯하군.”

“령아가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겠나? 그리된다면 받아들여야지.”

“나중에 어찌 되어도 모릅니다.”

“상관없네.”

“참 나…….”

적운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발 물러났다. 어쨌든 금검문의 손녀가 와 있으면 형산파로서도 이득이었다.

* * *

 

적운상이 주양악, 홍은령과 함께 금검문을 나서는데 같이 따라나서는 일행이 있었다. 독무곡 사람들이었다.

“같이 가는 겁니까?”

“네. 어차피 저희 볼일도 끝났거든요.”

적운상이 묻는 말에 곡지연이 대답했다.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이 뭡니까?”

“훗! 때론 모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어요.”

“누가 중독됐나 보군.”

적운상이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며 말을 천천히 몰아갔다. 그러자 곡지연이 가만히 적운상을 쳐다봤다.

“알고 있었나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거요. 운남에 있는 독무곡이 단순히 생일잔치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올 리가 없지 않소.”

“처음 보는 독이었어요.”

“말투를 보아하니 해독하지 못한 모양이군.”

“네.”

“혹시, 이 대협도 관계있는 거요?”

이존의는 아직 이곳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며, 그 일이 마무리되면 형산파로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운상에게 먼저 가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요. 호남 곳곳에서 같은 독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이 대협은 그걸 조사하고 있어요.”

“오지랖이 넓은 영감님이니, 그렇겠지.”

“풋!”

적운상이 하는 말에 홍은령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명성이 높은 이존의를 그렇게 말하는 적운상의 말투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독무곡에서도 손을 못 쓸 정도면, 해독이 어렵겠군.”

“사천에 있는 당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럼 그곳에서 독을 퍼트렸을 수도 있는 거 아니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당문은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절대로 독을 쓰지 않아요. 그들이 그렇게 독을 잘 다루면서도, 따로 암기술을 익히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나름 정당성을 가지려는 노력이라는 거군.”

“그래요. 독무곡에 비해 그들이 명문정파라고 인정받는 이유가 그래서죠.”

“흐음… 그런데 말이오.”

적운상이 곡지연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곡지연이 슬쩍 눈을 피했다.

“얼굴 한 번 보여줄 수 없겠소?”

“아, 안 돼요.”

곡지연이 당황하면서 손을 저었다.

“걱정 마시오. 억지로 볼 생각은 없으니. 그저 궁금했을 뿐이오.”

적운상이 미련 없다는 듯이 하는 말에, 이상하게 곡지연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억지로라도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원릉을 벗어나자, 곡지연을 비롯한 독무곡 사람들은 모두 운남으로 향했다. 가면서 곡지연은 적운상에게 나중에 꼭 운남에 한 번 오라면서, 오지 않으면 형산파로 찾아가겠다는 묘한 말을 하고 갔다.

적운상은 그들과 헤어지자 주양악, 홍은령과 함께 느긋하게 평야를 가로질러 형산파로 향했다. 가는 동안 적운상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틈만 나면 주양악을 수련시켰다.

원래 주양악은 임옥군의 꾸준한 가르침으로 인해 기본이 탄탄한 상태였다. 거기에다 적운상이 무섭게 다그치며 그녀의 재능을 끌어내자,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갔다.

“어머, 저기 사람들이 뭐 하는 거죠?”

남악현에 들어서자 홍은령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적운상이 그쪽을 보니 탈각대의 몇몇 사내들이 모여서 주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니께… 이렇게 해서, 요로코롬 하라는 거제?”

순해 보이는 인상의 장년 사내가 물어보며 어수룩하게 칼을 휘둘렀다. 도저히 못 봐줄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풍뢰십삼식이 확실했다.

“어따… 그게 아니랑께. 장 씨는 그거이 문제여. 내가 하는 걸 보더라고.”

옆에 있던 허름한 장년 사내가 보란 듯이 나서서 칼을 휘둘렀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하하하하. 그거이 뭐여? 그게 무슨 무공이여? 춤이제.”

“하하하하.”

모여 있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들을 가르치던 탈각대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성질을 내지는 않았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 자꾸 그러깁니까? 다시 한 번 잘 보고 따라 해보세요.”

“저놈이 저거 옛날에는 금벽도문에 들어가서 행패질이더니, 이제는 형산파에서 한자리 차지했다고 잘난 체네.”

“왜 그래, 강 씨. 이게 다 우리 잘되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그제 저놈이 우리 집 지붕도 고쳐줬다고. 강 씨네 헛간도 저들이 다 고쳤잖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강 씨 자네 아들보다 훨 낫구먼.”

“뭐야? 어디 남의 귀한 아들을…….”

“됐어. 됐어. 그렇게 귀한 아들이면 형산파에 입문을 시키든가. 안 그렇소, 사형.”

나이 많은 사내가 자식뻘 되는 탈각대를 보고 익살스럽게 사형이라고 부르자 주위가 다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멀리서 그것을 보고 있던 적운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훗! 잘하고 있군.”

“저게 뭐 하는 거죠?”

“앞날을 위한 투자.”

적운상이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에도 그런 모습은 여러 곳에서 보였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공터에 모여서 같이 무공을 수련했다.

형산파에 도착하자 적운상은 그간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조만간 이존의가 온다고 하자, 임옥군이 크게 놀랐다. 호남에서 명성이 쟁쟁한 이존의가 형산파에서 객으로 머문다니, 정말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몇 번이나 경위를 다시 물으면서 확인을 했다.

“적 사형! 돌아오셨군요.”

“응.”

적운상이 잠시 전각 앞의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박노엽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면서 봤더니 일이 잘되어 가는 것 같더라.”

“하아…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음, 뭐가 문젠데?”

“탈각대가 무공을 익혀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배우는 사람들이 너무 우매합니다. 좀 영리하다 싶은 이들은 오히려 이용하려 들기도 하고요. 게다가 그들은 소속감이 없습니다. 과연 형산파가 위기에 처하면 한 팔 거들어줄지도 의문입니다.”

“뭐? 하하하하.”

“왜 웃는 겁니까?”

“아, 미안. 내 생각에는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오면서 보니까 탈각대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더군. 사람들의 호응도 좋고. 그러면 된 거 아니야?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하지만 이름도 못 쓰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건 좀 문제가 있습니다. 초식명조차도 제대로 못 외우고, 내공심법을 가르칠 때는 정말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건 좀 문제가 있겠는데. 음, 그렇지. 나한테 좋은 수가 있어.”

“뭡니까?”

그동안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문제라 박노엽이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을 받아서 가르쳐. 몇 명이라도 좋으니까 여기로 보내라고 해. 그럼 아이들의 체력단련에도 좋고, 와서 글을 배우니까 또 좋은 거고, 더러 무공도 가르치면서 재능이 좋은 애들은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면 되잖아. 아이들의 부모들도 우리가 그렇게 아이들을 맡아주면,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 좋을 거야.”

“아! 그것 괜찮은 방법이군요.”

“그렇지?”

“당장에 가서… 그런데 누가 아이들을 가르치죠?”

“응?”

“모두들 무공수련이다 뭐다 해서 바쁩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 한 명 있어. 걱정 마, 그건. 내가 가서 말해 볼게.”

적운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하자, 박노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시기에 한가한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단 말인가?

있었다,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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