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4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44화
44화. 원릉 금검문 (3)
“신강의 사자왕을 만났나?”
“네. 비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음…….”
이존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신강은 중원보다 더 강자지존(强者至尊)의 법칙이 통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의 한 명이 바로 사자왕이었다.
그런 사자왕의 신물이나 다름없는 사자도를 적운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존의는 그가 사자왕의 제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비무를 했다고 하니 자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자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무에서 적운상이 그를 이겼다는 증거였다. 이제 약관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적운상이 어떻게 그를 이긴 것일까?
“그를 이겼군.”
“운이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홍문형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사자왕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그도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잠룡이었군.’
“한번 겨뤄보고 싶네만.”
“싫습니다.”
적운상이 딱 잘라 말하자 이존의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뭔가?”
“비무를 하면 싫든 좋든 간에 감정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굳이 비무를 할 이유가 없거든요.”
적운상이 미소를 띠며 하는 말에 이존의는 잠시 적운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사자왕과 싸운 것이 언제쯤인가?”
“음… 글쎄요.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한 삼사 년 된 것 같군요.”
이존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 당시의 적운상은 구혁상과 함께 새외를 떠돌며 수없이 많은 비무를 했었다. 그러고 다닌 이유는 어디까지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사자왕과 겨룬 것도 그래서였다. 그 결과 지금의 적운상은 그런 비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무공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존의는 적운상이 하는 말에서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더욱더 한번 겨뤄보고 싶군.”
이존의가 사자도를 돌려주면서 말했다. 하지만 적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겨루고 싶지가 않군요.”
적운상이 끝까지 그렇게 거절을 하자, 이존의도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훗! 알겠네. 하지만 조만간 겨루게 될 걸세.”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이 그러자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됐다. 홍문형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차를 권했고, 서로 간에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적운상은 돌아갔다.
그러자 홍문형이 이존의를 보며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잠룡이로군. 령아의 짝으로 제격이야.”
“훗! 욕심을 내는 마음은 알겠지만, 쉽지 않을 걸세. 그가 웅지를 펴고 날아오르면 금검문이 감당하기 힘들게야.”
“지금 내가 피땀 어려 이뤄놓은 것을 무시하는 건가?”
“아닐세. 금검문은 확실히 대단하네. 그런 면에서 나는 자네를 존경하네. 단지, 그가 그보다 더 대단할 뿐일세.”
“허!”
홍문형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홍문형이 적운상을 초청한 것은 어디까지나 호기심에서였다. 홍기우를 그렇게 이긴 적운상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호남에 위치한 형산파 사람이라 더욱이 그랬다.
실력을 정확히 알아본 후에, 적이 될 것 같으면 미리 싹을 자르고 그렇지 않으면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존의의 말을 들어보니 이도저도 어려울 것 같았다.
* * *
며칠이 훌쩍 지나고, 홍문형의 생일잔치가 시작됐다. 원릉에 금검문이 자리를 잡은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는 처음이었다.
무림의 이름 있는 명사들은 물론이고, 나라의 고관이나 심지어 평범한 촌민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찾아왔다. 그들 모두가 홍문형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온 것이다.
홍문형의 명성이 얼마나 높은지, 금검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케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금검문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늘의 주역인 홍문형 역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문주님.”
연석강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하자, 홍문형이 미소를 띠며 그를 반겼다.
“허허. 고맙네. 아버님은 잘 계시는가?”
“네. 덕분에 잘 계십니다. 그리고 약소하나마 저건 아버님께서 보내는 겁니다.”
연석강이 한쪽을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짐꾼들이 커다란 궤짝을 두 개나 가져다가, 오늘 온 손님들이 가져온 선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놓았다.
“고맙구먼. 연씨세가의 호의는 잊지 않겠네.”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옆에 있던 마청기도 포권을 취하면서 인사를 했다.
“오, 호왕문의 둘째로구먼.”
“뵌 지 일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벌써 그리됐나?”
“저건 호왕문의 작은 성의입니다.”
호왕문에서도 커다란 궤짝을 두 개나 가져다 놓았다. 보나마나 안에는 금은보화나 비단같이 값비싼 물건들이 가득할 것이다.
“고맙네. 아버님에게도 인사 전해주게나.”
“네.”
두 사람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선물을 건넸다. 그러다 적운상의 차례가 되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이건 형산파에서 드리는 겁니다. 사매.”
적운상이 주양악을 부르자, 그녀가 들고 있던 장수면을 내밀었다. 원래 옛날부터 생일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장수면을 선물하는 것이 도리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장수면만을 선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상대가 호남의 서쪽 지방을 꽉 잡고 있는 금검문의 문주임에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연석강이 코웃음을 쳤다.
“흥! 겨우 장수면인가? 금검문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오?”
홍문형 역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허허. 고맙네.”
“천만에 말씀입니다.”
적운상이 포권을 취하고, 한쪽으로 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홍문형은 다음 사람이 인사를 건네오자 곧 신경을 끊었다.
축하인사와 선물이 모두 건네지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먹고 마시면서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며칠 전 적운상이 만났던 호남일도 이존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잠시 주목해 주시오!”
“오오… 이존의 대협이시다.”
“여기서 보는군.”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작게 웅성거리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장내가 그렇게 조용해지자 이존의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은 제 오랜 친우이자 금검문의 문주인 홍가 놈의 생일이오.”
“하하하하.”
이존의가 익살스럽게 홍문형을 일컬으며 말하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오늘 흥을 돋우기 위해 여기 있는 젊은이들의 실력을 한번 볼까 하오. 이곳에 아리따운 소저들도 많으니 잘 보일 기회도 되지 않소이까?”
“옳소!”
“하하하하!”
사람들이 일제히 찬성을 하자, 이존의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방법은 간단하오. 내가 최근 새로이 깨달은 것이 있소이다. 그것을 시험도 할 겸, 나와 오십 초식을 겨루면 되오. 물론 나는 전력을 다할 것이오. 지게 되면 내 체면이 엉망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혹시 또 아오? 나한테 반하는 소저가 있을지.”
“하하하하!”
“좋습니다!”
“내 마누라를 데려가십시오!”
누군가 소리치는 말에 장내는 또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와 오십 초식을 무사히 겨룬다면, 홍가 놈의 손녀딸과 한 나절 동안 꽃배를 띄우고 놀 수 있게 해주겠소이다.”
“오오오오!”
“최고다!”
“장가 간 사람도 됩니까?”
사내들이 환호를 하며 난리를 쳤다. 홍은령은 성격이 좀 그렇다 뿐이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미인이었다. 그런 것을 떠나서 잘만 되면 금검문의 사위가 될 수도 있었다.
한순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럼 누가 먼저 해보겠소?”
이존의가 물었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모두들 당장에 겨루고 싶었지만, 호남에서 도법이 가장 뛰어나다는 그를 상대로 오십 초식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혹시나 망신을 당할까 봐 망설여졌던 것이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한 젊은이가 용기 있게 가장 먼저 나섰다.
“호오… 제법 기개가 있구먼.”
이존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도를 뽑아 들었다.
따당!
그 젊은이는 삼 초식만에 무기를 놓쳤다. 부끄러움에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시작이 그러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그러자 홍검문에서 한 장년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허! 나는 분명 젊은이들을 상대한다고 했네만.”
“험! 저도 아직 장가를 못 갔으니, 젊은이라고 해주십시오.”
장년 사내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바람에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좋네. 오게나.”
장년 사내는 금검문에서 꽤나 알아주는 고수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분투를 했음에도 오십 초식을 채우지 못했다.
“제가 한 수 배워보겠습니다.”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뜻밖에도 연석강이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내 홍은령에게 사심을 품고 있었다. 달리 바람둥이겠는가?
그러니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호오, 연씨세가의 둘째 공자로구먼.”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습니다. 한 수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지. 오게나.”
연씨세가는 검법과 장법이 유명했다. 특히 가전절기인 연환이십팔식(連環二十八式)은 스물여덟 개의 초식이 마치 하나의 초식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연석강은 연환이십팔식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는 십팔 초식을 간신히 펼치고 패배를 인정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연석강을 위로하는 한편, 이존의의 뛰어난 무공을 극찬했다.
그 뒤로도 몇몇 젊은 사람들이 나섰지만 오십 초식을 채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홍기우마저 한 수 배울 요량으로 나섰지만, 오십 초식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설 젊은이가 없는 것 같구려. 패기 있는 젊은이들이 이리 없다니, 조금은 실망이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지목을 할까 하는데, 어떻소?”
“좋습니다!”
“나는 지목하지 말아주시오!”
“하하하하!”
이대로 더 이상 이존의의 실력을 보지 못할까 봐, 내심 불안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찬성을 했다. 무공이라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얻는 것이 많았다. 그러니 모두들 이런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흐음… 그럼, 자네가 나서는 것이 어떤가?”
이존의가 한 사람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앉아서 주양악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던 적운상은 모두가 일제히 쳐다보자 약간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