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2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6화
“손 당주, 어디서 감히 소성주께 무례를 범하는가?”
혁련광이 먼저 손득한을 다그쳤다.
손득환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언제 무례를 범했다는 겁니까?”
“솔직히 어제도 손 당주가 조금만 침착했으면 그렇게 많은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또 똑같은 실수를 하겠다는 건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그럼 어제 피해가 모두 저 때문이란 말씀입니까?”
“내가 언제 모든 피해에 대해서 말했나? 나는 두 번째 싸움의 피해에 대해서만 말한 거네!”
그에 대해선 손득환도 할 말이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그가 씩씩거리기만 할 뿐 말을 못하자, 사마경이 당시의 일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사절방을 움직인 자가 있어요. 천은방과 상관없이. 다시 말해서 우리를 노리는 제삼자가 있다는 뜻이죠.”
사마경이 냉정한 어조로 말을 꺼내자, 손득환 뿐만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소성주?”
“허어, 그럴 수가…….”
“사밀령과 첩밀각의 조사 결과 두 방의 연관점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심지어 천은방에서는 사절방의 등장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를 노리는 삼자가 있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구려.”
눈매를 꿈틀거리던 혁련광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사마경은 자신의 생각과 더불어서, 사밀령과 첩밀각이 조사한 내용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만약 우리가 천은방을 칠 때 사절방이 후미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정보에 따르면, 남양의 대봉문과 등주의 양가장이 무사들을 당하로 파견했다고 해요.”
어차피 그들 외에는 따로 정보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간부들로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저는 작년 봄, 강호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파천회가 사절방을 움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극과 독고태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사람은 의심의 대상에서 자신이 빠졌을 때 방심한다. 그들이 정말 음모자라면 방심할 기회를 주어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파천회?”
간부 몇 명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파천회에 대해서 아는 듯했다.
알면서도 위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음흉한 면이 있는 자들일 것이었다.
반면 ‘그런 단체도 있던가?’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너무 모르니 능력이 모자라는 거라 할 수 있었다.
결국 두 무리 모두 중용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리도 믿고 함께 일할 사람이 없던가?
사마경은 구천성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게 작금의 구천성이다. 이래선 사상누각일 뿐이야.’
그때 육선기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소성주가 기다리자고 했을 때는 적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소만, 혹시라도 이 육 모의 생각이 옳다면 말씀해 주시구려.”
사마경이 좌중을 한번 쭉 둘러보고 말했다.
“빠르면 오후가 되기 전에 철기보에서 보낸 지원무사가 도착할 거예요.”
간부들의 눈이 커졌다.
백리호도 생각지 못한 말에 화들짝 놀라서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이오?”
“그래요. 그들이 오면 작전을 다양하게 짤 수 있으니 저들을 공격하기가 한결 편해질 거예요.”
사마경의 대답에 혁련광이 물었다.
“몇 명이나 올 것 같소?”
“제 생각으로는 폭풍철기대 이백 정도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간부들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철기보의 기마무사들은 마상무예가 뛰어난 걸로 정평이 나 있어서 한때 하남 중부에서는 공포의 존재였다.
마상에서 쏘아대는 철시는 일류고수라 해도 막기가 힘들었고, 말을 타고 휘두르는 대도는 그 위력이 막강해서 두세 배의 적도 그들에게 휩쓸리면 버틸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철기보의 주력인 폭풍철기대, 그들이 온다면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흐음, 정말 그들이 온다면 큰 힘이 될 거요.”
“당연히 큰 힘이 될 거예요. 하지만 우리의 전력이 늘어난 만큼 저들도 전력이 보강되겠죠. 그러니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내일도 저들을 공격하기가 쉽진 않겠구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사밀령과 첩밀각의 정보를 토대로 계획을 다시 세울 거예요. 적을 물리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본 성 무사들의 목숨이 먼저니까요.”
그때였다.
수혼대 일조장 이철궁이 대연회장 안에 대고 외쳤다.
“소성주! 철기보의 기마대가 십리평에 도착했다 합니다!”
53장: 전야(前夜)
필양 북쪽 십리평에 도착한 철기보의 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평소보다 속도를 더 낸 터였다. 철기대의 말이 대부분 준마인데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휴식을 취하면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십리평에 자리를 잡은 철기대는 말에게 마음대로 풀을 뜯게 했다.
바로 그 시각.
신천장의 쪽문이 열리고 무사 열한 명이 장원을 나섰다.
평범한 무복을 입은 터라 누가 봐도 순찰조라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이 호양청이라면 결코 단순한 순찰조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와 동행한 열 명도 신광을 갈무리한 고수들이었다.
신천장을 나선 그들은 곧장 남동쪽으로 달렸다.
그로부터 두 시진 후, 호양청 일행은 석청산 선담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의 입구는 제법 험했지만 이십 리쯤 들어가자 산촌치고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그곳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고, 사냥을 하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그런데 그 산골마을에 오늘은 마을 주민보다 몇 배나 되는 무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사절방 무사들이었다.
고중조는 달랑 열 명의 호위만 대동하고 찾아온 호양청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책임자를 찾아왔다며 순순히 투항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떤 놈이 자신들의 위치를 발견했는가 싶었다.
수상한 놈이면 목을 쳐서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 전에 고문을 해서 자신들의 행적이 어디까지 알려졌는지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데 놀랍게도 천은방에서 왔다지 않는가.
그것도 방주인 호경담의 아들, 호양청이란다.
준수한 외모에 일자로 굳게 닫힌 입술, 흔들리지 않는 눈빛은 일세기재라는 천은공자의 소문 그대로였다.
“참으로 겁도 없는 친구군. 우리가 그대를 죽일지 모르는데도 이곳을 찾아오다니.”
“남자가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면서 목숨을 아까워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대에 대한 소문을 듣긴 했다만, 이제 보니 소문이 잘못된 것 같군.”
“그렇습니까?”
“천하에 보기 드문 기재라던데, 이제 보니 제정신이 아닌 정신병자였어.”
다짜고짜 미친놈 취급하는데 기분 좋을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호양청은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용기 있는 놈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응? 하하하하!”
고중조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전날의 암습 실패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더구나 든든한 뒷배였던 천한마검마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보니 내심 초조하던 터였다.
그런데 호양청과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답답하고 초조하던 가슴이 풀어지는 듯했다.
“아주 화끈한 청년이군.”
막호도 마음에 드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막 대협.”
“어쨌든 기분 좋게 해줬으니 목숨을 뺐진 않겠네.”
그쯤에서 고중조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래, 우리 기분을 풀어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닐 거고, 어디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나. 왜 우리를 찾아왔지?”
“말하기 전에 먼저 목을 좀 축였으면 합니다만.”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 사절방의 고수 다섯이 더 들어왔다. 장로 둘에 무사대를 이끄는 삼당의 수장들이었다.
사절방의 주요고수가 거의 모인 셈.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인 호양청은 그제야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 목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찻잔을 내려놓고 어깨를 편 그의 눈에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신광이 번뜩였다.
그의 달라진 모습에 고중조와 막호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했다.
호양청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구질구질한 설명은 사족일 뿐이었다.
“저희와 손을 잡지요.”
사절방의 간부들 모두 놀란 표정으로 호양청을 쳐다보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고중조가 호양청의 두 눈을 직시하고 말했다.
“손을 잡자? 천은방과 본 방이 좋지 않은 관계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세상을 살다 보면 원수와 손을 잡아야할 때도 있습니다. 하물며 저희 천은방과 사절방이 철천지원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거기다 동일한 적을 상대하고 있으니 손을 잡지 못할 이유도 없지요.”
“그 말도 맞네.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지.”
“제 말을 이해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단, 뒤통수를 때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겠지. 죽어라 싸워서 승리하고도 뒤통수 맞아서 꼬꾸라진 놈이 어디 한둘인가?”
“그 점이 걱정되신다면, 저를 인질로 잡아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도 역시 충격적인 제의였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친구군.”
“구천성과 싸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봐야겠지요.”
“허, 그 친구…….”
고중조가 어이없다는 듯 풀썩 웃고는 막호를 바라보았다.
“막 아우, 어떻게 생각하나?”
“천은방과 연수했다는 사실을 알면 방주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혼내면 혼나지 뭐. 저 친구 말대로라면, 우리 역시 구천성에 검을 들이댈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어. 연수하고도 이기지 못할 거면 혼자 싸워봐야 뻔한 결과고. 그런데 두려울 게 뭐 있겠나?”
막호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형님이 결정하십시오.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중조가 다른 두 장로와 삼당의 당주들에게 물었다.
두 장로 중 하나인 유월강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길이 없다면 연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소이다, 고 장로.”
삼당의 당주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구양명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만으로 구천성을 공격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 결국 전멸을 각오하거나, 분루를 삼키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천은방의 제의로 기회가 생긴 것이다.
“좋아, 방주께 가서 말씀드리게. 우리 사절방은 천은방의 친구로서 구천성을 상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네.”
가서 말하라는 것은 인질로 잡아놓지도 않겠다는 뜻.
“감사합니다, 장로.”
호양청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내내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
천은방과 사절방은 오래 전부터 미묘한 관계였다.
그의 조부 때, 친구처럼 지냈던 두 소방주들이 한 여자를 놓고 사랑싸움을 벌였는데, 그때부터 두 문파 사이에 메워질 수 없는 골이 생긴 것이었다.
그 바람에 원수지간까지는 아니어도 견원지간처럼 지냈다. 그저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싶어서 으르렁거리는 상대.
이곳으로 올 때도 그는 자신의 목이 달아날 가능성을 이 할 정도로 예상했고. 부상당할 가능성은 사할 정도로 잡았었다.
그럼에도 찾아온 것은, 사절방과 손을 잡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말씀하시지요, 고 장로. 경청하겠습니다.”
“구천성 무리 중에 고수가 있다는 걸 아는가?”
“장로와 호법은 물론이고, 이전과 각 단체들의 주인들이 많이 나섰다 들었습니다. 그 중에 고수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물론 그들도 강한 자들이지. 하지만 천한마검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고 할 수 있네.”
호양청이 놀라서 눈을 홉떴다.
“설마 그들 중에 천중십마 중 하나인 천한마검 구양명이 있단 말씀입니까?”
천중십마는 그냥 고수가 아니었다.
일류고수 수십 명을 혼자서 죽일 수 있는 일인 문파. 절정고수 몇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막을 수 있는 절대고수였다.
단 한 명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군. 그들 중에 천한마검이 있다는 게 아니네.”
“하, 하, 하, 저는 또…….”
호양청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웃음을 짓기에는 너무 일렀다.
“천한마검을 단신으로 막을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거지. 그것도 천한마검에게 패배감을 선사할 수 있는 고수가 말이야.”
호양청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연한 표정이 차지했다.
사실이라면 그자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도대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