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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6화

36화. 남악현의 형산파화 (1)

 

“어디 갔어? 적운상! 적운상!”

패악룡이 칼을 뽑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기, 뒤뜰에 계시던데.”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대답했다. 그는 무식함, 단순함, 과감함, 미련함을 두루 갖췄기에 흑곰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흑곰은 그동안 패악룡을 신처럼 떠받들었으나, 그가 적운상에게 한 방에 기절한 이후로는 그 마음이 약간 사그라진 상태라서 대답하는 것이 좀 뚱했다.

“뭐? 계시던데?”

흑곰의 존대가 기분 상했던지 패악룡이 인상을 팍 썼다.

“네. 거그 계시는디…….”

“시끄러!”

흑곰의 뒤통수를 세차게 한 대 후려친 패악룡이 당장에 뒤뜰로 향했다. 적운상은 그곳에서 금벽도문의 사내들을 모아놓고 일장훈계(?)를 하고 있었다.

“적운상!”

패악룡은 적운상을 보자마자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적운상이 슬쩍 상체만 틀어서 공격을 피하면서 칼을 잡고 있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빠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던 패악룡이 그대로 기절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오줌을 지려 하의는 축축했다.

그걸 보고 앞에서 시립해 있던 사내들이 눈을 크게 떴다. 패악룡은 금벽도문 최고수로 그들이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한 방에 기절한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데려다 눕혀.”

적운상이 한마디 하자 사내 둘이 후다닥 나와서 패악룡을 데리고 갔다.

“모두 모인 거냐?”

적운상이 묻자 박노엽이 바로 대답을 했다.

“네, 사지 멀쩡한 사람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입니다.”

“모두 몇 명이지?”

“방금 실려 간 패악룡까지 서른 두 명입니다.”

“음…….”

원래 삼백 명에 달하던 금벽도문이었지만, 일성과 막정위, 초사영에게 깨지고, 뒤이어 적운상에게 깨지고, 거기다 화산파의 도사들에게 또 깨지는 바람에 멀쩡한 사람들은 겨우 그들뿐이었다. 적운상을 이들을 모두 형산파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일처리는 잘 했고?”

“물론입니다. 죽거나 불구가 된 자들, 특히 가족이 있는 자들에게는 모두 보상을 했습니다.”

“돈 남았냐?”

“물론입니다. 그동안 일해용 그자가 모아놓은 돈이 꽤 됩니다. 보상을 하고도 아직 삼분지 일이나 남았습니다.”

“소문은 확실히 냈지?”

“물론입니다. 모두들 금벽도문은 화산파에 의해 무너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 가자.”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노엽을 비롯한 모두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대로를 걷자, 상인들과 오가는 행인들이 겁을 먹고 길을 비켜줬다.

* * *

 

형산파에 도착한 적운상은 그들을 연무장에 세워놓고, 사부인 임옥군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적운상의 설명을 모두 들은 임옥군은 황당함에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던 임옥군이 입을 열었다.

“저들이 고분고분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가 없는 틈을 타서 저들이 딴마음을 품으면 우리가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다른 이들의 목숨은 하찮게 여겨도 지들 목숨은 귀하게 여기는 놈들이거든요.”

“다른 방법은 없더냐?”

“모두 죽여 버릴까요?”

적운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 임옥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때의 적운상은, 그가 아는 적운상이 아니라 마치 딴 사람 같았다.

“사람의 목숨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네, 사부님.”

“흐음… 어쨌든 이미 이리된 것이니 당분간 지켜보자꾸나.”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니다. 일이 이렇게 좋게 끝난 것만도 어디냐. 잘했다. 어서 나가봐라.”

“네. 그런데, 나가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여주십시오.”

“뭐?”

“녀석들이 사부님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합니다.”

“끙. 그래. 그럼 같이 나가보자.”

임옥군이 어쩔 수 없이 적운상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낄낄거리며 잡담을 하던 사내들이 후다닥 줄을 맞춰 섰다.

“이분이 내 사부님이시다. 앞으로 나를 보듯, 아니 그 이상으로 존경심을 품고 대하도록.”

“네, 형님!”

사내들이 동시에 목이 터져라 대답을 하자 임옥군이 움찔하며 놀란 얼굴을 했다.

“뭣들 해? 인사드려야지.”

“반갑습니다! 사부님!”

사내들이 죽어라고 악을 쓰며 인사를 했다. 그것을 보고 임옥군은 마지못해서 손을 한 번 흔들어줬다.

“클클! 대면식을 하는 게냐? 아주 힘들이 넘치는구나.”

“사숙.”

구혁상이 뒷짐을 지고 다가오자 임옥군이 그를 봤다.

“손님이 와 있더구나. 원릉금검문에서 왔다고 한다. 같이 가보자.”

“네, 사숙.”

임옥군이 대답을 하고 구혁상과 함께 대청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적운상이 사내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지낼 곳을 깨끗이 청소한다! 요령 피우는 놈은 나한테 죽을 각오 하고, 먼지 하나 없이 하도록! 실시!”

“예! 형님!”

사내들이 크게 대답을 하고 우르르 흩어졌다.

“끙. 괜찮을까요, 사숙?”

“후후. 글쎄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운상이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 게다. 믿어보자꾸나.”

“휴우… 알겠습니다.”

* * *

 

“아! 처음 뵙겠습니다. 금검문의 홍기우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동생인 홍은령입니다.”

“처음 뵙겠어요.”

임옥군과 구혁상이 대청으로 들어서자 홍기우와 홍은령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허허. 반갑구려. 내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임옥군이오. 앉으시오.”

“네.”

다 같이 자리에 앉자, 잠시 후에 은서린이 차를 내놓고 갔다.

“그래,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셨소?”

“실은 두어 달만 있으면 할아버님의 고희(古稀)잔치가 있습니다. 해서 초청장을 전하려고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호오… 그랬구려.”

홍기우가 내미는 초청장을 임옥군이 받아 들어 옆에다 두었다.

“금검문과 형산파는 그동안 왕래가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서로 좋은 인연을 맺고 싶다고, 할아버님께서 말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하하하. 물론이오.”

“말씀을 낮추셔도 됩니다. 편하게 대해주셔야 저도 편할 것 같습니다.”

“음. 그럼 그러지. 할아버님의 뜻은 잘 알았네. 초청에 응하도록 하지. 흠, 아무래도 사숙께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좀 쉬고 싶구나. 운상이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쪽에서도 그걸 원할 테니까.”

구혁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홍기우를 봤다. 그러자 홍기우가 멋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아무나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적 소협이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구나.”

“하지만 운상이를 보내면…….”

당장에 밖에 있는 금벽도문 사내들이 문제였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적운상이 없는 틈을 타서 저들이 해코지를 하려고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달리 흑도문파겠는가?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었다.

“밖에 있는 놈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당장에 가는 것은 아니니 그동안 다잡아놓으면 괜찮을 게다.”

“알겠습니다. 일단 운상이하고도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폐가 안 된다면 그때까지 여기서 머물러도 되겠는지요?”

“음, 그렇게 하게나.”

“감사합니다.”

홍기우가 포권을 취하며 홍은령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홍은령도 생긋 미소를 지었다. 적운상과 함께 지내게 되어 기뻤던 것이다.

* * *

 

“대사형.”

“음… 운상이구나.”

침상 위에 누워 있던 막정위가 고개를 돌려 적운상을 봤다.

“훗! 이야기는 들었다. 내 복수를 아주 통쾌하게 해줬더구나. 연오가 방금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갔다.”

“다리는 좀 어때요?”

적운상이 침상에 걸터앉으며 묻자 막정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은 것 같다.”

“다행이에요.”

적운상이 막정위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만약 이대로 막정위가 잘못됐다면, 적운상은 순식간에 살인귀로 변해서 밖에 있는 사내들을 모두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적운상은 사형제들에 대한 정이 깊었다. 구혁상을 따라가서 그 같은 혹독한 수련을 하면서도, 정신이 붕괴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사형제들에 대한 정 때문이었다. 사형제들을 생각하면서 버텨냈기에 지금의 적운상이 있었던 것이다.

“녀석…….”

막정위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적운상의 손을 꼭 잡았다.

“운상아…….”

“네, 대사형.”

“네가 와서 좋구나. 참 좋다.”

“네, 대사형. 빨리 나아서 함께 수련해요.”

“그래. 그러자꾸나.”

막정위가 훈훈한 눈으로 적운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막정위의 상태를 보러 왔다가, 우연찮게 방 밖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 초사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못 한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 * *

 

며칠이 흘렀다. 그간 적운상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야 했다. 사제들 무공 가르치랴, 금벽도문의 사내들 다그치랴, 거기다 금벽도문과 싸우면서 깨우친 것들도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적운상이 잠시 쉴 생각으로 전각의 계단에 앉아 있는데 박노엽이 다가왔다.

“쉬시는 겁니까?”

“응. 요즘은 너무 바쁘군.”

“하하. 한가하게 사는 것보다야 좋지 않겠습니까?”

“녀석들은 뭐 해?”

“중앙본관의 지붕 수리하고 주변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불만이 많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목숨이 아까운지 대놓고 불평하는 놈들은 없습니다.”

“그래. 그러다 보면 좀 바뀌겠지.”

적운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 벌렁 누웠다.

“하아… 좋다.”

“저기…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해봐.”

“그동안 제가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봤는데, 이대로는 형산파가 다시 일어서는데 상당히 더딜 것 같더군요.”

“뭐?”

생각지도 못하게 형산파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박노엽의 입에서 나오자, 적운상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좀 남아서 제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만…….”

“말해 봐.”

그때부터 박노엽은 침을 튀겨가면서 한참이나 그간 생각해 온 것을 말했다. 그것을 듣고 난 적운상은 감탄한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괜찮은데.”

“하하.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아니야. 책사라더니 제법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왜 그런 데서 썩고 있었는지 모르겠군.”

“그게, 전에도 말했듯이 금벽도문의 문주가 워낙에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 제 말을 들어 처먹었어야 말이죠.”

“아무튼 알았어. 내가 사부님한테 말해 볼 테니까 방금 했던 이야기 구체적으로 계획을 잡아서 다시 한 번 해봐.”

“헛! 정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박노엽은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지자 기분이 좋았다. 금벽도문에 있을 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정말 책사다운 일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형산파 사람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심지어 몸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막정위까지도 나왔다.

“시작해 봐.”

적운상의 말에 박노엽이 약간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험! 저, 저는 아시다시피 금벽도문의 책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개과천선을 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적 소협에게 감사를…….”

“그딴 인사치레는 빼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네. 험!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여기를 봐주십시오.”

박노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나무로 된 병풍에 하얀 종이가 걸려 있고, 그곳에 큼지막하게 ‘형산파 재건 계획’이라고 적혀있었다.

“에… 문파의 세를 키우는 데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방법들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제자들을 많이 받아서 아주 잘 키운 후에, 이름을 날리게 하고, 그 덕에 다시 제자들을 받아서 세를 불리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지금의 형산파 사정상 자질 좋고, 배경 좋은 제자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임옥군은 마음이 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겁니다.”

박노엽이 ‘형산파 제건 계획’이라고 적혀 있던 종이를 잡아서 뗐다. 그러자 그 뒤에 있는 종이에 큼지막하게 ‘남악현의 형산파화’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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