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33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3화
33화. 갱생 (1)
적우자의 나이는 이미 환갑을 넘었다. 게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도사였다. 그런데도 성격이 불같았다.
그는 금벽도문에 도착하자마자 대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놀라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빈도는 화산파의 적우다! 문주는 앞으로 나서라!”
내공을 실은 외침이 사방으로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 기세에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놀라서 주춤거렸다.
“문주가 없는가?”
적우자가 다시 한 번 내공을 실어서 크게 소리쳤다. 사내들은 그저 주춤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다짜고짜 문주를 나오라고 하니, 문주가 나오겠는가?
게다가 문주를 불러올 시간이나 주고 닦달을 해도 할 것이지…….
“화산파의 제자들은 들어라.”
적우자가 같이 있는 젊은 도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문주가 나타나서 일성의 죽음에 대해 해명을 할 때까지 손에 사정을 두지 말거라.”
“장로님의 명을 받듭니다.”
젊은 도사들이 동시에 대답을 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매화진을 펼쳐서 장로님을 중심으로 산개했다가 모인다!”
현양이 크게 소리쳤다. 그는 이곳에 있는 매화검수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다.
“네! 사형!”
세 명의 매화검수와, 두 명의 제자들이 크게 대답하며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쉬쉬쉬쉿!
“크아아악!”
“아아악!”
화산파 도사들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화산파의 매화이십사식은 굉장히 유려한 검법으로 쾌(快)나 중(重)보다는 변(變)에 많이 치우친 검법이었다.
검로(劒路)가 복잡하고, 변화가 교묘하기 짝이 없어, 고수들도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웠다. 그러니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거기다 그들은 매화진(梅花陣)까지 펼치고 있었다. 여섯 명의 젊은 도사들이 적우자를 중심으로 한 방향씩 맡아서, 치고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에 적우자는 아직까지 검도 뽑지 않고 있었다. 사내들이 근처까지 오지를 못하니 검을 뽑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 구혁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화산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문정파와 삼류문파의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저거였다. 명문정파에는 저런 진법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그래서 소수로도 능히 다수를 상대할 수가 있다.
그에 비해 삼류문파에는 저런 진법이 없었다. 마구잡이로 덤벼든다. 이에 지금과 같이 난전이 벌어지면 같은 편끼리도 눈먼 칼에 맞아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으로 길을 뚫어라!”
적우자가 크게 소리치자, 여섯 명이 횡으로 서서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쉬쉬쉬쉿!
“크아아악!”
“아아악!”
마치 커다란 벽이 앞으로 밀고 가는 것 같았다. 여섯 명의 젊은 도사들이 앞에 있는 커다란 전각까지 일직선으로 뚫고 갔다.
적우자는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뒤를 따르자.”
“네, 사숙조님.”
구혁상의 말에 초사영이 대답을 하며 같이 움직였다.
* * *
“뭐야? 화산파?”
조금 마른 몸에 깐깐한 인상의 장년 사내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가 바로 금벽도문의 문주 일해용이었다.
“그렇습니다, 문주님.”
“끄응. 그 자식들이 왜 쳐들어온 거냐?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게…….”
일해용에게 상황을 설명했던 사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문사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금벽도문의 책사(策士) 노릇을 하는 자였다.
이름은 박노엽으로 내일모레면 나이 서른이었다. 무공은 완전히 바닥이었으나 나름 책도 많이 읽고 머리회전도 뛰어나서 이런 작은 문파의 책사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곳에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일이 터졌을 때 보고를 하는 것이 다였다. 문주인 일해용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 아무리 좋은 계책을 내놓아도 도통 듣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말해!”
“어제 형산파와 시비가 붙었잖습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형산파에서 도움을 청한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성의 죽음 때문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일성이 화산파라는 것을 알아본 자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를 죽일 때는 워낙에 경황이 없었고, 죽이고 난 후에는 막정위와 초사영을 쫓느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확인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일성도 막정위, 초사영과 한패라 여겼기 때문이다.
“뭐야? 이런 썅!”
일해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탁자 위에 있는 꽃병이 보이자, 그것을 대뜸 집어서 던졌다.
쾅!
박노엽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여서 그것을 피했다. 그러자 꽃병이 뒤에 있는 문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그 자식들이 어떻게 화산파와 끈이 닿아 있는 거야? 그러게 내가 잘 알아보고 애들을 보내라고 했잖아!”
박노엽은 억울했다. 사실 그 말은 일해용이 아니라 박노엽이 했던 말이었다.
어제 형산파와 시비가 일어서 그들을 쫓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박노엽은 일단 물러선 후에 준비를 제대로 해서 공격을 하자고 했었다.
형산파가 지금이야 몰락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지만, 한때는 명성이 자자했던 곳이다. 그런 곳은 뭐가 남아도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일해용은 들은 체도 안 하며 이참에 형산파를 쓸어버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 고작 백 명을 보냈다.
박노엽은 불안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열 명도 안 되는 그깟 문파쯤은 백 명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났다.
오늘 아침나절에 형산파를 치러 갔던 부하들이 전멸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백여 명 가까이 몰려갔던 이들이 모두 당하고 살아 돌아온 것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것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일해용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이번에는 화산파가 쳐들어왔다.
구혁상과 초사영까지 합해봐야 열 명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만으로도 금벽도문은 초토화되고도 남았다. 화산파가 달리 명문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 잠깐 기다리십시오, 문주님.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일해용이 이번에는 탁자에 있던 찻잔을 집어 던졌다.
쾅!
박노엽이 몸을 웅크리자 찻잔이 문에 부딪쳐 깨졌다.
“어쭈? 피하지? 앙? 피해!”
“아, 아닙니다, 문주님. 일단 좀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박노엽이 진땀을 흘리며 일해용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너 같으면 흥분이 가라앉겠냐?”
“그래도 우선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는 중에도 화산파의 도사들에게 우리 애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후우… 그래. 너 일단 일 끝나고 보자. 몇 놈이나 와 있어?”
일해용이 감정을 좀 추스르며 물었다.
“모두 여덟 명입니다.”
“당연히 매화검수도 있겠지?”
“벌써 백 명 가까이 당했습니다. 밖에 나가 있는 애들 모두 불러오라고 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제길… 가서 말로 잘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턱도 없습니다. 체면에 목숨 걸고 사는 인간들이 그들입니다. 아주 작정하고 나선 것 같은데 그냥 물러나겠습니까?”
“음…….”
일해용이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박노엽이 불쑥 말을 꺼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방법?”
“금마도에서 오신 분들이 있잖습니까? 그분들에게 부탁을 해보십시오.”
“들어줄까?”
“매달려야죠.”
박노엽의 말대로였다. 문파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게 생겼는데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그 수밖에 없겠군. 애들 좀더 보내서 버티게 하고, 패악룡은? 그 자식은 돌아왔어?”
“찾으러 갔습니다.”
“그 자식은 꼭 필요할 때 없어. 빨리 가서 찾아와.”
“네. 알겠습니다.”
일해용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길이 보이자 얼굴에 화색이 좀 돌았다.
* * *
탕탕탕!
“형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침대에 앉아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봤다. 입고 있는 옷이 야시시한 것으로 봐서 기녀가 분명했다.
“놔둬.”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사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남자답게 생긴 것 같으면서도 여린 구석이 보이는, 아주 준수한 사내였다. 여인들이 길거리에서 그와 마주친다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볼 정도의 미남자였다.
“하지만…….”
탕탕탕!
“형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금벽도문이 박살나게 생겼어요! 형님!”
“아직도 그러고 있어? 비켜!”
쾅!
문이 박살이 나며 한 사내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더니 사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화산파의 도사들이 쳐들어와 우리 애들을 마구 죽이고 있습니다.”
“화산파?”
사내가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습니다.”
“몇 명이냐?”
“모두 여덟입니다.”
“너무 많은데.”
“도와주십시오, 형님!”
쿵!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가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그러자 문밖에서 주춤거리고 있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같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었다.
“도와주십시오, 형님!”
“쯧! 니들 오늘 운 좋았다.”
기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들의 얼굴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일해용이 말하던 금벽도문의 최고수 패악룡이 바로 그였다.
* * *
따당!
“크흡!”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하나인 현우가 뒤로 밀렸다. 이곳에 와서 이렇게 밀리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겨우 일검을 받아냈을 뿐인데, 검을 쥐고 있는 손이 얼얼했다.
현우는 그제야 상대를 제대로 확인했다. 흑색의 장포를 걸치고 있는 노인이 검 끝이 낫처럼 구부러져 있는 기형검(奇形劍)을 들고 서 있었다.
옆에 있던 현양이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땅!
“헉!”
현양은 이곳에 있는 매화검수들 중 가장 강했다. 그런데도 그 노인의 일검에, 현우와 마찬가지로 뒤로 튕겨져 나왔다.
그 노인 말고도 고수가 또 한 명 있었다. 체구가 작고 두 개의 구절편(九節鞭)을 쓰는 노인이었는데, 현청과 현정이 그에게 계속 고전을 하고 있었다.
적우자가 두 명의 노인을 유심히 살폈다. 명문정파 사람들은 저런 기형무기를 쓰지 않는다. 그러니 사파이거나, 아니면 정사 중간에 있는 인물들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들의 무공이 강하다는 데 있었다. 매화검수들만으로는 두 노인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물러나라!”
적우자가 크게 일갈하자 노인들과 싸우던 화산파의 도사들이 일제히 뒤로 몸을 뺐다. 그러자 지금까지 뒤에서 보고만 있던 일해용과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뒤를 박노엽이 조심조심 따라왔다.
“나를 찾았소? 내가 바로 금벽도문의 문주인 일해용이오. 그대들은 누구요?”
일해용은 그들이 누군지 알면서도 물었다.
“흥! 우리는 화산파에서 왔다.”
“호오… 그리 명성이 쟁쟁한 곳에서 백주대낮부터 이게 무슨 짓이오? 도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리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냔 말이오?”
“시작은 네놈들이 먼저 하지 않았느냐?”
“뭐? 우리가 뭘 어쨌기에?”
일해용은 정말 모르고 그런 말을 한 것인데, 적우자가 보기에는 시치미를 떼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정녕 네놈들이 한 짓을 모른단 말이냐?”
“험! 험한 강호에서 살다 보면 시비가 일 수도 있는 것 아니오. 형산파와의 일을 중재하기 위해 왔다면 좋게 말로 할 것이지 왜 다짜고짜 칼질을 한단 말이오?”
“뭐를 중재한단 말이냐? 빈도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내 제자인 일성 때문이다.”
“응?”
적우자의 말에 일해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형산파에서 저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일성의 유해(遺骸)는 어디에 있느냐?”
일해용이 무슨 말인지 몰라 박노엽을 봤다. 하지만 박노엽도 어찌 된 일인지 몰라 고개를 저었다.
“모른 척할 셈이더냐? 어제 네놈들이 죽인 도사가 바로 빈도의 제자였느니라!”
“헉!”
일해용이 기겁을 하며 다시 한 번 박노엽을 봤다.
박노엽은 어제 형산파와 시비가 일었다며 부하들이 보고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들 중 한 명을 죽였다고 했었는데, 그럼 그가 형산파가 아니라 화산파 사람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