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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3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31화

31화. 조우(遭遇) (3)

 

“이제 말해 보시오.”

“차라리 저들을 죽이는 것이 나았을 것이오.”

구혁상이 하는 말에 적우자가 낮게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봤다. 상황이 위급하면 부탁을 하며 도움을 청할 것이지, 저리 뻣뻣하게 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일성에 대한 것만 아니라면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도움을 바라는 그대의 마음은 알겠으나, 이유 없이 살인을 할 수는 없소.”

“오해를 했구려. 우리는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오. 사영아.”

“네, 사숙조님.”

“여기 적우진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거라.”

“네.”

초사영은 적우자에게 일성과 함께 금벽도문과 싸웠던 일과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적우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건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화산파의 젊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성이 죽었다는 말에 한 명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성은 무재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해서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 사형제들이 힘든 일을 당하면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럼 그의 시신조차 챙기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단 말인가?”

초사영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적우자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적우자도 알고 있었다.

막정위나 초사영은 자신들의 목숨을 챙기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성의 시신까지 챙기겠는가?

그러나 적우자는 일성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지고,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 그렇게라도 쏟아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미처 그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흥! 저들끼리 살자고 도망치기에 바빴겠지.”

대놓고 무시하는 말에 초사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지금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일성의 복수를 통해 너희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아니냐?”

과연 연륜이 있는 적우자라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그는 구혁상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어봤다. 하지만 구혁상 역시 연륜이라면 그에 못지않았다.

“허! 이거 말이 너무 심하구려.”

“무엇이 심하단 말인가?”

“제자의 죽음에 분개하는 그 마음은 이해가 가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먼저 나선 것은 그 젊은 도사였소. 여기 있는 사영이는 단지 그를 돕기 위해 나섰을 뿐이오. 그 와중에 사영이의 사형은 중상까지 입었소. 그런데도 젊은 도사의 죽음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알려졌는데도 무릅쓰고 이렇게 다시 마을로 내려왔소.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찌 그리 말할 수가 있단 말이오? 우리네가 안전을 도모하려면 벌써 몸을 피해도 피했을 것이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구혁상이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 적우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구혁상이 금벽도문에 얼굴이 알려진 초사영을 위험을 무릅쓰며 데려온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그는 이쪽에서 성의를 보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화산파에서도 이쪽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구혁상 혼자 와서 일성에 관한 일을 전했다면 분명 계속 무시만 당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의협심을 가지고 뜻을 합쳐 행한 일이오.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 의기만은 높이 쳐줘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엉뚱한 우리네에게 화를 내지 마시오. 정작 화를 낼 곳은 따로 있지 않소? 우리는 이제 전할 말을 모두 전했으니 이만 돌아갈까 하오.”

구혁상이 포권을 취했다. 적우자는 구혁상의 말을 들으면서 화가 좀 누그러지자 두 사람을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간에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성의 죽음을 전해주었다. 신세를 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내는 것은 예의도 아닐뿐더러,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짓이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더 할 말이 있으시오?”

“아이들이 그렇게 일을 벌였으니 마무리는 지어야 하지 않겠소. 우리는 이곳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소. 그러니 금벽도문까지 만 안내를 부탁하오.”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리다.”

구혁상이 동의를 하고 앞장서자 적우자와 화산파의 도사들이 살기를 가득 풍기며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금벽도문의 사내들이 두어 명만 남고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다.

모든 것이 구혁상이 뜻한 대로였다.

* * *

 

홍은령 일행은 적운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뒤를 따라갔다.

적운상은 큰길을 따라가다가 길가에 있는 커다란 객잔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호남객잔(湖南客棧)이라 쓰여 있는 그곳은 이곳 남악현에서 가장 큰 객잔이었다.

“왜 객잔으로 가는 거죠, 오라버니?”

“나도 모르겠다.”

“지금 들어가면 들키지 않을까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어떠냐?”

“제가 슬쩍 보고 올게요.”

“그건 좀…….”

홍기우가 말리려고 했으나 이미 홍은령은 객잔의 입구로 후다닥 달려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홍기우가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홍은령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고 객잔 안을 봤다. 객잔은 이층으로 되어 있었다. 곳곳에 탁자가 놓여 있고,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적운상은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것을 확인한 홍은령이 손짓으로 홍기우를 불렀다.

그와 무사들이 다가오자 재빨리 손을 잡고 일층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이층의 난간 너머로 적운상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때가 이른데, 저녁을 먹으려는 건가?”

“모르겠어요.”

홍은령이 그렇게 대답하며 적운상을 힐끔거리고 있는데, 객잔 안으로 네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풍기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흑도의 무리들 같았다.

그들은 홍은령이 앉아 있는 곳과 반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을 보고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층으로 내려와 그들에게 다가갔다.

홍은령과 홍기우는 혹시라도 들킬까 봐 재빨리 몸을 낮추고 그를 봤다. 다행히 적운상은 이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금벽도문이냐?”

적운상이 묻자 네 명의 사내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잔뜩 주눅이 들었다.

적운상은 풍기는 박력이 굉장했다. 여차하면 칼질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에 사내들은 잔뜩 긴장하며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꼭 쥐었다.

“대답해. 금벽도문이냐?”

“그, 그렇소. 무슨 일…….”

쾅!

사내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적운상이 다짜고짜 그의 머리를 잡아서 탁자에 찍은 것이다.

그와 같이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이 움찔하며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왼손으로 우측에 있던 사내의 턱을 안쪽으로 후려쳤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는 좌측에서 칼을 뽑던 사내의 손을 내려치자 반쯤 뽑혔던 칼이 다시 쏙 들어갔다.

그가 당황할 사이도 없이 적운상은 왼손으로 그의 머리를 잡아 탁자에 찍었다.

쾅!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 남은 한 명이 적운상을 보며 몸을 덜덜 떨었다. 나이가 앳되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들 중 막내인 것 같았다.

“몇 살이냐?”

“여, 여…열여섯 살…….”

그는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름.”

“네, 네?”

“이름이 뭐냐?”

적운상이 탁자에 있던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우면서 물었다.

“자, 장동오입니다.”

그가 간신히 대답을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적운상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은 후에 장동오를 보며 말했다.

“방금 봤지?”

“네? 네.”

“가서 그대로 전해.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아, 알겠습니다.”

“좋아. 가봐.”

“네.”

장동오가 대답을 하고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적운상은 기절해 있는 놈을 옆으로 밀어내고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

“한 명을 그냥 보내준 것으로 봐서는 그들과 한바탕 하려는 것 같다.”

“그들이 누군데요?”

“음…….”

누군지 몰라 홍기우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호위무사가 대신 대답을 했다.

“아마도 금벽도문일 겁니다.”

“금벽도문?”

홍은령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홍기우는 금벽도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세력입니다.”

“사파야?”

“네. 흑도문파입니다.”

“음…….”

홍은령은 살짝 걱정이 됐다. 그녀는 적운상의 무공이 오라버니인 홍기우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러니 자연히 걱정부터 앞섰다. 실력도 안 되면서 왜 금벽도문에게 시비를 거는 걸까?

혹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 그들에게 당했을 거야. 그래서 우리보고 객잔에서 기다리라고 한 거야. 형산파로 데려갈 수가 없으니까. 그럼 아까 그 모습은… 화가 나서 그랬던 거구나.’

홍은령은 아까 적운상이 보자마자 짜증을 내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훗!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오라버니.”

“왜?”

“아까 약속한 거 잊으면 안 돼요.”

“무슨 약속?”

“적 오라버니가 위험하면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음…….”

홍기우가 조금 난처한 얼굴을 했다. 상대가 세력이 강한 흑도문파였기 때문이다.

흑도문파와 척을 지면 완전히 끝을 봐야 했다. 어설프게 상대하다가는 이쪽이 되레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단 적운상을 도와주면 중간에 손을 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단지 금벽도문만 상대한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 뒤에 버티고 있는 형양호왕문(衡陽虎王門)이 나선다면 문제가 컸다.

현재 호남성에는 수많은 문파들이 난립을 하고 있었다. 그 중 유난히 세력이 강한 일곱 개의 문파를 일컬어 사람들은 호남 칠대세력이라고 불렀다.

형양호왕문은 원릉금검문과 마찬가지로 호남 칠대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니 홍기우가 나서면 금검문이 치고 들어오는 줄 알고 오해를 하며 호왕문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그에게도 무슨 생각이 있을 것이다. 무작정 저리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홍기우가 그렇게 돌려서 말하자 홍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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