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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6화

26화. 협의로운 마음 (1)

 

“헉!”

주양악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적운상은 놀라서 기겁을 했다. 이게 도대체 여자의 방이란 말인가?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벗어서 던져놓은 옷들은 며칠이나 빨래를 안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쪽에는 먹다가 만 음식들이 곰팡이가 슬어 가득하니 널려 있었고, 그 옆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거기서 나는 악취에 적운상은 숨을 쉴 수가 없어 머리가 띵 했다. 새외에서 독에 중독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만도 참을 수가 없건만 더 가관인 것은 주양악이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수련을 해서 땀을 많이 흘렸을 텐데도,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엎어져서 코를 골고 있었다. 수련을 할 때 주양악 근처만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크으… 이 녀석 정말…….”

적운상이 발밑을 조심조심하며 주양악에게 다가갔다.

“주양악!”

“네! 사형!”

적운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양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풍뢰십삼식을 두어 초식 펼치더니, 그대로 픽 쓰러져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걸 보고 적운상은 어이가 없었다.

‘방은 나중에 치우고 일단 씻겨야겠군.’

적운상은 주양악이 갈아입을 만한 옷을 찾아봤다. 하나도 없었다. 옷장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방에 널려 있는 것들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을 다시 입히려고 했으나 곧 포기했다. 웬만큼 더럽고, 웬만큼 냄새가 나야지, 이건 완전히 걸레가 따로 없었다.

적운상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옷을 하나 꺼내 왔다. 그리고 주양악을 어깨에 둘러메고 방을 나와, 물을 받아놓은 곳으로 향했다.

“주양악! 일어나! 씻고 자라! 씻고! 앙!”

요지부동이었다. 주양악은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비몽사몽하면서 눈을 뜨지 못했다.

‘그깟 수련이 그렇게 힘들었나?’

적운상은 한숨이 나왔다. 그가 수련할 때는 지금보다 더했었다. 하지만 주양악의 이런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약해졌다.

‘내일은 좀더 자게 놔둬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적운상이 주양악을 품에 안고 머리를 뒤로 젖힌 후에 물을 부었다.

“으아아아악! 뭐야? 사형!”

“갑자기 움직이지 마! 물 튀잖아!”

“이게 무슨 짓이에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닥치고 가만히 있어!”

적운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바동거리던 주양악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간 호되게 욕을 먹으면서 수련한 후유증의 하나였다.

“이제야 깼냐? 좀 씻고 다녀라. 하아…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헤헤. 사형이 머리 감겨주니까 기분 좋다.”

“좋기도 하겠다.”

주양악은 적운상의 손길에 머리를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사형.”

“왜?”

“사형이 돌아와서 참 좋아요.”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운상의 손이 멈칫했다.

“사부님도 전과 다르게 기운이 넘치시고, 사제랑 사매들도 모두 사형을 좋아하잖아요. 이제는… 말없이 가지 마요…….”

적운상은 주양악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멋쩍음과 쑥스러움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곧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어디 안 가. 같이 형산파를 일으켜 세워야지. 그러니까 너도…….”

드르렁! 푸우…….

“자냐?”

적운상은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 * *

 

뾰로롱! 짹짹!

어디에선가 산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으로는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었다.

“으음…….”

몸을 뒤척이다가 잠에서 깬 주양악이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악! 늦었다! 늦었어!”

아침수련 시간에 늦었다는 생각에 우왕좌왕하던 주양악이 갑자기 멈칫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뭐야? 여긴 어디야?”

방이 너무나 깨끗했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창문까지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광이 나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딴 방에 와서 잤나?’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의 방이 분명했다. 그 지저분하던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이렇게 청소를 해놓은 걸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침상에서 내려오다가 또 한 번 놀랐다. 머리가 찰랑거리면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침이면 냄새가 풀풀 나고, 가려워서 몇 번이나 벅벅 긁어야 진정이 되던 머리가 찰랑거리며 향까지 났다. 그리고 보니 몸도 개운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어?”

입고 있는 옷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남자 옷이었다. 그제야 주양악은 어젯밤에 적운상이 머리를 감겨주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옷이 모두 줄에 널려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 햇살을 등지고 서 있었다.

주양악이 손을 들어 햇살을 가리면서 그를 자세히 봤다.

“적 사형?”

“그래. 이제 일어났어?”

적운상이 빨래를 털다 말고 그녀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 주양악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보고 이렇게 두근거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형! 그, 그거…….”

주양악이 적운상의 손에 있는 옷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왜?”

적운상이 이유를 몰라 멍한 눈을 했다. 그사이에 주양악은 그의 손에 있던 옷을 낚아채서 뒤로 숨겼다. 적운상이 털던 것이 그녀의 가슴가리개였기 때문이다.

“참 나. 난 또 뭐라고. 이제 다 컸다 이거냐?”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하는 말에 주양악이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앞으론 자주 좀 씻고 다녀. 방도 치우고. 빨래도 하고.”

“수련이 너무 힘드니까 그렇죠. 쉬는 날에 다 하려고 그랬어요.”

“하! 쉬는 날 없는데.”

“에?”

주양악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적운상을 봤다. 그러자 적운상이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난 후에 피곤한 듯이 목을 탁탁 두드리면서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다 알면서. 당분간은 수련 쉬는 날 없어.”

“언제까지요?”

주양악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글쎄? 한 오 년? 아니지. 너는 좀 둔하니까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에엑!”

주양악이 경악을 하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적운상이 그런 말을 한 건 예전에 수련하던 때를 떠올리며 자신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때 적운상은 오 년 동안 밤낮없이 죽어라고 수련만 한 결과, 무상지검의 경지에 올랐었다.

주양악도 그렇게 수련을 한다고 해서 과연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를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호되게 수련을 시키다 보면 그 비슷한 경지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적운상의 생각이었다.

“아, 그보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뭐요?”

“연란이 말이야. 마을에 내려가서 장사할 때 혹시 이상한 거 못 느꼈었어?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다든지, 어디를 자꾸 간다든지 하는 거.”

“아니요. 전혀요.”

“흐음…….”

“그건 왜 물어봐요? 어! 저거 둘째 사형 아니에요? 벌써 돌아왔…….”

말을 하던 주양악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돌려 주양악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던 적운상도 마찬가지였다.

초사영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군가를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이 막정위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대사형!”

주양악이 놀라서 달려가는데 옆에서 누군가 휙 하니 지나쳐 갔다. 적운상이었다.

“넌 가서 사부님과 사숙조님에게 알려!”

“네? 네.”

적운상이 소리치자 주양악이 몸을 돌려 임옥군과 구혁상의 방으로 달려갔다.

“초 사형!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적운상이 다가오자 초사영이 흠칫하며 경계를 했다.

“저 적운상입니다.”

“뭐?”

초사영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잠시 적운상을 봤다. 너무 바뀐 모습에 도저히 그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유심히 얼굴을 보니 예전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정말 운상이냐?”

“네, 사형. 그보다 어찌 된 일입니까? 대사형은 왜 그런 거예요?”

“나중에 이야기하자. 사부님은?”

“양악이가 깨우러 갔어요.”

“시간이 없다. 그들이 여기까지 올지도 몰라. 대사형을 부탁한다.”

초사영이 업고 있던 막정위를 내려놓고, 다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초 사형!”

적운상이 초사영의 팔을 잡자 그가 뒤를 돌아봤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대사형을 방에 눕혀요. 제가 나가볼게요.”

초사영은 잠시 적운상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하게 말하는 적운상의 모습에서 묘하게 박력이 느껴졌던 것이다.

적운상이 그를 지나쳐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저 녀석, 정말 적운상인가?’

초사영이 적운상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막정위를 다시 업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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