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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4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4화

24화. 무상지검 (1)

 

이른 아침.

아침 수련을 하기 위해 은서린은 나연란, 나연오와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주양악은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기에 포기하고 먼저 가는 길이었다.

“사부님.”

“그래.”

늘 그렇듯이 임옥군은 벌써 나와서 뒷짐을 지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악이는 또 늦잠이더냐?”

“아니요. 배가 아프다고 해서…….”

“흥! 항상 같은 핑계구나. 아직 자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당장 가서 깨워…….”

임옥군이 화를 내다가, 뭐를 봤는지 말끝을 흐렸다. 구혁상이 적운상과 함께 오고 있었는데, 그 뒤에 주양악이 뚱한 얼굴로 끌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부스스한 모습을 보아하니 자다가 끌려 나온 것 같았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사숙.”

“그래. 아침 공기가 좋구나.”

“사부님.”

“오냐. 같이 수련을 하러 나왔느냐?”

“아닙니다.”

“응?”

당연히 그렇다는 대답을 할 줄 알았건만 아니라고 하자 임옥군이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임옥군의 시선을 피하면서 구혁상을 봤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이야기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험! 너는 나하고 차나 마시자.”

“네?”

뜬금없는 구혁상의 말에 임옥군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침수련은 운상이에게 맡기고, 이리 오너라.”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언제까지 네가 가르칠 건 아니지 않으냐?”

“그야 그렇지만…….”

“왜? 운상이가 못 미더우냐?”

구혁상의 말에 임옥군이 적운상을 봤다. 그동안 구혁상을 따라다니면서 무공을 열심히 수련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구혁상의 무공이 어떤지 아는데, 적운상이 아무리 노력을 했다한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임옥군의 생각이었다.

“사부님. 사숙조님 말대로 저쪽에서 쉬고 계세요.”

“뭐 해? 빨리 안 오고.”

구혁상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임옥군이 마지못해서 비켜났다.

“사숙…….”

“괜찮다. 저 녀석은 이미 너나 나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임옥군이 놀라서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확인한 것이 딱 십이 초식이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가 전력을 다해서 버틴 것이 딱 십이 초식이란 말이다. 아마 지금은 삼 초식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허!”

임옥군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클클. 안 믿기냐? 운상이는 이미 오 년 전에 무상지검(無想之劍)의 경지에 들었다.”

구혁상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임옥군은 너무나 놀라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상지검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수련을 했기에 저 나이에 그런 경지에 들었단 말인가?

상대와 싸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상대를 살피는 것이다. 어떤 무기를 쓰는지, 자세는 어떤지, 쾌(快), 중(重), 변(變) 중, 무엇을 위주로 하는지, 보법은 영활한지, 신법은 뛰어난지, 허(虛)와 실(實)은 어떤지, 동작의 허점은 어딘지 등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게 검을 휘두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쓸 초식과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등을 미리 머릿속에 대충이나마 그려야 한다.

하수라면 두세 수, 고수라면 세 수에서 많게는 네 수까지 예상을 한다. 마치 바둑을 둘 때 다음 수를 미리 예상하고 두는 것과 같다.

그래도 막상 검을 맞부딪치면 쉽지가 않다. 뜻하지 않은 수가 나오기도 하고, 생각처럼 초식이 펼쳐지지 않을 때도 있어서, 질 때도 많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무상지검의 단계에 이르면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다. 누구와 싸우든, 상대가 어떤 무기를 쓰든, 무엇을 특기로 하든 파악할 필요도 없고, 어떻게 맞설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상대가 공격을 하면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서, 가장 알맞은 동작이 저도 모르게 튀어 나간다.

물론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도 무의식중에 상대의 공격에 반응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얼결에 나오는 동작으로 대부분이 무공의 이치에 맞지가 않는다.

그에 비해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르면 어떤 동작이든 모두 무공의 이치에 부합한다.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이들은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 두고 의식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만, 무상지검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흔히들 그것을 신검합일(身劒合一)이라고도 한다. 검이 나이고, 내가 검이 되는 경지, 그것이 무상지검의 경지인 것이다.

칼 든 자치고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경지지만, 그걸 이루는 자는 백에 한 명, 아니 천에 한 명 정도다.

타고난 재능에 뛰어난 스승과 사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죽어라고 노력했을 때, 그것도 삼사십 대나 되어야 가능한 경지가 바로 무상지검의 경지였다.

그런데 무엇 하나 받쳐주지 못하는 적운상이, 겨우 나이 스물에 어떻게 그 같은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임옥군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구혁상을 보다가 적운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풍뢰십삼식을 펼쳐봐. 일 초식부터 시작!”

적운상이 크게 소리치자 모두가 풍뢰십삼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잠시 지켜보던 적운상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나연란과 나연오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 쳐도, 주양악과 은서린은 도대체 그동안 뭘 했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는 단검 쓰는 것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가르쳐봐야 따라오지 못하고 엉망이 될 게 뻔했다.

“다시 처음부터!”

적운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네 사람이 풍뢰십삼식을 처음부터 다시 펼쳤다.

“다시!”

“끄응.”

주양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풍뢰십삼식을 일 년 만에 끝내고 벌써 오 년이 넘게 낙연검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 적운상이 자꾸 풍뢰십삼식을 반복시키자 짜증이 났다.

“주양악! 왜 땅을 봐! 시선 똑바로 해!”

적운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양악이 찔끔하며 시선을 바로 했다.

“나연란! 발끝을 좀더 안쪽으로 넣어야지! 오른쪽 말고 왼쪽!”

“네, 네.”

“은서린! 팔꿈치 밖으로 빼지 마! 어딜 봐! 칼끝을 봐야지!”

정말 귀신이 따로 없었다. 적운상은 손이나 발이 약간 틀어진 것조차도 모두 잡아냈다. 심지어 시선이 잠시 딴 데 가는 것까지도 알아채고 소리를 질러댔다.

적운상은 스스로가 그러했듯이, 그들에게 완벽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결국 참다못한 주양악이 칼을 땅에 팽개치면서 대들었다.

“아악! 정말! 어디가 틀렸다고 자꾸 그러는 거예요?”

“방금 지적해 줬잖아!”

“뭘 그렇게 자잘한 것까지 따지고 들어요? 일부러 그러는 거죠, 지금? 오랜만에 와서 사형 행세하려니까 우리가 안 따를까 봐 그러는 것 아니에요?”

주양악의 말이 조금 심해지자 임옥군이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구혁상이 그를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켜보자꾸나.”

임옥군이 구혁상을 보니 뭔가 믿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적운상이 주양악을 노려봤다. 그러자 주양악이 흠칫하며 살짝 주눅이 들려다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노, 노려보면 어쩔 거예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적운상이 대뜸 허리에 차고 있던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주양악이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물러났다.

‘설마 때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 아니었다. 적운상은 사자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시선은 항상 칼끝!”

훙훙훙!

사자도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일었다.

“디딘 발은 확실하게! 허리는 순간적으로 틀어주고!”

훙훙훙!

그가 입으로 외치는 것이 모두 완벽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디딜 곳은 확실하게 디디고, 틀어야 할 때는 순간적으로 틀며, 정확하고 빠르게 칼을 내려치는 모습에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칼은 정확하고 빠르게!”

훙훙! 후웅!

마지막 초식까지 모두 펼친 적운상이 주양악을 노려봤다. 무안해진 주양악이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하자, 적운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봐!”

“네, 네!”

적운상은 처음부터 다시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적운상이 움직일 때마다 칼바람이 일고, 강한 진각(震脚)에 의해 땅이 울렸다.

“봤어?”

“네? 네.”

“보긴 뭘 봐! 집중해서 다시 봐!”

적운상이 다시 한 번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초식이 단순해서 그런지 박력이 대단했다. 보고 있는 주양악의 등줄기가 짜릿하니 전율이 일 정도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적운상의 동작을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봤어?”

“네?”

“봤냐고?”

“네. 봤어요.”

“그럼 본 걸 말해 봐.”

“그, 그게 그러니까…….”

“멍청아! 도대체 뭘 본 거야! 다시 봐!”

적운상이 무서운 눈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양악이 몸을 움찔했다. 적운상이 다시 풍뢰십삼식을 펼쳤다.

주양악은 적운상이 왜 자꾸 봤냐고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히 적운상의 풍뢰십삼식은 굉장했다. 풍뢰십삼식이 저렇게 박력 있는 무공이라는 것을 주양악은 오늘 처음 알았다. 사부인 임옥군도 저 정도로 풍뢰십삼식을 펼치지는 못했다.

그런데 적운상이 보여주려는 것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도대체 뭘 보여주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아!”

놀라움에 주양악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적운상이 펼치는 풍뢰십삼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네 번이나 펼쳤는데도 디디는 곳은 항상 그 자리 그대로였고, 칼을 휘두른 곳 역시 같은 곳을 정확히 베고 지나갔다.

그 증거로 땅에 찍힌 발자국이 처음에 밟았던 모양 그대로였고, 칼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 역시 그대로였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아무리 같은 자리에서 무공을 반복해서 펼쳤다지만 사람인 이상 조금의 오차는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적운상은 그것이 전혀 없었다. 완벽 그 자체였다.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그걸 깨닫고 나자 주양악은 적운상의 동작이 답답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완벽하면 사람은 누구나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고, 보통은 그것이 답답함으로 표출된다.

“이제야 이해한 모양이군.”

풍뢰십삼식을 모두 펼친 적운상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양악을 보며 말했다.

“초식이 그렇게 완벽할 필요가 있는 건가요? 초식이라는 것은 어차피 길잡이 역할일 뿐이잖아요. 나중에 변초를 쓰게 되면 그 형태를 버리고 자유롭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것 아니에요?”

“누가 그래?”

“네?”

“누가 그러냐고?”

“그거야…….”

그 정도는 칼을 휘두르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었다.

“그런 건 초식을 완벽하게 펼치고 난 후에 말해. 그렇게 엉성한 초식으로는 변초를 펼쳐봤자 본래의 초식을 쓰느니만 못해. 알았으면 다시 해. 오른손으로 펼치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면 왼손으로도 할 거야.”

“에엑?”

“뭐 하고 있어? 빨리 칼 들어!”

적운상은 그때부터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네 사람을 수련시키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구혁상이 웃으면서 임옥군을 잡아끌었다.

“가자꾸나.”

“네, 사숙.”

모두들 풍뢰십삼식을 연습하느라 두 사람이 그렇게 가는 것도 몰랐다. 적운상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모두 서 있을 힘도 없이 진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밥 먹고 다시 모여.”

“에? 사형. 하지만 난 밭에도 가봐야 하고, 마을에 가서 장사도 해야 하는데.”

“주양악.”

“왜, 왜요?”

적운상이 이름을 부르자 주양악이 흠칫하며 그를 봤다.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당분간은 하루 종일 무공수련만 할 거야.”

“그럼 돈은 어떻게 하고요? 돈이 있어야 먹고 살죠.”

“돈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이제부터 오로지 무공에만 정진해.”

적운상이 하는 말에 네 사람은 희비(喜悲)가 교차했다. 더 이상 밭일이나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기는 했지만, 적운상에게 이런 식으로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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