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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20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20화

20화. 귀환 (3)

 

홍문형이 앞장서서 간 곳은 현의 외곽에 있는 작은 장원이었다. 이곳의 주인이 금검문의 제자였던 것이다. 그는 홍문형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감격해서 뛰쳐나왔다.

“아니, 연락이라도 주고 오시지는…….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니오. 갑자기 이리 와서 오히려 미안하구려.”

“별말씀을… 하하. 어서 이쪽으로…….”

대청으로 안내된 사람들은 차를 마시면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장원의 주인은 잠시 볼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비웠다.

“그러고 보니 사문이 어디인지 묻지를 않았군요.”

홍문형이 하는 말에 구혁상이 미소를 지었다.

“형산파라오.”

“형산파? 허어, 아직도 형산파의 문인들이 있었구려. 아! 다른 뜻으로 한 말이 아니오.”

“알고 있소이다.”

구혁상이 씁쓰름하니 말했다.

형산파는 지금 문인 수가 이십여 명도 채 안 된다. 게다가 모두들 무공이 약해서 활동은 거의 안 하는 데다 재정이 어려워 돈을 벌러 다니기 바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산파의 맥이 끊어졌다고 알고 있었다.

앞에서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홍은령은 계속 옆에 있는 적운상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잘생기고 멋있다는 사람들을 보아온 그녀였다. 그러나 적운상은 그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특히 황금색이 어른거리는 눈동자는 말할 수 없이 신비로웠다. 처음에 그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지금도 말할 수 없이 흥분이 됐다.

‘하아… 왜 자꾸 이렇게 심장이 뛰지?’

홍은령은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혹시나 적운상이 듣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말없이 차만 마시고 있었다.

“저… 저기… 오라버니.”

“나한테 하는 말이오?”

“네? 네. 제가 어리니까…….”

대화가 끊겼다. 조금 지나자 흥은령이 다시 말을 꺼냈다.

“저는 홍은령이라고 해요. 그냥… 령 매라고 부르시면…….”

적운상이 홍은령을 봤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있었다. 적운상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나이가 어찌 되오?”

처음으로 적운상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여, 열일곱 살이오. 오라버니는…….”

“올해 스물이오.”

“그, 그러시군요.”

구혁상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홍문형은 홍은령의 모습을 보고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리 왈가닥 짓을 하더니만 지금은 왜 저 모양이란 말인가?

그녀가 다소곳해진 것은 좋았지만, 너무 저러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옆에 있는 홍기우도 마찬가지였다.

“형산파가 지금은 그리 몰락했지만 예전에는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정파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기회에 형산파의 무공을 한 수 배워보고 싶군요.”

홍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혁상에게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시선은 적운상에게 향해 있었다.

“훗! 그러시구려. 하지만 나는 이미 늙어서 소협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으니, 운상이가 한 수 배워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운상이 네 생각은 어떠냐?”

“사숙조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면 넓은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소.”

홍문형이 말하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적운상이 그를 말렸다.

“아닙니다. 이곳에서도 충분할 것 같군요.”

이곳이 대청이라 넓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겨루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큰 걸음으로 대여섯 걸음을 옮기면 양쪽에 의자가 놓여 있어서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나마 입구에서 안쪽까지는 조금 더 넓었다.

홍문형이 홍기우를 봤다. 비무는 홍문형이 아니라 그가 하는 것이다. 홍기우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홍문형이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홍기우와 적운상이 대청 중앙으로 나와서 마주섰다.

“금검문의 홍기우요.”

“형산파의 적운상입니다.”

서로 예를 취한 후에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홍기우의 검은 금빛이 옅게 나는 검이었다. 금검문에서는 무공이 상위에 드는 몇몇 사람들만이 저렇게 금검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적운상은 사자도를 뽑아 들었다.

홍기우가 침착하게 적운상을 살폈다. 적운상에게서는 투쟁심이나 두려움, 긴장감 따위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다는 건, 비무 경험이 많다는 증거였다.

‘의외로군.’

예전에나 좀 알아줬지 지금은 이름조차도 잊혀져가고 있는 형산파였다. 그래서 홍기우도 가벼운 마음으로 한 수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명문!

완전히 삼류는 아니라는 생각에 적운상을 얕잡아보던 마음을 버렸다. 그리고 적운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어깨와 옆구리를 노리고 가볍게 검을 찔러 넣었다.

따당!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그것을 막아냈다. 홍기우가 다시 두 번을 연이어 공격했다. 이번에도 적운상은 쉽게 막아냈다.

‘역시 완전히 삼류는 아니로군.’

홍기우는 적운상의 실력을 더 재볼 요량으로 계속 주위를 돌며 얕게 공격했다. 적운상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무표정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이십여 초식을 주고받았다. 주로 공격은 홍기우가 했고, 적운상은 방어만 했다.

‘초식이 단조로워.’

홍기우는 적운상이 펼치고 있는 풍뢰십삼식의 단점을 알아챘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의 금검이 복잡한 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이십여 초식이 지났다.

‘변초를 못 쓰는군.’

홍기우는 적운상의 단점도 알아냈다. 그러자 약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지레짐작으로 조금은 실력이 괜찮다 여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에 진지했던 마음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적운상을 얕잡아보며 자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홍기우는 적운상을 제압하지 못했다. 분명 초식의 허점을 파악하고 공격하는데도 적운상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검을 모두 막아냈다.

그것도 같은 초식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막아내니, 홍기우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홍기우의 마음도 모르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홍문형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기우가 적운상을 봐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홍문형 역시 홍기우가 파악한 것들을 봐서 알고 있는 상태였고, 두 사람이 마치 잘 짜인 약속대련을 하듯이 비무를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홍은령도 오라비인 홍기우가 적운상을 봐주고 있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기우의 눈치를 보아하니, 적운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었다. 혹시나 비무를 핑계로 적운상에게 창피를 주거나 다치게 하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적운상을 배려해 주는 것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됐다.

“허허. 무공이 제법 뛰어나군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나, 홍문형은 그냥 예의상 한마디 했다.

“그렇소?”

구혁상은 그 말만 하고는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두 사람의 비무를 봤다. 홍문형은 그런 구혁상이 반응이 의외였다.

‘어차피 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편히 가진 건가?’

그렇다면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구혁상은 그동안 적운상이 비무하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봤었다. 홍기우는 절대로 적운상의 적수가 아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무너지겠군.’

적운상과 겨루려면 굉장한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새외에서 비무를 할 때도, 둘에 한 명은 답답함에 울화가 치밀어 스스로 검을 꺾었었다.

단순한 초식을 있는 그대로 계속 반복하는 적운상의 대응에 답답함을 느끼고, 허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답답함을 느끼다가 결국에는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홍기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백여 초식이 넘어가자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끝이군.’

“으아아아아아!”

갑자기 홍기우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금검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팔이 가는 데로 휘둘렀다.

따당!

적운상이 홍기우의 금검을 내려치면서 교묘하게 걷어 올렸다. 그러자 금검이 홍기우의 손을 떠나 한쪽 벽에 박혔다. 홍기우가 놀라서 당황하는 사이에 적운상의 사자도가 그의 목 바로 옆에 와서 멈췄다.

“헉헉!”

홍기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적운상은 빠르지 않았다. 위력이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변초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길 수가 없었다. 단순한 초식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손에 사정을 둬서 고맙소.”

적운상이 사자도를 집어넣고 포권을 취했다. 누가 봐도 홍기우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봐준 거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소?”

“물어보시오.”

“도대체 내 공격이 왜 통하지 않은 거요?”

“꼭 알고 싶소?”

“그렇소.”

“듣고 후회할 수도 있소.”

“상관없소.”

홍기우는 꼭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대가 약하기 때문이오.”

“……!”

홍기우는 잠시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단지 그 이유란 말이오?”

“그럼 뭐가 있겠소?”

대청 안은 조용했다.

홍기우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있었고, 홍문형은 모든 점에서 월등했던 홍기우가 왜 그렇게 패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홍은령은 두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분위기가 무거워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적운상이 자리로 돌아와서 식은 차를 마셨다. 이겼으면 당연히 기뻐해야 하건만 무엇 때문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구혁상이 그것을 알아채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는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험!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다음에 또 만납시다.”

구혁상이 인사를 하며 적운상에게 눈짓을 했다. 홍은령은 적운상이 간다는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적운상의 표정이 굳어 있어 선뜻 뭐라 말을 붙이지 못했다.

“헛! 이거 미안하구려. 이쪽에서 청해 놓고 변변찮게 대접을 못한 것 같소. 괜찮다면 두어 달 후에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해서 거하게 대접을 하고 싶소만.”

그때 다시 겨루자는 말이었다.

“그럽시다. 바쁘지 않다면 초청에 응하겠소.”

“갑시다. 문 밖까지 배웅하겠소.”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 홍은령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두어 달 후에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정말이요? 정말 그가 올까요?”

“후훗! 할아비가 부르는데 그가 어떻게 안 오겠느냐? 그러니 기다리고 있어라.”

홍문형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홍은령에게 말하고는 홍기우를 봤다.

“할아버님.”

“너는 아직도 네가 왜 패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느냐?”

“네. 부끄럽습니다.”

“너와 싸울 때 그가 몇 보를 움직였느냐?”

“그건…….”

홍기우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적운상은 중앙에서 한 번도 두 걸음 이상을 움직이지 않았다. 항상 한 걸음을 움직였다가 원위치로 와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식이었다. 그랬기에 그 좁은 곳에서도 두 사람이 무리 없이 싸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너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거기다 너는 중간에 평정심까지 잃었다. 그를 얕잡아보고 자만했기 때문이 아니더냐?”

홍기우는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아까 적운상이 말한 대로였다. 달리 이유가 없었다. 약했기 때문에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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