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16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6화
16화. 겹치는 인연 (4)
“헛! 수적들이 배에 구멍을 냈나 보구나.”
수적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배를 털려고 마음을 먹으면 먼저 물속으로 몰래 접근해서 배에 구멍을 낸다. 그리고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동안에 지금과 같이 물건을 탈취해 간다.
그러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배가 가라앉는다는 불안감을 안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 하는 것이다.
게다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수적들의 배에 올라타려고 한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미리 준비하고 있는 수적들에게 당하고 만다.
“이대로 배가 가라앉으면 짐이 모두 수장될 텐데요. 짐부터 어떻게 해야죠.”
“그렇구나. 허나 이 많은 짐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두 사람이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이쪽 배로 건너온 수적들이 일꾼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살고 싶으면 짐을 저쪽 배로 옮겨!”
“거기 뭐 해? 죽고 싶냐?”
적운상이 구혁상을 봤다.
“옮기라는데요.”
“그러자꾸나.”
일꾼들이 우측에 있는 배로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적들도 달려들어 같이 짐을 옮겼다.
“짐을 지켜라! 짐을 지켜!”
상관도백이 짐을 옮겨 가는 것을 보고 무사들에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러나 수적들이 그 앞을 막아서며 칼을 휘두르자 그들을 상대하느라 이쪽으로 올 수가 없었다.
“뭘 하고 있어? 빨리 빨리 옮겨!”
적운상은 짐을 옮기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운학은 좌측에 있는 배에서 혼자 날뛰고 있었다. 그가 비록 무당십걸이기는 했지만 한 손이 열 손 못 당하는 법이었다.
수적들은 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운학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그물을 던지거나, 독을 뿌려댔다. 그런 것에 당할 운학이 아니었지만,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공이 강한 자들도 많아서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고 있었다.
이쪽배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상관도백과 상관보연, 그리고 살아남은 몇몇 무사들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흐음……. 어쩐다?’
적운상은 저들을 도와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접었다. 저들과 힘을 합쳐서 수적의 배를 빼앗는다 해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쪽에 있는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게다가 수적들이 배에 구멍을 내고 도망가 버리면 모두 헛고생이었다.
-칼을 든 이상, 자기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예전에 구혁상이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적운상은 계속 짐을 날랐다. 그러다 한쪽에서 싸우고 있던 상관보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상관도백이 형산파를 무시했기로서니 수적들이 시키는 대로 짐을 나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
“이봐요!”
상관보연이 소리쳐 적운상을 불렀다. 그러다 하마터면 수적이 휘두르는 칼에 팔을 베일 뻔했다. 그녀는 급히 옆으로 피하면서 그 수적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다시 적운상을 불렀다.
“이봐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안 도와줄 거예요?”
그때 봤던 적운상의 실력이라면 이까짓 수적들은 문제도 아니었다. 어쩌면 멍청하게 혼자서 날뛰고 있는 운학보다 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운상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짐만 날랐다. 상관보연은 속으로 애가 탔다. 이대로라면 짐을 모두 강탈당하고 살아남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봐요! 도와주면 그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상관보에서 반드시 갚아줄게요!”
상관도백은 상관보연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봤다. 지금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다 상관보연의 시선이 짐을 나르고 있는 적운상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
‘저까짓 놈한테…….’
상관보연이 저렇게 소리치는데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모르는 척, 짐만 계속 나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상관도백은 적운상이 겁을 먹고 저런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기로서니 어쩌다 저런 놈에게까지 도움을 청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는지 한탄이 나왔다. 그때 상관보연이 발끈해서 막말을 하며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야! 남자가 치사하게 조금 무시당했다고 그러기냐? 더러운 놈아! 나중에 막정위한테 다 일러줄 테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나 마!”
대사형인 막정위의 이름이 나오자 적운상이 멈칫하며 그녀를 봤다.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는 다시 그녀를 무시하며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짐의 삼분지 이 정도가 옮겨졌다. 선착장에서 옮겨 실을 때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었는데, 수적들이 칼을 휘두르며 위협을 하니 죽기 살기로 옮긴 결과였다.
나머지는 배가 너무 가라앉아서 수적들의 배에 옮겨 실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수적들이 남은 짐은 포기를 하고, 일꾼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일꾼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무기를 챙겨라!”
“네, 사숙조님!”
구혁상의 외침에 적운상이 사자도와 백운검을 숨겨둔 곳으로 갔다. 구혁상이 뒤따라오는 수적들을 붙잡아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그때 배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휘청거렸다. 우측 배에 타고 있던 수적들이 갈고리를 모두 거두자, 배가 좌측으로 기울면서 그쪽에 있던 배와 부딪쳤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구멍이 나서 배가 가라앉고 있었는데 그렇게 기울자 이제는 배를 바로 세울 방법이 없었다. 배는 좌측에 있는 수적의 배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계속 기울기 시작했다.
“어어…….”
적운상은 짐들과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좌측 배에서 싸우던 운학이 몸을 날려 이쪽으로 건너왔다.
“괜찮습니까? 어서 저쪽 배로 옮겨 타야 합니다.”
말이 쉽지 급작스럽게 기우는 배에서 건너뛰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구나 운학이 이쪽으로 건너오자 수적들이 다시 작살을 던지기 시작했다. 배와 배 사이가 자꾸 멀어졌다. 이제는 웬만한 경공술이 아니면 건너뛸 수가 없었다.
이쪽 배에 타고 있던 수적들은 모두 물로 뛰어든 지 오래였다.
“이런…….”
운학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그는 헤엄을 치지 못했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그였지만 유일하게 못 하는 것이 그거였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것이다.
사실 그가 이쪽을 도와주지 않고 필사적으로 수적들을 상대하며 배를 뺏으려고 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사숙조님!”
“물로 뛰어들어라. 늦으면 배와 함께 수장된다.”
구혁상이 소리치면서 먼저 물로 뛰어들었다. 적운상도 그러려고 했는데 다리를 떨고 있는 운학이 보였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잠시 망설이던 적운상이 그에게 다가갔다.
“뭐 하는 거요?”
“나는… 자맥질을 못 하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붙잡아줄 테니깐.”
적운상의 말을 듣고도 그는 두려움에 물로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자 적운상이 사자도를 슬쩍 꺼내 들며 말했다.
“일단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오.”
“아, 알았소.”
빠악!
“컥!”
사자도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운학이 그대로 기절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상관보연이 물로 뛰어들려다가 그걸 보고 소리쳤다. 그러건 말건 적운상은 운학의 옷깃을 잡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상관보연이 잠시 화난 표정을 짓다가 곧 물로 뛰어들었다.
자맥질이라면 뇌룡과 씨름을 하느라 아주 도(道)가 튼 적운상이었다. 운학을 잡고 있었지만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운학이 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겁을 먹고 마구 몸부림을 쳤다면, 같이 죽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기절을 시킨 것이다.
“헉헉!”
네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물에서 나왔다. 뭍으로 올라가려면 아직도 더 가야 했다. 그러나 지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물이 무릎까지 잠기는데도 너 나 할 것 없이 그냥 풀썩 주저앉았다. 헤엄을 치는 일은 굉장히 체력소모가 심하다. 특히나 옷을 입고 헤엄을 쳤기 때문에 더욱이 그랬다. 거기다 헤엄을 친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상관도백과 상관보연, 그리고 구혁상과 그를 배에 태워줬던 뚱뚱한 사내가 서로를 바라봤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적운상이 정신을 잃은 운학을 질질 끌며 물에서 나왔다.
“후우, 힘들다. 사숙조님, 괜찮으세요?”
“그래. 나는 괜찮다.”
적운상은 근처에 바위 하나가 보이자 첨벙거리며 다가가 거기에 운학을 던져놓았다.
“야 너!”
상관보연은 이제 막 나가기로 생각했는지, 적운상을 손가락질 하며 불렀다. 그럼 당연히 화를 내야 정상이건만 적운상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야? 그 웃음은? 아까 왜 안 도와준 거야?”
“도와줬잖아.”
그녀가 막말을 해대니 적운상도 존대를 할 이유가 없었다.
“뭐야? 도와주기는 뭘 도와줬다고 그래?”
“그만두어라! 말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이다.”
상관도백이 노기가 서린 눈으로 적운상을 노려봤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깁니다.”
“흥! 아쉬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그렇지도 않을 걸요.”
적운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주위에 무성하게 자라 있는 갈대를 봤다. 그제야 상관도백도 이곳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