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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2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23화

어제 온몸으로 느껴봤던 그 기운이 맹렬하게 밀려들었다.

고의적인 기운발출. 그 목표는 자신이다.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기운만 보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장천운은 상대의 의도를 바로 눈치 챘다.

‘구양명, 나를 부르는가?’

사실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철 선배,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장천운은 사마경 방의 천장에 있는 철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슨 일인가?]

[어제 싸웠던 자가 저를 부릅니다.]

[천한마검 구양명이? 혼자 가도 괜찮겠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소성주께서 찾으면 사실대로 말씀드려주십시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전음을 마친 장천운은 창문 밖 어둠 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모습이 눈 깜짝할 순간에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52장: 누구야?

 

 

동이 트려는지 구름으로 뒤덮인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장천운은 밝아지는 동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비가 멈춘 새벽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축축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기운의 주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필양을 빠져나갔다.

그 역시 거리를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불러냈으니 적당한 곳에서 멈추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운의 주인은 필양을 나서서 오리쯤 달리다가 멈췄다.

그가 멈춘 곳은 야산 사이, 누렇게 마른 풀밭이 비에 젖어 있는 초원지대였다.

장천운도 상대와 삼 장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얼굴선이 굵은 사십대 중년 무사가 칙칙한 새벽의 대지에 우뚝 서서 검은 피풍의를 휘날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자다. 어제 한판 벌였던 천한마검 구양명.

“의외군요. 귀하가 직접 찾아오다니.”

“잠이 안 오더군. 그런데 마침 비가 멈추지 뭔가. 그래서 찾아왔지.”

“천한마검 구양명, 맞습니까?”

“맞다. 내가 구양명이다.”

“왜 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거요?”

“어제 못 다한 승부를 끝내기 위해서.”

구양명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하며 검을 뽑았다.

“승부를 마다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싸우기 전에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귀하는 사절방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절방과 함께 우리를 공격한 겁니까?”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지.”

“누가 부탁한 거요?”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이번에는 내가 하나 묻지.”

“말씀해 보시죠.”

“너는 누구냐?”

“전에는 무창 흑도의 새끼건달이었다가, 지금은 출세해서 구천성 소성주의 호위무사가 된 장천운입니다.”

뭐라고? 흑도의 새끼건달?

“장난하자고 물은 것이 아니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믿기 싫으면 마십쇼.”

그럼 자신이 흑도 새끼건달 출신의 새파란 호위무사에게 밀렸단 말인가?

사실이든 아니든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어제 싸움에서 자신이 밀렸다는 것.

구양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스승은 어떤 분이냐?”

“스승이라…… 뭐 딱히 스승이라 할 분은 없지만, 권법을 전수해준 분은 있죠.”

“스승이 따로 없다?”

구양명은 어이가 없다 못해 머리 꼭대기에서 슬슬 열이 났다.

권법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검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긴 검을 스승도 없이 배웠다고? 그 말을 지금 믿으란 말인가?

그의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 구양명이 비록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린 친구가 농락해도 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아니니라.”

“내가 귀하에게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그럼 지금까지 한 말이 사실이란 말이냐?”

그뿐이 아니다. 무공을 꿈속에서도 배웠다. 특히 상승의 절기는.

그 말을 한다면 더 화내겠지?

“어차피 내 말을 못 믿는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할 것 같군요. 믿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장천운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현월을 뽑았다.

구륜의 기운이 일어나더니 그를 중심으로 휘돌았다.

“나는 귀하가 원하는 대로 이곳으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귀하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줘야 공평할 것 같습니다만.”

“무슨……?”

“패한 사람이 이긴 사람의 부탁을 세 가지 들어주기. 어떻습니까?”

“……”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라면, 대신 팔 하나를 내놓는 걸로 해도 좋습니다.”

“…….”

“싫습니까?”

밤새 고민하다가 백리 길을 달려서 찾아온 판국에 무엇인들 못할까.

“좋다, 받아들이마.”

못 들어줄 부탁이라면 팔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으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꽉 막힌 분은 아니군요.”

장천운은 무심한 눈으로 구양명을 보며 현월을 사선으로 들어 올렸다.

구륜의 기운도 점점 강해지면서 영역을 넓혔다.

쏴아아아아.

그의 움직임을 따라 반경 일 장 안의 풀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갔다.

새벽어스름이 점점 밀려나는 와중에 펼쳐진 그 일은 보는 이의 경외심을 일으킬 정도로 멋진 장면이었다.

“네 검의 이름을 알고 싶다만.”

“천뢰구검. 본래 이름을 몰라서 제가 지은 이름입니다.”

자신이 검법의 이름을 지었다고?

그럼 정말로 절대의 검공을 혼자 익혔단 말인가?

아연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보던 구양명이 이를 악물고 공력을 일으켰다.

모든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지금 희대의 괴물을 앞에 두고 있었다.

경악한 한편으로는, 무사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보일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벅찬 희열에 전율마저 느껴졌다.

“나 구양명은, 오늘 강호의 무사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죽든 살든 너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라!”

장천운도 묘한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창에 있었을 때야 말할 것도 없고, 구천성에 들어와서도 ‘무사의 도’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무공이란 그저 이기기 위한 것, 죽이기 위한 것,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

구천성의 누구도 ‘무사’에 대해서 깊게 말하지 않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패의 대지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무사’보다 강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래서 무사도란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겉멋을 내기 위해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구양명의 말 몇 마디에 왜 이렇게 가슴이 뛴단 말인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새끼건달 출신 호위무사 주제에 무사의 도를 운운한 것은.

“이 장천운도 무사의 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순간, 온몸에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느낌의 희열이 화끈하게 끓어올랐다.

상쾌한 전율!

구양명도 만족한 듯 조금 전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와하하하하! 이 구양명이 오늘 복을 누리는구나!”

“후회 없는 일전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후배가 먼저 선공을 하죠!”

평소와 달리 장천운이 먼저 검을 떨치며 신형을 날렸다.

“좋다! 와라!”

구양명도 외치며 검을 앞세우고 몸을 날렸다.

훗날 술자리의 멋진 안주로 이름을 날릴 ‘필양(泌陽)의 일전(一戰)’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

 

쾅!

탁자를 내려친 호경담은 새벽에 전해진 소식을 듣고 대경했다.

“뭐라고? 사절방이 구천성의 토벌대를 공격해?”

“예, 방주.”

“그놈들이 언제 이곳까지 올라왔단 말이냐?”

호경담이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천은방의 정보를 총괄하는 호경당주 유택림은 간이 오그라들었다.

사절방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 큰 것이다.

“저희도 그게 의문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호경담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절방이 사마경을 공격했다면 남의 손으로 코푼 격이니 천은방으로선 호재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만 봤을 때의 일이다.

사절방이 저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면 또 모른다. 그런데 듣자하니 코털만 건든 꼴 아닌가 말이다.

토벌대는 이제 천은방과 사절방이 손을 잡은 줄 알 것이다.

그만큼 경계심이 높아질 것이고, 더욱 강한 무력을 집결시켜서 공격해올 것이다.

“청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쪽에 앉아 있던 이십대 중후반의 청년, 호경담의 아들인 호양청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절방의 토벌대 공격은 저희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습니다.”

“끄응, 나도 같은 생각이다.”

“저희는 사마경이 곧장 이곳으로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모든 게 틀어졌습니다.”

“오전 중으로 남양 대봉문과 등주 양가장에서 무사들이 도착할 거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저들을 치는 것은 어떻겠느냐?”

호양청은 부친을 바라보았다.

어제의 느긋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초조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승리할 경우 오 할 이상의 전력을 보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친다면 이긴다 해도 칠 할 이상의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칠 할이라…….”

“그래선 이겨도 이긴 게 아닙니다. 그때부터는…… 승냥이 같은 자들에게 잡아먹힐 것을 걱정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대령주의 종으로 살아가던가요.”

냉정한 호양청의 말에 호경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호북에서 천은방을 노리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힘이 약해지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 것이다.

“그럴 순 없지.”

“이제 선택은 아버님이 하셔야 합니다.”

“무슨 선택? 방법이 있다면 어디 말해봐라.”

호양청은 일단 숨을 고른 후 부친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령주도 사절방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세웠을 겁니다.”

호경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럴 거야. 대령주는 우리를 나 몰라라 할 분이 아니니라.”

“하지만 그는 우리를 위해서라기보다 구천성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 대책을 마련할 겁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야 어떻게 되든 목적만 달성되면 된다는 마음일 거란 말이지요.”

호경담이 왜 그 말뜻을 모를까.

그의 눈빛이 폭풍우 앞의 돛단배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사마경만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를…… 우리를 버릴 수도 있다는 거냐?”

“아버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마경도 제거하고, 우리도 피해가 없도록 할 수 있잖느냐?”

불안감만큼이나 목소리도 커졌다.

호양청은 그런 부친을 보면서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할 방법이 없다?”

호경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라 해도 그럴 경우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이냐?”

숨을 깊게 들이쉰 호양청이 부친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말했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절방과 진짜로 손을 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사절방과 연수한다?”

호경담의 눈빛이 번뜩였다.

사절방과는 썩 좋은 관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천은방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대봉문과 양가장, 거기에 사절방까지 힘을 합한다면 피해를 줄이고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공손백이 과연 어떤 방법을 강구했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사절방과의 연합도 별 효과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공손백은 이미 실행에 옮겼을 터, 말한다 해서 바꾸어질 것도 아니다.

“좋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호경담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기재가 넘친다는 것을 알고도 아직은 어려서 세상물정을 모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토록 다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보다 침착하게 대책을 세운다.

자신이 아들을 너무 얕보았었나?

눈매를 한번 꿈틀거린 그는 품속에 손을 넣어서 한 자 길이의 짧은 보도를 꺼냈다.

손잡이와 집에 보석이 박힌 보도. 그 보도가 바로 천은방의 방주 신물인 천은령이었다.

“받아라, 이제부터 너를 천은령주로 삼을 것이니, 사절방의 일은 모두 네가 주관해라. 그리고 앞으로는 내 명을 일일이 받지 말고 네가 바라는 대로 일을 처리해라.”

호양청은 사양하지 않았다.

천기가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에 본 괘와 저녁에 본 괘가 다르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자신이 잘못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급박한 때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 필요했다.

‘설마…… 구천구지(九天九地)가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

문득 그 생각이 들자 오한이 든 듯 온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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