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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11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11화

11화. 분노 (3)

 

“그럼 잘 부탁드리겠소.”

“걱정하지 마세요.”

도락방의 방주 왕악인이 묘령의 여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그녀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여인은 상관도백의 손녀딸 상관보연이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상관도백이 왔었어야 했다. 그런데 상관보연이 온 것이다.

왕악인은 그것이 내심 불쾌했다. 그러나 계획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흠잡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다.

이례가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섬서성의 몇몇 흑도문파들이 손을 잡고 상관보의 호남상단에 거금을 투자했다.

호남상단에서는 섬서성의 상단들과 마찰이 생길까 봐 선뜻 응하지 않았지만, 워낙에 거금이라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이에 상관도백이 직접 섬서성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상관도백 혼자서 그 많은 문파를 모두 들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몇몇 군데는 이렇게 상관보연이 대신 들르고 있었다.

왕악인이 상관보연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성질은 좀 있어 보였지만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매가 예술이었다. 남자들이 입는 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상관보연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온 왕악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쪽에 있는 전각에서 시끄럽게 소란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관보연의 호위무사들이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이 바짝 다가섰다.

“소란스럽군요.”

“하하. 아니오. 소저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그냥 가시구려.”

보아하니 드러내놓기 싫어하는 것 같기에, 상관보연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쾅!

한쪽에 있던 전각의 문이 부서져 나가면서 사람 하나가 튕겨져 나와 땅을 굴렀다. 뒤이어 누군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쳐 나오다가 넘어졌다. 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근처에 있던 도락방의 사내들이 그리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때 부서진 문짝을 완전히 박살내면서 사람 하나가 또 날아와 땅을 굴렀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왕악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상관보연이 와 있는데 저런 꼴을 보이다니,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헉!”

그때 뭘 봤는지 사내들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적운상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엉망이 된 사내 하나가 축 늘어져서 손목을 잡힌 채 질질 끌려왔다. 피를 쿨럭거리는 것으로 봐서,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사내들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끄으윽… 살려…….”

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적운상이 단검으로 그의 손목을 베었다.

“으아아아악!”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이 잡고 있던 그의 팔을 잡아당겨 꺾었다.

우드득!

“아아아아악! 끅! 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입에 피거품을 물며 몸을 떨었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무표정하니 그의 머리채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단검으로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끄아아아악!”

“저, 저…….”

보고 있던 사내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무표정하니 사람을 쑤셔댄다. 그들도 나름 잔인하고, 손속에 정이 없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보고 있자니 소름이 오싹 돋으며 치가 떨렸다.

“천천히 죽어가며 지이에게 사죄해라.”

적운상이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자 그가 풀썩 쓰러졌다. 그의 손목과 옆구리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손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적운상이 아까 도망쳐 나왔던 사내에게로 시선을 뒀다. 그러자 그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으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소리치며 도망가려 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단 말인가?

보진 않았지만 짐작은 갔다. 방금 적운상이 어떻게 손을 쓰는지 모두가 보지 않았던가?

“뭘 보고들 있어! 저놈 정리해!”

왕악인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적운상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흉흉한 기세를 풍겨댔다.

적운상은 그러건 말건 무표정하니, 미친 듯이 발악하고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앞에 있던 사내 세 명이 일제히 칼을 휘둘러왔다.

“죽어!”

적운상이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내에게 이동했다. 칼을 잡고 있는 손을 옆으로 밀고, 단검으로 쇄골을 찍었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그의 팔을 잡아당겨서 베고, 손목을 틀어잡고 베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밀자 같이 칼을 휘둘렀던 사내들과 부딪치며 다 함께 넘어졌다.

“이 자식이!”

옆에서 한 놈이 감당하지도 못할 커다란 대두도를 휘둘러왔다. 적운상이 그의 손목을 베고, 팔과 어깨를 연이어 찍었다. 그제야 그가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대두도를 떨어트렸다.

적운상은 그의 목을 벨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상체를 숙여 그의 옆구리를 찍고, 다음 상대를 향해 움직였다.

거치도를 들고 있던 자가 적운상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몸을 떨었다. 적운상이 그의 손을 잡아 꺾으며, 겨드랑이를 베어 올리고, 팔을 내려베었다.

사내들이 칼을 휘두르며 우르르 달려들었다. 적운상이 잡고 있던 그를 돌려세워 앞을 가렸다. 그들이 멈칫하며 공격을 멈췄다. 동료를 벨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적운상은 잡고 있던 사내를 찌르고 베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내를 잡아서 다시 앞을 막았다.

계속 그런 식이니 사내들은 주춤거리며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적운상이 잡고 있는 동료가 방해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적운상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단검을 쉬지 않고 휘둘렀다. 때에 따라 베고, 찌르고, 찍었다.

그런데도 단칼에 죽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쓰러져 피를 콸콸 흘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비명만 계속 질러댔다. 장지이가 당했던 것처럼, 적운상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그것을 보고 있는 왕악인은 기가 막혔다. 보아하니 무공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정말 뛰어난 고수라면 일검에 서너 명씩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고수는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강했다. 부하들이 너무나 맥없이 당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쓰던 수법, 그대로 말이다.

‘싸우는 법을 아는 놈이다. 어느 문파에서 보낸 놈이지?’

손을 쓰는 것이 워낙에 잔인하다 보니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흑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저놈은 누구냐?”

“모르겠습니다.”

옆에 있던 부하의 대답에 왕악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아직까지 상관보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험! 일이 생겨서 더 이상 배웅하지 못할 것 같소. 네가 대신 상관 소저를 밖에까지 모셔다 드려라.”

“네. 가시죠, 소저.”

상관보연은 좀더 이곳에 있고 싶었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다면, 지금 저기서 싸우고 있는 사람은 그때 객잔에서 눈이 마주쳤던 바로 그자였다. 하지만 왕악인이 이런 식으로 축객령을 내린 이상,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상관보연은 싸우고 있는 적운상을 아쉬운 눈빛으로 힐끗 한 번 보고는 앞서 가는 사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왕악인은 부하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적운상에게 다가갔다.

“뭐 하고 있어? 한 놈을 못 잡고! 한꺼번에 덮쳐서 눌러버려!”

불가능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진즉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크아아아악!”

한 놈이 비명을 터트렸다. 아까 적운상을 피해서 도망쳐 나왔던 놈이었다. 발악을 하면서 도망 다녔으나 결국에는 잡힌 것이다.

적운상은 그의 한쪽 팔을 꺾어서 잡고, 발로 무릎을 차서 넘어트린 후에, 잡고 있던 손목을 그었다. 이어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으면서 그의 발목을 베었다.

“크아아아악!”

그가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적운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단검으로 그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찍었다.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보다 못한 왕악인이 차고 있던 대도를 뽑아 들었다. 적운상이 그를 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왕악인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간의 눈이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쓰벌! 잘못 건드렸다. 도대체 어떤 놈이 건드린 거야?’

왕악인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왕악인의 눈에, 적운상에게 당해서 쓰러져 있는 부하들이 제대로 보였다. 모두들 끔찍한 모습으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삼십 명 이상이나 당한 것이다.

왕악인은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싸우는 법은 좀 알지만 무공은 뛰어나지 않을 거라 여긴 것이 실수였다. 계속 뒷전에서 부하들을 보냈어야 했다. 아니, 그래도 당했을 것이다. 진즉에 도망쳤어야 했다.

적운상이 다가왔다. 왕악인이 옆에 있던 부하를 끌어당겨 적운상에게 밀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적운상이 그의 옆에서 같이 뛰고 있었다.

왕악인이 옆으로 칼을 휘둘렀다. 적운상이 그에게 바짝 붙으며 칼을 잡고 있는 그의 손목을 그었다. 이어서 팔과 어깨를 찍었다.

“으아아아악!”

왕악인은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렀다. 적운상이 무표정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크으으윽! 오지 마! 원하는 게 뭐야? 뭐든지 다 준다! 살, 살려줘! 으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졌다. 적운상이 단검으로 그의 허벅지를 찍었기 때문이다.

“끄으…….”

적운상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얼굴을 가까이 댔다.

“네…네놈……. 누, 누구냐? 끄으으……. 그, 금마도(禁魔島)에서 보낸 자냐?”

상황이 다급하자 왕악인의 입에서는 말하지 말아야 할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적운상은 그들과 상관도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아니. 난 장지이의 오라비일 뿐이다. 죽어가면서 그녀에게 사죄해라.”

왕악인은 장지이가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부하를 잘못 뒀으니, 그것이 죄였다. 그리고 사실 그 역시도 부하들 못지않게 나쁜 짓을 많이 해왔었다. 죽어 마땅한 자였다.

적운상이 잡고 있던 그의 머리채를 놓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손목을 긋고 팔을 찍었다.

“끄아아아악!”

적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수많은 사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적운상의 입에서 묵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너희들도 죽어라.”

일 각이었다. 일 각 동안 도락방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장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몸을 떨었으나, 으레 있는 일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다시 일 각이 지나고, 적운상이 장지이를 안고 도락방에서 나왔을 때는, 더 이상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단하군요. 이름이 뭐죠?”

상관보연이 물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왔으나 바로 돌아가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호위무사들이 긴장을 하며 검 자루에 손을 얹었다. 여차하면 뽑을 기세였다.

적운상은 말없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그대로 지나쳐 갔다. 상관보연은 자신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 본 적운상의 눈은 죽어 있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그냥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여인, 필시 뭔가 관계가 있는 여인일 것이다. 그녀를 잃은 슬픔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었다. 상관보연은 측은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적운상의 뒷모습을 봤다.

그냥 상관하지 말고 갔었어야 했다. 이런 일은 관여해 봤자 이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왜 남아서 그를 보려고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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