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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산파 9화

무료소설 아! 형산파: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 형산파 9화

9화. 분노 (1)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 서안(西安).

길게 뻗은 큰길 양쪽으로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 앞에서는 노점상들이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늘어놓고 손님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엄마에게 당과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보인다. 제법 위세 있는 가문의 자제로 보이는 이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호위무사들과 함께 지나가기도 한다.

길가의 수레에서 파는 소면을 후르륵거리면서 그것을 보고 있는 적운상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동안 푸른 초원에서만 있다가 이렇게 북적북적한 곳에 오니 익숙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시끌시끌하군.”

“훗! 성도니까 당연하죠.”

소면을 파는 소녀가 예쁘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장지이다. 올해 열다섯 살인데, 어린 나이에 소면을 팔며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한 그릇 더 줘.”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적운상이 빈 그릇을 내밀었다. 그러자 장지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오라버니.”

적운상이 이곳에 와서 소면을 먹기 시작한 게 벌써 오 일째였다. 장지이는 하루 세 끼를 이곳에 와서 때우는 적운상이 측은했다.

엉망인 머리하며, 초라한 행색, 거기에 허리 뒤에는 칼을 두 개나 차고 있는 모습이, 딱 봐도 배고픈 낭인무사 같았다. 무엇보다 소면을 먹고 나서도 할 일이 없는지, 한 시진씩 죽치고 앉아 있다 가는 것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심하고 측은한 마음에 면을 더 추가해 주고, 어제는 고기까지 살짝 얹어줬다.

그랬더니 그걸 알았는지 어쨌는지, 적운상이 설거지를 도와줬다. 그러면서 주제넘게 소면을 만들 때 이러저러하게 해보라고 조언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신기한 것은 그렇게 했더니 소면 맛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장지이는 적운상을 오라버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손님, 낭인 아저씨, 무사 오라버니 등 호칭이 만날 바뀌었었는데, 이제는 ‘오라버니’로 통일된 것이다. 친근감의 표시였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장사하랴, 어머니 병수발 들랴, 바쁘게만 살아온 장지이였다. 관심 가져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인지 적운상이 보여주는 작은 관심이 그녀는 너무나 따뜻했다. 지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것 같았다.

“여어… 이거 뭐야? 하하하.”

네 명의 사내들이 건들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들 중, 하나가 적운상을 잠시 노려보다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물려면 좀 돈 있는 놈을 물어야지. 이거야 원…….”

장지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몸을 움츠리며, 적운상의 소맷자락을 꼭 쥐었다. 적운상이 고개를 돌려보니, 소맷자락을 쥐고 있는 장지이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소면 좀 내놔봐. 배고프다.”

사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도 장지이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적운상이 소맷자락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 풀었다. 그리고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의 떨림이 멈췄다.

적운상은 그녀 대신에 능숙하게 면을 데쳐서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었다. 그 위에 양념을 더하고 야채를 얹었다. 순식간에 소면 네 그릇이 뚝딱 만들어졌다.

사내들은 소면이 빨리 나오자 약간 의외라는 눈으로 적운상을 봤다. 적운상은 말없이 그들 앞에 소면을 내려놓았다.

“오오, 이거 제법인걸.”

“맛이 좋잖아.”

사내들은 예전에 비해 확 달라진 맛에 호들갑을 떨었다. 소면 한 그릇을 서너 번의 젓가락질로 금방 해치운 사내들이 빈 그릇을 내밀었다.

적운상은 말없이 다시 한 그릇씩을 줬다. 국물까지 싹 비운 사내들이 배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아, 잘 먹었다. 요리사냐? 보아하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적운상의 허리 뒤에 걸려 있는 사자도와 백운검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어쨌든 이제 장사 좀 되겠구나. 알아서 빨리 갚아라. 안 그럼 몸을 팔아서 갚아야 할 거다. 큭큭.”

사내가 장지이를 음흉한 눈으로 아래위를 훑었다. 그러자 장지이가 몸을 흠칫 떨며 적운상의 뒤로 숨었다.

“가자.”

사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돈도 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후우…….”

장지이가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들은 누구냐?”

“네? 아니에요. 그냥… 오라버니가 참견할 일이 아니에요.”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장지이가 적운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훗! 방금 도와줬잖아요. 그거면 돼요.”

장지이는 괜히 적운상까지 휘말려서 다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 * *

 

적운상이 객잔으로 돌아오자 구혁상이 한쪽 탁자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숙조님.”

“그래. 늦었구나.”

“예. 식사는 하셨어요?”

“클클. 먹었다.”

구혁상이 분주를 입 안에서 살살 굴리다가 꿀꺽 삼켰다. 그동안 형산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을 몰아치기만 하던 구혁상이었다.

지금까지 술을 입에 댄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적운상이 대성을 한 이후로는 이렇게 대낮에도 간간이 술을 즐겼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직 못 찾으셨어요?”

“그래.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간 것 같구나.”

원래는 이곳에 머물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구혁상이 길에서 얼핏 금계산을 본 것이다. 금계산은 임옥군의 막내 사제였다. 구혁상에게는 사질이 되고, 적운상에게는 사숙이 된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그를 뒤따라갔지만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기왕에 본 것, 찾아서 얼굴이나 보고 가자고 결정을 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형산파로 같이 갈 생각이었다. 적운상이 돌아온 이상 돈 몇 푼 벌고자, 타지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벌써 오 일 전의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쩝니까?”

“내일 하루만 더 찾아보고, 찾든 못 찾든 형산파로 가자꾸나.”

“여기서 형산파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아마 두어 달 정도는 걸릴 게다. 그러니 마음 급하게 먹지 말거라.”

“서찰 한 번 전하지 못했으니 제가 죽은 줄 알 겁니다.”

“새외에서 어느 미친놈이 그 먼 곳까지 서찰을 전해준단 말이냐? 정히 마음이 급하다면 지금이라도 보내면 되지 않느냐?”

“훗! 아닙니다.”

적운상은 새삼스럽게 이제야 서찰을 보내느니 그냥 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보고 싶구나.’

적운상은 형산파에 있을 때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였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둥근 방갓을 눌러쓰고, 몸에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망토 사이로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이 보였다.

구혁상이 그들을 유심히 보다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것을 보고 적운상이 물었다.

“저들이 누군지 아세요?”

“내 기억이 맞다면 저 늙은이는 상관보의 상관도백이다. 그 옆에 있는 아이가 그를 닮았으니 아마 손녀딸일 게다. 나머지 놈들은 호위무사쯤 되겠지.”

“상관보가 뭐 하는 뎁니까?”

“어디 가서 그런 무식한 말은 하지 마라.”

“상관보를 모르면 무식한 놈이 되는 겁니까?”

“본 문이 어디에 있느냐?”

“그야 형산에 있죠.”

“형산은 어디에 있느냐?”

“호남성이요.”

“그래. 적어도 호남성에서만큼은 상관보를 모르면 무식한 놈이 된다. 상관보는 호남성 최고의 상단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돈이 많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돈이 많다. 그것도 굉장히 많지. 호남성의 웬만한 중소문파들은 저들에게 돈을 맡기지 못해 안달이다.”

“돈을 왜 맡깁니까?”

“헐! 내가 그동안 너한테 뭘 가르쳤나 싶구나. 당연히 저들에게 돈을 맡기면 알아서 불려주기 때문이지. 칼질 잘하는 놈들치고 똑똑한 놈 많지 않다. 당장에 너부터 그러지 않으냐?”

“저야 몰라서 그러는 거지 둔한 것은 아닙니다.”

“너 둔한 거 맞다. 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네.”

적운상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구혁상이 마시려고 따라놓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혁상이 미소를 지었다.

“문파가 유지되고 세를 키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무인들치고 머리 좋은 놈은 별로 없다. 무재(武才)하고 상재(商才)는 아예 씨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상단에 돈을 맡기는 거다. 투자인 셈이지. 상단은 그들의 돈으로 물건을 사서 이익을 남기고, 그중 몇 할을 떼어서 원금에 보태 그들에게 준다.”

“망하면요?”

“클클. 그러니까 믿을 만한 상단에 돈을 맡겨야지. 많은 이들이 상관보의 호남상단(湖南商團)에 돈을 맡기려는 이유가 그래서다.”

“십 년 전의 이야기 아닙니까?”

구혁상은 적운상과 함께 오 년 동안은 산속에 틀어 박혀 살았고, 오 년 동안은 새외로 떠돌아 다녔다. 당연히 그가 아는 지식도 십 년 전의 것이었다. 적운상이 그것을 꼬집어서 물은 것이다.

“소림이 십 년이 지났다고 바뀌더냐? 무당은 어떻고? 저들도 마찬가지다.”

구혁상이 빗대어 하는 말에 적운상이 슬쩍 그쪽을 봤다. 그러다 상관도백의 손녀딸로 보이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잠시 적운상을 보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는 알아서 이득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저들은 전자에 속하니 얼굴을 알아둔다 해서 나쁠 것이 없다.”

“네, 사숙조님.”

적운상이 대답을 하며 다시 구혁상의 술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걸 보고 구혁상이 적운상의 손목을 잡아 누르려고 했다. 적운상이 그것을 팔꿈치로 쳐내고 다시 술잔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구혁상도 만만치 않았다. 뻗어오는 적운상의 손등을 팔꿈치로 찍으면서, 다른 손으로 술잔을 쥐려고 했다.

적운상이 펼치는 초식이야 뻔했다. 지금 그는 풍뢰십삼식을 펼치고 있었다. 단지 칼만 안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변초를 쓰지 못해 초식이 훤히 보였다.

적운상은 다급한 마음에 발까지 쓰기 시작했다. 발로 탁자의 다리를 걸어 옆으로 당겼다. 그러자 탁자가 움직이면서 자연히 술잔까지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당하고만 있을 구혁상이 아니다. 탁자의 다리에 걸려 있던 적운상의 발을 차고, 똑같은 방법으로 다리를 걸어 탁자를 원위치 시켰다.

타탁! 탁탁!

탁자 밑에서 적운상의 다리와 구혁상의 다리가 차고, 막고, 밟고, 걸며, 툭탁거렸다. 탁자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운상과 구혁상은 서로 먼저 술잔을 잡기 위해 잡고, 치고, 꺾고, 찍고, 밀며 손을 놀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그러는 것을 전혀 몰랐다. 지금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도백 일행에게 몰려 있었다. 더구나 적운상과 구혁상은 앉은 자리에서 오로지 한 다리와 한 팔만 가지고 툭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몰랐다.

타탁!

순간 적운상과 구혁상의 동작이 딱 멈추며, 시선이 부딪쳤다.

술잔을 잡고 있는 것은 적운상이었다. 그는 술잔을 잡고 있는 손으로 구혁상의 손을 탁자에 누르고, 발로는 구혁상의 발을 꼼짝 못하게 밟고 있었다.

“헤헤.”

“클클. 이놈아, 술은 많이 마시면 정신이 흐려지고 검 끝이 무디어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허나 적당히 마시면 없던 호기가 생겨 더 강한 힘을 내기도 한다고 하셨지요. 전 이제 겨우 두 잔째입니다.”

“놈! 그건 초원에서 마셨던 구유주를 두고 했던 말이다. 지금 마시는 분주는 구유주보다 더 독하단 것을 모르느냐?”

거짓말이었다. 구유주는 소나 양 같은 가축의 젖으로 빚은 술이었다. 그에 비해 분주는 수수나 쌀 따위의 곡류로 빚었다 뿐이지 독하기는 비슷했다.

“아항! 그랬군요. 그럼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술이 독해서 사숙님은 몇 잔만 더 마시면 정신이 흐려지고 검 끝이 무디어질 것 같습니다.”

“클클. 보는 눈이 있으니 내 오늘은 양보를 하마.”

구혁상이 슬그머니 힘을 빼자, 적운상이 재빨리 술잔을 가져다 입에 털어 넣었다.

“캬아… 좋다. 그런데 보는 눈이라니요?”

구혁상은 대답 대신에 이층의 방으로 가고 있는 상관도백 일행을 봤다. 적운상도 고개를 돌려 그들을 봤다. 그러다 아까 눈이 마주쳤던 상관도백의 손녀딸과 또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시였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에는 강한 호감이 어려 있었다. 아까 적운상과 구혁상이 툭탁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이쪽을 보고 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흐음…….”

적운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구혁상이 병째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아? 치사하게 정말…….”

“클클. 세상사가 다 그런 거다, 이놈아.”

“끄응.”

빼앗을 거면 술잔이 아니라 진즉에 술병을 노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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