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형산파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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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 형산파 6화
6화. 무공수련 (2)
긴 여정이었다. 구혁상과 적운상은 귀주를 지나 운남에서 서장으로, 서장에서 신강을 지나 몽골로 갔다. 그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갖은 고초를 겪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지쳐서 쓰러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만나 휩쓸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독충들에게 쏘여 며칠을 앓다가 간신히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적운상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비무를 했다. 뚱뚱했던 그의 몸은 살이 쪽 빠졌고, 갈수록 상처가 늘어갔다. 그리고, 실력도 늘었다.
“그대가 하얀 이리인가?”
팔 척 가까이 되는 큰 키에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몽골 특유의 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도신이 넓고 둥글게 휜 칼이 쥐어져 있었다.
“맞다. 도전을 받겠는가?”
적운상이 물었다. 그는 새외에서 하얀 이리라 불리고 있었다.
“나 큰 호랑이는 도전을 거절하지 않는다.”
몽골 사내가 적운상에게 칼을 겨눴다.
그러자 적운상이 투박한 느낌의 도를 뽑아 들었다. 사자도(獅子刀)라 불리는 그 칼은 자루 끝에 정교한 사자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신강에서 사자왕이라 불리는 자를 이겼을 때 얻은 칼이었다.
큰 호랑이가 적운상의 사자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사자왕에 대한 명성을 들어봤기 때문이다.
“흐압!”
큰 호랑이가 크게 기합을 지르며 칼을 내려쳤다. 단순하지만 힘과 기세가 가득 실려 있었다.
적운상의 눈에 금빛의 물결이 아른거렸다. 사자도가 큰 호랑이의 칼을 맞받아쳤다.
땅! 파직!
“크윽!”
큰 호랑이는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적운상의 사자도와 칼이 부딪치는 순간 짜릿한 느낌이 손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갔기 때문이다.
금안뇌정신공의 위력이었다. 무기를 통해 뇌기가 흘러간 것이다. 이런 경우 하수들은 열이면 열, 모두 무기를 놓친다.
그러나 큰 호랑이는 하수가 아니었다. 몽골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흐아아압!”
땅! 파직!
서너 번 더 칼을 휘두른 큰 호랑이가 뒤로 물러났다. 적운상은 그를 쫓지 않고 거리를 뒀다.
큰 호랑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할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적운상을 향해 칼을 휘둘러갔다.
땅! 파직!
내려치는 공격에 이어서 횡으로 벴다. 다시 내려치고 사선으로 올려쳤다.
적운상이 그것을 모두 맞받아쳤다. 그때마다 큰 호랑이는 뇌기 때문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그러나 그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큰 호랑이가 뒤로 훌쩍 물러나며 거리를 뒀다. 적운상은 이번에도 쫓아오지 않았다.
“으음…….”
큰 호랑이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수인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큰 호랑이는 많은 사람들과 싸워왔다. 그중에는 적운상처럼 중원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특징은 동작에 저렇게 허례허식이 많다는 것이다.
그냥 찌르면 될 것을 쓸데없이 한 손을 들고 우아하게 찌른다. 확 베어버리면 될 것을 예쁘게 모양을 내서 벤다. 큰 호랑이는 그 이유를 한참이나 후에 알았다.
몽골인들은 오로지 싸움을 통해서만 무공을 갈고닦는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형태가 없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서 칼을 휘두른다.
그러나 중원인들은 동작을 정해놓고 연습을 한다. 한 동작, 한 동작 연습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것을 하나로 죽 이어놓고 연습을 한다. 일명 투로(套路)라는 것이다.
중원인들은 실전에서도 그렇게 연습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꼭 다리 하나를 들지 않고 하단 방어를 해도 되건만, 그렇게 연습을 했기 때문에 다리를 들고 하단 방어를 한다.
특히 하수들이 그렇다. 정해진 형태, 즉 초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수들은 큰 호랑이가 싸우는 것처럼 일정한 형식 없이 검을 휘두른다.
초식은 버렸지만 거기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살린다. 그것이 고수였다.
그런데 적운상은 아니었다. 마치 하수처럼, 갓 무공을 배운 사람처럼, 초식을 있는 그대로 썼다. 다리를 들지 않아도 되는데 들고, 손을 뻗지 않아도 되는데 뻗었다.
변화나 응용이 전혀 없었다. 칼을 내려치면 맞받아친다. 다시 내려치면 똑같은 동작으로 맞받아친다. 몇 번을 내려치건 같은 곳을 공격하면 계속 같은 동작으로 맞받아친다. 그런데도 빠르면서 강했다. 결코 하수의 동작이 아니었다.
어쨌든 큰 호랑이는 그것이 적운상의 약점이라 여겼다. 다시 한 번 확인할 생각으로 칼을 내려쳤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번에도 적운상은 똑같은 초식을 펼칠 것이다.
따앙! 파직!
예상대로였다. 적운상은 또 똑같은 초식을 펼쳤다. 큰 호랑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상대의 동작을 미리 예상할 수 있으니, 이미 이긴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큰 호랑이가 다시 칼을 내려쳤다. 이번에도 적운상은 똑같은 초식으로 맞받아치려고 했다. 이미 예상했던 동작이었다.
큰 호랑이가 칼을 내려치다가 갑자기 옆으로 휘둘렀다. 몇 번이나 적운상이 똑같은 초식을 펼쳤기 때문에 옆구리가 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땅! 파직!
“……!”
큰 호랑이가 놀란 눈을 했다. 이럴 리가 없었다. 적운상의 초식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휘두른 일격이었다. 그런데 적운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큰 호랑이가 다시 시도를 해봤다. 다시 막혔다. 믿을 수가 없었다. 큰 호랑이가 어떤 공격을 하건, 어디를 공격하건 간에, 적운상은 모두 맞받아쳤다.
큰 호랑이는 당황했다. 적운상의 초식을 모두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적운상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과 같았다.
초식의 허점을 찔러 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초식이 나왔다. 큰 호랑이가 이미 알고 있는 초식이었다. 그 초식의 허점을 공격하면 또 다른 초식이 나왔다. 그 초식 역시 이미 파악하고 있는 초식이었다.
큰 호랑이는 미칠 것 같이 답답했다. 뻔히 보이는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애가 탔다.
상황이 그러자 두 사람은 생사를 걸고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잘 짜인 약속대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풍겨내는 기세만이 살벌할 뿐이었다.
따앙! 파직!
“헉!”
어느 순간 적운상의 사자도가 큰 호랑이의 칼을 걷어내며 목 바로 옆에 와 있었다. 답답하고 짜증스러움에 마음이 흔들린 순간 패한 것이다. 깔끔하고 완벽한 승리였다.
“져, 졌다.”
적운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얀 이리, 이제 어디로 갈 텐가? 몽골의 최강자인 트루칸을 꺾을 텐가? 나를 꺾었으니 네가 가지 않아도 그가 찾아올 것이다.”
트루칸!
전쟁터에서 홀로 삼백 명을 베고 살아남았다는 몽골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하얀 이리. 네가 강하기는 하지만 트루칸만큼은 아니다. 나는 그가 다섯 번 칼을 휘둘렀을 때 패배를 인정했다.”
적운상이 말없이 사자도를 허리 뒤에 꽂고, 같이 차고 있던 순백의 검을 뽑았다. 서장에서 장검운사(長劍雲士)라 불리는 자를 꺾고 얻은 것이었다.
“다시 해보지.”
적운상이 백운검을 그에게 겨눴다.
“난 이미 너한테 졌다. 의미가 없다.”
적운상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지금부터 단 한 칼도 막을 수 없다.”
큰 호랑이의 얼굴 표정이 변했다. 그는 몽골의 강자였다. 트루칸조차도 다섯 번이나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한 번의 칼질로 이길 수 있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큰 호랑이가 적운상에게 칼을 겨눴다.
‘한 번 이겼다고 자만하는 건가?’
“와라.”
“흐아아압!”
쉬쉿!
“……!”
큰 호랑이의 눈이 커다래졌다. 적운상의 백운검이 어느새 큰 호랑이의 목에 닿아 있었다.
“다시.”
적운상의 말에 큰 호랑이가 다시 칼을 휘둘렀다.
쉬쉿!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동작, 같은 초식이었다. 그런데도 큰 호랑이는 반격은커녕 피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했다.
“다시.”
큰 호랑이가 이번에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일격에 승부를 볼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그런데도 적운상은 그저 편안하게 검을 겨누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탓!”
큰 호랑이의 칼이 움직였다. 사선으로 내려치는 베기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휘두르기였다. 힘과 기세가 제대로 실렸다. 거리도 적당했다.
그러나 큰 호랑이는 끝까지 휘두르지 못했다. 어느새 적운상의 검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목에 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헉!”
큰 호랑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운상의 동작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면 이렇게 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적운상은 빠르지 않았다. 동작이 뻔히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일까?
큰 호랑이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왜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무슨 사술을 부린 거냐?”
적운상은 말없이 백운검을 집어넣었다. 사실 적운상이 큰 호랑이를 이렇게 간단히 이길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최근 그는 풍뢰십삼식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고자 낙연검법을 쓰지 않고 풍뢰십삼식만으로 비무를 했던 것이다.
“말해라! 하얀 이리!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냐?”
큰 호랑이가 절규했다. 강함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었다.
적운상이 잠시 그를 보다가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 했다.
“십 년 동안,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칼을 휘둘러보면 알게 돼.”
멍하니 있던 큰 호랑이가 고개를 숙였다.
‘더 노력하라는 뜻인가?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인가?’
큰 호랑이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로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