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8화 (완결)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8화 (완결)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너는 이제 폭풍문의 총호법이 아니냐. 여기서 제수씨와 알콩달콩 잘 살도록 해라. 대폭풍문의 총호법을 건드릴 분은 하나도 없을 거야."
"저도 따라가고 싶은데……."
말썽꾸러기의 말에 기겁을 한 소천악이 얼른 달래며 말했다.
"내 종종 나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은거한다고 하지만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라."
"뭐 그렇다면 형님 뜻대로 하십시오."
탁천웅의 승낙을 얻어낸 소천악은 은밀히 심자앙을 불렀다. 심자앙은 느닷없이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기다리는 소천악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천악은 차를 한 잔 권하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심 군사님, 저는 이제 슬슬 은퇴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폭풍문이 간신히 기반을 다졌는데 은퇴한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뭐 더 이상 다질 기반도 없지 않습니까? 심 군사님이 계시니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럴 수가!"
"심 군사님이 알아서 온가상단이 운영하는 상단과 폭풍문을 적절히 조화시키도록 하십시오. 제가 심 군사님의 위치는 미리 보장해 드릴 테니 아무런 걱정 하지 마십시오."
"아니 그래도 무공도 없는 제가 어떻게 이끌고 나가겠습니까?"
"그것은 제가 생각한 바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심 군사님은 지금처럼 하시던 일만 잘 꾸려나가시면 됩니다."
단호한 소천악의 말에 심자앙은 몇 번이고 설득을 했지만 도대체가 마이동풍이었다. 소천악의 마음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자앙은 소천악이 목적을 이룬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다가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힘겨루기는 당연히 소천악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힘에서 밀리는 심자앙으로서는 더 이상 강권하기는 어려운 입장이었다. 소천악의 은거를 기정사실로 한 심자앙은 다시 소천악과 함께 폭풍문을 이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서로 토의하기 시작했다.
하룻밤 내내 진행된 토론의 끝에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 심자앙은 뭔가 미진한 표정으로 소천악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소천악은 갑자기 폭풍문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문제와 명령에 따라 모든 폭풍문의 이 각 각주인 왕처기와 뇌가이, 그리고 총당주인 종천리를 비롯한 모든 폭풍문의 수뇌부가 참가하였다. 소천악은 그들에게 폭탄발언을 시작했다.
"이제 나는 폭풍문의 문주 자리에서 물러날까 하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문주님?"
깜짝 놀란 종천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으나 소천악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앉으시지요, 총당주님. 이제 자세히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천천히 운을 뗀 소천악이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폭풍문은 이미 강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문파가 되었습니다. 정파연합이나 혈교 그리고 마교와의 사이도 원만한 지금 폭풍문을 위협할 세력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 지경에서 은퇴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겠습니다.
사실 저의 사부는 혈검신마이십니다 정파 무림에서 비록 오해를 벗고 누명을 벗었다고 하지만 항상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것은 분명합니다. 폭풍문이 그런 부담을 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
"아니 그까지 떨거지 같은 정파연합이 무서워서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
종천리가 반발하자 미소짓던 소천악이 말을 이었다.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폭풍문이 자리 잡는다는 것은 앞으로 많은 세월을 요구할 것입니다. 정파연합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다면 혈교와 마교의 사이도 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가 물러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여러 소리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문주의 결정입니다."
"존명! 문주님의 명을 따릅니다."
소천악의 단호한 말에 수뇌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천악은 그런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천천히 밝혔다.
"일단 문주 자리는 비워두겠습니다. 문주가 될 수 있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하고 그 방법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문주를 시켜드리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폭풍문의 수뇌부는 눈빛을 반짝였다.
폭풍문의 문주! 강호로 사는 이들이라면, 특히 폭풍문에 몸을 담은 이라면 그 위치가 주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호사패 중의 하나인 폭풍문의 주인이 된다는 얘기였다. 모두 그 야욕을 불태우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대전을 나선 소천악의 발길이 머문 곳은 커다란 쇠대문이 서 있는 연무대 옆이었다. 모든 수뇌부가 모이자 소천악은 아무 말 없이 검을 뽑아 신형을 번뜩이며 혈검구식을 펼쳤다.
"혈천멸!"
목소리와 함께 펼쳐진 검세는 한쪽의 쇠대문을 향해 거칠게 몰아쳤다.
콰과과광!
천지가 울리는 폭음이 일어난 후 먼지가 내려앉은 광경에 모든 폭풍문 수뇌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쇠대문 하나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대신 쇳조각만이 덩그러니 남은 가공할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는 수뇌부를 향해 소천악이 일갈했다.
"이 경지에 이른 자는 두말없이 폭풍문주에 취임한다. 단 없을 시 심자앙 군사와 종천리 총당주 그리고 탁천웅이 동의한다면 대리문주 직을 수행한다. 만일 이를 어기고 힘으로 문주에 오르는 자는 무조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이상이다."
위엄 어린 소천악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가공할 무공경지에 놀랐고 더불어 강호에서 칼밥을 먹는 자로서 올라서야 할 경지를 보자 투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심자앙이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머리 좋은 그는 이미 소천악의 내심을 짐작했다. 혹시나 야욕에 불타는 이가 나와 자신을 해코지하려는 걸 미리 막아주려는 마음을 읽자 절로 고마움이 치밀었다. 말이 아닌 눈빛의 교환이 이뤄지고 소천악의 의지는 바로 이뤄졌다.
며칠 후 폭풍문의 전 문도가 정문 앞에 도열했다.
오늘이 소천악이 태상문주로 물러나며 강호를 떠나는 날이었다. 물론 공식적인 은거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강호무림의 일에 손을 떼는 날이었다.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소천악의 으름장에 마교나 혈교 그리고 정파연합 아무에게도 연락 없이 사라지기로 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소천악이 서둘러 말했다.
"더 이상 번거롭지 않게 얼른 가겠소."
"이제라도 마음을 돌릴 생각은 없습니까?"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심자앙의 말에 애잔한 눈빛을 보내며 소천악이 대답했다.
"심 군사님, 여러모로 부족한 저와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합니다."
말과 동시에 고개를 깊이 숙이는 소천악을 보며 기겁을 한 심자앙이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세상 어느 주군이 군사를 이리 믿어준 분이 계신가 생각합니다. 결단코 없다고 자부합니다."
따사로운 남자의 정이 오고 가자 서 있던 모든 폭풍문도의 입에 미소가 감돌았다. 야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한결같이 이 순간만은 진한 남자의 내음이 풍겨 나왔다.
얼마에 걸쳐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 소천악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커다란 함성이 울려퍼졌다.
"폭풍문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
소천악의 입에 미소가 떠올랐다. 천하의 망나니가 이런 대접을 받으며 떠나다니 실로 감개무량했다. 더 있다간 못 갈것 같아 서둘러 말을 타고 달렸다. 그 뒤를 주혜미와 천취려 두 여자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괴팍했지만 나름 멋진 주군이셨습니다. 소천악 문주님."
바로 옆에서도 듣지 못할 정도로 뇌까리는 심자앙과 종천리였다.
그리 소천악은 정든 폭풍문을 떠나 길을 재촉했다.
얼마를 달려가자 드디어 그리운 산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복잡해지며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토록 이를 갈던 혈검신마의 얼굴이 그리워졌다.
"후후, 사부님. 이제 제가 천하제일미를 데리고 왔습니다. 사부는 실연이지만 전 당당히 부인으로 데려왔지요."
중얼거리던 소천악은 말에서 내려 걸었다. 물론 주혜미와 천취려도 함께 걸었다. 얼마를 걸어가자 드디어 절벽으로 위장된 진식 앞에 당도했다.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이오."
당당한 소천악의 말에 바로 천취려가 콧날을 찡그리며 투정을 부렸다.
"이런 깡촌에 어떻게 살아요?"
"싫으면 가든지."
"아니에요. 소첩이 어찌 감히."
세게 나오는 소천악의 대꾸에 얼른 꼬리를 내리는 천취려였다. 주혜미는 어차피 소림사의 깊숙한 금지에 살았던 터라 오히려 이런 풍경이 낯익었다. 그런 주혜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 소천악이 한 발 들이려다가 기겁했다. 어느새 진식은 전과는 달리 변화막측한 진으로 변해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아니 진식이 바뀌었잖아. 이 영감탱이가. 사부님~!"
소리를 버럭 지르며 난리치는 소천악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구냐? 천악이냐?"
귀에 익은 혈검신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움에 얼른 대답하는 소천악이다.
"사부님, 맞습니다. 저 천악이입니다."
"뭐 하러 왔냐?"
생뚱맞은 혈검신마의 말에 소천악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이제 저도 조용히 살아야지요. 강호 가보니 이거 영 엉망진창이라 머리가 아파서 편히 살고 싶습니다."
"거참, 빨리도 은거한다."
"은거는 무슨. 지내다 심심하면 나가보렵니다."
"자식아, 그게 은거냐?"
어이없다는 혈검신마의 말에 소천악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둘 사이는 사실상 사제지간이 아니라 조손지간이라 해도 무방한 사이였다.
"내 식대로라면 은거입니다. 강호에 가서 사부님의 누명도 다 풀어놨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제자에게 어서 해진법이나 말해 주세요."
"싫다. 조금 고생하다가 오너라. 네놈 얼굴 보다가 내가 화병으로 제명에 못 죽는다."
불퉁거리는 혈검신마의 말에 이야기를 다 듣던 주혜미와 천취려가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자존심이 상한 소천악이 붉으락푸르락거리더니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영감탱이야."
"얼씨구! 저거 봐라. 본색 나온다. 쯧쯧, 어디 제 버릇 개 주겠냐."
"으아아! 더 이상은 못 참아요."
분노가 극에 달한 소천악이 검을 뽑아 들고 사정없이 진식에 후려쳤다. 혈검구식의 시현이 벌어지자 진식은 태풍을 만난 거목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쿠르르릉!
천지가 뒤집어지는 소리에 슬쩍 바라보던 혈검신마가 놀라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그거 은자 오천 냥을 들여 새로 만든 진이야."
"시끄러워요. 내 오늘 이놈의 진을 모조리 박살낼 겁니다."
으르렁거리며 혈검구식을 연달아 펼치는 소천악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혈검신마였다.
"야, 이 개망나니야. 제발 참아라."
"싫다고 했잖아요."
거의 막무가내 수준의 대답을 하는 소천악의 입가에 정겨운 미소가 걸려 있는 걸 본 건 하늘의 태양뿐이었다.
「소천악」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