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6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67화
"우우… 그런 내막이……."
군웅들이 웅성거리며 분노의 눈빛을 쏘아냈지만 이미 체념한 제갈상린은 눈을 질끈 감고 나머지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후 혈검신마는 정사파로부터 추적을 받았죠. 하지만 그의 놀라운 무공으로 정사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혈검신마는 은거하면서 그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가문의 장로를 대신해 깊은 강호동도들에게 사과를 보냅니다. 더불어 그 장로에 대한 처벌은 가문의 율법에 따라 엄중히 처할 것을 명합니다. 또한 죄를 통감하고 우리 제갈세가는 앞으로 이십 년 봉문할 겁니다. 다시 한 번 제갈세가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번 사건에 대해 강호동도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
제갈상린 가주는 꿋꿋한 표정으로 자신이 할 말을 끝까지 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모함이다! 이는 모함인 것이야!"
사건에 연루되었던 현천자 무당 장로가 소리치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닥치시오.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소천악의 말대로 무당파 사람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크나큰 이유가 있었다. 평소 제갈상린 가주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품행으로 강호인들에게 이름이 드높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떠한 말이든 진리였다. 석년에 혈검신마 무림공적 사건에도 제갈상린 가주는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현천자 장로는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기서 멈춘다면 자신은 비열한 계책을 꾸민 인간으로 낙인찍혀 정파에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또한 무당파에서도 파문당하여 갈 곳을 몰라 헤맬 처지임은 분명했다. 그냥 헤매는 처지가 아니었다. 무공이 폐쇄되어 일반인으로 돌아간다는 치욕적인 것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머리를 놀렸다.
그 중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소천악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마침내 한 사실을 깨달았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의 입이 열렸다.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야, 네놈은 분명히 내가 보기에는 혈검신마의 제자가 분명해."
"헉! 혈검신마의 제자!"
모든 군웅들은 놀라 소천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소천악은 태연했다. 어차피 여기까지는 각오한 바였다.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자 현천자는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외쳤다.
"너는 분명히 등에 커다란 점이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은가?"
소천악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반문하는 소천악을 보며 기회를 엿보던 현유자가 나섰다.
"소 대협, 지금 대협께서 우리의 오해를 풀어주셔야겠소이다."
"무슨 오해 말씀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협의 등 뒤에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강호동도의 오해를 풀어주시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소이까?"
"물론이외다."
"맞소. 나는 등에 점이 있고 분명한 것은 혈검신마 장희경의 제자요."
군웅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무림공적의 제자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제갈상린 가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 사부님에 대한 무림공적 사건은 계략이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밝혔소."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네가 제갈상린 가주를 협박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런가? 너희 정파인들은 그렇게 썩어 있는가? 같은 정파인의 양심고백도 묵살할 정도로 너희 정파인의 위신이 진실보다 소중한가."
"무엇이! 네놈이 감히!"
"닥쳐라! 다시 한 번 입을 열 때면 네 목을 덜컹 썰어버리겠다. 더 이상 나를 분노케 하지 말아라. 사부님은 더 이상 죽이기 싫어 은거했지만 나는 다르다. 내가 분노를 터뜨리면 여기 있는 무당파를 멸문시키고 말리라."
"감히!"
"지금 감히라고 했는가! 혈교에 쫓겨서 전전긍긍하는 쥐새끼들이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우리 폭풍문의 고수들이 여기 와 있다. 무당파 멸문 정도는 일도 아니다. 어디서 감히 사악한 입을 놀리는가."
노기에 찬 소천악의 말에 폭풍문 고수들은 모두 검에 손이 갔다. 사실 그들은 모두 사파인들이 많았다. 평소 정파인들이 나부랑거리는 것을 보기 싫었던 그로서는 소천악의 명만 떨어지면 무당파를 싹 쓸어버릴 생각으로 눈빛을 흉악하게 빛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장내에 있던 군웅들은 모두 안색이 급변하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혈염개 개방 대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잠시 멈추시오!"
혈염개의 말에 소천악은 금방이라도 출수하겠다는 손을 잠깐 띄우고 안색을 펴지 못한 채 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저는 이 자리에서 개방을 대표하여 모든 군웅들에게 진실을 얘기하겠소. 사실 혈검신마의 사건은 정파의 조작임이 분명하오. 거기에는 너무도 막강한 무공을 지닌 혈검신마를 경계하려는 정파의 부끄러운 과거였음을 우리 개방은 인정하오. 더불어 무림공적 사건은 정파의 치졸한 계략임을 이 자리에서 전 개방도를 대표해 밝히는 바요."
치명타였다. 제갈상린 가주에 이어 혈염개의 말은 모든 군웅들의 관심을 한곳으로 모으는 집결점이 되었다.
현유자 장문인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버틸 재간도 없었다. 현천자 장로조차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자신이 뭐라고 해봐야 군웅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 확률은 없었다.
천하의 정파의 정파인 개방이 말한 것과 자신이 말한 것과의 비중은 태양 앞의 반딧불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 더구나 개방은 정보를 다루는 정파였기 때문에 그들의 정보는 거의 정확했다.
소천악은 의외의 사태에 혈염개를 쳐다보며 놀라운 눈초리를 보냈다. 혈염개는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에게 말했다.
"정파의 분열을 막자는 것입니다. 한번 부끄러운 일을 숨기다 보면 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저와 모든 개방들의 장로회의 끝에 나온 결정이니 소 대협은 이런 우리 개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용서하죠. 이미 지난 일이고 개방이 개입된 일도 아니고 다만 말을 안 했을 뿐인데 그 정도로 용서 못 할 정도는 아니죠."
한결 풀어진 소천악의 말에 혈염개는 미소를 지었다. 사태는 급변해 제갈세가와 무당파의 책임론이 군웅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저런 썩을 놈들! 정파한 놈들이 저런 치졸한 계략을 꾸미다니."
"평소에 깨끗한 척하던 놈들이 더 더러운 짓을 하더니."
군웅들의 함성이 들리자 현유자 무당 장문인은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백 년 동안 쌓아왔던 무당의 명예가 일순간에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그는 잠시 침음성을 토했다.
"음!"
하지만 그는 곧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무당파를 살려야 했다. 살리는 방법을 결정한 그는 잠시의 고민 끝에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무당 장로들은 들으시오. 현천자 장로를 모두 포박하여 앞에 꿇어앉히시오. 또한 그에 관계된 모든 무당제자들을 모두 이 자리에 끌어내시오."
"존명!"
다른 장로들도 현유자 장문인의 말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서 자칫 실수하면 무당파의 명예는 땅으로 떨어져 사파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안 그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현천자 장로는 미처 반항할 틈도 없이 덤벼드는 세 명의 장로에 의해서 곧 전신대혈이 점혈되어 꿇어앉혀졌고 제갈상린 가주의 말과 개방의 말을 들은 후 관계된 모든 문파 인원들을 속속 체포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뜻밖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무당파 앞에 모여든 군웅들은 제갈세가와 무당파의 죄인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점점 치죄가 시작되자 하나둘씩 혈검신마에 관한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현천자가 고개를 숙이며 드러나는 증거에 입을 열자 현유자 무당 장문인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현유자 무당 장문인은 거친 한숨을 토해내며 소천악 앞에 서 고개를 숙였다.
"소 문주님, 우리 무당이 문주님과 사부이신 혈검신마께 대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통감하고 우리 무당은 앞으로 십 년간 봉문할 것입니다."
"으음! 그거야 장문인께서 결정한 일이니 외인인 제가 가타부타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서 기쁩니다."
절대 만류하지 않는 소천악의 내심은 아직 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입으로 사과했다면 무당을 당장에라도 엎어버리려 한 그였다.
현유자는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무당의 명예가 땅으로 떨어진 죄를 통감하며 좌절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천악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폭풍문 수뇌부와 함께 무당산을 떠났고 군웅들이 떠나며 던지는 경멸의 말과 침 뱉기에 전 무당파 고수들은 치욕감에 고개를 숙인 채 들지를 못했다. 구파일방의 태두로 소림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무당파 최대 치욕의 날이 이렇게 지나갔다.
혈검신마의 누명을 벗긴 홀가분한 기분으로 움직인 소천악이었다.
오랜 여정 끝에 위풍당당하게 광동성에 돌아온 폭풍문의 위세는 갈수록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처음엔 사마외도의 버릇을 고치지 못해 일반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사례도 있었지만 간명하면서도 강력한 문규를 시행한 탓에 문도에 의한 잡음은 시간이 갈수록 적어져만 갔다. 심자앙 군사와 협의한 소천악은 간단명료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문규를 발표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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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풍문은 존재하되 군림하지 않는 방파이다. 폭풍문의 모든 문도들은 강호무림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폭풍문에 속한 표국이나 전장 기타 모든 행위에 대해서 호위할 수 있는 의무도 갖는다. 그에 따라 폭풍문에 대한 상단의 지원금으로 무사들의 생계를 꾸리도록 한다.>
간단한 문규였지만 어기는 문도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렸다. 혹시나 하고 잘못했던 몇 명의 문도 목이 단칼에 날아가자 오금이 저린 폭풍문도들이 일제히 고개를 움츠렸다.
폭풍문이 갈수록 안정을 찾아가자 귀찮음을 느낀 소천악은 슬슬 폭풍문을 벗어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강호에 머무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주혜미와 천취려를 거느린 그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고 더 이상 원하는 것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서서히 폭풍문을 떠날 준비를 서두르며 암암리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탁천웅을 찾아간 소천악이 자신의 진심을 밝히자 탁천웅은 눈을 껌뻑껌뻑거리며 물었다.
"형님, 왜 벌써 은퇴하려 하십니까? 이제 할 일이 태산인데……."
"할 일은 네가 태산이지 나는 할 일이 더 이상 없다."
일언지하에 딱 자르는 소천악을 보며 원망스런 눈을 한 탁천웅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