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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61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61화

 

  "와아! 이겼다!"

 

  멋도 모르는 정파 무림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번 싸움에서 처음으로 혈교의 후퇴를 본 정파인들이었다. 계속 밀리다가 처음 승리하자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위세당당하게 도망가는 혈교인들을 바라보던 고양청 마교 호법에게 한 사람이 다가섰다. 정파연합의 선봉대를 이끌던 점창파의 장문인 사일수였다.

 

  사일수는 오자마자 사의를 표했다.

 

  "이렇게 도움을 줘서 고맙소이다."

 

  "별말씀을. 어차피 저들은 우리 마교의 반도들입니다. 반도를 제압하는 거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음산한 말투를 애써 감추며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고양청의 목소리에 미소를 짓던 사일수가 말했다.

 

  "혈교의 야욕에 천년마교가 도와주시니 이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오이다."

 

  "껄껄, 어려울 때 도와야지요."

 

  겸손을 떠는 고양청의 깊은 내심은 비웃음으로 가득한 걸 아직 모르는 사일수 점창파 장문인은 호의로 대하기 바빴다. 권모술수가 넘쳐나는 싸움터였다.

 

 

 

 

 

  제5-7장 정파의 음모를 역이용하라다

 

 

 

 

 

  일단 후퇴한 천인귀는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이미 수뇌부로부터 온 연락에 따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의 눈동자엔 분노의 화염이 일렁거렸다.

 

  "당주님! 왔습니다."

 

  천막 안에 뛰어 들어오는 한 무인을 보며 벌떡 일어서서 소리치는 천인귀 당주였다.

 

  "흐흐!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구나. 어서 다시 진영을 정비해 승리한 줄 착각하는 정파연합과 마교의 쓰레기들을 아작내자."

 

  "존명!"

 

  "그들을 선봉에 내세워라. 흐흐, 혼비백산한 정파 놈들과 마교 놈들의 얼굴을 봐야겠다."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움직이는 천인귀 당주의 발걸음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다시 공격하는 혈교 선봉대의 맨 앞에는 얼굴이 묵빛인 괴인이 오십여 명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시에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괴이한 모습이었다.

 

  혈교 선봉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정파연합에 비상이 걸렸다. 즉시 싸울 준비를 갖춘 고수들이 속속 움직였고 마교 고수들도 뒤질세라 빠르게 따라갔다.

 

  서로 마주친 양대세력은 거침없이 서로에게 살검을 뿜어댔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판이었다. 모두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절기를 쏟아댔다.

 

  "크아악! 이 혈교의 잡졸들아."

 

  "크윽, 이 정파의 위선덩어리에게 당하다니! 분하다."

 

  처절한 비명이 울리며 싸움판은 후끈한 열기로 덮여갔다.

 

  그때!

 

  싸움판의 한쪽이 동요하며 정파 무림인들이 급격히 죽어갔다. 묵빛괴인이 출몰한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죽음이 일어났다.

 

  정파 무림인들은 안간힘을 다하며 묵빛괴인들에게 검을 날렸으나 살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날아온 반격에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해 죽어갔다. 가만히 묵빛괴인을 살피던 한 노고수가 무언가를 느끼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두려움이 새어나왔다.

 

  "혈강시다."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가 들리며 정파인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혈강시!

 

  참으로 전율스런 존재였다. 석년의 혈교겁난에서도 혈강시가 뿌린 피가 산과 강을 뒤덮었다. 그 무서운 혈강시가 무려 오십여 구가 몰려오는 공포스런 장면에 정파인의 사기는 졸지에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정파 수뇌부의 얼굴이 급변한 채 살펴보는 중 제갈세가 제갈상린 가주가 긴장된 신색으로 말했다.

 

  "혈강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책에 쓰인 내용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 묵빛 피부가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군요."

 

  "저놈들을 어떻게 처치하죠?"

 

  혜연 맹주의 반문에 침통한 표정으로 답하는 제갈상린이었다.

 

  "혈강시는 초절정고수가 전력으로 내공을 실은 검에만 상처를 입습니다. 어서 정파연합의 초절정고수를 투입해 해치우지 않으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알았소. 각파는 즉시 자파의 초절정고수를 보내 저 간악한 혈강시를 처치하도록 하시오."

 

  위엄 어린 혜연 맹주의 말에 각파 장문인들과 가주들은 즉시 자파 출신 초절정고수를 급히 혈강시 쪽으로 보냈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건 다 알았다.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에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죽어가는 형편이다.

 

  초절정고수가 투입되어 혈강시와 용호상박의 처절한 혈전이 벌어졌다. 아무리 초절정고수라 하나 혈강시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리 허술하게 무너졌으면 수백 년 동안 공포의 대상이라 불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초절정고수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날렵한 신법으로 혈강시의 가공한 공격을 피하며 반격의 칼날을 날리는 모습은 육안으로 식별조차 하기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자 차츰 피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혈강시가 초절정고수의 합공에 의해 전신이 조각나며 쓰러져 갔다. 물론 정파의 초절정고수도 무사하진 못했다. 최소한 혈강시 한 구가 쓰러질 때마다 한 명의 초절정고수가 죽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대로라면 혈강시는 무사히 막아내도 정파의 전력손실은 엄청날 게 뻔했다. 초절정고수 숫자가 줄어든다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 원동력이 사라지는 판이었다.

 

  그렇다고 혈강시를 내버려두면 절정고수들 등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죽어갈 판이라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 가만히 상황을 바라보던 고양청의 눈이 번쩍이며 옆에 서 있던 마교 고수에게 나직이 뇌까렸다.

 

  "지금이군. 이봐, 마교인들을 모두 후퇴시켜."

 

  "존명."

 

  "사전에 약속한 대로 혈교인들과 싸움을 슬쩍슬쩍 피하며 티 안 나게 빠져나간다."

 

  "알겠습니다. 모든 고수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좋아. 바로 시작해."

 

  고양청의 최종명령이 떨어지자 마교 고수들은 명령대로 겉으로는 치열하게 싸우는 척하며 일부 혈교인들과 함께 서서히 싸움판에서 멀어져 갔다.

 

  하도 치열한 교전이 벌어져 아무도 아직은 마교인들의 속셈을 간파하지는 못했다. 마침내 마교인들이 일부 혈교도와 함께 싸움판에서 멀어지자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제갈상린 가주가 소리쳤다.

 

  "이런, 마교인들이 사라져 간다."

 

  "무엇이라."

 

  놀란 정파의 수뇌부들이 쳐다보았으나 이미 마교인들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을 뿐이다.

 

  "속았다. 역간계."

 

  탄식을 내뿜으며 머리를 짚는 제갈상린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걸 본 현유자 무당 장문인이 서둘러 물었다.

 

  "속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지요?"

 

  "이건 우리가 폭풍문을 무너뜨리려는 계략과 똑같습니다. 아마도 폭풍문에서 이런 사태를 대비해 우리 정파를 곤경에 빠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그럼 마교가 온 건?"

 

  "맞습니다. 미끼지요. 우리 정파와 혈교를 모조리 그물 안에 넣어버린 놀라운 계책이지요."

 

  "이런 제길.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이 분함을!"

 

  "늦었습니다. 저기 혈교도를 보니 우리와 사생결단을 낼 자세입니다. 더구나 혈강시가 있는 한 물러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그럼 공멸이라도 당한다는 겁니까?"

 

  다급한 현유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는 제갈상린이었다. 그렇게 정파연합의 초절정고수가 무수히 스러져 갔고 덩달아 정파의 힘도 약화되었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진 소천악을 일깨우는 심자앙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성공입니다."

 

  "걸려들었나요?"

 

  "네. 정파인과 혈교의 주력이 붙어 거의 공멸지경이라는 전갈입니다."

 

  "푸훗. 이거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혈교에서 내세운 비밀병기는 혈강시 오십여 구였답니다. 정파의 초절정고수들이 총동원돼 그놈들과 싸워 모두 해치우긴 했지만 정파에서도 거의 팔 할 이상의 초절정고수가 죽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흥분 어린 심자앙의 말에 눈을 크게 뜬 소천악의 말이 이어졌다.

 

  "초절정고수들이요?"

 

  "네. 사실상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현재로선 전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 이제 남은 건 우리뿐이군요."

 

  "안 그래도 지금 혈교에서 교주가 직접 우리 쪽으로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기면 혈교는 말 그대로 쪽박 차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다면 아주 복잡해지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흐흐. 질 리가 없지요. 우리에게 힘과 심 군사님 같은 책사가 있는데 감히 멋모르고 오면 죽음이지요."

 

  자신감 넘치는 소천악의 말에 미소로 응대하는 심자앙이었다.

 

 

 

  같은 시각.

 

  구백천 혈교 교주는 장로들 대부분을 이끌고 혈교의 남은 고수를 모두 모아 건곤일척의 승부를 보려 폭풍문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한 혈교인이 옷에 피칠을 한 채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그는 바로 구백천 혈교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보고했다.

 

  "혈교 천세. 교주님께 아룁니다. 선봉대는 정파 무림인들과 혈전을 벌인 끝에 겨우 승리했습니다. 정파 무림은 크나큰 피해를 입고 후퇴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오, 이겼다는 말인가?"

 

  기쁨에 찬 구백천의 말에 전령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이기긴 했습니다만 피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혈강시 오십 구가 모조리 사라졌고 선봉대 고수의 칠 할이 죽거나 중상을 입어 더 이상 진군은 어려운 실정입니다."

 

  "크흠."

 

  구백천 혈교주는 혈강시의 전멸이란 달갑지 않은 소식에 언짢은 기분으로 옆에 있던 곽자연 장로에게 말했다.

 

  "곽 장로! 이제 정파는 끝장났으니 폭풍문만 해치우면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혈교의 이백 년 숙원이 여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후후.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선 거 아닙니까."

 

  "교주님의 놀라운 무공을 보면 폭풍문 놈들이 오줌을 질질 싸며 살려달라 애원할 겁니다."

 

  아부 어린 곽자연 장로의 말에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구백천은 조용하나 위엄 있게 말했다.

 

  "모두 폭풍문을 일거에 쓸어버리고 마교와 정파의 떨거지들을 주살하라."

 

  "존명!"

 

  구백천의 말에 모든 혈교 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바야흐로 혈교 정예와 폭풍문이 사투를 벌이기 직전이었다.

 

 

 

  마침내 구백천 혈교주가 이끄는 혈교의 무인들이 폭풍문이 머무는 곳이 한눈에 보이는 데까지 몰려왔다. 유심히 바라보던 소천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왔군요, 심 군사님."

 

  "그렇습니다. 여기서 혈교를 격파하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 겁니다."

 

  "쓸어야 하나요?"

 

  "아니지요. 어차피 우리 폭풍문이 천하를 독패하려는 야욕이 없는 이상 저들을 말살하려 하는 건 위험천만입니다."

 

  "왜죠?"

 

  "정파가 당장은 약화되었다 해도 아직은 강한 세력을 유지합니다. 그들을 견제하려면 여러 호랑이를 동시에 강호에 풀어놓아야 합니다."

 

  "거참, 강호인생이라는 게 엄청 골치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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