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7화
막 소천악이 방에서 나가려 하자 놀란 그녀가 얼른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그래서 당신은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거야?"
"누가 된다고 했어. 낭군님이 잘못했으면 말로 조용히 풀어야지. 어디서 이런 행패를 부리고 지랄이야."
"아니 이런……."
기가 막혀 말을 못 하는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던 소천악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이 방을 나서면 다시는 볼 생각 하지 말아. 자고로 영웅은 가끔 바람도 피우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다른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소천악은 싸늘하게 말하며 걸었다. 천취려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소리쳤다.
"이번 한 번만이야. 다시는 안 돼."
"또 한 명 있어. 거기까지는 나도 양보 못 해."
"이 치사한 놈아. 알았어, 거기까지야. 대신 정실부인은 나야."
"이거 왜 이래? 두 번째 부인이라고 했잖아. 왜 우기고 난리야."
"흐흑, 이런 나쁜 놈!"
마침내 울화가 치민 천취려가 방에 무너지며 서럽게 울었다. 바라보던 소천악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괄괄한 그녀의 성격상 고분고분 넘어가리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과격하게 나간 것이 주효한 걸 알았다. 이제는 달래줄 시간이었다. 소천악은 슬그머니 그녀 옆으로 다가가 얼른 안았다.
"비켜, 이 짐승아!"
"흐흐~ 좋은 게 좋은 거야."
앙탈을 부리는 천취려를 안아 든 소천악이 침대로 향했고 그날은 두 사람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이 밝아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천악이 옆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는 천취려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 바쳐 봉사한 결과가 좋게 나와 마음이 편해진 소천악이다.
해가 중천에 뜨자 금선탈각지계로 혈교의 눈초리에서 벗어난 소천악과 1대는 신속히 개별적으로 산동성 제녕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개별적이지만 상호유기적인 연락망을 통하여 모든 폭풍문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혈교의 정보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얼굴이 알려진 자는 밤을 틈타 움직이는 통에 혈교의 첩자들의 눈초리로부터 피할 수가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소천악과 1대의 모습은 정파연합과 혈교의 치열한 격전지가 있는 근처에 당도했다.
"종 총당주! 이제 우리가 왔다는 걸 정파연합에게 알려주시오. 이제 계책을 전해주고 그 실행 여부를 들고 오도록 해주시오."
"존명. 바로 전령을 보내죠."
예의를 갖춰 대답한 종천리는 부지런히 서찰을 적어 휘하 무인에게 전해주었다.
제5-6장 혈교와의 접전
한편 정파연합 측에서도 기쁨이 넘쳤다. 마침내 소천악의 폭풍문이 긴 침묵을 깨고 싸움터로 몰려온다는 소식은 아직 수뇌부 외에는 알지 못했지만 곧 모두에게 알려질 사실이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혜연 맹주가 첫말을 꺼냈다.
"아미타불. 폭풍문이 이미 우리 옆으로 왔다는 전갈입니다."
"맹주님, 이게 다 맹주님의 헌신적인 설득이 주효한 거지요."
제갈상린 가주가 치켜세우자 혜연 맹주는 겸손을 떨었다.
"별말씀을. 이제 다시 무림의 정사양도가 힘을 합쳐 혈교의 마수에서 승리를 거두려는 흐뭇한 일이지요."
"그런데 과연 폭풍문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타인의 손을 빌린다는 데 자존심이 몹시 상한 현유자 무당파 장문인의 비아냥에 혜연 맹주는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장문인, 폭풍문은 사실 우리와 혈교의 싸움으로 진이 빠진 후에 혈교와 자웅을 결하려는 속셈이 있었지요. 전략적으론 그게 맞는 이치지요."
"험."
"그런 그들이 미리 온 건 우리와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결심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제 폭풍문과 우리는 혈교가 존재하는 한 동맹관계라는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소이다. 저도 정사를 불문하고 일단은 혈교를 물리치는 데 전력을 다하지요."
"방금 전 소천악 문주에게서 전갈이 왔소. 사전에 약속한 대로 움직여달라는 부탁이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거짓 패주를 하는 겁니까?"
현유자의 말에 혜연 맹주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 거짓 패주도 아니지요. 밀리고 있는 입장에서 조금 더 시달리자는 말 밖에 더 있습니까?"
"맹주, 어떻게 그런 말씀을……."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자는 겁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이 싸움을 이기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셔야지요. 아미타불."
혜연 맹주의 칼 같은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구대문파로 구성된 1, 2, 3 방어진은 순차적으로 급속 후퇴하도록 하시오. 후퇴할 때는 완전히 사기가 꺾여 도망가는 것처럼 급히 후퇴하여 저들로 하여금 빨리 궤멸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게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맹주님의 말대로 하죠."
이후 정파연합에서는 혈교와의 최전방에서 싸우던 구대문파 지휘자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지휘자들은 처음엔 의아했지만 맹주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그들에게까지는 자세한 작전의 내막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자칫하여 포로가 되는 경우에 이 작전의 비밀을 누설한다면 오히려 역공을 당하여 큰 낭패를 당할 위기를 자초할 리는 없었다.
밀서를 보낸 소천악은 잠시 휴식한 폭풍문도를 독촉해 번개같이 북상길에 나서 바로 반나절만 가면 혈교와 정파연합이 피 튀기게 싸우는 제녕까지 갈 거리에 도착했다.
물론 폭풍 2대와 폭풍 3대도 바로 따라붙어 폭풍문의 전 세력이 일시에 혈교를 치기 위한 사정거리에 모두 나타났다.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 삼삼오오 흩어져 움직이는 탓에 아직까지 그들의 행적은 전혀 혈교 측에 노출되지 않았다.
이동 중에 전서구를 통해 정파연합과의 연락은 매시진 간격으로 이뤄져 정파연합의 현 상황과 혈교의 침공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천악은 모든 정보를 심자앙 군사에게 전해줘 그때그때 상황에 대한 판단을 들을 수 있었다.
"문주님, 우리 계획대로 정파연합이 움직여주는 거 같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역시 혜연 정파연합 맹주는 그릇이 크군요."
심자앙의 감탄에 소천악이 짧게 대답했다.
"스님이시잖아요. 불자께서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스님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요."
"흠, 어서 갑시다."
말발이 달리자 얼른 말머리를 돌리며 시치미를 떼는 소천악을 바라보며 실소를 머금던 심자앙이었다.
마침내 혈교의 선발대와 불과 6시진 거리까지 도착한 폭풍 1대는 오랜 행군으로 지친 심신을 달콤한 휴식으로 풀고 있었다. 이제 곧 피 터지는 혈전이 전개된다는 긴박감이야 있었지만 모두 사기는 충천했다. 평소 아니꼽게 굴던 정파를 구원한다는 자부심은 두려움보다야 훨씬 컸다.
"자, 이제부터 모든 지휘권은 심 군사님에게 넘깁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소천악의 시원시원한 말에 미소를 짓던 심자앙이다.
"제가 머리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폭풍문은 중원의 평화를 위해 선봉에 서게 되었지요."
"크하하하. 말만 들어도 속이 후련합니다."
뇌가이 각주가 크게 웃자 조용히 미소지으며 심자앙이 말했다.
"혈교는 강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약점은 그들의 거점이 중원 내가 아닌 막북이라는 데에 있지요. 아무래도 저들은 인원을 보강하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합니다. 그건 기습이 용이하다는 이야기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적을 토막내서 기습하는 겁니다. 적이 정파연합을 추적하다 보면 아무래도 급속도로 움직여야 하기에 인원이 분산될 겁니다. 그 틈을 노려 소규모로 나뉘어 이동하는 적을 우리 전 전력으로 강타하는 겁니다."
"아, 그런 묘안이."
"적은 적고 우리는 많은 숫자로 공격하면 우위에 서게 됩니다. 단 이 계략은 신속한 명령과 복종이 필요합니다."
"말만 하십시오. 따르지요. 아, 안전하게 이기게 해준다는데 뭐가 문제겠소이까?"
말뚝을 팍 박는 소천악의 일갈에 장내에 모인 수뇌부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는 평소 놀라운 지략을 보여준 심자앙에 대한 굳은 신뢰도 한몫을 한 건 분명했다.
한편 정파연합이 싸우다 말고 명에 따라 급속후퇴를 하자 혈교의 선봉을 맡고 있던 두수종은 옆에 있던 선봉대 군사 척세빈(拓世彬)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가만히 전장을 살펴보던 척세빈 군사가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정파연합이 여기에서 우리를 막기는 무리라고 생각하여 자신들이 유리한 지리로 이동하려는 속셈인 거 같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에게 군영을 정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바로 따라붙어 저들의 패잔병들을 해치워야 합니다. 원래전투란 싸울 때보다 후퇴할 때 더 많은 희생이 나오는 법입니다. 후퇴할 때는 아무런 명령계통을 듣기가 힘듭니다. 그때를 이용하여 모두 각기 배포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좋다, 모든 선봉대 무인들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두주종의 명에 따라 혈교의 가열찬 추격이 시작되었다. 정파 무림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얄팍한 저항을 계속하면서 연신 후퇴 길에 올랐다. 혈교는 처음에는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무런 명령계통 없이 후퇴하는 듯한 정파 무림인을 보고 득의양양하여 이제는 맹렬히 추적하기 시작했다.
점점 추격이 길어질수록 혈교의 무사들은 길게 늘어지며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전선을 통제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혈교의 막강한 선봉지휘대가 지나가고 후속부대가 따라올 무렵 이미 산길 양쪽에는 폭풍문의 고수들이 잠복해 있었다. 눈앞에 혈교도가 움직이는 걸 본 소천악이 눈빛을 빛내며 심자앙에게 물었다.
"심 군사, 이제 선봉대가 통과했으니 다음 부대를 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중간을 치면 후속부대가 다가오다가 우리를 보게 됩니다. 그럼 곤란한 일이 생길 수가 있지요. 맨 마지막 부대부터 하나씩 하나씩 각자 격파해야 합니다."
"그렇군. 역시 심 군사님의 전략은 놀랍기만 하오."
"허허. 이거 군사로서 최고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아닙니다. 멍청한 강호인들이 자기들 힘자랑만 하지 이런 계략은 전혀 꾸밀 줄을 모르지요."
연신 자신을 치켜세우는 소천악에게 작은 경고를 보내며 진정시키는 심자앙이다.
"아직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엔 혈교에도 만만치 않은 머리를 가진 군사가 여럿 있는 걸로 압니다."
"그거야 심 군사님이 알아서 막으시면 되지요. 저야 뭐 검이나 들고 싸우면 되지 않겠소이까?"
태연하게 말하는 소천악을 바라보는 심자앙의 내심은 복잡했다. 이건 실질적으로 폭풍문을 지휘하는 역할을 자신에게 준 꼴이었다.
은신하여 기다리고 있는 소천악과 폭풍문 문도들에게로 정찰하던 대원들이 부리나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