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악 156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소천악 156화
"알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 피떡으로 만들어버리죠."
피식 웃으며 소천악은 탁천웅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마교로 들어갔다. 마교 정문에 다가서자 이미 마교에서는 구정학 마교주를 비롯한 마교 수뇌부와 마교인들이 우르르 나와 있었다. 구정학 마교주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천악에게 소리쳤다.
"어이, 사돈 오셨나?"
"마교주님,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뭐 자네 덕분에 안녕하지. 다만 아무래도 자네 그 여자가 문제야."
"그새 또 사고 쳤습니까?"
"자네가 있을 때는 조용하더니만 없으니 독수공방 이후로 보통 신경질을 부리는 게 아니야."
"자,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우리 작전대로 하시죠."
"그래, 준비하지. 자, 모두 시작할 준비를 해라."
마교주의 말이 떨어지자 마교들은 일제히 신형을 갖추고 준비에 들어갔다. 소천악도 이에 질세라 폭풍문 고수들에게 말했다.
"자, 우리도 준비하시오. 심자앙 군사가 책임지고 모든 지휘를 총괄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문주님."
명령을 내리고 난 마교주와 소천악은 이미 차려져 있는 주안상 옆으로 다가섰다. 물론 그 자리에는 구자명 소교주도 함께 자리했다.
"자, 여기서 배 터지게 한번 술을 먹어보세."
"술 먹어본 지 오래돼서 술발이 받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자네 주량은 내가 잘 아네."
"그러십니까?"
두 수뇌가 술을 마시는 동안 마교와 폭풍문은 행동을 개시했다.
"폭풍문들의 떨거지들을 죽여라!"
"와아!"
마교도가 먼저 소리치자 이에 질세라 폭풍문도들도 악을 썼다.
"마교의 잡졸들을 쓸어라!"
"와아!"
거센 함성소리가 들리며 두 세력은 검과 검을 마주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챙챙챙!
수천의 고수들이 부딪히는 소리는 참으로 웅장하고도 컸다. 온 산을 무너뜨리듯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산이 온통 수난을 겪을 지경이었다. 그사이에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조용히 마교와 폭풍문의 거센 격돌(?)을 지켜봤다.
"이 정도면 첩자들 다 듣겠죠?"
"그럼. 다 들릴 거야. 산이 워낙 조용해서 이 정도 소리면 뭐 아무리 귀가 나쁜 놈도 들을걸세."
"그거 다행입니다."
"그런데 저 소리들이 심한 거 같지 않나? 마교 잡졸들이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폭풍문 떨거지들이라니요."
"뭐 일이 그렇게 되는 건가?"
"첩자들에게 확실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거친 말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던 구정학 마교주는 마교도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자, 모두 욕지거리를 실컷 하도록!]
물론 소천악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똑같은 식으로 전음을 보냈다. 이후 마교 고수들과 폭풍문 고수들은 살벌한 쌍소리를 지껄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아, 이 마교의 후레자식들아!"
"폭풍문 이 비겁한 놈들아! 기습이나 하다니, 모두 쓸어버리겠다!"
가만히 듣던 마교주는 불쾌한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영 듣기 안 좋구먼."
"다 이거 연극 아닙니까, 좀 참으십시오."
"그러긴 하겠다만 감히 마교를 향해서 저리 험한 욕을 하다니. 심하네."
"이해해 주십시오, 마교주님."
소천악이 거듭 양해를 구하자 기분이 풀린 구정학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술자리를 벌이며 검 부딪치는 소리가 작아지면 검 소리를 크게 하라고 지시하고 목소리가 작으면 목소리를 크게 하라고 지시했다.
폭풍문 고수들과 마교 고수들은 이제 편안하게 땅바닥에 드러누워 칼만 열심히 부딪히고 있었다.
창창!
"크아악. 분하다. 저런 마교의 잡졸에게 죽다니."
한 폭풍문 고수가 누워서 온 목에 힘을 주고 비명을 질렀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옆에서 바라보던 마교 고수 하나가 어이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술잔을 들던 구정학 마교주도 찬탄을 금치 못했다.
"허, 저건 거의 예술이구먼."
"우리 폭풍문의 고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합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소천악이 전음을 날렸다.
[이보세요, 심 군사님. 저 문도에게 은자 백 냥을 주시오.]
소천악의 지시는 바로 시행되어 전표 하나가 그 문도에게 전해졌다. 이에 눈이 번쩍 뜨인 폭풍문 고수들이 사방에서 칼 소리를 내며 실감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물론 효과음이 좋은 자에겐 여지없이 포상금이 주어지는지라 심자앙 군사가 바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던 구정학 마교주가 몰래 싸움판을 지휘하는 천일평 각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야, 우리는 저런 인재 없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교주의 힐난에 놀란 천일평 각주가 급히 수소문해 한 명을 선발했다. 옆에서 효과음으로 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그 마교 고수는 적나라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런 개 같은 잡졸에게 천하의 마교인이 당하다니. 분…하…다… 커헉."
이번에는 폭풍문 고수들의 경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크게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지게 비명을 지르는 마교 고수의 몸을 불사르는 연출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크허허! 이봐, 저놈에게 어서 은자 백이십 냥을 주거라."
마교의 자존심상 이십 냥을 더 주는 호기를 부리는 구정학 마교주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천악이 피식 웃으며 슬쩍 외면했다. 더 이상 자존심을 건드리고픈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후 마교인도 앞다투어 비명소리를 질렀고 최우수 비명효과를 보이는 자에게 또다시 전표가 날아다녔다.
그렇게 마교와 폭풍문의 처절한 혈투(?)는 은자의 힘을 빌려 박진감 나게 진행되었다. 이들의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첩자들은 입구에서 몰래 들어가려던 동료들을 무식하게 쇠몽둥이로 때려죽이는 탁천웅의 무력에 질렸다. 몇 명이 덧없이 머리가 깨져 죽어가자 서서히 두려움이 밀려왔다. 눈치를 보며 아무도 진입하지 못한 채 멀리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귀를 기울이며 소리만으로 처참한 현장을 판단하려 애를 썼다.
들려오는 소리는 처참한 비명소리와 칼 부딪히는 소리로 온통 산을 뒤덮고 있었다. 첩자들의 입에서는 회심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폭풍문과 마교가 부딪히면 서로 상전하여 상당한 전력의 희생이 나는 건 분명했다. 첩자들의 대장인 목망서가 말했다.
"이 정도면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겠지?"
"예. 이 정도면 뭐 누가 죽든지 끝장을 볼 것 같습니다."
"좋다. 이 사태를 즉시 전서구로 보내고 우리도 모두 철수한다. 혹시라도 마교 고수나 폭풍문 고수에게 걸리면 우리도 살아남기 힘들다. 빨리 철수해서 본대와 합류하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첩자들이 전장 상황을 적은 서찰을 다리에 묶은 전서구를 일제히 날려 보내고 움직이자 이내 산속은 첩자들이 모두 사라진 조용한 터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또 하나의 폭풍문 고수들이 수두룩 산속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됐다. 이제 모든 첩자들이 물러났으니 어서 이 소식을 문주님에게 전해라."
"알겠습니다, 대장님."
전령은 나는 듯이 뛰어가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 소천악에게 부복하며 외쳤다.
"문주님! 첩자들이 모두 물러났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모두 갔나? 확실한가?"
"네, 저희가 모두 확인해 봤습니다. 모든 첩자들은 이미 십만대산을 벗어나 혈교 본대로 합류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됐다. 이제 우리의 모든 연극은 끝났다."
얼굴에 미소가 담긴 소천악의 일갈에 모든 폭풍문도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으하하! 성공이다."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 건 마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연극이라 해도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게 지겨워질 무렵이라 기쁨은 배가됐다.
깜쪽같이 혈교의 눈인 첩자들을 속인 폭풍문과 천년마교는 그날 밤 마교 내에 있던 모든 술을 꺼내 한바탕 잔치를 열었다. 경비하던 무인을 제외한 모든 무인들이 진탕 마시고 떠들다 취기를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잠드는 촌극이 벌어졌다.
소천악은 당연히 적당히 술을 마신 후 천취려의 거처로 찾아갔다. 이미 그녀는 곱게 몸단장을 마친 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이게 얼마 만이오."
"낭군님, 이제 오셨습니까?"
독수공방의 설움을 지겹도록 겪은 천취려는 이미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소천악을 맞이했다.
"오호. 이렇게 맞이하니 내가 새삼 여자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드오."
"어서 소첩의 술 한잔 받으시고 누워서 쉬세요."
웬일인지 유난히 부드러워진 천취려의 모습에 다소 의아한 소천악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러려니 하고 따라주는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사실 주혜미의 일로 미안한 감정이 든 그로서는 가슴에 돌 하나 달고 다니는 마음이었다.
열 잔이 넘자 천취려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어떠세요?"
"좋네. 자, 이제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서던 소천악은 아차하는 마음이 들었다. 겨우 열 잔인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채 의식이 몽롱해지는 걸 느꼈다.
"이제 기별이 오시나요?"
"이상하네. 몸이 왜 이러지?"
"당연하죠. 당신이 드신 게 백일취란 술이거든요. 보통 남자가 마시면 백 일은 취기가 돌아 비틀거리는 명주지요. 아마 당신은 초절정고수니 하루 정도는 취해야 할 거지요."
"응? 왜 이런 술을 준 거야. 취하면 밤일도 못 하는데."
"시끄러워요. 어디서 시치미를 떼고 난리지요? 내가 귀가 먹은 줄 아세요. 당신이 강호에 가서 싸가지 없는 계집애랑 꿈같은 시간을 보낸 거 다 알아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당치 않은 말 하지 마시오."
놀란 소천악이 얼른 모른 척하며 딴청을 피웠지만 천취려는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웃기지 마요. 자꾸 그렇게 나오면 이름까지 댈까요? 주혜미라고 하죠? 아마 그년 이름이."
"헉! 그걸 어떻게."
기겁을 한 소천악은 더 이상 변명하기 어려운 궁지에 몰렸다. 그는 몰랐지만 용의주도한 천취려는 마교를 떠나는 그의 뒤에 미행을 붙여놓았다. 멀리서 움직이는 탓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가 이런 낭패를 당했다.
"이 바람둥이야, 오늘 죽어봐라."
천취려는 닥치는 대로 물고 뜯어댔다. 술에 취해 저항하기도 힘든 소천악은 일단 어쩔 수 없이 수난을 당해야 했다. 일각여를 물리고 얻어터진 소천악은 마침내 내공으로 백일취의 독한 술기운을 한군데로 몰아 입을 벌려 토해냈다. 역겨운 술 냄새가 사방에 퍼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린 소천악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감히 하늘 같은 남편을 이리 구박해? 이런 못된 계집애!"
"아니 어떻게?"
"시끄럽다. 내 다시는 널 보지 않을 거야. 알아서 다른 남자 구해서 잘 살아봐. 아버지가 힘이 있으니 시집은 갈 수 있겠지."
차가운 소천악의 말에 온몸이 얼어붙는 천취려였다. 소천악과 지낸 세월을 통해 그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