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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악 147화

무료소설 소천악: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소천악 147화

 

  소천악은 이 기회에 아예 버릇을 고칠 심산이었다. 자칫 방치했다간 머리끝까지 기어올라 와 불감당일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 걸 깨달은 것이다.

 

  매섭게 구타하는 소리를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듣는 이가 있다는 건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유가장원의 유염독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며 신경질적인 말투를 토해냈다.

 

  "저러다 우리 사위 맞아 죽는 거 아냐?"

 

  "설마 동생인데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참고 지켜보시지요."

 

  옆에 서 있던 유염서가 위로의 말을 던졌다. 그는 유염독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설마 동생을 패 죽이겠냐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휴! 저 성질머리하고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더니만 딱 소문 그대로네."

 

  "조심하십시오. 듣자 하니 황제 폐하 앞에서도 할 말 다 한 사람이란 말이 은근히 강호무림에 파다합니다."

 

  "하고도 남지. 저 하는 걸 봐. 천웅이에게 예비장인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주 죽사발을 내는구먼."

 

  영 못마땅하단 듯이 쏘아보는 유염독의 눈초리는 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소천악을 요절낼 기세였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소천악과 탁천웅이었다.

 

  탁천웅은 전신이 시퍼렇게 물든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소천악은 그런 그를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감히 네놈이 형님에게 이럴 수 있냐?"

 

  "죄송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형제의 정을 깨고 아주 박살을 내주마."

 

  "……."

 

  섬뜩한 소천악의 말에 끽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는 탁천웅이었다. 매를 들었으면 이젠 달래줄 차례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소천악이다.

 

  "좋아, 이번은 그냥 이 정도로 넘어가마."

 

  "고맙습니다, 형님."

 

  고개를 조아리는 탁천웅의 얼굴은 소천악이 안 보는 틈을 타 불만에 가득 찬 시선을 연신 내비쳤다.

 

  "그래, 언제부터 유옥여 낭자와 그리되었누?"

 

  "형님이 연공실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후부터입니다."

 

  "음, 일단 축하한다. 이제 우리 천웅이도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 그래, 혼인날은 잡았나?"

 

  "안 그래도 형님이 연공을 마치시면 바로 치르겠단 장인어른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차분하게 대답하는 탁천웅을 바라보던 소천악은 이상한 점을 느끼고 급히 물었다.

 

  "그런데 네 말투가 어딘지 모르게 바뀐 거 같네."

 

  "우리 마누라가 하루에 열 시진씩 아주 고되게 가르쳐줬어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탁천웅을 보고 반색을 한 소천악이 얼른 물었다.

 

  "오, 제수씨가 그런 재주가 있다니 놀랍네. 그런데 공부가 지겹지 않더냐?"

 

  영 의심쩍다는 목소리에 탁천웅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도 당해보슈. 이건 하루 목표량을 안 채우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잠자리를 피하니 어쩔 수가 없었어요."

 

  "크하하. 그거 참 묘안이네, 묘안."

 

  찌푸린 얼굴이 한순간에 활짝 펴지며 소천악이 크게 웃자 탁천웅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웃지 마슈. 형님, 내게는 아주 큰 고문이었습니다."

 

  "좌우간 잘된 일이야. 이제 어서 혼인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야지. 벌써부터 동거하면 세상 사람 시선이 곱지가 않아."

 

  흐뭇하게 웃던 소천악이 서둘러 유염독을 찾아갔다. 이후 아주 순조롭게 혼인식 준비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가뜩이나 강호정세가 어지러운 터라 시간이 많지 않던 소천악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탁천웅과 유옥여의 혼인식 준비를 후다닥 해치웠다.

 

 

 

  마침내 혼례식 날이 되자 신랑인 탁천웅의 얼굴은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웃음으로 가득 찼다.

 

  외동딸의 결혼식이라 유염독 장주는 유난히 많은 신경을 쓴 끝에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다만 불미스러운 일을 우려해 외부의 인사를 일제히 초청하지 않았고 주변에 있는 친척들과 아는 지인들만 초대하는 선에서 소박하게 끝내고자 했다.

 

  소천악은 모처럼 백의무복으로 깨끗이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랑 신부가 들어오자 소천악은 영 비위가 뒤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새끼가 형도 장가를 못 갔는데 싸가지 없이 먼저 가다니."

 

  "소 대협,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오늘 날씨가 좋은 게 결혼식에 길일인 거 같네요."

 

  "아, 그렇죠?"

 

  다행히 소천악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유염독 장주가 넘어가자 소천악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은 전통혼례답게 꽤 시간을 끌고 진행되었다. 소천악은 지루함에 몸을 뒤틀고 싶었지만 신랑의 형이라는 직분에 묶여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곤혹을 치러야 했다. 마침내 식이 끝나고 탁천웅은 소천악에게 다가와 한마디를 건넸다.

 

  "형님, 이제 신방에 들어가겠습니다."

 

  "새끼, 나보다 먼저 장가가다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형님은 저보다 먼저 혼례식만 하지 않았지 할 건 다 했잖아요."

 

  할 말이 궁해진 소천악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퉁명스레 내뱉었다.

 

  "신부 기다린다. 얼른 가라."

 

  "예, 형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탁천웅과 유옥여가 신방에 든 그날 밤, 소천악은 유염독 장주와 함께 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해서 서로에게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갑자기 소천악에게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죠?"

 

  소천악은 혹시나 적들이 기습했을까 봐 술자리를 걷어차고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장원 앞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면서 웅성웅성하는 것이 보였다.

 

  소천악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달려간 곳은 의외로 신방에 있는 전각이었다. 소천악은 귀를 기울여 전각 안의 소리를 엿들었다.

 

  "어? 이거 왜 침대가 부서지고 지랄이야."

 

  "어머, 이 일을 어떡하죠?"

 

  "침대가 너무 약한 거 같아요, 부인!"

 

  "그래도 우리 다음에는 침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할 거 같아요."

 

  "일단 부서진 침대는 놔두고 이불 위에서 잡시다."

 

  소천악은 쓴웃음을 날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랬다. 두 거구의 격렬한 몸놀림을 이기지 못해 침대 다리가 우지끈우지끈 부서져 나간 황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첫날밤은 우여곡절 끝에 조용히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큰일을 무사히 치러낸 소천악은 은밀히 하오문 지부를 찾아갔다.

 

  "지부장님, 그동안 변한 거 있으면 현재 강호정세를 말해 주시오. 연공하느라 전혀 찾아뵙지를 못했습니다."

 

  물음에 상천기 지부장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하소연하며 말했다.

 

  "아이고! 요새 강호는 한마디로 살얼음판입니다. 혈교가 본격적으로 중원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정파연합과 집마부 그리고 사존맹 등 사마외도의 거파들이 속속 싸움 준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혈교가 중원 전체와 한판할 힘이 있나요?"

 

  "모르시는 말씀. 정파연합이라 하지만 사실상 문파의 전 고수를 동원할 문파는 없습니다. 소림사가 겨우 전력의 오 할, 나머지는 불과 삼사 할의 전력이지요."

 

  "왜 그런 일을?"

 

  "무림은 비정합니다. 만약 전력으로 싸우다 전멸이라도 하는 날이면 천하의 소림사라 해도 바로 몰락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른 구대문파나 오대세가도 이를 두려워하는 거지요."

 

  "지면 끝 아닙니까?"

 

  "그게 아니고 좀 복잡하게 일이 진행됩니다. 혈교에서 머리를 좀 썼지요."

 

  "어떤 수작인지?"

 

  "혈교는 자파가 중원제일문이라는 호칭을 원한답니다. 때문에 중원의 각 대문파나 군소방파가 지금처럼 자기 위치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공포를 했답니다."

 

  "음, 교활한 방법이군요."

 

  다소 감탄한 소천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상천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 믿지 않던 정사 무림인들이 혈교가 강북무림을 휩쓸면서 보여준 형태를 보고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였습니다. 혈교는 기존의 문파를 멸문시키지도 않고 싸우다 항복하면 그 지위를 보존해 주고 있답니다."

 

  "오호. 아주 고단위 수법이군요."

 

  "그렇지요. 덕분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 정파연합도 목숨을 걸고 싸우려던 기색이 많이 줄어든 편이죠. 다만 자존심상 순순히 항복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니 일단은 반 정도의 무인을 동원해 한판 승부를 겨뤄보고 안 되면 봉문 등으로 문파를 보존한다는 속셈이 속속 드러나는 실정입니다."

 

  "음. 상상외로 혈교가 무서운 기세를 보이는군요. 싸움이란 원래 기세가 중요한데 그걸 버리고 가니 정파가 이길 리가 없지요."

 

  "사파나 마도는 더하지요. 사존맹이나 집마부 같은 거대문파는 자존심상 굽히고 들어갈 수가 없어 전력으로 버틸 모양입니다만 각 지역에서 힘깨나 쓰는 군소방파는 일찌감치 중립을 표방하거나 눈치를 살살 보는 형국입니다."

 

  "한마디로 이건 무림인이 아니네요."

 

  "그게 현실입니다."

 

  체념 어린 상천기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소천악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신도 뭔가를 준비해야지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지금 즉시 심자앙 책사와 종천리 막주 등 제가 적어주는 모든 이를 광동성에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무슨 일로."

 

  "아무래도 가만있다가는 큰일이 나겠네요. 귀찮지만 자구책은 강구해야 할 거로 보입니다."

 

  "바로 전 하오문을 총동원해 수소문하죠. 그런데 청 하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시지요."

 

  "우리 하오문도 그 대열에 합류하면 안 되겠소이까?"

 

  "하오문이오?"

 

  뜻밖의 제안에 놀란 소천악이 반문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말하는 상천기였다.

 

  "이건 제 뜻이 아니고 조 문주님이 직접 부탁하신 겁니다. 아무래도 천하정세가 어지럽다 보니 무력이 약한 우리 하오문으로선 믿을 만한 소 대협에게 오는 게 좋다는 문주님의 전언이니 허락 바랍니다."

 

  "음, 잠시만요.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구려."

 

  "물론이외다."

 

  상천기 지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천악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난세는 시작되었고 이젠 자신도 뭔가 움직여야 할 때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다만 귀찮았다.

 

  조용히 살고 싶은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혈교가 미웠고 강호무림이 미웠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지켜야 할 게 너무나 많아진 터였다.

 

  움직일 결심을 굳힌 그는 하오문의 정보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물론 하오문도 무력의 필요성을 느끼니 이거야말로 상부상조의 동맹이었다. 좋은 일에 망설임을 보일 소천악이 아니다.

 

  "좋소. 하오문과의 연합 하겠소."

 

  "껄껄. 조 문주님이 들으시면 기뻐하실 소식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하는 상천기에게 마주 고개를 숙여 답례한 소천악이 서둘러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바로 광동성으로 갈까 하오. 빠른 시간 내에 모이도록 신속한 연락 부탁합니다."

 

  "염려일랑 붙들어 매시지요."

 

  자신 있게 말하는 상천기 지부장이었다. 소천악은 서둘러 다시 유가장으로 돌아가 유염독과 마주 앉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충 설명하자 유염독은 급변하는 강호의 풍운에 수심이 잔뜩 끼인 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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