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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6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9화

삼조의 거처는 왠지 모르게 무거운 분위기였다.

“십팔호 장천운이란 놈, 운이 좋은데?”

삼조 수련생 중 하나인 오호 섭중화가 백리우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백리우진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의외군. 별 볼일 없는 흑도 건달 출신이 유진생의 몸에 손을 대다니.’

사람들은 유진생이 방심하다가 한방 맞았을 뿐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진생은 박투술의 고수다. 그런 고수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어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만약 공력이 실려 있었다면 유진생은 죽거나 병신이 되었겠지.

그것만이 사실일 뿐이다.

‘유 교관을 너무 믿었어.’

사실 흑도건달로 굴러먹던 놈 따위는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놈이 총사의 추천을 받고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신경 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정식 무공을 처음으로 수련한다는 놈의 몸놀림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랫동안 수련해온 사람처럼.

총사가 무슨 목적으로 저놈을 강련곡에 집어넣은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무리를 하면서까지 유진생을 움직였는데, 엉뚱한 결과만 나왔다.

“육호.”

백리우진이 부르자 단수인이 대답했다.

“어, 조장.”

“앞으로 네가 책임지고 십팔호를 주시해라.”

“내가? 이호는?”

“이호는 여귀에게 넘겨.”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단수인은 삼조에서 이인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일조의 말단이라 할 수 있는 장천운을 상대하게 하자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백리우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라는 대로 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시키는 것이니까.”

수련생은 모두 동료다. 형 동생이 없고, 오빠 동생도 없다. 당연히 누나 동생도 없고.

하지만 예외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백리우진이다.

그의 말은 동료로서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단수인은 그의 명령을 거역할 배짱이 없었다.

“알았어. 그런데 흑도 조무래기에게 너무 신경 쓰는 것 아냐?”

괜한 우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리우진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두고 보면 알겠지. 만약 내 앞길에 방해가 될 놈이라면…… 미리 싹을 잘라버리겠어.’

 

***

 

백리우진이 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이조의 방에서는 교소가 터져 나왔다.

“호호호호, 삼조장이 한방 맞았군.”

맑은 웃음을 터트린 사람은 류화였다.

그녀는 유진생이 백리우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일조의 사기를 꺾어놓을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장천운이 총사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벌인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흑도 출신의 새끼건달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거만한 백리우진의 계획이 무산된 사실만으로도 무척 기분 좋았다.

“능능, 백리우진의 얼굴 일그러진 것 봤어?”

입술 옆에 점이 있는 아름다운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못 봤어. 조장은 봤어?”

“응. 그 거만한 얼굴이 썩은 벌레를 문 것처럼 이지러졌어.”

“그래? 나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십팔호 장천운이라는 자, 정말 흥미로워. 그가 유 교관의 목을 칠 줄 누가 알았어?”

“나는 유 교관이 이상한 목소리를 낸 것이 너무 웃겨.”

“호호호, 맞아. 목이 쉬어버린 참새 같았지.”

“깔깔깔.”

“좌우간 성격이 괴팍한 유 교관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텐데, 십팔호가 어떻게 버틸지 정말 궁금해.”

십삼호 하은과 십육호 소민민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연송하는 그 점이 정말 걱정이었다.

‘그래도 장천운은 침착해서 잘 버텨낼 거야.’

 

***

 

많은 사람이 염려했던 대로 유진생은 장천운을 남들보다 유난히 독하게 다루었다.

“이 자식, 그것 밖에 안 되나?”

“내 목을 칠 때처럼 악착같이 버텨 봐!”

“내가 인마, 너 미워서 이러는 줄 알아? 그 정도로는 강호에 나가서 사흘도 못 버텨, 인마.”

장천운도 예상했던 바라 꾹 참고 시키는 대로 했다.

힘들긴 해도 어차피 수련의 범주에서 행해지는 일. 참고 견디면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무릎을 꿇는가.’

다행히 유진생도 한계를 넘기지는 않았다. 행여나 잘못되면 책임추궁을 당할 터. 그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 듯했다.

하루하루가 고난의 시간. 장천운은 수련을 마치면 지쳐서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다시 고난의 수련을 묵묵히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천운이 한쪽 구석에서 흙과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을 닦고 있는데 연송하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십팔호, 너는 왜 하라는 대로 다하는 거야?”

왠지 불만인 표정. 유진생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못마땅한가 보다.

“안하면, 저 유 마두가 가만히 있겠어?”

“그래도 가끔은 힘든 척하고 쓰러져버려. 설마 쓰러진 사람에게까지 시키겠어? 성격이 괴팍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하던데.”

“지금 유 마두는 머리가 빡 돌아서 제정신이 아니야. 하긴 나라 해도 꼬맹이에게 목을 쳐 맞았으면 기분이 무척 나빴을 걸? 이럴 때는 순순히 따르는 게 나아. 유 마두가 진짜로 미치면 골치 아프거든.”

장천운이 유진생을 ‘유 마두’라고 하자 연송하가 콧등을 씰룩이며 피식 웃었다. 콧등에 박혀 있던 주근깨 몇 개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주근깨도 연송하의 맑은 눈빛 때문에 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보니 눈이 정말 예쁘네.’

연송하를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말을 나눈 것도 처음이었고.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녀의 눈은 속눈썹이 짙고 길었다. 거기다 웃을 때 커다란 눈이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져서 정말 예뻤다.

장천운이 빤히 쳐다보자 연송하의 볼에 홍조가 어렸다.

“좌우간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러다 다치면 너만 손해니까. 그럼 쉬어.”

멋쩍은 듯 좌우를 둘러보는 척하며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리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천운이 그녀의 뒤에 대고 장난처럼 말했다.

“걱정 마. 이 오빠는 마두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슬쩍 고개를 돌린 연송하가 흘겨보더니 ‘피이’소리를 내며 웃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오빠’라고 했는데도 싫진 않은 모양이다.

그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유고원이 쪼르르 달려왔다.

“십팔호, 십사호가 왜 찾아온 거야?”

“봤어?”

“그럼. 눈이 있는데 못 보겠어? 뭐라고 해?”

“별 거 아냐. 나보고 멍청하다는군. 자기는 멍청한 사람이 싫대.”

“정말?”

“하긴 이러다 골병들어 죽을지 모르는데, 누가 좋아하겠냐?”

장천운이 장난처럼 말하자, 유고원이 목소리를 낮추고 넌지시 말했다.

“총사한테 말하면 어때? 총사가 추천해서 들어왔다며?”

그 말에 장천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내가 싫어. 솔직히 그 인간은 앞으로도 안 보면 좋겠어.”

“왜?”

“무서운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은 가까이 해봐야 명만 짧아져.”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총사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사람의 머릿속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 노인의 신분이 궁금했다.

‘그렇게 무서운 총사가 왜 무 노인을 잡으려고 무창까지 직접 왔을까?’

 

류화는 연송하가 돌아오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송하야, 십팔호가 뭐래?”

멈칫한 연송하가 대충 둘러댔다.

“응? 아, 십팔호? 정말 멍청한 사람이야. 대충 하랬더니 나보고 걱정할 것 없대.”

“그래? 흠, 고집은 제법인데?”

옆에 있던 이능능이 슬쩍 류화의 표정을 살펴보며 말했다.

“조장, 설마 십팔호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

“내가? 호호호호. 너도 참, 내가 왜 흑도건달 출신 따위에게 관심을 가져?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얼마나 견딜 수 있나 하고.”

“하긴 일조장이나 삼조장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조장 눈에 차지도 않을 텐데 뭐.”

그때 십호 조궁혜가 말했다.

“조장이 아니라 송하가 관심이 있나 봐. 하긴 그럭저럭 어울릴 것 같긴 해. 십팔호는 흑도의 건달 출신이고, 송하는 흑도문파 주인 첩의 딸이잖아.”

“그건 그러네. 호호호호.”

류화가 연송하를 비웃는 이능능과 조궁혜를 향해 짐짓 눈을 부라렸다.

“얘들도 참. 너희들이 그렇게 말하면 송하가 속상하잖아. 헛소리 그만하고 다음 수련 준비나 해.”

연송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조궁혜의 말대로 그녀는 흑도문파 주인의 첩의 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장천운에게 관심이 가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 말을 동료들에게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너무 그러지들 마. 첩의 딸도 사람이야.’

 

***

 

유진생의 장천운에 대한 보복은 한 달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다 싶었는지 삼호 교관인 황수민이 유진생을 말렸다.

“유 교관, 그쯤 했으면 그놈도 정신을 차렸을 거요. 이제 그만 하지 그러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나? 십팔호는 내가 시키기 전에도 남들보다 더 뛰고 오래 수련을 했네. 내가 더 시킨 것도 없어.”

유진생이 신경질적으로 반박하자 양태악도 한마디 했다.

“그래도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은 다르지 않소?”

“본인도 마다하지 않고 있잖은가?”

“그거야 유 교관께서 시키니까 그런 것 아니오? 계속 이러시면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올지도 모르오. 총사께서 어떤 분이란 걸 모르지 않으실 텐데, 왜 자꾸 일을 키우시는 거요?”

“자네는 그놈이 좋은가보군. 자꾸 그놈 편을 드는 걸 보니 말이야.”

“내가 언제 편을 들었단 말이오? 열심히 하려는 애를 너무 몰아붙이니 보기가 안 좋아서 한마디 한 것뿐이외다.”

유진생과 양태악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자, 사호 교관인 금가진이 나섰다.

“왜들 이러시오? 자자, 진정하시고. 유 교관, 그놈과 특별한 감정이 없다면 이 정도에서 끝내시구려.”

유진생도 계속 고집을 부리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서자니 상황이 영 어정쩡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시험해보겠네.”

 

다음 날. 수련생들은 열흘에 한 번씩 하는 비무 수련을 하기 위해서 수련장 북쪽에 있는 비무장에 모였다.

평소에는 수련생들끼리만 대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진생이 작심한 듯 장천운에게 제안했다.

“십팔호, 오늘의 비무 수련은 내가 직접 상대해주겠다. 네가 내 공격을 십초만 막아내면 더 이상 너를 차별하지 않겠다. 어떠냐?”

아무리 공력을 쓰지 않는 비무라지만, 유진생의 주먹은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강력하고 번개처럼 빨랐다.

그가 작정하고 십초 공격을 펼친다면 뼈 몇 대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장천운은 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가르침을 내려주시겠다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지낼 순 없지 않은가.

한 번에 끝낼 수만 있다면 뼈가 부러지더라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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